소설리스트

건축의 신-341화 (341/427)

건축의 신 341화

KT 프로젝트(09)

서 전무가 물었다.

“최 이사. 사장님은 언제 오신대냐?”

“회의 시간에 맞춰서 오신답니다.”

“다들 모여 있지?”

“네. 30분 전에 먼저 모이라 했습니다. 안건이 있다고.”

“안건은 전달했고?”

“네! 다 전했습니다.”

서 전무가 씨익 웃었다.

“그래? 잘 했어.”

“그런데 전무님. 어차피 사장님이 결정하실 텐데, 우리끼리 말해 봤자…….”

그 말에 서 전무는 그의 옆구리를 툭 쳤다.

“그러니까 네놈이 순일이, 그 여우 놈한테까지 밀리는 거 아니냐?”

“꼭 그렇게 말씀을 하셔야…….”

“닥치고 들어. 이 회사 일 중에 사장님 결정 안 하시는 일이 있냐? 하지만 어차피 이 일은 안 된다. 그 놈 욕심에 놀아나는 것뿐이야.”

“네. 맞습니다.”

“그런 사장님의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 우리 같은 이사의 충언이 필요한 거 아니겠냐?”

“역시 전무님은 현재 건설의 충신이십니다.”

최 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차피 안전모 그놈은 꼬리야. 그 뒤에 곽 이사, 그놈과 황 전무가 있겠지. 이 기회에 눌러 놔야 돼!”

“아! 그렇군요.”

이야기하는 사이, 회의실에 도착했다.

“그동안 회사 지키느라 고생 많았다. 최 이사.”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서 전무가 모인 이사들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회사는 말이다. 정치다. 정치!”

“네?”

“잘 봐라.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줄 테니까.”

‘뭣도 모르는 이사 놈들 휘두르는 건 일도 아니지. 이참에 그 새끼, 알래스카 보내버리고, 어리바리한 놈들한테 누가 실세인지 보여주는 거지.’

***

“그 안전모가 이억 불짜리 일을 가져왔다고? 대단하군.”

“하지만 그게 다 거품이라 하지 않나?”

“서 전무 말이 사실이라면, 잘 돼도 뒤가 찜찜하고, 안 되면 독박인 거지!”

“설마 사장님께서 허락하시겠어?”

“그거 때문에 모인 거 아닌가? 시작하려나 보군.”

좌중이 조용해지고, 서 전무가 입을 열었다.

“어제 내가 안전모랑 한 이야기 다 들었소?”

모인 이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 전무는 어떻게 생각해?”

그는 거두절미하고 그의 의견을 물었다.

항상 신중한 노선을 택하는 부사장 라인을 제외한, 나머지 한쪽의 리더가 그였으니까.

공격적인 어투에, 황 전무가 조심스레 말했다.

“견적이 좀 센 느낌이 있긴 하지만, 승산이 있으니까 한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 곽 이사의 말도 그렇고 말이죠.”

은근슬쩍 화살을 돌리는 황 전무였다.

곽 이사가 그의 말을 이었다.

“네. 사우디 왕족들이 돈에 관해서 꼼꼼하기는 하지만, 쓸 때는 쓰는 사람들입니다. 확인한 것도 아닌데, 미리 겁 집어먹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서 전무가 비릿하게 웃었다.

“겁을 먹어? 나 서정길이! 고르바쵸프 하고도 담판 짓고 일 따온 나야! 그런 내가! 고작 사우디 왕족 정도를 겁낸다고?”

곽 이사가 얼굴을 찌푸렸다.

‘사골이냐? 언제적 일을 아직도 울궈먹게?’

하지만 속내를 숨기고 말했다.

“굳이 그쪽의 의견을 듣기도 전에 미리 판단할 필요 없다는 말이죠.”

다른 이사도 의견을 꺼냈다.

“어제 그 말 들어보니까, 우리가 하는 게 하나도 없던 것 같던데요?”

서 전무가 그 말을 받았다.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놈 말대로라면, 그냥 우리 현재는 그냥 들러리지.”

곽 이사가 반박했다.

“잘 들어보니, 해외 공사니까 좀 더 신경 써서 지원하라는 말이더만요. 공사팀이야 우리 현재 건설에서 할 수 있는 장인이 없으니, 자기 팀으로 짜겠다는 거고! 복잡하게 생각하실 필요 있습니까? 그냥 시공을 외주 줬다 생각하면 되지요.”

서 전무가 웃음을 흘렸다.

“흐흐. 제 새끼라고 편드는 거 봐라.”

전체를 돌아보며 서 전무가 말을 이었다.

“대가리가 나쁘면, 한 번 더 생각을 해라. 주둥이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지 말고.”

곽 이사의 자존심이 팍 상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순 무식의 대명사인 서 전무에서 머리 나쁘다는 말을 듣다니!

“무슨 의도로 하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어떻게 우리가 시공 외주 주는 거냐? 우리가 그놈한테 후방지원 외주 받는 거지! 아니냐?”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했던가?

현재 건설에 자부심을 가진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충분했다.

“그놈이 주고, 우리가 부야! 일은 자기가 할 테니,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처먹어라, 그거지.”

“주건 부건,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 현재는 멍석 깔아주고 돈만 벌면 되지, 안 그렇습니까?”

항변하는 그에게 서 전무가 혀를 찼다.

“쯧쯧. 저러고도 이사라고. 이건 생각 안 해 봤냐?”

“뭐 말입니까?”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우리가 덮어쓴다고. 그놈 소속이 어디냐? 여기 아니야! 그럼 책임을 그놈이 지겠냐? 아니면 우리냐?”

대답을 못 하는 곽 이사를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거기에는 견적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지!”

이사들을 아우르며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시나리오 한 번 써볼까? 일단 이억 찔러놓고 알리 왕자가 거부하면 그놈이 뭐라고 할 거 같냐? 대번에 현재에서 그렇게 짰다고 할 거 아니냐?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가 올린 거니까? 그러면 어떻게 되냐?”

물 한 잔을 들이켜고 말했다.

“욕은 우리가 다 먹고, 그놈은 빠지겠지. 욕을 처먹더라도, 일억 불로 공사한다고 치자. 그래도 그놈한테 1,000만 불은 줘야 한다고.”

이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은 약속이니, 사장은 지킬 것이다.

“만에 하나 운이 좋아서 이억 불을 받으면? 제 놈이 잘해서 그렇다고 하면서, 2,000만 불 땡겨 가겠지?”

곽 이사도 속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돈에서 손해 볼 분이 아니시지.’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저 인간, 오늘따라 왜 저리 공격적이야! 아무리 알래스카의 원한이 있다고 해도, 이건 좀 심한데?’

서 전무가 입에 거품을 물었다.

“되든 안 되든, 그놈은 손해 볼 게 없다고! 안 그러냐? 최 이사.”

“맞습니다. 놈은 어떻게 해도, 손해 보는 게 없죠.”

의문을 제기하는 이사도 있었다.

“전무님. 어찌 되었든, 매출은 오르는 거 아닙니까?”

“고작 일억 불의 매출 때문에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는 포기할 거냐?”

“이미지라뇨?”

“그 전에 먼저 물어보지! 알리 왕자가 이억에 하자고 하면, 승낙할 거 같아?”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던 그가 말했다.

“아뇨. 안 됩니다.”

단지 서 전무의 눈치를 봐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알리 왕자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허락하기 어려운 견적이 아니던가?

서 전무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래! 이건 안 되는 거야! 이걸 우리는 그에게 들이밀어야 한다는 거지. 그놈 고집 때문에!”

열변을 토하며 말을 이었다.

“알리 왕자가 우릴 뭐라고 보겠어? 사기꾼으로 볼 거 아니냐고? 그때 화들짝 놀랜 놈이 고개를 숙이겠지. ‘아! 이건 안 되는 거였구나!’하고.”

“그때는 이미 늦은 거야! 알리 왕자는 이미 우리 현재를 사기꾼으로 판단했을 테니까.”

다른 이사가 이견을 내놓았다.

“너무 과장해석 아닐까요? 이번이 첫 거래도 아니고, 지금까지 몇 번 거래를 해 왔잖습니까?”

“그렇게 공들여서 만든 이미지를 다 까먹는다고!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가 말을 이었다.

“어이! 곽 순일이! 네가 중동 통이지. 네가 한 번 말해 보지?”

지적받은 곽 이사가 툴툴거렸다.

“뭘 말입니까?”

“알리 왕자가 견적 준다고, 한 번에 시원하게 오케이 한 적 있냐?”

불시의 공격에 곽 이사의 말문이 막혔다.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만만치 않으니, 두려운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돈이 많아도, 숫자 계산에는 냉정했다.

이사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 번도 없었지?”

“그럼. 그러니까, 저 여우 같은 곽 이사가 그 고생을 했지.”

“알리 왕자에게 견적만 담당하는 팀이 따로 있다는 소문도 돌았지. 아마.”

쓸데없거나 조금이라도 일반 단가보다 비싼 부분을 칼같이 짚어내고, 견적을 깎았기 때문에 난 소문이었다.

“그나저나 서 전무, 오늘 칼 갈고 나왔는데?”

“그러게. 황 전무, 곽 이사가 한 마디를 못하네.”

들리는 소리에 서 전무가 비릿하게 웃었다.

“없지? 그렇지?”

허나 곽 이사라고 할 말이 없으랴!

일을 가지고 온 사람은 성훈이었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알지 않던가? 알리와 성훈의 각별한 사이를.

그가 항변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알리 왕자가 왕세자가 되는데, 매우 중요한 활약을 했습니다.”

서 전무가 코웃음 쳤다.

“그래서! 거기 도움 좀 되었다고! 원래 견적에 일억 불을 턱 얹어서 준다?”

서 전무가 빙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돈이 썩어나는 부자라고 치자! ‘아이고. 고맙네!’하면서 일억 불을 더 주겠냐?”

상식선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던가?

대답을 못하는 곽 이사에게, 서 전무가 일침을 가했다.

“알리 왕자가! 또라이냐고?”

‘고맙다고 너 같으면, 1,500억을 주겠어?’라고 묻는 말이었다.

무슨 대답을 하랴!

서 전무가 자신만만한 어투로 말했다.

“그것도 그 새끼한테 직접 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 연관 없는 우리 현재한테 준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고 있어!”

“끄응.”

말을 잃은 곽 이사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가 이사들을 설득했다.

“이건 받는 순간, 폭탄을 껴안는 거라고! 세상물정 모르는 그놈, 천만 불 더 챙기려는 욕심 때문에, 우리 현재는 무지막지한 이미지 타격을 입게 된다고. 그놈 말만 믿고, 알리 왕자한테 바가지를 씌운 꼴이 되는데, 다음에 아랍에서 일 받을 수 있겠어?”

입을 꾹 다문 곽 이사에게로 눈을 돌렸다.

“어이! 그 알리 왕자하고 압둘 왕자하고 친하다면서, 둘이서 단합해서 우리 현재를 중동 건설에서 제외하자! 그러면 너 그거 감당할 수 있어?”

회의 탁자를 쾅 치며 호통을 쳤다.

“곽순일이! 너, 이 새끼. 당장 책상 빼야 돼! 중동 빼면, 네가 아는 데가 어디 있어?”

이 논리적인 말에 무슨 반박을 하랴!

곽 이사는 속이 바짝바짝 탔다.

‘이미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서 전무 당신이나 잘하쇼! 당신 때문에 하청업체들이 현재 건설을 얼마나 욕 하는지 알아?’

하지만 그는 아무런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성훈 님께서는 복안이 있으시니, 이렇게 밀어붙이시는 거겠지.’

허나 그 복안을 모르니, 함부로 말할 수가 없다.

‘직접 말씀을 안 하시니, 내가 나설 수도 없고.’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한 곽 이사였다.

의도가 뭔지,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고?

어떻게?

아직도 성훈의 말이 귀를 맴돌고 있는데!

‘제가, 곽 이사님이 하라면 해야 하는 겁니까?’

단지 며칠을 못 봤을 뿐인데, 성훈의 말에서 이전과는 다른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확실한 것은 저기서 떠들어대는 서 전무 따위가 함부로 상대할 수 없다는 확신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성훈에게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걸 어떻게 하지. 알리 왕자한테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휴!’

문 앞에 있던 최 이사가 소리쳤다.

“사장님 오십니다.”

서 전무가 으르렁거리며 말을 맺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회의에 임하라는 말이오. 피라미 한 놈 때문에 우리 현재가 받을 타격을 잘 생각하고.”

잠시 후, 사장이 자리에 앉았다.

“왜 이리 소란스러운 건가?”

서 전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별일 아닙니다. 시작하시지요. 사장님.”

***

“결국, 이사들의 생각은 하면 안 된다는 거지?”

이사들이 대답했다.

“어느 정도의 견적 차이라면, 모험을 해볼 만합니다만, 지금의 경우는 차이가 너무 납니다.”

다른 이사도 그에 호응하며, 고개를 저었다.

“일억 불로 할 수 있는 걸, 이억 불로 하자니요. 상식적으로…….”

“박 이사.”

“네. 사장님.”

“작년 해외 수주액이 얼마였더라?”

“2조가 조금 안된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잘 기억하고 있네. 정확히는 1조 8천억이지.”

“네. 맞습니다.”

“고생들 많았지. 자네들 모두.”

“그야…… 다 사장님께서…….”

그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던 사장이 나직하게 말했다.

“원래 목표는 2조 1천억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회의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말없이 사장이 의자로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끄응. 그래서 올해 목표는 2조 4천억이지. 올 초에 회장님께서 그러시더군. ‘이번 해도 작년처럼 고로케 해라? 알겄제!’고 말이야.”

회장의 그 말이 칭찬의 아님을, 이사 중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게 의미하는 바가 뭔지 모르는 사람 있나?”

매출 달성이 되지 않는 경우, 왕회장의 경영이 시작될 것이다.

“회장님 나서시면 어떻게 되는지는 당해 봐서 알지? 다들?”

사색이 된 이사들을 보며 사장이 피식 웃었다.

“제일 먼저 당신들 연봉부터 깎아버리시지. 물론 나도 무사하지는 못하겠지.”

사장이 말을 이었다.

“자! 지금 일월이다. 매출 잡힌 거 얼마지?”

“아직…… 집계가…….”

“됐고! 성훈이 말대로 2억 불이라고 하면 3,000억이지. 올해 목표액의 몇 프로지?”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사장이 숫자 계산을 못 해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리라.

“이거 채울 자신 있는 놈 있어?”

찬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이 흘렀다.

“솔직한 내 마음을 말해 줄까?”

정적 위로 사장의 호통이 휘몰아쳤다.

“성훈이 같은 놈, 한 명만 더 있었으면, 당신들 몽땅 다 갈아치웠어!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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