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340화 (340/427)

건축의 신 340화

KT 프로젝트(08)

“주로 목재가 많이 쓰일 겁니다.”

다시 서 전무가 끼어들었다.

당한 걸 만회하려는 듯, 눈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당연한 거고. 무슨 목재를 쓰기에 단가 차이가 날 거라고 하는 거냐?”

“오동나무요. 국내산으로.”

서 전무가 이마를 짚었다.

“그게 얼마나 구하기 어려운지 알고 말하는 거냐?”

“구하고자 하면 불가능할 건 없죠. 그 외에도 느티나무나 먹감나무, 참죽나무를 많이 이용할 거예요.”

전통가구의 멋스러움은 나뭇결을 살림으로써 한국적인 운치를 살려내는 것에서 살아난다.

“좋다. 자재비는 그렇다고 치자. 그래 봤자 자재비니까.”

“가구장인들의 손으로 문양을 만들 계획입니다.”

“손으로? 왜?”

너무 이상적인 말을 하는 건가?

그러나 나는 내 호텔을 공장 제작이 아닌, 수작업으로 만들고 싶다.

수작업에는 기계가 만들어 낼 수 없는 불완전함이 존재한다.

사람이기에 완벽하지 못하다고 할까?

왜는 무슨?

내가 그렇게 만들려고 했으니까!

그게 더 멋스럽거든!

인공적인 나무결 시트지가 원목의 결이 만들어내는 요철의 느낌을 살리지 못하는 것처럼.

서 전무가 말했다.

“그건 내가 해결하지!”

“네?”

뜬금없는 그의 말에 놀라 그를 쳐다봤다.

“어떤 걸 원하는지 말하라고, 내가 만들어 줄 테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가 생각하는 단가로 내가 맞출 테니까, 그냥 나한테 맡기라는 말이다.”

그가 직접 만들 리는 만무하고.

“외주 주시게요.”

“당연하지. 그게 원가가 절감되니까.”

호언장담하는 그를 보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왜? 내가 그것도 못 할까 봐?”

무시한다고 느꼈는지,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었다.

‘설마요! 대 현재 건설의 전무님 말을 누가 거부하겠어?’

거부하는 순간, 업계에 발붙이기 어려울 텐데.

서 전무, 그는 내 앞에서 당당하게 갑질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어떤 제품을 만드느냐에 따라서, 수공예품과 공산품은 두 배 혹은 수십 배의 가격 차를 만든다.

“낙동 기법이라고 아세요?”

쉽게 설명하면 오동나무를 인두로 지지고, 탄화된 섬유질 부분을 볏짚으로 문질러 긁어내는 기법이다.

이 작업을 거친 오동나무는 자연스러운 질감과 색채를 발하며, 이 기법을 통해 잘 썩는 나무의 약점과 벌레에 약하다는 단점을 극복했다.

내 설명에 서 전무가 말했다.

“야! 그럼 소나무를 써! 왜 그걸 쓰냐고? 미쳤냐? 널린 게 소나무인데.”

그의 말은 일면은 맞지만, 내 의도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말하면 오동나무는 소나무와 비교해 상급 목재도 아니고, 비쌀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오동나무는 소나무보다 비싸다.

수요가 없어서 키우지 않기 때문이지.

오동나무는 성장이 빠르다.

예로부터 딸을 낳으면, 앞뜰에 오동나무를 심는다고 했다. 그 나무를 잘라, 딸의 혼수로 가구를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그만큼 성장이 빠르다는 말이다.

고작 20년에 가구를 만들 정도로 큰다는 말.

‘반대로 그런 말이 있을 만큼, 우리나라에서 많이 썼다는 말이지.’

그에 반해, 성장 속도가 느린 만큼 소나무는 단단하고 무겁다.

나무의 재질로만 따지자면, 소나무가 더 좋은 자재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내가 왜 오동나무에 집착하냐고?

‘거기에 우리나라 전통의 특징이 있거든!’

상급 목재인 소나무는 궁궐이나 관아 건축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 선조는 일반인이 구하기 어려운 소나무로 만들기보다는, 흔한 오동나무의 단점을 극복하는 방법을 택했다.

자원이 부족하기에, 궁여지책으로 생겨난 기법이라고 할까?

믿어지냐고?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선조들이, 그 안에서 멋과 운치를 찾았다고!’

넉넉하게 남아돌아서 멋과 운치를 찾은 게 아니라는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상맞지 않지!

‘달리 진정한 멋인가?’

수백 년 동안 가느다란 목숨을 이어온 그 멋을, 지금 기계로 깔아뭉개려는 거냐?

합리적인 이득이 눈앞에 있는데, 왜 어려운 길을 택하려고 하느냐?

기업적 논리로 그의 말은 맞다.

‘돈도 안 되는 걸 왜 해!’

그렇게 묻는 그에게 반문했다.

“왜 그래야 하는데요? 전 오동나무를 쓰고 싶은데요! 그것도 사람 손으로 직접 낙동기법을 적용해서요.”

그가 같잖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원가절감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아?”

“그 원가절감을 전무님이 왜 말씀하시냐고요?”

당신이 말하는 건 원가절감이 아니야.

그냥 장부상의 단순한 숫자로 말하는 비용절감일 뿐이지!

그에게 말했다.

“전무님! 원가절감은 공장에서 하는 거예요.”

“그거나 이거나, 뭐가 달라?”

“진짜로 원가절감 해 보신 적 있으세요?”

“뭐야?”

“외주 관리는 해 보셨는지 몰라도, 원가절감을 해보신 적 없는 것 같은데요?”

“훗! 지금 네 주제에, 날 무시하는 건가?”

내가 왜 이렇게 확신하냐고?

‘피 말리며 원가절감 해본 사람은, 함부로 그 단어를 입에 담지 않는다고!’

대기업은 외주의 비율이 높다.

누구나 알고 있으며, 실행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지.

공장 하나 관리하는 것보다 외주로 돌리는 게, 비용도 적게 들고 일도 편하니까.

‘외주는 관리하기 쉽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가?

거래처의 사장은 나와 매일 얼굴을 마주칠 가능성이 적은 사람이다.

‘그냥 모니터에 혹은 종이 위에 문서로만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지.’

사정없이 네고를 하고 양보하라고 말을 해도 전혀 거리낌이 없지.

하청업체에서는 10원의 원가절감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 품질대비 저렴한 재료를 찾으려 발품을 판다.

그 10원짜리 하나에 생존과 파산의 갈림길에 서기도 하며, 때로는 사장이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과장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1,000원짜리 천 개를 매일 생산하면, 하루 백만 원을 벌 것 같은가?

원자재 비용에, 사원들 월급 주고, 화물비에 전기세, 거기다 은행 대출금을 갚고 나면,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사채 안 빌리면, 아주 건실한 회사지.’

그래서 사장 부인들이 공장 직원들과 똑같이 작업복을 입고 작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걸 포장해서 만 원에 파는 기업들은 그 10원 안 먹어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하지만 그걸 포기하지 않는다.

사장에게는 매출이 달려있고, 직원들은 거기에 자신의 실적이 달려있거든.

그 10원에 사장이 등 두드려주기도 하고, 승진을 시켜주기도 한다.

당연히 그의 입장에서는 포기하지 못하지.

내가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내가 그렇게 대리 달았거든!’

난 아직도 그 머리 허연 사장님 내외를 기억한다.

그래도 자기네 회사에 일거리 줘서 고맙다고, 갈 때 밥 사 먹으라며 만 원짜리 한 장 쥐여 주더라.

그렇게 대리 승진하고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당연히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안 봐도 뻔하니까.

‘난 그때 승진을 하지 말아야 했어!’

나는…….

그때의 선택을 지금에 와서 후회하고 있다고!

아니!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거다.

그냥 모른 체했을 뿐이다.

‘서 전무!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이네.’

코딱지만 한 중소기업의 나도 별로 어렵지 않았는데, 대기업에서는 얼마나 편했겠어.

원가 5% 절감하라고?

더는 물러날 곳이 없을 정도로 양보했는데, 어디를 더 빼라는 말인가?

피골이 상접한 사람에게 ‘다이어트하시오!’라고 하는 어이없는 개소리에 불과하다.

한 번이라도 그를 직접 봤다면, 다이어트가 아니라, 적선이라도 해 줘야 하나 걱정이 생겼을 텐데.

하지만 대기업의 직원들은 그들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

‘모르지. 접대받으러나 한 번씩 갈까?’

그런 사람의 입에서 원가절감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그러나 그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어려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비용 차이를 어디에서 극복하냐고?

‘대체 얼마나 많은 하청을 죽이겠다는 말이냐?’

50%의 비용절감을 위해서는 하청업체 5곳만 거치면 된다.

‘야! 10%만 절감해! 뭐야? 그 정도 능력도 안 되면서……. 쯧쯧!’

이 말을 다섯 번만 반복하면 된다는 거지.

갑 중의 갑인, 서 전무의 말을 거부할 간 큰 중소기업은 없다.

모르지.

서 전무 정도의 파워라면 두세 번으로 단축할 수도 있겠지!

대신 그 중소기업은 확실히 망한다!

‘내가 그 꼴은 못 보겠다.’

“그리고 원가절감을 왜 하세요? 알리 왕자가 깎아달라고 하던가요?”

서 전무는 짜증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야! 꼭 말로 해야 하는 거냐? 이래서 초짜는 안 돼! 척하면 척이지! 야!”

그는 삿대질을 하며 언성을 높였다.

“너 같으면 하겠냐? 두 배 비용 내면서? 이거라도 줄여야 견적서 내밀었을 때, 쌍욕은 안 먹을 거 아냐?”

‘하청업체들은 쌍욕 안 할 거 같냐?’

그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지? 응?

‘그리고 어따 대고 삿대질이야!’

기분이 나빠진 나도 불쾌한 얼굴로 대응했다.

“왜 그렇게 겁이 많으세요? 대 현재 건설의 전무님께서!”

“뭐야?”

“원래 견적 내밀면서 욕도 좀 먹고 하는 거지. 지레 겁먹고 꼬리 마시깁니까?”

눈알을 부라리는 그에게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알리 왕자한테는 말 붙이기 어렵고, 하청업체는 쪼으기 좋다 그겁니까? 실망입니다. 서 전무님!”

서 전무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실망? 지랄하고! 야! 너는 이렇게 찔러보고 안 되면 받을 돈의 반만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겠지?”

그가 탁자를 탕 치며 말을 이었다.

“네 얄팍한 속셈을 모를 거라 생각하냐?”

그는 사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놈 말은 들으실 필요도 없습니다. 뻔한 거 아닙니까? 이놈 하는 걸로 봐서요. 잘되면 제 놈이 잘해서 그런 거라고 할 거고, 욕먹는 건 우리 현재가 다 뒤집어쓸 겁니다.”

‘할 말 있으면, 다 해 봐라.’

말없이 그의 말을 들었다.

“야! 김성훈이! 내가 이 자리까지 고스톱 쳐서 올라온 줄 아는 모양인데? 단물 쓴물 다 삼키면서 올라온 거다. 네가 알아?”

‘단물은 하청업체 피 빤 거고, 쓴물은 원청업체한테 욕 처먹은 거겠지.’

하청업체나 밟아서 오른 놈이 무슨 큰소리야!

“사장님! 이건 안 되는 겁니다. 저 새끼가 조금만 양보했어도, 참고 넘기려 했는데, 이거는 영…….”

그가 벌떡 일어나며, 내게 훈계했다.

“네가 무슨 운이 붙어서 일을 따왔는지 몰라도, 그 정도밖에 대가리가 안 돌아가면…….”

그가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쯧쯧. 느그 부모가 누군지 몰라도, 먹은 미역국이 아깝다.”

순간 결정을 내렸다.

‘너는 죽었다. 내 반드시 그 자리서 끌어내린다.’

사장이 안 끌어내리면, 내가 내린다.

그나마 회사에 충성하는 것 같아서, 참고 넘기려고 했는데, 너는 안 되겠다.

사장이 내 프로젝트를 포기하면?

다른 회사에 맡겨서라도 성공시킨다.

그리고 다시 올 거다!

그때는 압둘이 맡긴 프로젝트겠지.

‘나냐? 저 인간이냐?’

사장보고 고르라고 할 거다.

건설업계에서 네놈이 발붙일 곳을 내가 남겨둘 줄 알아?

어차피 있어 봐야, 하청업체 피나 빨 놈인데!

나도 벌떡 일어나며 눈높이를 맞췄다.

“되면? 되면 어떡할 겁니까?”

그가 무시 가득한 비웃음을 날렸다.

“되기는 뭐가 돼? 사업이 애들 장난인 줄 알아?”

그 말에 비웃음으로 받아쳤다.

‘걸어온 싸움을 피할 정도로, 약골은 아니라서 말이야.’

“왜 막상 닥치니까, 쫄리십니까?”

눈썹을 으쓱하며 그를 도발했다.

“허! 이 새끼 보소.”

당장 뺨이라도 올려붙일 듯,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눈을 직시하며 피식 웃었다.

‘손찌검이냐? 허 참! 어이가 없어서.’

내가 최 이사나 곽 이사 같은, 졸로 보이나 보지?

손을 멈춘 그가 험상궂은 얼굴로 물었다.

“좋다. 안 되면 어떡할 거냐?”

“원하는 걸 말씀하시죠? 이 프로젝트 드릴까요?”

그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거 받아 뭐 하게? 난 먹지도 못할 거.”

상황 판단은 빠르네.

가져가는 순간, 당신은 알리한테 뒈져!

“사장님. 이 새끼, 이거 이억 불에 안 되면…….”

그가 좋아죽겠다는 듯 웃었다.

“알래스카 보내도 됩니까?”

알래스카가 뭘 의미하는지 모르지만, 사장의 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그러죠!”

“새끼! 그래도 깡은 있네. 알래스카, 의외로 좋다. 왜 사는지, 인생에 대한 고민을 깊이 있게 하게 해 주거든.”

‘아까부터 왜 되지도 않는 알래스카 타령이야? 내가 보냈어? 별 또라이 같은…….’

이번엔 내 차례지!

“안 되면 당신…….”

“내가 알래스카 갈게. 새끼야!”

짜증이 팍 솟구쳤다.

‘아! 씨발 진짜! 내 말 아직 안 끝났는데.’

그래! 이번엔 같은 조건으로 가준다.

알래스카 갔다 오면, 그때 쫓아내면 되지.

“그만!”

사장이 우리의 싸움을 멈췄다.

“서 전무. 내일 아침에 회의 소집해. 아무래도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사장님! 이런 현장 경험도 없는 놈의 말을……. 고려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제 말을 믿으시라니까요? 그냥 이억에 할 거냐 말 거냐, 사우디에 팩스 한 장 보내보면 답 나오는 거 아닙니까? 예!”

그의 말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나한테 현장 경험을 말했나?’

미안해서 어쩌나! 내가 훨씬 더 많을 것 같은데.

난 당신처럼 출세 테크를 타지 못해서 계속 현장직이었거든.

죽는 그날까지 현장 관리하고 견적을 뽑았다고.

사장실을 나오며 생각했다.

‘사장이 생각이 있으면, 적어도 확인은 한 번 해보겠지.’

알래스카! 뿌드득! 넌 일 년 후에 보자.

내가 나오는 순간에도, 그는 사장을 설득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내가 움찔할 정도로 큰 고함이 뒤에서 들려왔다.

“대가리 박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