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38화
KT 프로젝트(06)
서 전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마 견적 차이는 대충 인건비와 현장 지원금, 그리고 자재비에서 날 것 같네요.”
그가 턱짓하며 말했다.
“훗. 그래 말해 봐?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
“그럼 일단 인건비부터 말씀을 드리죠. 보통 작업자들, 인건비 얼마나 받는지 아세요?”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이 나왔다.
“허 참! 기공이 일당 15만 원 정도고, 조공은 7.8만 원 될 걸?”
“거의 하청주시죠?”
“당연하지. 우리가 다 어떻게 관리해? 인원이 남아돌아?”
“그럼 정확히 모르시겠네요? 그 사람들이 얼마 받는지는?”
그가 어이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봐! 노가다꾼들은 오야지가 챙기면 돼! 우리는 일이 잘되어 가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거야!”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맺었다.
“왜 그런 쓸데없는 데 신경을 쓰는 거야. 엉!”
이게 갑의 입장이라고.
실제로 그들이 돈을 얼마나 가져가는지는 관심이 없지.
오로지 일이 되느냐 마느냐만 관심거리다.
내 말이 마음에 안 드는지, 입꼬리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책상머리 행정이라고 하는 거야? 현실이 얼마나 각박한 줄 알아?”
현실을 말했나?
공사장 인부들이 얼마를 받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현실을 말한다고?
어이없지 않나?
현장에서 워커도 아닌 번쩍거리는 구두를 신고, 흠집 하나 없는 새하얀 귀빈용 ‘하이바’를 쓸 것이고, 뒷짐 지고 팔자걸음 걸으며 다니는, 당신이 현실을 말해?
‘확 한 번 들이받아? 여기서!’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장에서 ‘노가다’를 뛰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부조리를 모른다.
그들은 스스로를 ‘노가다꾼’이라 비하한다.
버스도 안 가는 외진 현장까지 가는 차비하며, 저밖에 모르는, 현장 오야지가 떼어가는 소개비.
게다가 현장 함바에서 꿀꿀이죽보다 못한 걸 밥값 내며 먹어야 하는 그 부조리를.
‘여기 어디에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건덕지가 있나?’
나는!
갑이 싫은 게 아니다.
그건 부러운 거지.
금수저로 태어난 게 그들의 잘못도 아니고,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싫어할 이유는 없다.
또한, 갑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처해지는 경우도 있다.
둘 중 하나가 을이면, 반대편에 있는 자는 갑일 수밖에 없다.
올바른 제품의 생산을 위해서, 들인 돈만큼의 값어치를 뽑아내기 위해서.
갑으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지금의 ‘갑’ 또한 누군가에게는 ‘을’일 테고, 그 갑에게 제품을 납품해야 한다.
다 그렇지 않던가?
물리고 물리는 갑을 관계 말이다.
항상 ‘갑’의 위치를 고수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고 봐도 맞는 말일 것이다.
지금 나는 알리에게 ‘을’이고, 현재에 ‘갑’이다.
싫은 건 갑이 아니라, 갑질 하는 놈이다.
난 돈 줬으니, 된 거 아니냐?
‘돈 준 만큼 일을 해라!’
‘무슨 소리 하는 거냐? 훨씬 적게 받았는데!’
‘우리는 그런 거 모른다. 돈 줬으니 일해라.’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오가는 대화다.
하는 것 없이 중간 마진을 챙긴 놈은 다른 현장으로 달아난다.
또 똑같은 일을 반복하겠지.
비단 현장 인력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리라.
‘돈 쓰고 갑질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거다.’
내가 쓴 돈이 일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전해졌는지, 결국 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인데 말이다.
십만 원 주고 십만 원어치 일 시키면,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조금만 신경 써도 되는 걸,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귀찮아서!
지저분한 일에 내 손 더럽히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내가 굳이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고픈 생각은 없다.
내 일 하기도 바쁜데, 남의 일에 어떻게 신경을 쓰겠나?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거든.
왜!
내 사람들의 인건비가 정해지는 시간이다.
강압에 의한 양보?
그딴 건 내 사전에 없다.
서 전무에게 물었다.
“그럼 아까 말씀하신 평당가도, 그 인건비를 기준으로 잡으신 거겠네요?”
“당연하지!”
“이번 공사가 사우디에서 이뤄진다는 건 아시는 거죠?”
“어디 가나 비슷해. 아니 해외는 오히려 싸지.”
그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코웃음이 나왔다.
“혹시 거기가 중국이나 아프리카로 착각하시는 거 아니죠?”
“훗. 거긴 다르냐?”
그의 당당함에 혀를 찼다.
‘쯧쯧.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곽 이사라면 때려죽인대도 저런 소리 안할 텐데.
그를 삐딱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사우디 한 번도 안 가보셨죠?”
“내가 왜 안 가봐? 몇 번이나 가 봤지.”
“그럼 관광차 가셨나 보네요.”
불쾌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봤지만, 어쩔 건데? 틀린 말 했어?
어이없는 눈을 하며 말을 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 일 안 합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그 사람들 나라에서 따박따박 월급 줍니다. 자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요. 우리나라 대기업 직장인들만큼 나온다고요. 전무님 같으면 일하시겠어요?”
그가 미간을 좁혔다.
“그럼…….”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냐고요? 주변국에서 와서 일 다 해줍니다. 그리고 훗! 그것도 생각하시는 것만큼 싸지 않습니다.”
사장도 전무도 말이 없었다.
현실이라고 했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공사하는 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미치지 않은 이상 현지인 안 씁니다.”
이십 년 전에 사우디에 우리 인력 갖다 박은 게, 단지 말이 안 통해서라고 생각해?
비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는 우리 인력이 저렴했으니까.
그의 비웃음을 그대로 되돌려줬다.
“말씀을 하시려면, 현지 사정을 좀 알고 얘기하세요.”
“끄응.”
“좋습니다. 미친 척하고 그 사람들 쓴다 칩시다. 사우디에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더운 거 참아가며 일하는 사람이 있는 줄 아십니까?”
“…….”
“그 사람들, 매일 하루에 다섯 번씩 ‘살라’라고 예배합니다. 그 시간에는 예배 외에는 아무것도 하면 안 됩니다. 돌 맞아 죽습니다. 바빠 죽겠는데, 예배한답시고, 30분씩 잡아먹는 걸, 내 눈으로 보라는 말입니까?”
아무도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것뿐인 줄 아십니까?”
둘의 눈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사장님은 도면 보셔서 아시죠?”
갑자기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가자, 사장이 화들짝 놀라 버벅거렸다.
“응? 뭐, 뭐?”
도면 책자를 펴서 사장에게 보여줬다.
“제 작품 대부분은 한국 전통과 관련된 겁니다.”
“응. 그런데 그게 왜?”
“말은 둘째 치고, 그 사람들이 한국적인 느낌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방해만 안 돼도 다행이죠. 안 그렇습니까?”
“으…… 응. 그건 그렇지.”
“그 비싸기만 하고,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는 사람들을 데려다 쓰겠다고요?”
잠시 말을 끊고 서 전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서 전무님!”
“왜?”
퉁명스럽게 답하는 그에게 일침을 가했다.
“미치신 겁니까?”
“뭐야?”
눈을 부라리는 그를 보며 씨익 웃었다.
“일 년으로 계획하고 있는 이 공사, 언제 끝날 것 같습니까?”
뭘 알아야 대답을 하지.
돈을 받으면 일을 해야 한다?
그건 우리 기준이다.
“일 년 공사를 삼사 년으로 늘리면, 회사에 이윤이 남을 것 같아요? 사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대답이 뭐 필요한가?
아니라고 반박하면 바로 등신이 되는데!
도면을 덮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럼 이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시죠. 인건비를 얼마나 책정하면 되겠는지?”
‘조목조목 반박한다고? 뭘 알아야 반박도 하지!’
말없이 사장과 서 전무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색한 침묵을 깬 사람은 사장이었다.
“그래서 자네는 얼마를 생각하고 있나?”
“특급 장인들은 인당 50만 원, 그 이하 장인들은 인당 30만 원 책정할 생각입니다.”
어차피 그곳에서 일할 사람은 정해져 있다.
내가 팀을 꾸리겠다고 한 이유다.
그 팀을 현재 건설의 인원으로 채운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리고 난 내 팀원들에게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할 거다.’
물론 절대 편하게 일 시키지는 않지!
내 마음에 들 때까지 일 시킬 거다.
왜냐고?
한국 전통의 정수를 그곳에 표현해야 하니까!
‘외국인들이 보고 입이 딱 벌어지게!’
그런데 웬걸?
둘의 입이 딱 벌어졌다.
“야! 정신이 있는 거야? 그렇게 단가를 매기는데, 클라이언트가 허락할 거 같아?”
서 전무의 말에 인상을 구겼다.
“왜 그걸 지레 겁먹고 그러세요? 그 가격이 합당하다고 설득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설득은 그렇다치고, 무슨 노가다꾼들한테 돈을 그렇게 많이 줘? 정신이 있는 거야?”
“실력만큼 책정한 건데 문제 있습니까?”
서 전무가 제 가슴을 텅텅 쳤다.
“아이고. 답답해! 시장 논리 안 배웠어? 수요 공급! 지금 장인들 굶어 죽기 직전이야!”
“그래서요?”
아무리 걸러서 들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말이잖아!
자연히 목소리가 삐딱하게 나갔다.
“그 반값만 줘도 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건데, 뭐하러 그런 돈을 줘? 미쳤어?”
‘미쳐?’
이게 진짜 미쳤나? 제값 받을 생각은 안 하고, 스스로 몸값을 깎아? 누구 좋으라고?
굶어 죽기 직전이라 반만 줘도 된다고? 그래도 매달린다고?
‘이미 죽어서 사라진 게 태반이다! 너 같은 놈 때문에!’
물을 듬뿍 줘서 살려도 시원찮을 판에, 뭐가 어쩌고 어째?
뿌리까지 다 캐 먹고, 다음 해에는 뭘 먹을래?
터져 나오는 분노를 참으며 말했다.
혹시라도 내가 생각 못 한 대안이 있을까 해서.
“다른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공장에서 할 수 있는 건, 공장에서 하고! 장인들은 최소한으로 줄이면 되지! 왜 쓸데없는 돈을 써?”
작게 한숨 쉬며 물었다.
“그럼 몰딩이고 가구고, 한국 공장에서 만들어 갈 겁니까?”
“그럼! 요즘 기계가 얼마나 발달했는데!”
이게 지금 누구한테 짝퉁을 팔려고?
당장이라도 고함을 치고 싶었다.
‘이 새끼야! 그 호텔 내 거다!’라고.
그가 말을 이었다.
“그게 훨씬 더 시간이 절감된다고! 알기는 알아? 전통가구라고 해서, 꼭 사람이 깎아야 한다는 법 있어? 그리고 외국인들이 그 차이를 알 것 같아?”
지금이야 모르겠지!
나중에 알게 되면?
내 얼굴에 똥칠을 할 셈이냐?
팔고 나면, 난 몰랐다고 시치미를 뗄 놈일세!
그런 식이면, 세상의 명화를 다 복사기로 카피해서 수억에 팔지, 미쳤다고 손으로 그리고 앉았냐?
기계로 만든 것과 손으로 만든 것은 다르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그냥 느낌이 다르다.
딱 봐도 다르다.
‘내 호텔을 그런 짝퉁 제품으로 채우려고?’
내가 그 꼴은 못 보지!
공사하는 동안 내가 일일이 감시할 거거든!
‘물론 현장 지휘하러 가는 거지만! 크흠!’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대한민국 최고 기업, 현재 건설입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서 전무가 천정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이 물정 모르는 소리 하는 거 보소.”
천정에 뭔가 화나게 하는 거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익! 야! 그럼 우리는 뭐가 남는…….”
“쳇! 그게 뭡니까? 격 떨어지게! 삼류 양아치 회사도 아니고.”
“이, 이거! 말하는 거 보…….”
그의 말은 들은 채 만 채, 사장에게 말했다.
어차피 결정은 사장이 하는 거니까.
안 맞으면 다른 데 찾으면 되지 뭐!
“사장님! 저, 이거 한 번으로 끝낼 거 아닙니다.”
나의 일방적인 무시에, 서 전무가 폭발했다.
벌떡 일어나서 고함을 쳤다.
“이 미친놈아! 기업이 돈 벌려고 일하지, 무료봉사하는데 인줄 아냐? 한 번이고 나발이고, 사장님이 이걸 허락…….”
하지만 그의 분노는 사장의 말에 끊어지고 말았다.
“다음은 압둘 왕자인가?”
내 행보를 안다면,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네. 아마도.”
사장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알리는 설득할 자신이 있고?”
“해 봐야겠지만, 일단 가능성은 큽니다.”
“흐음…….”
사장이 장고에 잠겼다.
멀뚱멀뚱하게 서 있던 서 전무가 말했다.
“사장님!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서 전무!”
“네! 왜요?”
“앉아라. 전무가 그게 뭐냐? 애 앞에서 품격 없이.”
“크흑! 사장님!”
“네가 사장할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이거 원.”
“일단 나머지도 들어보자.”
사장이 말을 이었다.
“현장 지원금은 왜 차이가 날 거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