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37화
KT 프로젝트(05)
사장이 속으로 웃었다.
‘내가 왜 곽 이사를 안 불렀는지 궁금하겠지.’
그도 처음에는 곽 이사를 부르려고 했다.
아무래도 중동 쪽의 제일 전문가는 그였으니까.
‘하지만 곽 이사는 성훈이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운 것 같더라는 말이지.’
과연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을지, 아무래도 미심쩍었다.
하지만 서 전무와 황 전무는 다르지.
‘특히나 서 전무라면 이 건에 대해서 아주, 아주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을 거야.’
단지 우려가 되는 건, 서 전무가 중동에 대해 약간 약하다는 거지만, 그렇다고 현장 사정에 대해서 약한 건 아니지!
잠시 후 인터폰이 울렸다.
“황 전무는 외근 중이고, 서 전무는 바로 온다고 했습니다.”
“알겠네. 들어올 때 차 한 잔씩 다시 들여오고.”
“황 전무는 어떻게 할까요? 복귀하라고 할까요?”
“아니. 됐어. 황 전무는 그냥 일 보라고 해.”
사장이 말했다.
“일단 서 전무가 오면 같이 이야기해 보세.”
***
“저 왔습니다. 사장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185 정도의 키에 풍채가 좋은 거한이었다.
구레나룻과 턱에 파랗게 수염이 돋아나 있었다.
수염만 제대로 길렀다면, 장비의 현신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거친 남자의 분위기였다.
“왔나? 여기 빈자리에 앉…….”
하지만 사장의 말이 무안하게 그는 이미 자리에 앉고 있었다.
사장이 투덜거렸다.
“성질 급하기는……. 쯧쯧.”
그가 인사하려는 성훈을 힐끗 보며 사장에게 물었다.
“누굽니까?”
앉은 그에게 먼저 인사했다.
“김성훈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으응. 반가워. 서 전무야. 인사는 무슨? 앞으로 많이 보게 될 텐데. 앉아.”
내게 자리를 권하더니, 앉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성훈이라,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요?”
사장이 피식 웃었다.
‘매일 만나기만 하면 뼈다구를 부셔놓겠다고 이를 갈더니! 쯧쯧.’
여기서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못 한 모양이었다.
‘상대가 누군지는 미리 이야기해 줘야, 공정한 시합이 되겠지.’
어설프게 덤벼서 설득시킬 만만한 녀석이 아니지.
사장이 웃으며 물었다.
“자네가 알래스카 갔다 온 지 얼마나 되었지?”
서 전무가 인상 쓰며 말했다.
“크. 사장님도. 제가 그 말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시면서…….”
사장과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 허물없이 지낸 사이가 아니던가?
일부러 놀리는 건가? 싶어서 사장을 쳐다보는데, 그가 눈을 으쓱했다.
‘이놈이야!’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던 그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미소가 사라졌다.
“아! 안전…….”
사장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두툼한 턱에서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좋아서 죽겠다는 웃음을 띠며, 그가 말했다.
“성훈 군! 제대로 인사하지.”
***
서 전무가 일어서며, 악수를 청했다.
내 눈을 직시하며 말이다.
“자네인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제대로 인사했을 텐데. 서정길 전무라고 하네.”
그 얼굴에 가득한 주름이 진심으로 반갑다는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김성훈입니다. 이번에 현재에 들어온 신입입니다.”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드는데,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 왜 있잖나!
흔들림 없는 눈동자와 꼬리가 올라간 눈!
‘노려보는 거야? 나를 아나?’
내가 현재 건설에서 아는 사람은 곽, 양, 최 이사뿐이었다.
그와 눈동자를 마주치며 물었다.
“절 아십니까?”
서 전무가 고개를 우둑거렸다.
“아니! 처음 본다네. 하지만 자네 소문은 많이 들었지. 이렇게 직접 만나게 돼서 반갑네.”
그가 자리에 다시 앉으며 말했다.
“정말 반가워.”
그가 눈을 피하지 않는데, 나라고 피하랴!
‘쓸데없는 오해도 싫지만, 이런 기 싸움에서 지는 것도 사양한다고.’
앞으로 계속 부딪칠 사람이었다.
닳고 닳은 전무와 신입의 눈싸움!
묘한 분위기에 사장이 손사래 치며 말했다.
“인사나 하라고 부른 거 아니니까. 인사는 그만하고 일 이야기나 하자고.”
“일요?”
“그럼 서 전무를 왜 불렀겠나?”
“아하! 그렇지요.”
그가 머쓱한지, 제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참! 사장님께서 이 친구한테, 10% 주기로 하셨다죠. 그 일입니까?”
사장이 어이없다며 웃었다.
“그건 또 어디서 들었나?”
“헷! 순일이 놈! 모가지 하나 비트는 거야. 저한테 일도 아니죠.”
손으로 닭 모가지 비트는 시늉을 하면서, 그가 비릿하게 웃었다.
“자네가 그러니까 곽 이사가 자네만 보면 치를 떨지.”
“어쩌겠습니까? 체질적으로 안 맞는데요. 간신배 같은 놈!”
“됐고! 설명이나 들어 봐!”
사장의 만류에 그가 인상을 비틀면서 말했다.
“네. 사장님.”
“성훈 군이 사우디에서 일을 하나 가져왔는데, 내가 생각과 성훈 군의 의견이 달라서 말이야.”
“네? 사장님하고 의견이 다르다고요?”
그런 말이 안 되는 말을 어디 있느냐는 듯,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와 똑같이 눈동자를 맞췄다.
피할 이유가 없다고!
‘안 맞는 건 맞춰 가면 되는 거지!’
서 전무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자네. 도대체 뭐가 불만인가?”
“사장님께서는 총 견적을 일억으로 하자고 하시는데, 전 이억으로 하고 싶다고 했거든요. 거기서 의견 충돌이…….”
그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내 말을 끊었다.
“혹시 사장님께서 주시고 하셨다는 10% 때문에 그러는 건가?”
지금 날 뭐로 보는 거야!
눈가를 씰룩거리며 대꾸했다.
“그거랑은 상관없는 이야깁니다. 순수 견적을 말하는 겁니다.”
“내 참! 어이가 없어서…… 기본 자질이 안 되어 있구만!”
그리고는 사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사장님. 하도 성훈이 성훈이 하셔 가지고 기대를 좀 했습니다.”
비웃음 가득한 얼굴을 내게로 향했다.
“그런데 꼴랑 천 더 받자고, 사장님을 간 봐?”
“저, 정길아. 그게 아니라…….”
사장은 몹시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손을 내 저으며, 그의 말을 막았다.
하지만 그에 멈출 서 전무가 아니었다.
“그게 아니면 뭡니까? 이런 놈, 필요 없습니다. 줘도 안 받습니다. 이딴 정신이면, 어차피 버티지도 못할 테지만.”
사장의 만류에도 그는 벌떡 일어서며, 으르렁거렸다.
“꺼져! 이 새끼야! 좀만한 새끼가 돈이나 밝히고 말이야.”
손가락은 사장실 문을 가리킨 채 말이다.
‘어! 이거 뭐지?’
솔직히 순간 당황했다.
그 또라이, 최 이사도 이렇게 성격이 급하지는 않았는데…….
최 이사의 상위호환 버전이랄까?
‘의외로 부려먹기 좋겠네. 내 편으로만 만들면…….’
최 이사도 귀찮아서 내버려뒀던 거지,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거든.
그가 큰 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 또 사장님께서 부르시길래, 무슨 일인지 몰라도 수백억은 되겠네! 그러면서 왔는데! 허 참! 어! 이거 봐라? 웃어? 지금?”
***
사장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얼굴은 불타오르듯 벌건데 말이다.
“정길아. 앉아라.”
“이 새끼가 건방지게 어디서 이빨을 보여?”
나에게 눈을 부릅뜨며 목을 돌렸다.
우두둑!
“서 전무!”
사장의 일갈에 뜨끔한 서 전무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사장의 얼굴에 못마땅한 표정이 가득했다.
‘이게! 그렇게 경계를 하라고, 미리 정체를 말 해 줬는데도! 차라리 곽 이사가 나았어!’
사장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정길아.”
대놓고 혼난 것이 불만인지, 불퉁거리며 대답했다.
“네! 사장님.”
“이억…… 불이다.”
내가 ‘그딴 일로 너를 불렀겠냐며?’는 사장의 비웃음이었다.
“이, 이억 달러요? 그럼 한국 돈으로 그게…….”
사장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삼천억이 쪼금 넘는다.”
“사, 삼천! 억이요?”
서 전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되물었다.
“그래. 삼천억! 꼴랑 삼천억! 별거 아니지?”
당황한 채, 눈을 굴리며 더듬거렸다.
“아, 아니…… 저 그게…….”
“정신 똑바로 차리자. 정기…… 아니 서 전무!”
“네. 사장님!”
제정신을 차린 서 전무가 물었다.
“그런데 단가가 두 배나 차이가 난다고요?”
“그래서 불렀다. 혹시 내가 계산을 잘못했나 싶어서 말이다.”
***
빙글거리는 내 웃음에 서 전무가 눈을 피하며 물었다.
“대체 어떻게 계산을 하셨기에…….”
사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전체면적이 6만 평이다.”
“어디 호텔이라도 따온 겁니까?”
눈치는 없는 게, 또 하던 가락은 있다.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호텔이다. 리야드에 있는 알리 왕자의 소유인 그거.”
“아!”
“그걸 다 하기로 하신 겁니까?”
“그래. 몽땅 다!”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럼 호텔이니까, 평당 200 정도 치면, 6 곱하기 2, 대략 1,200억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걸 난 250으로 해서 1,500억을 불렀지!”
서 전무가 걱정하며 물었다.
“그럼 알리 왕자가 하려고 할까요? 좀 단가가 높은데요?”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사장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 그걸! 저 녀석은 두 배로 받아야겠다고 한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물어보려고, 네놈을 불렀다.”
“아! 사장님은 1,500을 불렀는데, 이 친구는 그러니까 3,000억을 불렀다! 그 말씀이네요.”
“그래.”
사장이 턱짓으로 나를 가리켰다.
‘네가 설득해 봐.’라는 의미!
사장에게 확인한 서 전무가 코웃음을 쳤다.
“일 따는 거야 혀를 잘 굴려서 따왔는지 모르겠는데…….”
“쯧쯧. 내가 이래서 책상머리 앉은 놈들한테 일을 안 맡긴다니까!”
그가 자신만만하게 내 쪽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봐! 성훈 군 자네가 이쪽 단가 좀 아나?”
“네.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정도 하는데?”
“평 당가 200 정도 하죠.”
“그야 숫자 볼 줄 알면 다 아는 거고! 그 숫자가 일반적인 단가라는 의미를 아냐고?”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치열하게 싸우면서 만든 거라고. 180에 하라는 거, 치열하게 싸우면서 200으로 올린 거라고.”
사장을 힐끔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난 사장님께서 250 부른 것도 엄청난 모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나라고 할 말이 없으랴!
“그건 일반적인 호텔을 말하는 거구요.”
난 내 호텔을 적어도 시설만큼은, 6성급으로 만들어 둘 계획이라고!
그런데 시답잖은 호텔과 비교해!
‘그리고 그렇게 잘 싸우면 진작 300으로 올려놓지 그랬어?’
그러니까 노동자들이 외국 가서 개고생하면서도 유럽 선진국과 비교하면 반도 못 받는 거라고!
그놈들 땀에는 금이라도 묻어 있다디!
“일반이고, 고급이고! 그 금액이 이쪽 계통의 정해진 가격이고 불문율이라고! 그걸 반도 아니고, 두 배를 넘겨? 누가 그걸 하겠나?”
‘흥! 걱정하지 말라고요. 돈은 제가 한 푼도 안 빠트리고 받아올 테니까!‘
사장이 빤히 보고 있는데, 이 말을 할 수야 있나?
잠시 내가 말문이 막혔던 것으로 보였던지, 서 전무가 말을 이었다.
“개뿔도 모르면서, 무조건 단가만 높여서 받는다고 좋은 게 아니란 말이야. 알아?”
“제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값만 높여 부른다. 그 말을 하시는 겁니까?”
“그게 아니면 뭔데? 그럴 만한 근거라도 있어?”
그의 비웃음 섞인 말에 코웃음 쳤다.
내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값만 올린다고?
하지만 나는 그의 논리에 호응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런저런 걱정 했으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어. 이 양반아!
내가 물러나면 한국 전통의 가격이 떨어진다고.
거의 처음으로 외국 호텔에 한국 전통건축을 적용하는 일이다.
‘그건 내가 선구자라는 말이라고!’
그 말은 바로, 내가 매기는 단가가 세계에 통하는 기준점이 된다는 거지.
내가 1달러에 팔면 1달러가 된다.
‘왜? 다음 사람도 그 가격에 하려고 덤빌 거거든!’
반대로 1,000달러를 매기면 1,000달러가 되지!
그리고 지금 그걸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
돈이라면 주체를 못 하는 갑부가!
‘내가 왜 양보를 해야 해?’
여전히 그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럴듯한 근거가 있으면 대 봐! 내가 하나하나 반박해 주지! 엉? 어때?”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래 봐야 책상머리 샌님들의 이상적인 말이겠지만.”
거만한 턱짓으로 나를 도발한다.
‘이 인간이 첫인상부터 걸리적거리더니, 날 아주 물로 보네! 밟아봐!’
사장을 힐끗 쳐다보니, 그의 눈빛이 묻고 있었다.
‘이렇게 되었는데? 어쩔 건가?’
피식 웃었다.
‘어쩌긴요. 덤비는데 상대해 줘야죠! 라운드 종이나 올리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