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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335화 (335/427)

건축의 신 335화

KT 프로젝트(03)

뜬금없는 시계에 대한 칭찬이었지만, 성훈은 별생각 없이 히죽 웃었다.

“이거요? 좋죠?”

‘좋다 뿐이냐? 부러워 죽겠다. 녀석아!’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나오는 수작 중의 수작을 단지 좋다는 말 한마디로 함축하다니!

사장이 확신하며 물었다.

“보아하니, 자네 돈으로 산 건 아닌 것 같고…….”

시계를 이리저리 돌리며 성훈이 말했다.

“당연하죠. 제가 제 돈 들여서 왜 이런 비싼 시계를 사요? 시계는 시간만 맞으면 되죠.”

‘그럼 그렇지! 비싼 건 아는 모양이네.’

확신을 굳힌 사장이 넌지시 물었다.

“누군가? 그걸 선물한 건가?”

“그냥 아는 사람이 줬어요.”

“흐흐. 그냥 아는 사람이라…….”

어떻게 하면 그 사람들이 그냥 아는 사람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집요한 캐물음은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지금도 왕자들과의 관계를 숨기려 하는 놈인데, 귀찮게 하면 더더욱 숨기겠지.’

성훈을 장차 히든카드로 쓰기 위해서는,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성훈이 좋아하는 것을 시키면서, 적당히 알리와 압둘과 이어지게 만들어 주면 된다.

하라고 해서, 내 뜻대로 움직여 주는 녀석은 아닐 터, 강제로 시키면 오히려 어깃장을 놓으며, 안 한다고 하겠지.

‘퇴사한다는 으름장도 서슴없이 놓을 놈이니까.’

성훈은 아직 모르지만, 사장은 성훈에 대해서 많은 것을 파악해 두고 있었다.

사장이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부럽구만.”

“에이. 부럽기는요. 하나 사시면 되죠! 돈이라면 누구보다 많으신 분이.”

천연덕스럽게 말하는데, 사장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약 올리나? 지금?’

쓰린 속을 꾹 참으며 물었다.

“그게 얼마짜린지는 알고 말하는 건가?”

“그럼요. 듣고 놀라지나 마세요.”

“흐흐흐. 말해 보게. 얼마를 불러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성훈이 씨익 웃었다.

“자그마치 구백만 원짜리래요.”

장담과 달리, 사장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헉. 이, 이게…… 구백만 원? 달러가 아니라?”

“달러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성훈에게, 사장이 다급히 되물었다.

“혹시 이미테이션인가?”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 세밀함. 절대로 모조품일 수가 없지.’

현미경이 아니면 구분조차 할 수 없다는 디테일이지만, 파테크에 관한 한 전문가를 자부하는 사장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초침 움직임 하나에도 다른 시계와는 차원이 다른 품격이 느껴지는군. 과연.’

어찌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무려 36개의 구성품과 1,483개의 개별 부품으로 이루어진, 파테크사의 걸작 중의 걸작!

‘내 눈이 썩지 않았으면, 가짜일 수가 없어!’

그 말에 성훈이 입매를 찌푸렸다.

“에이! 이거 선물한 사람이 들으면 기분 나빠할 걸요? 딴 건 몰라도 그 사람이 짝퉁을 줄 사람은 절대 아니죠.”

“그, 그럼…….”

“아마 진짜일 거예요.”

“끄응.”

‘진짜인 걸 아는 놈이! 가격을 그따위로!’

신음을 삼키며 물었다.

“그, 그럼 가격은 어떻게 알았나?”

“아! 이거 때문에 마음고생 한 걸 생각하면…….”

지난날 공항 세관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사장이 물었다.

“그래서 구백만 원이다?”

“당연하잖아요. 세관이라고요. 세관! 세금 떼는 사람들이 거짓말할 리가 없죠!”

나름의 확신하는 성훈을 보며, 사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철석같이 믿고 있군. 엉뚱한 데서 허당인 녀석일세.’

성훈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어떤 미친놈이 구백짜리 짝퉁을 선물하겠어요? 당연히 진짜죠! 안 그래요?”

성훈은 시계 자랑을 더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거 보세요. 이 큐빅, 되게 단단해요.”

사장의 광대가 눈꼬리까지 올라갔다.

‘그거 다이아몬드다. 멍청아! 엇!’

성훈이 시계를 탁자 모서리에 툭툭 쳤다.

“이거 보세요. 흠집 하나 안 가요. 완전 튼튼하죠.”

성훈이 시계의 강도 자랑에 여념이 없는 동안, 사장은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아이고!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랄까!

‘명품 중에 명품이, 주인을 잘못 만났구나!’

사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허! 성훈 군. 흠집이라도 가면 어떡하려고?”

“뭐. 어때요. 시계가 흠집도 가고 하는 거죠. 그래도 괜찮아요. 씻다가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흠집 하나 없던 데요.”

사장이 눈을 부릅떴다.

“컥! 그걸 떨어뜨렸다고? 그렇게 부주의하게. 그러다가 깨지면 어쩌려고!”

자기 시계도 아니건만!

저도 모르게, 사장은 목소리가 높아졌다.

성훈이 태평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 깨지면 갈면 되죠. 정 뭐하면 하나 더 달라고 하던지.”

“헉! 그걸? 하나 더?”

성훈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럼요. 꼴랑 구백짜리에 쪼잔하게 굴 사람 아니거든요.”

순간 사장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도 하나 달라고 하면…….’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가?

성훈이 말했다.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제가 하나 더 달라고 말해 볼게요.”

‘그걸 달라고 한다고? 무슨 저잣거리에 파는 액세서리인 줄 아나?’

사장이 어이없이 웃으며 물었다.

“뭐라고 하면서 달라고 할 건데?”

“우리 사장님이 예쁘다고 하던데, 하나 더 줄 수 있냐고? 참. 돈은 줘야죠. 제가 쓸 것도 아닌데.”

“쿨럭!”

사레가 들린 듯, 사장의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 왕자들에게? 미쳤어?’

알리든 압둘이든 마찬가지였다.

둘 다 각자의 나라에서 왕 다음가는 권력자들.

‘그 사람들한테 시계를 맡겨 놓은 것도 아닌데, 달라고 한다.’

오로지 성훈만이 할 수 있는 말이리라.

‘녀석 외에, 저런 말을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외의 다른 사람은 말하는 순간, 쫄딱 망하거나 아니면 그에 준하는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겠군!’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

전 세계 스무 개밖에 없는 시계를 줄 수 있을 정도로.

시계에 대한 이야기가 한동안 오갔다.

사장도 관심이 많았고, 성훈도 자신의 시계를 좋아했으니 말이다.

성훈이 물었다.

“사장님. 시계에 대해서 잘 아시네요.”

“당연하지. 시계는 그 남자의 품위를 상징하는 거지!”

성훈이 흐뭇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렇죠? 다른 선물은 다 안 받으려고 했는데, 이거만큼은…… 안 받을 수가 없더라고요.”

“쩝. 부럽군.”

사장 체면에 한 번 껴보자고 할 수도 없고!

그저 입맛만 다실뿐이었다.

속도 모르면서, 성훈이 중얼거렸다.

“에이! 부럽긴요. 하나 사시면 되지. 사장님한테 9백만 원이 돈 축에나 끼겠어요?”

왜 안 사냐고!

‘이놈아! 매물이 나와야 사든지 말든지 하지!’

기약 없이 오 년째 옥션에 백만 달러를 박아두고 있는 사장이었다.

그런데 왜 선물을 한 자는 가격을 제대로 말하지 않았을까?

추측은 어렵지 않았다.

성훈이 말한 몇 가지만 조합해도 답이 나오니까.

‘짝퉁을 줄 사람은 아니에요.’

‘다른 선물은 안 받으려고 했는데, 이건…….’

다른 선물이 뭔지 모르겠지만, 성훈이 부담스러워하니 가격을 속여 가면서까지 떠안긴 거지.

세관 직원과 대사관 직원까지 동원해서 성훈을 속였다는 것은, 성훈이 모르기를 원한다는 그의 의지였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선물을 하고 싶었다는 거겠지.’

얼마나 고마웠으면 그랬겠어?

‘결국, 요 녀석은 저게 구백만 원짜리 시계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 요 맹추야!’

사장이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곽 이사 말이 맞았어! 그가 혀를 내두르는 자들이……. 너한테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선물을 잘도 한다? 누구 앞에서 구라를 쳐!’

그러면서도 아쉬움을 참을 수 없었다.

‘이 녀석이 본격적으로 영업에 뛰어들면, 우리 회사 한 해 매출이 몇 배로 뛸 텐데.’

사장의 눈매가 좁아졌다.

‘지금 이 일이 중요한 게 아니지.’

적어도 사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앞에 두고, 알에만 정신을 빼앗기는 바보가 아니었다.

‘이건 보통 히든카드가 아니라고.’

어디에 몇 개의 옵션이 더 붙어 있는지, 정체를 파악할 수 없어.

처음에는 단지 현장을 잘 아는 똘똘한 놈으로 생각했다.

‘어쩔 수 없지! 녀석을 처음 만난 게 현장이었으니.’

다음에는 설계였지.

‘설계도 안 판다는 놈을 설득한다고, 곽 이사가 진땀을 뺐었지.’

또 현장, 그리고 박람회, 얼마 전에는 인테리어 그림까지.

‘이 녀석은 까도 까도 끝이 없다는 말이지.’

이제는 돈으로 손꼽히는 권력자들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녀석 말처럼 그냥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맘대로 주무른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

곽 이사? 아니면 이 녀석?

‘네 녀석 말은…… 죽어도 믿을 수 없어!’

곽 이사의 말도 100% 신뢰할 수는 없지.

‘그도 이 녀석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고 있어.’

아랍의 부자 하나만 알아도, 자랑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건만.

이 녀석은 오히려 숨긴다고! 이유는 모르지만.

기껏 자랑하는 게 저 시계야!

물론 나라도 자랑할 시계지만, 그 가치를 전혀 모른다고.

백만 달러를 주고도 살 수 없는 시계인데!

‘백분지 일도 안 되는, 구백만 원으로 알고 있다는 게! 말이 돼! 이건 저 시계에 대한 모독이라고!’

사장이 시계에 흐려졌던 정신을 다잡았다.

그리고 성훈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번 일로 알리 왕자와는 급격히 친해졌겠군.”

“네. 그런 면도 없잖아 있죠. 덕분에 일을 따올 수 있었으니까요. 운이죠.”

“운이라? 그런 것치고는 자네가 알리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된 것 같은데? 그를 왕세자를 만들 정도면…….”

성훈이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에이 그건 사실과 달라요.”

“뭐가?”

“제가 한 게 아니거든요.”

사장의 미심쩍은 눈을 뻔뻔하게 맞받아쳤다.

“전 그냥 아크람이 하라는 대로 연기한 것뿐이에요.”

“그게 연기였다고?”

“네. 이미 각본이 짜여져 있더라고요. 그냥 시키는 대로만 했어요. 그래서 일을 받을 수 있었죠. 거래였다고요. 거래!”

사장이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 봐라. 내가 믿나!’

믿을 수 있나?

일개 개인이 왕국, 그것도 문화가 다른 그곳에서 뭔가를 한다는 걸?

‘고작 일거리 하나 때문에, 그런 위험을 감수했을 리가 없지. 네 녀석이!’

허나 성훈의 속내를 누가 알 수 있으랴!

사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렇게 된 거로군.”

***

사장의 웃음 띤 얼굴에 담긴 의미를 성훈이 왜 모르랴?

‘내 말을 전혀 믿고 있지 않다고.’

하지만 왜 이렇게 뻔뻔하게 받아치냐고?

‘뭐 어쩔 거야! 아크람한테 가서 확인할 거야?’

그럴 일은 없지!

입단속 단단히 시키고 왔거든!

‘심증은 심증일 뿐, 심증만 가지고 알리들과 날 연관시킬 수는 없지!’

그렇게 모험을 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거대하지.

고작 건설회사 하나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잖아.

국가 원수 정도면 몰라도!

성훈의 속마음은 간단했다.

‘귀찮다고. 일할 때 도움이 되면 몰라도, 그 외에는 알리고 압둘이고 다 필요 없어.’

엮이는 것만으로도, 주변 시선이 신경 쓰이거든.

‘지금 당장 사장도,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잖아.’

사장이 지긋한 눈으로 물었다.

“성훈 군.”

“왜요?”

“진짜로. 영업해 볼 생각 없나?”

그 말에 대놓고 인상을 찡그렸다.

“아! 사장님. 왜 저한테 그러세요. 영업전문가들 많으시면서!”

“설계도 하고 영업도 하고, 괜찮지 않아? 돈도 벌고.”

‘내 이런 말 나올 줄 알았다고!’

목소리에 은근한 짜증이 묻어나왔다.

“저 그럼, 안 할래요, 영업하려면 진작 그쪽으로 갔죠. 제가 뭐하러 현재에…….”

사장이 손사래 치며 나를 달랬다.

“에잉! 아쉬워서 농담 한마디 한 걸 가지고,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다니.”

“사장님. 앞으로 또 이러시면…….”

“알겠네! 절대로 입 밖에 꺼내지도 않겠네. 맹세하지.”

‘더 얘기했다가는 진짜로 짜증을 내겠군.’

사장의 눈에 성훈이 가져온 도면이 보였다.

‘알리와의 관계로 봐서 확신하건대, 이번에 가져온 일도 백억은 넘겠군.’

수십억짜리만 되어도, 좋겠다는 아까의 판단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보면, 알리 왕자가 성훈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알 수 있겠군!’

사장이 물었다.

“어떤 일거리를 가져온 건가? 한 번 보세!”

하지만 도면을 펴기 전에 성훈이 물었다.

“그 전에! 저번 주에 했던 약속은 유효한 거죠?”

“응?”

“제 팀! 그리고 10%!”

사장이 어깨를 쫙 폈다.

“당연하지! 내가 고작 그런 거로 약속을 어길 사람을 보이나! 일이나 꺼내 봐!”

나머지 도면을 꺼내는 성훈을 보며 사장이 흐뭇하게 웃었다.

‘뭐. 어때. 종종 이런 일거리들을 물어만 와도, 우리 회사로서는 아주 큰 이득이지!’

엉뚱한 곳에 가서, 이득을 남기게 하는 것보다는, 잘 간수 하면서, 이익을 남기는 게 더 좋았다.

‘녀석이 하고 싶어 하는, 건축 설계하는 것만 방해하지 않으면, 절대로 떠날 녀석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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