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31화
왕의 부탁(05)
생각해 보라고!
호텔 경영하랴, 사람 관리하랴!
언제 내가 하고 싶은 건축 설계를 하겠어?
내가 돌았어?
‘돈 벌려고 내가 그짓을 왜 해?’
알리의 미간이 심하게 구겨졌다.
“그럼 자네 말은 나더러, 그 사람들을 내치라는 말인가? 날 믿고 지금까지 따라온 사람들이야!”
“뭐하러 내쳐요? 그냥 그 호텔에 두시면 되지.”
“응?”
“데려가지 말고, 그냥 놔두라고요. 월급은 제가 안 밀리고 따박따박 줄 테니까.”
알리는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허허허. 날로 먹으려 하는군.”
“그렇잖아요.”
‘원래 선물은 날로 먹는 거 아니던가?
“허허허.”
알리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왜 직원을 새로 뽑지 않느냐고?
어느 세월에 500명을 면접 보고 있냐고?
또!
채용한 뒤에는 일을 성실하게 잘하는지, 아니면 호텔의 일에 잘 어울리는 지켜봐야 한다.
또 열심히 잘한다고 치자!
한 달 매출이 5,000만 불인 호텔이다.
1%만 다른 곳으로 새도, 50만 불이라고.
나는 그 새 직원들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귀찮게 신경 쓰느니, 구관이 명관이라고.
차라리 그대로 두는 게 나아.
오너가 그렇게 신경을 안 쓰는데, 호텔이 제대로 돌아갈까? 하는 염려가 생기지!
그렇게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냐고?
그때는 알리를 갈궈야지!
내 말은 안 들어도, 알리 말은 들을 거거든.
‘여기는 왕 말이 법이지.’
누차 말했지만, 난 호텔을 경영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호텔 매출만 나한테 들어오면 돼!’
나는 정말로 날로 먹을 생각이거든!
아니면 안 받을 거야.
돈이야 다다익선이지만, 거기 쓰는 시간은 아깝다고!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경청하던 왕이 물었다.
“알리. 정말로 네 호텔의 직원들을 다 데려오려 했더냐?”
“당연한 말씀을…….”
알리의 말에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미처 생각을 못 했군. 아크람.”
의아해진 알리가 물었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왕 대신 아크람이 답했다.
“왕자님께서도 아실 겁니다. 그 호텔에 전하께서 얼마나 많은 관심을 쏟으셨는지…….”
“알다마다요. 괜히 6성 호텔이 된 게 아니잖습니까?”
아크람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호텔의 격을 높이기 위해, 국왕께서 10년 동안 공을 들이셨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왕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게 단지 건물의 화려한 외관 때문이겠느냐?”
왕은 알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시설만 좋으면 최고의 호텔인가?
호텔의 진정한 가치는 건물이 아니라,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아닐까?
좋은 건물을 구경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건물에서 편하게 쉬기 위해 거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닐까?
서비스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그 안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방을 정리하는 청소요원, 차량을 정리하는 주차요원, 짐을 옮기는 보이들, 셰프, 그 전체를 총괄하는 지배인까지.
그 하나하나가 고객을 편안한 휴식을 위해, 사소한 몸가짐부터 교양을 훈련받는다.
왕이 물었다.
“칼리프가 처음부터 6성이 아니었다는 건, 너도 알고 있겠지?”
“알고 있사옵니다.”
둘의 대화에 아크람이 끼어들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왕자님. 그 호텔에 근무하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어떤 말씀인지…….”
“국왕의 부름을 받고, 평생을 그곳에서 봉사한 사람들입니다. 그 호텔이 그들의 모든 것이지요.”
알리는 그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왕자님께서 지금의 직원들을 데리고 가시면, 그 호텔의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겠지요.”
그의 말을 이해한 알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부왕.”
내게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자네 말대로 그대로 두도록 하지. 이제 된 건가?”
나를 돌아보며 묻는 알리에게서 지친 기색이 느껴졌다.
‘휴! 이제 좀 받아라!’라는…….
국왕과 아크람도, 한마음이리라.
그런데 어떡하나?
마음이 식어버렸는걸.
“알리. 전 호텔 경영에 대해서 전혀 몰라요.”
그 말에 그가 피식 웃었다.
“하나하나 배워가면 되는 거지. 뭐가 문제인가?”
입을 오므리며 물었다.
‘뭔가 일을 만드는 느낌이야.’
“어떤 걸 배워야 하는 건데요?”
“인원관리부터 품질점검까지……. 그런 거야. 어렵지 않아.”
“그런 거, 지배인한테 맡기면 되는 거 아니었어요?”
“대부분은 그렇지만, 직접 돌아봐야 할 때도 있지. 오너가 게으르면, 직원들도 게을러지는 법이야.”
인상이 점점 구겨졌다.
“매일 보고도 받고 해야 하는 거죠?”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
알리의 표정이 말했다.
‘물을 걸 물어라! 돈 벌기가 쉬운 줄 알아?’
가슴에서 어두운 구름이 뭉실뭉실 솟아올랐다.
“쩝!”
줄 거면 부채 없는 깨끗한 걸 줘야지.
빚이랑 일거리도 같이 선물하는 건, 어느 나라 선물 방식이야?
그렇다고 이걸 포기하기는 너무 아깝다.
‘무려 십억 불짜리라고! 공사비만!’
그럼 지금 시가는 얼마겠어?
어떻게 혹하지 않을 수가 있어!
‘한 번 강짜 부려봐?’
아까 왕의 표정으로 봐서는, 이거 아니면 다른 거라도 줄 것 같던데.
‘젠장. 아 몰라! 한 번 더 튕겨보지 뭐!’
되면 좋고, 안 돼도 그만!
“의부!”
“마음을 정했나? 성훈.”
“네.”
입술을 삐죽이며 말을 이었다.
“의부께서 호텔을 선물 하시는 건, 지속적인 이익을 얻으라는 의미라 생각했습니다.”
왕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게 아니셨다면, 그냥 돈이나 보물을 주셨겠지요.”
“으응. 그렇지. 암!”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돈 따위가 무슨 선물이 되겠어? 그건 뇌물이지.”
“그런데 전 의부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못됩니다. 아마 채 일 년도 안 되어 쫄딱 말아먹을 겁니다.”
알리가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현장에서 날아다니는 걸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그건 현장이잖아요.”
그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현장이나 호텔이나 뭐가 달라?”
‘뭐가 다르냐니? 완전히 다르지!’
하고 싶어서 하는 것과 돈 벌려고 하는 게, 어떻게 같아?
알리에게 눈을 부라렸다.
“완전히 다르죠! 차원이 다르다고요!”
현장 점검을 하라고 하면 잘할 자신이 있다.
그건 내 전공이거든.
종일 빨빨거리며 뛰어다녀도, 전혀 힘들지 않다고!
그런데……. 이건…….
왕에게 사정했다.
“의부! 이건……. 저하고 안 맞네요.”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흠. 이유가 뭔가?”
“사실대로 말씀드릴게요.”
“그래! 뭐든지 말하게. 액수가 좀 크다고 해서 부담 가지지 말고.”
“돈은 저도 충분히 있어요. 물론 알리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지만.”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돈은 많으면 좋은 것을…….”
“귀찮아요. 매일 호텔에서 보고를 받는 것도.”
알리가 내 말에 반박했다.
“꼭 여기 있을 필요도 없잖아? 전화로 보고받으면 되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신경을 써야 하는 건 사실이잖아요.”
“그야 당연한 거고…….”
“돈 들어오는 것도 맞는지, 비는 게 있는지 확인도 해야 할 거고.”
“그야…….”
알리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돈이고 뭐고 귀찮다는데, 뭐라고 할 것인가?
“한두 푼도 아닌데. 당신 말마따나 한 달 오천만이라면 돈만 세다가 한 달 다 갈 걸요.”
어안이 벙벙한 알리를 보며 말을 이었다.
“명색이 건축가라는 놈이! 돈 세느라, 도면 그릴 시간이 없다고 하면……. 그건 좀 우습잖아요.”
푸념하듯 말을 맺었다.
“이거 하다가는 저, 제 명대로 못살아요. 그래서…….”
“허허허허. 이거 참! 내가 졌군.”
왕의 허탈한 웃음이 허공을 갈랐다.
“무슨 수를 써도 안 되는 건가?”
“쩝. 저도 정말, 정말 아쉬워요. 마음에 드는 선물이었는데…….”
최대한 아쉬운 표정을 강조했다.
‘눈치 채라고. 제발.’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고?
그건 선물이라는 거에 통하지 않는다고.
선물은 원래 불로소득이거든!
조용히 지켜보던 아크람이 입을 열었다.
“성훈 님. 만약에 말입니다.”
뭔가를 눈치 챈 듯, 조심스러운 물음이었다.
“네. 말씀하세요. 아크람.”
“만약에 그, 성훈 님께서 호텔 경영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어쩌시겠습니까?”
‘그럼 뭐! 꿀이지.’
머리를 긁적이며 시치미를 뗐다.
“그럼 좋기야 하지만, 저도 양심이 있지…….”
아크람이 왕을 보며 슬며시 웃었다.
둘 사이에 눈짓이 오가고, 왕이 손뼉을 짝 쳤다.
“좋아! 그럼 됐어! 그렇게 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의부.”
“성훈이 호텔에 신경 쓰지 않고, 돈 셀 필요도 없게, 통장에 돈이나 찍히게 해!”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어때? 그러면 받겠다는 거지?”
“하지만 일하지도 않는데, 돈을 번다는 건…….”
너스레를 떠는 내게 왕이 말했다.
“그러니까 선물이지. 다른 게 선물인가?”
내 말이 그 말이거든요!
기필코 선물을 주고야 말겠다는 듯, 왕의 눈에 오기가 풀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뜸이 다 들었군.’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의부. 그럼 호텔은 누가 경영하는 겁니까? 제가 하지 않으면?”
알리의 표정을 보며, 은근히 물었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나? 전 경영자!’
왕의 시선도 그에게로 향했다.
“알리.”
“네. 부왕!”
“네가 해라. 내가 주는 숙제다.”
“네?”
느닷없는 명령에 알리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럼 저는 칼리프도 하고, 그 호텔도 경영을…….”
왕이 얼굴에 느물거리는 웃음이 떠올랐다.
“내가 칼리프에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인지 아느냐?”
하긴…….
왕이 호텔 경영에 신경 쓰는 것을 본 게 어언 몇 년 전 일이었다.
“거기 총지배인이 일을 잘해! 직접 갈 필요가 없다고. 너보다 더 칼리프에 대해 잘 아는데, 네가 따로 지적할 일이 있을 것 같으냐?”
“하오나…….”
“내 말을 믿어라. 그는 내가 아크람 만큼이나 믿는 사람이야!”
왕이 말을 이었다.
“네 의제가 저리 귀찮아하는데, 다른 방법이 있느냐?”
“끄응.”
알리가 신음성을 토해냈다.
“네 능력을 보도록 하마.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믿는다.”
“네. 부왕.”
왕의 단호한 명령에 알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자! 그럼 경영자도 구해졌고. 받아서 호텔 수익만 먹으면 되는 건가?’
잠깐만!
지금 받으면…….
호텔 수리는 내가 해야 하는 거잖아.
내 돈 내고, 내가 현재 건설에 의뢰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네?
‘그럼 완벽한 선물이 아니잖아!’
“의부!”
“응? 아직도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나? 성훈.”
뜨끔하며 돌아보는 그에게 말을 이었다.
“솔직히 지금은 받아도, 머리만 아플 것 같은데요.”
“왜? 대출은 내가 갚아준다고 했고, 직원들도 모두 그 자리에 두기로 했는데?”
“그래! 성훈, 자네는 가만히 앉아서 통장만 보면 된다고.”
나 때문에 일거리가 늘어난 알리가 심통을 부렸다.
‘그러게 누가 빚덩어리를 선물로 주래?’
찡그린 표정의 알리를 보며 작게 투덜거렸다.
“어차피 파리 날려서 수익도 없는데, 통장에 찍힐 게 뭐 있다고. 쳇!”
“크으. 파리! 파리! 그럼 어쩌라고?”
“이왕 주는 선물, 제대로 주면 좀 좋아요? 형님!”
“그러니까 방법을 말하라고.”
“질질 끌 거 뭐 있어요? 바로 인테리어 공사 들어가죠. 아까 압둘이랑 말했던 그거요.”
내가 원래 온 목적이 그거라고!
‘호텔은? 덤이지.’
배하고 배꼽이 바뀐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난 그 일을 꼭 따가야겠거든!
“음. 그러려면 또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돈이 없어요?”
왕을 돌아보며 말했다.
“의부. 알리 형이 돈이 없다는데요?”
왕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네 호텔 수리하는데, 돈을 대라? 그거냐?”
씨익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말이 그렇게 되는 건가요? 하지만 전 아직 받는다고 안 했는데요?”
뻔뻔한 내 말에, 왕은 웃으며 말했다.
“그 외의 다른 요구사항은 없는 거냐?”
“더 요구하면 양심도 없는 거겠죠. 나머지는 알리 형이랑 상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아크람. 원하는 대로 주도록 하라.”
아크람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양아들이 된 기념으로 선물 한번 하는데, 이리 진을 뺄 줄이야! 선물하기가 이리도 어려운 줄, 난 오늘 처음 알았다네.”
“하지만 괜찮은 하루 아니었습니까? 골치 아픈 문제가 해결되었고, 아들 하나를 얻으셨잖습니까?”
“그렇지. 괜찮은 하루였어.”
“이제 그만 침소에 드시지요. 밤이 늦었습니다.”
일어나 응접실을 나가는 왕에게 고개를 숙였다.
“의부. 선물 감사하게 잘 받겠습니다.”
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리는 올해가 끝나기 전에 호텔 수리를 끝내고, 성훈에게 인계하도록 하라.”
“끙. 알겠습니다. 부왕!”
알리가 삐딱한 시선으로 물었다.
“이제! 만족하나? 성훈 동생!”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선물 고마워요. 알리 형님! 흐흐.”
“정말 날로 먹을 줄이야. 그 돈으로 뭐할 건가?”
“글쎄요…….”
여태껏 돈을 벌었지만, 그걸로 나를 위한 뭔가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일반인들은 세계 일주가 평생의 꿈이라고 하던데, 자네는 그런 거 없나? 하긴 소시민도 아니지만.”
지난 삶에서는 그런 꿈도 있었지.
구속받지 않고 여행하는 그런 꿈.
“잠수함이나 한 대 살까요?”
“엥? 잠수함? 그건 뭐하게?”
“글쎄요. 언젠가는 물속에 집을 지을 날도 오지 않겠어요?”
“크크크. 그런 집을 짓게 되면, 나를 제일 먼저 떠올려 주게.”
알리가 웃으며 내 등을 밀었다.
“우리도 가자고. 밤이 깊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