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330화 (330/427)

건축의 신 330화

왕의 부탁(04)

왕의 얼굴에 묘한 기색이 어렸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정도의 의미가 되리라.

평생 거절당해 본 적이 있었던가?

게다가 이건 명령도 아니고, 선물이라고.

갸우뚱하며 아크람에게 눈짓했다.

‘이유라도 좀 알자고. 도대체 왜!’

아크람 또한 궁금하기는 마찬가지.

‘도대체 성훈의 기준이 뭔지라도 알아야겠군.’

아크람이 말했다.

“오늘은 정말 놀라운 일의 연속이군요. 카심 왕자의 건도 그렇고 말입니다.”

그는 성훈에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거절할 분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그 연유를 여쭤 봐도 될까요?”

궁금하겠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걸 받으면 도박하는 거랑 똑같다고.

잘되면 다행이지만, 잘못되면 쪽박을 차는!

‘이런 걸 선물이랍시고. 나한테 들이민단 말이야? 내가 짱구야?’

평온한 표정을 가장하며 말했다.

“알리 형께서 그 호텔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건 내 땀의 결정체라고. 그냥 고맙게 받아! 쫌! 재지 말고.”

“그래서 저도 웬만하면 고맙게 받으려고 했죠!”

“그런데 뭐가 문제야?”

“아까 오면서 비행기에서 들었는데.”

“뭘?”

“그 호텔에 은행 대출이 있다면서요?”

“당연하지. 내가 카심도 아니고! 나같이 가난한 놈이 무슨 수로 대출 없이 사업을 했겠어?”

가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진짜 가난한 사람들이 들으면, 돌 맞을 소리를!

국왕이 측은한 듯, 알리를 보며 말했다.

“알리. 많이 힘들었겠구나. 돈이 없어서 은행에 손을 벌릴 정도였다니. 내가 너무 무심했어.”

그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젠장!’

알리에게 말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럼?”

“그 대출금이라는 게, 한두 푼이 아닐 거 아니에요? 그쵸?”

알리가 답답한 듯 말했다.

“끽해야 삼억 정도밖에 안 남았어. 거의 다 갚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커흑! 뭐? 삼억?”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왔다.

‘삼억 불이면…… 지금 환율이…… 그러니까 적어도 오, 오천억 원이네?’

휴! 덥석 안 물기를 백번 잘했지!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가진 돈 다 꼴아박아도, 갚을 수 있을지 없을지 가늠이 안 된다고.’

돈을 숫자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나에게도 살 떨리는 금액이 아닐 수 없었다.

‘잠깐? 대출금이 삼억이라고?’

은행에서 바보가 아닌 이상, 왕자라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용대출을 해 줬을 리는 만무하다.

‘그럼 호텔이 얼마라는 거지?’

바로 물어보고 싶었지만, 생각은 머리에서만 맴돌았다.

‘그럴 수는 없잖아. 속물처럼.’

금액을 알았다고, 바로 말을 바꿔서 달라고 하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그, 그럼…… 대출 금리는 얼만데요?”

대범하게 말했지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 나왔던 것 같다.

알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콧방귀를 꼈다.

“훗. 겨우 10%밖에 안 돼!”

‘어떻게! 10%에 겨우라는 말이 붙는 거냐?’

삼억에 일부 이자면, 매년 삼천만의 생돈이 나가는 거고, 그럼 대충 매월 삼백만, 매일 십만이 나가는 거네?

그러고도 원금은 변하지 않는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게, 단위가 달러라고.’

하루에 2억 원 가까운 돈을 상환해야 하는 거다.

그것도 이자로만!

“허참! 성훈. 똑똑한 줄 알았더니…….”

“뭐가요?”

“그 호텔, 지난달 매출이 오천만이었다고! 원금 상환하는 건 금방이야.”

자신만만한 알리에게 쏘아붙였다.

“그 호텔, 지금 파리 날리잖아요!”

어디서 구라질이야!

방금 전에 그거 때문에 똥줄이 탔으면서.

내 지적에 당황한 알리가 버벅거렸다.

“크흠! 지금 당장은 그렇지만, 정상화되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매일 돈을 쏟아 부어야 하죠.”

“투자라고 생각하면 편하잖아. 안 그래?”

알리의 말에 일침을 가했다.

“알리!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중동의 부자가 아닙니다.”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성훈의 말이 맞다. 우리가 너무 우리 기준으로 생각했던 거로군.”

아크람도 왕에게 동의했다.

“그렇군요. 선물을 준다는 것만 생각했지. 받는 성훈 님의 사정이나 기분을 생각하지 못했군요. 이건 명백히 저의 실수입니다.”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받는 사람이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는데, 그건 선물이라 말할 수 없겠지.”

왕이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럼 어찌하면 좋을까?”

그의 눈을 외면하며,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대출금을 다 갚아달라고 말하리까?

나에게 그걸 요구할 자격이 있을까?

선물이 마음에 안 들면 안 받으면 되지.

이리저리 바꿔 달라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자 않나?

‘그런 고민은 주는 당신들의 몫이고요.’

하지만 내 입은 생각과 다르게 움직였다.

“아닙니다. 이런 거금을 주시려고 하신 마음만으로도, 저는 충분합니다.”

“허. 이거 참!”

왕이 난감한 표정으로 알리와 아크람을 돌아보았다.

“내 평생 이런 적은 없었다.”

그건 알리도 아크람도 마찬가지였다.

주면 주는 대로 받는 사람은 수없이 봤어도, 맘에 안 든다고 퇴짜 놓은 사람은 성훈이 처음이었다.

알리도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소자도 처음입니다. 부왕!”

이마를 툭 치며 말을 이었다.

“공사비만 십억이 든 호텔인데 말입니다. 허허허.”

속으로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헉! 역시 이상했어. 내가 ‘0’ 하나를 빼고 읽은 거였군.’

하지만 이왕 호랑이 등에 올라탄 거!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끝까지 가본다.

‘돈은 지금도 넘칠 정도로 많다고!’

알리가 기분 나쁘다고 안 주면?

‘없던 셈 치면 되는 거잖아. 원래 내 것도 아니었고. 위험부담을 지는 것보다 백배 낫다고!’

못 들은 척 시치미를 뚝 떼며, 창밖을 주시했다.

왕이 탁자를 탁 쳤다.

“오기다! 방법을 찾아!”

선물을 받을 당사자를 앞에 두고, 어떻게 하면 받을지 주려는 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아크람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럼 대출 없이 깨끗하게 만들서 선물하는 것이 어떠하오리까?”

이에 알리가 호기롭게 말했다.

“애초에 제가 만든 대출이니, 제가 갚겠습니다.”

왕이 물었다.

“네가 무슨 돈으로? 돈이 없어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면서…….”

“그야 이번에 부왕께서 선물하신…….”

“됐다! 일없다. 너마저도 내 선물을 반쪽짜리로 만들 셈이냐? 그 호텔의 대출금은 내가 처리하도록 하마!”

“부왕. 굳이…….”

“네 호텔을 주는 거지만, 내가 주는 거랑 뭐가 다르냐? 그렇지 않은가? 아크람?”

“결국은 그런 셈이지요. 전하.”

처음에 성훈에게 선물을 제안한 사람도 국왕이 아니던가?

“험험! 이 정도면 될까?”

아크람에게 하는 질문이었지만, 그의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창유리로 다 보인고요.’

못 들은 척하고 있자, 아크람이 말했다.

“흠흠. 성훈 님.”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라는 의미가 아닐까?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세며 말했다.

“저 돈 없어요.”

아크람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휴! 그건……. 몇 번이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의 눈이 물었다.

‘그래서……. 또 어디에 돈이 들어가는지나 말씀해주시지요.’

아크람의 이마에 주름이 하나 더 늘었다.

“알리 형!”

“왜 그러나? 성훈 아우!”

시큰둥한 대답이었다.

“그 호텔, 직원이 몇 명이죠?”

“왜 그러나? 음. 500명이 조금 안 되지.”

대출금이 해결되었다고, 모든 게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그 500명한테 내가 월급 줘야 하는데!

내 생돈이 나간다고!

왕에게도 들리도록 큰소리로 읊었다.

응접실이 웬만한 거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커서 어쩔 수 없다고.

왕이 못 들으면 어떡해?

“그럼 연봉 대충 평균으로 3만 불 정도 치고…….”

내 계산을 알리가 정정했다.

“아니지. 자네가 잘 모르는군. 우리 사우디 사람들은 그거 받고 일 안 해. 놀고 말지.”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럼 얼만데요?”

“청소부도 6만 불은 줘야지.”

‘허허허. 한국 대졸 초임이 삼만 불이 안 되는데.’

어찌 헛웃음이 안 나올 수가 있어.

“끄응. 어쨌거나. 연봉으로만 최소 3,000만 불이 나가네요. 평균으로 따지면……. 더 높겠죠.”

“그쯤 될 거네.”

“아 참!”

바로 말을 이었다.

“이건 호텔 비품이나 기타 자재비용은 제외한 순수 인건비만 말씀드린 겁니다.”

알리도 이해가 가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듣고 보니 그렇군.”

“이건 누가 부담하죠? 호텔에 파리 날리는데?”

“헛!”

알리가 천정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국왕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역시 성훈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군.”

아크람도 왕을 마주 보며 호응했다.

“그렇군요. 이런 세세한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하마터면 은인에게 선물이 아니라. 큰 손해를 안길 뻔했습니다.”

경영자가 알리라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이건 내가 주인이 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지.

물론!

약간 모험한다 생각하고 덤비면, 처리하지 못할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왜!

‘이런 골칫거리를 떠안아야 하는데?’

별을 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런 걸 내가 어떻게 받아?

‘이게 선물이냐? 폭탄이지!’

받는 순간, 내 전 재산으로 빚잔치해야 한다고.

***

돈에 욕심 없는 사람도 있을까?

한번 죽었다 살아 봐!

돈을 대하는 시선이 바뀔 테니까.

인간답게 살기 위해 돈을 벌지만, 그 돈 때문에 인간이기를 포기한다.

인간을 포기하는 이유도 방법도, 세상에 있는 인간의 수만큼 다양하다.

그럼 나는 돈에 관심 없냐고?

좋아는 하되, 집착하지는 않는다.

내 안의 김성훈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야! 그런 놈이! 돈에 집착하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냐?’

왜 이렇게 꼼꼼하게 따지냐고?

알리도 그렇게 묻고 싶은 것 같았다.

눈썹 사이에 패인 주름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다면, 투덜거림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물 하나 주는 게, 이다지도 복잡한 일이었나? 선물도 부탁하면서 줘야 하는 거야!’

이렇게 말하고 있을걸!

하지만!

난 돈을 벌기 위해서 투자를 하거나, 혹은 직접 사업을 할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다.

내가 항상 돈돈 그러니까, 뭔가 착각한 모양인데!

나, 김성훈이 돈에 집착하는 경우는!

딱 하나뿐이다.

내 작품의 가치를 매길 때!

물론 내 장인들의 가치를 평할 때도 포함된다.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 가격을 높이고, 경쟁을 시키는 거지!

돈은 내 목적이 아니다.

돈은 지금도 많다고.

나 혼자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한다고 확신한다.

‘하루 이자가 웬만한 사람 연봉보다 높을 걸? 아마!’

물론 돈이 많으면, 좀 더 진귀한 음식, 혹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겠지!

좋은 옷과 집에 살 수도 있겠고.

하지만 그래서 뭐!

맛있는 거 먹으면, 황금색 변을 보나?

그래!

백 보를 양보해서 본다 치자!

황금색 변에서는 향기 난다디?

내게 아무런 가치를 부여하지 못한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산다고, 그 사람의 품격이 높아지나?

물론 그렇게 보인다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난 결코, 그런 것들을 위해 내 시간을 투자할 생각도, 나 자신을 혹사할 생각도 없다고!’

차라리 작품을 위해서 몇 날 밤을 새면 몰라도!

***

“의논하시는 중에 죄송한데요.”

세 아랍인의 고개가 모두 내게로 향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던가?

‘그렇지. 아무리 양심에 털 난 놈이라도, 이정도 정성이면…….’

알리가 빙그레 물었다.

“왜? 이제 받을 마음이 들었나?”

웃는 알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전혀 그런 마음이 아니거든요.’

“알리! 생각해 보니까…….”

“그래 생각해 보니까?”

모두 웃으며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돈은 별로 큰 문제가 아니네요.”

“헐. 돈 말고도 큰 문제가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리! 직원들은 어떻게 할 거예요?”

그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듯, 즉답했다.

“나와 십 년 가까이 일해 온 사람들이네. 당연히 내가 책임져야지.”

“그 말은 호텔 칼리프로 데리고 가겠다는 말씀이네요?”

알리가 굳은 입매로 말했다.

“응당 그래야겠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게 당연한 거 아니겠나?”

“그럼 안 받을래요! 돈을 뭉텅이로 안겨줘도.”

알리가 허탈하게 웃었다.

“허허허. 또 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