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329화 (329/427)

건축의 신 329화

왕의 부탁(03)

“왕세자 책봉식은 경사스러운 자리이옵니다.”

“그럼. 경사스럽고말고. 나라의 기둥이 결정되는 일이 아니던가?”

아크람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왕세자에게 선물을 하사하는 것은 오랜 나라의 전통이었지요.”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런 자리에 선물이 없으면 안 되지.”

왕이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흠……. 카심, 그 녀석에게는 무얼 선물했더라?”

그는 삼십 년도 넘은 일을 떠올리려 하고 있었다.

아크람이 지긋이 웃으며 말했다.

“걸프만에 있는 정유공장 하나를 관리하게 하셨지요.”

“아 참! 그랬었지.”

생산관리나 품질관리를 맡긴 것은 아닐 것이다.

거기서 나오는 매출을 관리했다는 말이 아닐까?

‘알아서 써라!’라는 의미의.

‘선물의 규모가 다르네. 이거야 원!’

기가 차서 웃는데, 아크람의 말이 이어졌다.

“그 뒤로도 카심 왕자에게는 많은 선물을 하사하셨지요.”

아크람은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알리가 이 자리에 서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카심의 선물과 같아서는 안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음……. 일단은 카심에게서 몰수한 재산을 모두 알리에게 하사할 것이다.”

“네? 그 많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인은 국왕이다.

아마 그다음으로 재산이 많은 사람을 꼽자면, 아마 왕세자가 아닐까?

그 재산을 모두 알리가 물려받는 것이다.

왕이 그를 기특하게 바라보았다.

“그래. 그 많은 재산을 가진 카심을 꺾고 이 자리에 왔도다.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겨우 그것으로 보답이 되겠느냐?”

“부, 부왕!”

상상이나 되는가?

왕이 희미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래. 이걸로는 성에 차지 않겠지.”

“부…….”

아크람이 말했다.

“이게 왕세자의 권한입니다. 응당 받으셔야 하는 것을 지금 받으시는 겁니다.”

“허나…….”

“혹여 따로 받고 싶은 게 있느냐?”

알리가 왕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저는 부왕께 지금까지 받은 것으로 충분합니다.”

왕이 흐뭇하게 웃었다.

하긴 원하는 게 뭐냐 묻는다 해서, 넙죽 말하면 그 또한 어색하리라.

나 같으면, 왕 소유의 호텔을 달라고 했을 텐데.

‘줄 때 날름 받아야지. 빼면 차례가 넘어간다고.’

“이렇게 욕심이 없어서야. 이제 모두 너의 것인즉, 좀 먼저 주는 것뿐이니, 말하라.”

소탈하게 웃으며 아크람에게 물었다.

“아크람은 어떤 게 좋다고 생각하오?”

그에 아크람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알리 왕자께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를 유전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왕자님.”

그 말에 알리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석유가 알라의 축복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에만 의지해서는 미래가 불분명해진다 생각했습니다.”

언젠가는 바닥이 날 석유였다.

바닥이 나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알라의 축복 위에 우리의 땀과 노력을 더 하여,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왕이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주신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지. 알라께서 흡족하게끔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야겠지”

찻잔을 들며, 왕이 말을 이었다.

“과연! 많이 고민했구나. 그래서 선택한 것이 호텔과 관광산업이라…….”

“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저 제게 맞는 것을 선택했을 뿐입니다.”

왕은 장성한 아들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크람. 내 호텔을 알리에게 주는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나?”

알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직은 중동에 하나뿐인 6성 호텔!

호텔 칼리프!

“부, 부왕! 콜록.”

감격에 목이 멨던 모양이다.

왕의 말에 아크람이 은근한 미소로 답했다.

“과연 영명하신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음. 그렇지?”

왕은 스스로 만족한 듯, 호탕하게 말을 이었다.

“좋다. 가져가서 경영하도록 하라.”

알리가 벌떡 일어나 왕의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가, 감사합니다. 부왕!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런 알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왕이 말했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다면 진즉에 줄 걸 그랬구려. 아크람.”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그간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압둘 녀석에게 꿇릴 일이 없겠지?”

알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내내 신경이 쓰이더구나. 압둘 녀석은 이미 제 아비에게서 호텔 쿠웨이트를 물려받았는데 말이다.”

왕의 조용한 읊조림에 알리의 눈시울은 대번에 붉어졌다.

“부, 부왕!”

국왕이 자신의 소소한 일상에도 관심을 가졌었다니, 알리는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그동안 무심하다 많이 원망했겠구나.”

“절,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감격에 겨워서,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구만!

부자의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아크람이 조용히 말했다.

“국왕께서는 한시도 알리 왕자님을 마음에서 놓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럴 기회가 마땅치 않았을 뿐입니다.”

그동안의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음인가?

알리가 울먹이며 말했다.

“부왕! 저는 한 번도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언젠가 알아주시리라 믿었습니다.”

왕이 그의 어깨를 안아 세웠다.

“이제 일어나거라. 이제 앞으로는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말라. 네가 이 나라의 왕이다.”

알리가 눈을 비비고, 왕에게 다시 절하고 의자에 앉았다.

눈시울이 붉어진 알리에게 왕이 물었다.

“알리. 호텔 하나를 얻었으니, 나머지 호텔은 어찌할 생각이냐?”

“네?”

알리의 되물음에 아크람이 웃으며 말했다.

“은혜는 이자가 높다 하지 않습니까? 빨리 갚을수록 좋은 것이지요.”

이미 말을 맞춘 듯, 왕이 아크람을 보고 말했다.

“의형제가 된 기념으로 성훈에게 선물하는 건 어떠냐?”

“네?”

예상하지 못한 말에 내 목소리가 절로 올라갔다.

놀란 내 표정을 본, 알리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부왕!”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성훈. 자네 덕에 이리되었으니,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잠시 당황했다.

기분도 좋았다.

이들에게 이렇게 인정을 받다니 말이다.

그리고 그 호텔이 얼마짜린데!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중심에 우뚝 솟은 호텔!

‘시가로 일억이 넘는다고. 달러로!’

누구라도 놀랄 수밖에!

-야! 김성훈. 받으라고. 고민할 게 뭐 있냐?

내 안의 김성훈은 결단을 촉구했지만, 난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왜냐고? 왠지 뒤통수가 간지럽거든!’

이유가 뭘까?

-의형제가 된 기념으로 주는 거잖아!

‘기다려 봐! 김성훈. 이 성급한 놈아!’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거봐! 얼른 받으라고 눈으로 압박하고 있잖아!

나에게 향하는 호의가 느껴진다.

‘이걸 위해서 그렇게 뜸을 들였던 겁니까?’

허나 호의는 호의, 현실은 현실!

알리도 기분 좋게 웃으며 물었다.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 그걸로 부족한 건가?”

그의 웃음에 마주 보며 웃었다.

‘마음이야 차고 넘치죠! 당신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호텔인데!’

지금 내가 가진 어마어마한 돈으로도 사기 어려운 호텔이다.

하지만 이미 계산을 마친 내 대답은 ‘노’였다.

알리에게 웃으며 답했다.

“이건 받아서는 안 될 것 같네요!”

나를 제외한, 세 명의 입이 딱 벌어졌다.

“뭐, 뭐라고?”

***

왕이 황당한 시선으로 아크람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나? 아까 자네가 한 말하고는 전혀 다르지 않나?’

아크람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옵니다. 신이 알기로 욕심이 과하면 과하지, 절대로 저런 사람이 아니옵니다.’

왕의 미간에 내 천(川)자가 새겨졌다.

‘그럼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성훈의 대답에 아크람의 수심이 깊어졌다.

응접실에 오기 전,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왕과 머리를 맞댔던가?

“난 오늘 자네 안목에 감탄했다네.”

아크람이 머쓱하게 웃는 것을 보며, 왕은 말을 이었다.

“성훈, 그 친구! 어찌 그리 능청스럽게 연기를 잘한다는 말인가? 자네 각본이지? 난 오늘 다시 한 번 자네에게 감탄했다네! 거기서 그런 묘수를 생각해 낼 줄이야.”

“그것이…….”

왕은 말을 듣지도 않고, 아크람의 등을 토닥였다.

“그런 일이 있으면, 앞으로는 미리 내게 말을 해 주게나. 난 그것도 모르고, 진짜로 화를 내지 않았던가!”

십여 분 전, 옷을 갈아입으며 왕이 한 말이었다.

“중신들이 있는 곳에서 자넬 칭찬할 수 없어서, 내 입이 얼마나 근질거렸는지 아는가?”

하지만 아크람의 입에서는 그의 예상과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오호라!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회장에서 있었던 일을 아크람이 간략하게 고하자, 왕의 입에서 나온 감탄이었다.

“그럼! 카심을 궁지로 몰아넣은 것이 아크람 자네의 생각이 아니었단 말인가?”

아크람이 머리를 조아렸다.

“신 또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오히려 사태를 축소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사옵니다.”

“어허! 난 자네의 계략인 줄 알고 감탄을 했더니…….”

“오히려 제가 성훈 님을 말리지 않았다면, 거기 있던 왕족들은 모두……. 지금도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르는군요.”

“으음. 잘했군. 아직은 알리의 인맥만으로는 국정을 헤쳐나가기 어렵지.”

“그렇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뛰어나면 뭘 하겠습니까?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 없는 법이지요.”

왕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배짱이 보통이 아닌 친구로군.”

아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보는 눈과 그 상황을 주도하는 심계가 심히 비상합니다. 이런 일이 생기리라 예상이나 하셨는지요?”

왕이 웃으며 말했다.

“아까는 나도 화가 났었지만, 끝나고 보니 감탄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네.”

“왕족 중 누구도 건드리기 어려운 민감한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었지요.”

“음…….”

왕의 신음성을 토하는 동안, 아크람은 결론을 내렸다.

“덕분에 깔끔하게 정리가 끝났지요.”

알리와 성훈이 응접실에 도착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왕은 일부러 미루며 말했다.

“아크람. 성훈을 어떻게든 알리와 이어주고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좋은 생각이십니다.”

“알리와 형제가 되라고 하면, 거부하지 않겠지?”

“당연하지요. 하지만…….”

“문제가 있나?”

“허울뿐인 의형제가 될 뿐, 적극적으로 돕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에는 돕지 않았나?”

“그야 자신의 목적과 부합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무슨 목적?”

“알리 왕자의 호텔과 관련된 것만 알 뿐, 신도 아직은…….”

“흠. 그런가?”

왕이 물었다.

“성훈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보게.”

둘의 이야기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아크람의 머릿속은 갖가지 생각으로 얼룩져 있었다.

김성훈!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가격 협상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대신 돈 가치만큼은 일해 준다. 그게 뭐가 되었든!

이게 알리와 압둘이라는 산증인을 통해 얻어낸 정보였다.

그러다가 스스로 머리를 탁 쳤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 모형은 압둘 왕자가 200만 달러를 불렀는데도, 그쪽으로 팔았었군!’

알리는 그 가격의 1.5배인 300만을 불렀는데도 말이다.

아크람의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성훈 님! 도대체 당신, 정체가 뭡니까?’

***

알리가 답답해하며 말했다.

“성훈! 난 자네가 안 받겠다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그는 황당해하는 왕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건 부왕께서 자네와 나의 의형제 인연을 축하하며, 하사하시는 거란 말일세.”

‘누가 그걸 모릅니까?’

“자네처럼 눈치 빠른 사람이 갑자기 이리 답답하게 구는 건가?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네.”

알리가 제 가슴을 텅텅 쳤다.

그들을 보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잘했어! 이게 맞아.’

갑자기 청백리라도 된 거냐고?

‘나, 김성훈을 그렇게 모르나?’

급히 먹는 떡이 체한다는 건, 이 경우를 말하는 거다.

천천히 소화 시킬 정도가 되었을 때, 먹어도 충분한데, 굳이…….

급히 삼킬 이유가 없다고.

거기다 경쟁자도 없잖아!

게다가 이들은 내게 그걸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지!

‘뭐가 문제야? 맛있는 걸 제대로 먹겠다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