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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319화 (319/427)

건축의 신 319화

왕세자(05)

응접실 안은 왕족들로 바글거렸다.

그리고 여러 타입의 사람들.

‘모두 카심과 자미르 같지는 않구만.’

아까의 분위기로 봤을 때는 전부 한통속으로 보였는데 말이다.

“어떻게 그런 문양이 그 시간에 나온 거요? 도저히 그건 상상도 못 했는데.”

사람들의 감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카심이 두툼한 턱살을 씰룩거렸다.

“지금 감탄이나 하려고 모인 거야?”

마지못해 새로운 안에 대해 의논이 시작되었다.

‘두꺼비 같은 놈. 칭찬 좀 하면 어때서? 고래도 춤추게 할 수 있는데.’

혹시 알아? 내가 좋게 볼지도?

“좀 더 칼끝을 세워야지요. 우리 왕가가 얼마나 강한지를 느낄 수 있도록.”

“아니지. 그럼 너무 공포스럽게 보인다고. 인자함을 더 강조하려면 부드러워야 해.”

건성으로 들으며, 주변에 집중했다.

‘이 녀석들 수발이나 들어주려고 온 게 아니라고.’

그러자 하나하나의 면면이 보였다.

누굴 날리고, 어떤 놈을 살려야 할지 말이다.

‘축이 되는 놈들만 없애면 된다고. 그리고 왕이 결단을 내릴 단초를 마련해 주는 거지.’

한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서른 초반 정도의 앳된 얼굴이었다.

불만이 있는 듯, 잔뜩 흥분한 목소리였다.

“자미르 형! 꼭 이렇게 해야 합니까?”

자미르의 비쩍 마른 얼굴에 짜증이 잔뜩 서렸다.

“또 너냐? 잔소리하려거든, 나가라. 너한테 안 시키니까.”

“이게 어떻게 잔소립니까?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내용은 모르지만 내 귀가 닿지 않는 곳에서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표독한 눈빛의 자미르가 잇소리로 말했다.

“닥쳐라! 외부인도 있는데.”

“어차피 우리말 알아듣지도 못한다면서요?”

참던 자미르가 탁자를 탕 쳤다.

“그래, 좋다! 말해 봐라. 뭐가 불만인데?”

“왜 그렇게 알리 형님을 못 잡아먹어서…….”

자미르는 더 듣기 싫다는 듯, 말을 끊었다.

“또 그거냐! 어린놈이 정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나서는 거냐? 나서기를!”

허나 그는 대단히 다혈질인 듯했다.

“보고 있을 수 없으니 그런 거 아닙니까? 정말 부왕께서 문장 하나 때문에 알리 형님께 관심을 가지셨다 생각하십니까?”

아무도 대답이 없자, 말을 이었다.

“그건 구실일 뿐이죠. 알리 형님이 관광 사업 부문에서 일을 제대로 해서 인정받은 거죠.”

“그걸 누가 모르느냐?”

“그럼 형님들도 국방부 일을 제대로 하시면 되지. 이게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자미르가 얼굴을 붉히며 벌떡 일어났다.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말이냐?”

그도 질세라 벌떡 일어났다.

“그럼! 제대로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일순 말문이 막힌 자미르가 입술을 깨물며 표독하게 노려보았고, 그는 할 말 있으면 하라는 듯 자미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습을 지켜보던 카심이 혀를 차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거기! 꼬맹이. 더 말하면 나를 모독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카심 형님.”

“자리가 자리이니만치 오늘은 그냥 넘어간다.”

자미르의 얼굴에 비웃음이 어렸다.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그런 망발을 내뱉느냐는 같잖은 표정.

“경솔하기는. 이렇게 형제들이 많은 데서 왕세자 전하의 얼굴에 먹칠을 하다니. 쯧쯧.”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리십시오. 부왕께서는 아직 카심 형님을 총애하십니다.”

찌푸린 표정으로 카심이 빈정거렸다.

“진정으로 총애하셨다면, 나를 이 지경으로 몰지 않으셨겠지.”

“아닙니다. 부왕께서 정말로 형님을 싫어하셨다면, 왕세자 폐위만으로 끝났을 것 같습니까?”

폐위라는 민감한 문제가 나오자, 카심의 두툼한 입술이 일그러졌다.

“쓰!”

“그 아크람이 강력히 주장했음에도 형님은 아직도 국방부 장관을 하고 계시잖습니까? 가장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를요.”

‘쯧쯧.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혈기가 넘치는 건지. 누구나 조심하는 문제를 들먹이다니.’

바른말 하는 모습이 보기 싫지 않았다.

또한, 유일하게 여기서 카심에게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카심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내보내라. 자미르. 그리고 넌 앞으로 내 눈에 띄지 마라.”

젊은이는 부들부들 떨다가 고함을 질렀다.

“하지도 않을 문장을 하겠다고 사람을 농락하다니. 이게 과연 왕이 될 사람이 할 짓입니까?”

뜨끔한 자미르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누가 안 한다고 했지?”

사전에 이야기됐던 거라면 저러지 않았겠지.

처음 이곳으로 올 때부터 그건 예상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문장이 아닐 테니까!

정정당당을 희망한 것은 아니지만, 막상 귀로 들으니 인상이 찌푸려졌다.

다행이라면 모두의 시선이 저 젊은이에게 집중되어 있어, 내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

‘무슨 이야기 하는지 들어나 보자.’

“할 겁니까? 진짜로?”

“당연하지.”

그가 코웃음 쳤다.

“그럼 알리 형님의 문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실 겁니까?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당연히 말씀드려야지. 부왕을 농락한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건 안 하겠다는 거잖아요. 부왕이 그 말을 듣고 다시 문장을 저 ‘성훈’이라는 사람에게 맡기겠습니까? 도대체 제정신으로 하는 말입니까?”

이제 분노를 넘어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킁! 이건 휘청거리는 알리 형님께 치명타를 꽂겠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알리 형이 부왕을 농락한 걸 그냥 넘기자는 말이냐?”

“뭐가 농락입니까? 문장을 선택하신 건 부왕 본인이십니다.”

자미르가 코웃음 쳤다.

“그래! 이번에도 부왕께서 선택하시는 거다. 왕세자께서는 단지 제안하실 뿐이고.”

“이게 어떻게. 이런 악의적인 제안을 제안이라고……. 어떻게 일국의 왕이 되겠다는 사람이 이런 비여…….”

그는 말을 끝까지 맺지 못했다.

아무리 카심의 곁에서 이득이나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양심은 있었던지, 젊은이가 더 심한 소리를 하지 못하게 저지하고 있었다.

허나 그다음 말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카심이 고함을 버럭 질렀다.

“썩 꺼져라. 뭐 하는 거냐? 안 내보내고?”

대충 감이 왔다.

알리를 흠집 내는데, 자기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거군.

하지만 의문은 있었다.

‘굳이 날 이용할 이유가 있나? 단지 왕을 농락했다는 이유라면, 그냥 말해 버리면 될 텐데.’

어쨌거나 나는 암살자로 선택한 모양이다.

‘재미있게 되었네.’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속여도 미안한 마음이 사라졌으니까.

저 멍청한 두꺼비 녀석의 생각은 아닐 거고, 자미르 놈이겠군. 여우 같은 놈!

자미르를 살생부의 첫 번째 명단에 올렸다.

‘하지만 확인해 볼 필요는 있지.’

잠시의 소요가 끝나고, 넌지시 물었다.

“저야 왕세자 전하께서 써 주시면 좋지만, 굳이 저를 선택하신 이유가 뭔지 여쭤 봐도 됩니까? 저보다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넘쳐날 텐데요.”

그가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실은 말일세. 알리 형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몰라도, 알리에 비해 많이 불리한 상황일세.”

‘훗. 연기 하기는……. 동정에 기대는 건가?’

어디까지 하는지 보자고.

“아까는 그렇지 않아 보이던데요? 일방적으로 알리가 불리한 상황으로 보이던데요?”

“그야 적 앞에서 약해 보일 수는 없지 않나?”

능숙하게 말을 돌리는 자미르였다.

“사실 왕세자 전하께서도 그 일이 있은 다음에 절치부심하며 노력했지만, 부왕께서는 여전히 편견을 갖고 계시지. 이 상태로는 공정한 대결이 될 수가 없지. 안 그런가?”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한쪽 말만 들었으니,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그건 그쪽 사정!

‘하지만 네 말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

제 손에 피 묻히기 싫어서 차도살인하는 놈들을 어떻게 신뢰해!

카심이 못마땅한 듯 물었다.

“자미르. 아까 녀석의 말도 일리가 있지 않나? 그냥 우리가 부왕께 말씀드리면 될 것 아닌가? 뭐하러 이런 녀석을 굳이 이용해야 하나?”

하지만 자미르는 나를 힐끔거리며 고개 저었다.

“그건 그 녀석의 생각이 짧은 겁니다. 우리말을 믿으실 것 같습니까? 오히려 알리 형을 모함한다고만 생각하실 겁니다.”

카심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접힌 턱살을 어루만지며 입술을 씰룩거렸으나, 자미르는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랬다가는 부왕의 신뢰만 잃을 뿐입니다. 그리고 부왕의 앞이 아닌, 어떤 매체를 이용해서 소문을 퍼트린다고 해도, 믿지 않으실 겁니다.”

“그럴까?”

“당연하지요. 방송국은 우리가 장악하고 있다는 걸 아시잖습니까? 그래서…….”

“그래서?”

“지금이 하늘이 주신 기회입니다. 부왕께서 초대했다는 건, 적어도 이 동양인에 대해 그만큼 호감이 있다는 것 아닙니까?”

카심이 내게 심술궂은 웃음을 던진다.

“훗. 그렇겠지.”

“이런 인물이 부왕께 알리에게 불리한 말을 한다? 과연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알리에 대한 신뢰가 약간이라도 흠집나면, 그때는……. 크크크.”

자미르가 카심에게 음흉한 눈빛을 던졌다.

“아시잖습니까?”

“크크크. 확실히 자네 말이 맞군. 역시 내 오른팔이야. 이런 계략은 기똥차게 생각해내는군.”

카심의 웃음에 그의 늘어진 볼이 물결쳤다.

제가 보기에는 호탕해 보일지 몰라도, 나로 하여금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냥 찔러보는데, 굳이 우리 편의 손을 더럽힐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좋아. 자네 생각대로 진행하게.”

자리르가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얇은 입매를 애써 올리며 미소 지었다.

“전하께서 자네를 좋게 보신 모양이네.”

“정말이십니까?”

“그래. 이번 일만 잘되면 큰 상을 내리실 거네.”

‘그 짧은 순간에 그렇게 말을 바꾸는 거냐? 캬! 그것도 재주다. 재주!’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런 삶이 일상화된 사람이 아니라면, 이게 가능할까 싶어서 말이다.

자미르가 물었다.

“왜 그렇게 웃는 건가?”

“외국의 높은 분이 저를 이렇게 믿어주시니, 너무 감사해서 말입니다.”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둘러댔다.

‘크. 속이자고 덤비는 놈이나, 그에 동조하는 놈이나.’

살기 팍팍한 나라였다면,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

한국이었다면 이런 과도한 호의를 일단 의심부터 했을걸.

‘온실의 화초란 이런 거겠지.’

하긴 이 사람들이 뒤통수라는 걸 맞아 봤겠어?

우리 민수도 의심할 상황인데, 이들은 내가 속아 넘어갔다고 단정하는 듯했다.

‘내가 연기를 그렇게 잘했나?’

하지만 여기서 냅다 하겠다 하면, 아주 멍청이가 되거나 혹은 의심을 살 수도 있겠지.

“저기…….”

“말하게.”

“그런데 이 문장을 완성시켜 드리면, 제가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겁니까?”

“아까 말하지 않았나? 큰 상을 내리실 거라고?”

코웃음 치며 말했다.

“혹시 지금처럼 국왕께서 하사하시는 훈장? 뭐 그런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는 당황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이건 생각하지 못했지? 줄 생각도 없었을 텐데, 뭘 생각했겠어?’

잠시 말문이 막힌 자미르에게 말했다.

“그런 금 쪼가리는 저한테 아~ 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왕자님. 쳇! 그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자미르가 내게 얼굴을 바싹 갖다 댔다.

“혹시 달리 원하는 거라도 있나?”

그의 말에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전 애초에 아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온 게 아닙니다. 그건 핑계일 뿐이고, 문장의 신세를 내세우면서 알리 왕자님께 일을 따고 싶어서 온 것이죠.”

“일?”

“네. 저 건설회사에서 일합니다. 알리 왕자 호텔의 인테리어 건이나 좀 얻어갈까 해서요.”

“흠……. 그랬나?”

“그런데 지금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버렸죠.”

“어떤…….”

말을 하다 느낀 거지만, 대화는 자미르하고만 하고 있었다.

카심은 계속 듣기만 한다.

‘이건 주종이 뒤바뀌었군.’

다음 정권에서는 자미르가 주도하게 될 것이다.

카심은?

왕이라는 이름의 꼭두각시!

‘자미르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살아가겠지. 자신이 불세출의 성군이라 믿으면서 말이야.’

“솔직히 여쭤보겠습니다.”

“뭘 말인가?”

“아까 알리 왕자가 더는 재기하지 못할 거라 하셨는데? 그 말 믿어도 되는 겁니까?”

‘뭘 말하고 싶은 거냐?’는 자미르의 눈총을 자연스럽게 받아넘겼다.

“계획도 없는데, 그냥 감정으로만 말씀하신 거라면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죠? 안 그렇습니까?”

침묵으로 쏘아보는 그에게 말했다.

“설마 아까 제가 아무 생각 없이 여기로 왔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서 그런 것인가?

자미르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면?”

씨익 웃으며, 그와 눈을 맞췄다.

“침몰하는 배와 함께 가라앉을 의리는 없죠.”

눈썹을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는 왕세자 전하께서 백만금을 주신다 해도 관심 없습니다.”

가늘게 눈매를 좁히는 둘에게 은근히 말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는 게 목적이지. 돈 따위야 높은 자리에 있으면 언제든지 뭐! 아시죠?”

둘이 서로 마주 보다 내게로 눈을 돌렸다.

자미르가 입술을 씰룩거리며 웃었다.

“평범한 그림쟁이인 줄 알았더니, 꽤 야망가였나 보군.”

“남자잖습니까?”

“크크. 방울 달고 태어났으면 그 정도의 야망은 있어야지.”

“사실 어느 정도의 리스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왕이나 아크람에게 미움 받는 그런 거?”

“오호라.”

“전 아직 살 날이 더 많거든요.”

카심의 볼이 흡족하게 부풀어 올랐다.

“이런 상황이니, 사실 왕자님의 제안이 솔깃하긴 합니다만, 그것만으로 알리 왕자와 쌓아온 걸 포기하기는 어렵군요. 확신이 없으면…….”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를 도발했다.

‘네가 가진 패가 뭔지 내놔봐! 무슨 패기에 그렇게 자신만만한 건지. 그리고 어떻게 알리를 방해할 건지.’

상대의 전략을 알면, 방어하기는 식은 죽 먹기!

아직 국왕과 아크람이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확신한다면, 근거가 되는 복안이 있을 터.

자미르가 말없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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