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18화
왕세자(04)
“압둘. 저건 또 왜 저래?”
성훈이 무리와 어울려 연회장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알리가 물었다.
“난들 알 수 있나?”
“저거 사고치는 거 아니야?”
알리의 걱정에 압둘이 고개를 저었다.
“성격이 있기는 해도, 경거망동하지는 않아. 아까도 봤잖나. 그렇게 무시를 해대는데, 모른 척 딴청하는 거 말이야.”
“내가 가 봐…….”
하지만 다시금 압둘의 손에 저지당했다.
“아까는 자네가 참으라 해서 참았는데, 이제 이유를 알아야겠네. 말해! 이렇게까지 날 말리는 이유가 뭔지!”
압둘은 한층 더 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성훈 녀석이 나가면서 이러더군.”
낮아진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고, 덩달아 알리의 음성도 낮아졌다.
“뭐라고 했는데?”
“선수교체!”
알리의 인상이 묘하게 찌그러졌다.
“하! 선수교체?”
‘내가 그렇게 찌질해 보였나?’
물어 무엇하랴?
오죽 답답했으면 성훈이 나섰을까?
잘하는 선수에게 교체 요청을 할 리가 없지!
‘하긴 분위기에 짓눌려 제대로 된 반박조차 하지 못했으니 그렇게 보였을 만도 하지.’
초대한 주빈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하니 알리의 검은 얼굴이 검붉게 변했다.
“큭. 젠장!”
그의 속을 아는 압둘이 그를 달랬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고.”
“저기서 성훈이 뭘 할 수 있을까? 저 꼴통들 사이에서…… 큰 사고나 안 쳤으면 좋겠는데.”
알리의 말에 압둘이 빙긋이 웃었다.
“뭐가 되도 되겠지. 기억나? 작년에 했던 말? 성훈은 자네와 나를 두고 저울질했던 녀석이라고. 안 그래?”
“흐흐흐.”
굳었던 알리의 입가에 히죽 웃음이 걸렸다.
‘맹랑한 녀석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지.’
이 둘이라고, 왜 성훈이 자신들을 저울질한다는 걸 모를까?
일이 끝나고 나서, ‘아차! 당했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는데.
허나 어쩔 것인가?
결과적으로 자신도 압둘도 만족했는데!
물론 가장 큰 수혜자는 성훈이겠지만.
옛일을 떠올린 알리가 히죽거렸다.
“그런 저울질이라면 몇 번이고 당해줄 용의가 있지.”
압둘이 그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 대가로 자네는 가문의 새로운 문장을 얻었지.”
“그러니까!”
그 디자인을 보고 부왕께서 얼마나 칭찬하셨던가?
‘사우드 왕가의 기상과 포용이 이토록 세련되게 표현될 수 있었다니?’
그 덕에 그저 열심히 일하는 아들에 불과했던 알리는 부왕의 눈에 들었고, 카심을 대체할 대안으로까지 부상할 수 있었다.
물론 반대급부로 왕세자, 아니 전 왕세자 파의 미움과 두려움을 고스란히 받게 되었지만 말이다.
알리가 압둘과 눈을 마주쳤다.
“자네 호텔은 지금이 최고 호황이지?”
“물론. 그리고 몰딩도 꽤 팔아먹었지.”
확연하게 밝아진 알리를 보며 압둘이 말을 이었다.
“그때, 생각나?”
“뭐 말인가?”
***
재작년 여름이었던가?
벌써 일 년 하고도 반이나 지났군.
저 녀석이 성훈의 부채질에 넘어가서 몰딩 값을 두 배나 올렸던 게!
나라고 어쩔 수 있겠어?
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두 배로 샀으니 두 배로 팔아야지.
‘정말 이 가격에 팔릴까?’ 하고 걱정했던 것은, 말 그대로 기우에 불과했다.
‘손해 본 게 있긴 하군. 창고 임대비용.’
왜냐고?
창고에 채 들어가기도 전에, 컨테이너째로 현장으로 납품했으니까.
‘그 덕에 처음 예상치의 몇 배로 이익을 거뒀고, 몇 차례나 더 주문을 넣어야 했었지.’
그 일이 있은 지 몇 주 뒤였나?
알리가 쭈뼛쭈뼛하며 내 저택을 방문했었다.
제 딴에는 미안했던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양고기를 손수 들고 말이다.
“압둘. 미안하게 되었네.”
난 기억나지 않는 듯, 퉁명스레 대꾸했었다.
“뭐가 말인가? 우리 사이에.”
“나 때문에 손해를 봤잖나. 괜히 내가 현금 레이스를 하는 바람에 말이야. 자! 이거 먹어 보라고. 우리 조리장의 특별 비법을 전수받아서 내가 직접 구운 거야. 맛이 끝내줘.”
이 무뚝뚝한 놈이 시종마냥, 직접 양고기를 썰어서 포크로 찍어주는 걸 찍어 뒀어야 하는 건데.
아직 내가 얼마나 이득을 봤는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미안해했던 거겠지.
알았다면 배 아파했을 녀석이지, 절대 이렇게 살가울 놈이 아니지.
그가 내게 이렇게 물었었다.
“압둘. 억울하지 않던가?”
‘뭐가? 두 배로 사서 두 배로 팔아먹은 게?’
그 가격 그대로 사들였었다면, 두 배로 올려 팔 배짱을 부리지 못했을 텐데.
‘전화위복이란 이런 걸 말하는 거지.’
시치미를 뚝 떼며 물었다.
“뭐가 말인가? 자네에게 돈질 당한 것?”
“그, 그건 내가 잠시 돌았던 거라니까.”
그는 투덜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성훈, 그 녀석에게 당한 것 같단 말이지.”
‘그걸 이제 알았냐? 이 곰아!’
“그래도 자네는 가문의 문장을 새로 얻었잖나? 부왕께 칭찬을 많이 들었다던데.”
녀석이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그 왜, 있잖나?
눈은 미안해하는데, 입꼬리를 올라가 있는…… 그런 표정.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래서 어쩔 건데?”
“음. 묘해서 말이야. 당한 건 당한 건데…….”
말꼬리를 흐리는 알리의 말을 받았다.
무슨 말을 할지 뻔하니까.
“손해 본 건 없지?”
알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지. 나도 손해 안 봤어.”
어리둥절한 알리에게 빙긋이 웃으며 털어놓았다.
지난 몇 주 동안 몰딩을 얼마나 팔았고, 얼마의 이익을 봤는지.
그때 알리의 경악하는 표정이란…….
“진짜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알리는 내게 밀었던 접시를 포크째 빼앗아갔다.
난폭하게 양고기를 찍어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에에이! 괜히 왔네!”
아이 같은 유치한 행동에 한참동안 배를 잡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웃음이 그치고서야 알리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쩔 건데?”
고기를 우적우적 씹으며, 그가 말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 말이야.”
꿀꺽!
“성훈 녀석은 다음에 일거리가 생기면 자네나 나한테 가져올 거야.”
친우가 손수 구워온 양고기를 썰며 대답했다.
“그렇겠지.”
심술궂은 표정으로 알리가 말했다.
“그때, 크…… 잘 들어 봐.”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때 내가 낮은 가격을 부르고, 자네가 좀 더 높게 제시하는 거지. 다음번엔 내가 좀 손해를 보겠네.”
나름의 양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그렇게 버팅기면, 제 녀석이 어쩌겠어. 자네가 낙찰을 받는 거지.”
“그다음 차례에는 반대로 하자…… 그거로군.”
알리의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역시. 자네는 말이 통해서 좋아.”
그는 스스로 내린 결론이 만족스러웠던지, 냅킨으로 스윽 입을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
‘크으. 충분히 네 녀석이 내놓을 만한 결론이다.’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자네는 그러게나? 난 그럴 생각이 없으니.”
“크크. 혼자서 성훈을 독점하겠다는 생각인가?”
의미심장한 말이었지만, 그 말을 부정했다.
“설마 내가 좀 높은 가격을 불렀다고 녀석이 만족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안 그럼 어쩔 건데?”
다른 수가 있냐는 듯, 알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재력가를 데리고 와서 똑같이 저울질하겠지. 자네는 빼고.”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 그 재력가도 자네 못지않은 사람일 거야.”
대번에 상황 파악이 되었던 모양이다.
“엥! 그럼 나만 새 되는 거잖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자네는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 거야.”
내 의견이 불만스러운지, 알리는 툴툴거렸다.
“자네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돈 앞에서는 절대로 양보가 없는 자네가 말이야.”
알리는 평생을 함께 가야 할 동료였다.
‘이런 우직한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고.’
사업적인 부분에서 벌어진 일은 경쟁일 뿐, 믿음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게 우리 둘만의 룰이기도 했고!
속에 있는 말을 꺼냈다.
“자네는 착각하는 게 있어.”
“뭔가?”
“단발성 거래일 때, 그게 충분히 가능해. 다음이 없다고 하면 말이야.”
그리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내 경험으로 봐서 성훈의 작품은 절대 한두 번으로 끝날 게 아니야.”
“그래서?”
“이렇게 비싼 값을 치렀으니, 자네 말처럼 다음에는 당연히 우리에게 들고 올 거야.”
여기까지는 알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성훈이 돈을 좀 더 벌고 싶어서, 우리에게 온다고 생각하나?”
“당연하지!”
알리의 확신에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그 말이 가장 일반적인 답이겠지만, 허나 내 생각은 다르다네.”
“돈 외의 다른 목적이 있다고? 훗!”
코웃음 치는 그에게 확신하며 말했다.
“응! 녀석은 자신의 작품을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싶은 거야.”
“그게 그 말이잖아.”
“다르지. 그렇다면 성훈이 미쳤다고 현재 건설에 도움이 될 일을 하겠냐고! 직접 팔지.”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군.”
“고로 성훈은 도면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말이지.”
당연한 추론이 아닐까?
돈을 벌고 싶었다면, 자신의 사업체를 차리는 것이 마땅한 일!
허나 성훈은 그것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알리. 이건 돈이 되는 물주야!”
돈을 대는 물주가 아니라, 그 물건의 주인!
“더 중요한 게 뭔지 알아?”
알리가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녀석밖에 없다는 거야.”
도자기를 만들어서 왕에게 주던, 개밥그릇으로 쓰든, 그건 장인의 마음이다.
꼴 보기 싫은 왕이 달라고 떼를 쓰면?
깨버리면 그만이다.
“그래도 돈을…….”
“성훈은 이렇게 말할 걸? ‘왜 내가 만든 걸,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데?’”
그 모습이 떠오르는 듯, 알리는 헛웃음을 뱉었다.
“크크크. 분명히 그러겠지.”
“돈 있으면 뭐해? 녀석이 안 팔면 못 사는데.”
“음. 수틀리면 안 만들 테고.”
“또한 만든다고 한들, 우릴 찾아올 리가 없잖아. 알리. 세상에 널린 게 우리 같은 재산가들인데!”
성훈이라는 인간에 대한 결론을 내릴 시간이었다.
“그는 최초의 생산자야. 이른바 절대 갑(絕對 甲)!”
의미를 이해한 알리가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허! 돈을 이렇게 가지고도 을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야.”
“알리.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세. 하지만 말이야. 그에게 잘만 보이면, 돈을 몇 배로 굴릴 수 있다네. 지금까지 굴리던 자금에 ‘0’이 몇 개가 더 붙을지도 몰라.”
넘치도록 있어도 아쉬운 것이 돈.
알리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잘만 구슬리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온다라…….”
“그러니까 돈이 아깝지 않다고! 성훈의 명성이 오르면 오를수록, 성훈의 작품은 더 고가에 판매될 테니까.”
“그리고 그 판매자는…….”
흐뭇하게 웃는 알리와 눈을 맞추었다.
“알리 자네가 아니면, 내가 되겠지.”
***
그리고 지금!
지난 몇 년간 수천만 달러를 들여 홍보를 해 왔지만, 지금처럼 화끈한 결과를 얻은 적은 없었다.
‘내 선택은 정확했지! 이 결과를 얻는데 든 돈이 고작…… 이백만 달러라고.’
덤으로 부왕의 총애를 얻었다.
압둘이 말했다.
“저 친구의 배짱은 자네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아직도 못마땅한 듯 입술은 비틀린 채였지만, 마지못해 수긍했다.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강적을 상대로 정면승부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일 뿐이니까.
알리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러니 지켜보자고. 특급 용병이 자진해서 출장했으니까.”
성훈의 뒷모습을 보며, 압둘은 조용히 생각해 잠겼다.
‘늘 그래 왔듯이 성훈은 거부하기 어려운 제안을 하고, 레이스를 종용하겠지.’
이번에는 누구에게 제안을 하며, 어떤 레이스를 시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