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15화
왕세자(01)
등장부터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중년이었다.
내 기분도 좋을 리가 없었다.
‘난쟁이 똥자루 같은 놈이 어디서 알리를 비웃어?’
하지만 압둘은 처음 당하는 것이 아닌지, 즉시 인상을 펴며 뒤돌며 일어섰다.
“별고 없으셨습니까? 카심 일왕자님.”
“흥! 당연히 없지! 있으면 좋겠나?”
빈정거리는 말에도 압둘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리고 차기 왕은 아직 부왕께서 확정하신 적이 없으니, 함부로 말씀하시지 말아 주십시오.”
허나 어금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발음에서 그의 심정으로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중년도 그 기운을 느낀 듯 이죽거리며 비웃었다.
“흥. 끝까지 겸손한 척하기는.”
“카심 왕자님!”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를 하면 감하다 받으면 될 것이지. 거기에 무슨 토를 달고 그러나? 지금 내게 가르침을 내리시는 겐가?”
감히 누군데, 압둘에게 이렇게 거만하게 군다는 말인가?
이런 안하무인의 행동으로 봤을 때, 압둘보다 더 영향력이 있는 인물임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압둘에게 시비를 건다는 것은 이상한 일.
‘뭔가 쌓인 게 많은 모양이군. 그런데 알리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는데.’
아니나 다를까?
알리가 압둘을 대신해서 변호하고 나섰다.
“형님. 지금 압둘의 부왕께서는 병중이십니다. 설령 압둘이 차기 왕이 된다고 해도, 그건 곧 부왕께서 돌아가신다는 말인데, 그게 어떻게 마냥 축하할 일입니까?”
설마 알리의 반박은 예상치 못했던지,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딴 걸 누가 모르느냐? 난 그냥 축하하려고 했단 말이지. 내가 쿠웨이트 왕께 무슨 일이 생기라고 기도라도 한다는 거냐? 뭐냐?”
노한 알리가 코함을 버럭 질렀다.
“형님! 앞에 있는 사람 기분을 생각해서 말씀을 가려서 해 주십사 하는 말입니다.”
응당 맞는 말을 하는 알리에게 호응이 있어야 함이 마땅한데, 분위기는 알리의 편이 아니었다.
나서지도 못하면서 카심 뒤에서 입만 내밀고 있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보아하니 추종자들 같은데, 자기네 패거리니 옳고 그름 따위는 의미가 없다? 정상적인 집단은 아니군.’
사과하면 끝날 일을.
자신은 사과할 이유가 없다는 듯, 압둘에게 잘못을 돌리고 있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역정을 부렸다.
“알리 이놈! 한 번 후계의 물망에 오르니, 이제 나 따위는 우습게 보이느냐?”
“누가 그렇다고 했습니까?”
“가증스러운 놈. 누가 네 속을 모를 줄 아느냐?”
압둘에게서 시작된 불은 알리에게로 옮아붙었다.
한 발짝 물러서서 분노를 삼키는 압둘에게 물었다.
“누굽니까? 저 난쟁……. 아니 안하무인은?”
“사우디아라비아 일왕자. 현 국방부 장관이기도 하지.”
“일왕자요? 왕세자가 아니라?”
그 말에 압둘의 입에서 작은 미소가 걸렸다.
명백한 비웃음.
“쫓겨났지.”
“엥? 왜요?”
어마어마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함부로 바꿀 수 없는 자리가 아니던가?
“국방부 장관을 하면서 횡령을 하는 바람에 국왕의 분노를 샀지. 그 일로 왕세자 자격을 박탈당했지.”
“아! 스스로 제 복을 걷어찼네요,”
합당한 비웃음이었다.
압둘이 한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 덕에 알리에게도 기회가 생긴 거고.”
왜 알리에게 저런 감정적인 대응을 하는지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럼 저 사람은 알리가 엄청 싫겠군요?”
“응. 철들었을 때부터 삼십 년을 넘게 왕세자로 살았네. 당연히 왕이 될 거라 믿었겠지. 그런데 알리가 그 자리를 위협하니, 미울 수밖에.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사람이 옹졸하고 편협해.”
하긴 애초에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면, 횡령에 연루되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았겠지.
‘조금만 참으면 나라 하나를 통째로 먹을 수 있는데, 그걸 못 참아서 푼돈을 탐하다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왜 웃나? 성훈?”
“저런 사람은 어디에나 있더라고요. 뭐가 중한지도 모르면서, 자기만 자격이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요.”
압둘이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게다가 최근에는 사사건건 알리와 비교를 당했으니, 더 싫겠지.”
“그래도 아크람의 말을 들어보면, 크게 마찰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동안은 자기가 잘한 게 없었거든.”
“그럼 찌그러져 있을 일이지. 왜 이제 와서…….”
압둘이 인상을 썼다.
“아다시피 요즘 알리가 좀 곤경에 처했잖나.”
“약점 하나 잡았다, 그거군요.”
“경기 부양의 호텔이 휘청거릴 정도이니……. 그래서 저렇게 대놓고 도발을 하는 거지.”
곤란하겠지 하면서 막연히 추측만 하다가, 직접 눈으로 보니 느낌이 확 다가왔다.
“무능한 것치고는 추종자들이 꽤 있네요?”
압둘이 코웃음 쳤다.
“훗! 그 횡령한 돈이 다 어디로 가 있겠나?”
저 많은 추종자를 만족하게 할 정도의 돈이라?
궁금증이 돌아 넌지시 물었다.
“얼마나 해먹은 건가요?”
“나야 모르지. 알리가 말하지 않으니.”
압둘에게도 말하지 않을 정도이니, 내게도 말할 리가 없다.
또한, 고작 수십억 달러 때문에 왕세자 자리를 박탈했을 리는 없다. 일반 왕족도 수억은 기본으로 가진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던가?
“그런 집안의 치부를 누가 말하고 싶겠나? 내 형제가 그랬다면, 나라도 남세스러워서 말 못한다네. 나라의 국고를 지켜야 할 사람이 국고를 빼돌렸다니. 양심이 있는 자는 그렇게 못하지.”
그의 말, 깊은 곳에 깔린 감정은 경멸이었다.
허나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다.
‘눈에 거슬리는 건, 쫓겨났으면 자중할 일이지. 아직도 왕 노릇 하고 있다는 거지.’
왕 노릇은 왕이 된 다음에 하는 거잖아?
압둘에게 물었다.
“하지만 왜 왕은 확실히 정리하지 않은 걸까요?”
“답답하겠지. 자네가 보기에도.”
“사실 불편하네요. 좀 많이.”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실제 카심의 추종자는 저것보다 훨씬 더 많아.”
“그것과 정리하지 못한 게 연관이 있나요?”
“자네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연관이 깊지.”
“뭐가요?”
“왕족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게 왕가라네.”
그래서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 번 금수저로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그 직위를 유지한다.
‘그걸 알면 행동이라도 그에 어울리게 하던지.’
내 불만을 알 리 없는 압둘이 말을 이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 기반을 날릴 수는 없었을 터. 안타깝지만 왕가에 비리가 만연해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고 그는 말을 이었다.
“그건 우리 쿠웨이트도 별반 다를 바가 없어.”
압둘의 말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저 인간 하나를 날리는데, 기반이 날아가는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라고요?”
남 일 같지 않아서인지, 압둘도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만큼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께서 카심을 믿었었다는 말도 되겠지.”
“그런 신뢰를 뒤통수로 보답했군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그런 만큼 국왕께서도 왕세자 자격을 박탈할 정도로 진노하신 거고.”
나는 저런 인간이 싫다.
자신의 복을 제 발로 걷어차 놓고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자중하지 못하며, 이전에 가졌던 특권을 놓으려 하지 않는 모습이.
‘역겹다.’
“아크람도 저 치가 저런 행동을 한다는 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저런 인간에게 왕자라고 호칭하는 것도 아깝다.
암! 아깝고말고!
“알고 계시겠지. 궁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고 계시는 분이니.”
“그런데도 손을 쓰지 못하신다, 그 말이네요?”
침울한 얼굴에 짙은 콧수염이 씰룩거렸다.
“그렇지.”
나는 압둘에게 ‘왜 당신은 저 다툼에 끼어들어서 알리의 편을 들지 못하는 겁니까?’라고 물어볼 수 없었다.
저렇게 발만 동동 구르는 걸 봐도, 이미 그의 심정은 다 알고 있으니까.
‘사실 물어볼 필요도 없지.’
왕자들끼리의 갈등이 바로 외교 문제로 번지기 때문이리라.
현왕들의 재위 기간이 많이 남았다면 문제가 다르겠지.
감히 그들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용기가 없을 테니까.
허나 쿠웨이트 왕도, 사우디아라비아 왕도 그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해진 수명은 거스를 수 없는 법.
왕이 죽은 다음의 일은 압둘과 알리의 세대에서 해결해야 한다.
‘나라도 이 중대한 시기에 이런 쓰잘데기없는 갈등으로 정세를 복잡하게 하고 싶지 않을 거야.’
곤경 당하는 친우를 보면서도, 힘을 보태지 못하고 애만 태우는 그가 안타까워 보였다.
“이유가 뭘까요?”
그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을 봐 왔으니, 단칼에 쳐내기가 어렵지 않으실까?”
그를 보며 씨익 웃었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정말 그렇다면 내가 압둘을 잘못 본 건데?
내 표정을 보며,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면에서 본다면……. 명분이 없다는 거겠지.”
“저런 행동을 하는 데도요?”
“누가 증명할 건데?”
“그야 알리 측의…….”
“여기에 그렇게 용기 있는 인간은 없어. 혹여라도 카심이 왕이 되어버리면 모든 재산을 내려놓고 국외로 도피해야 하는데?”
“저 옹졸한 모습을 보니……. 그럴 만도 하네요.”
가진 것이 많으니, 겁도 그만큼 많아지는 것이리라.
“얼마 전까지 알리가 카심과 다퉜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뒤를 바짝 뒤쫓았다는 말이지, 앞지른 게 아니야. 아직도 그의 인맥은 막강한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나?”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되네요.”
“안타까운 건 왕세자 자격을 박탈할 때, 국방부 장관도 해임했어야 했는데, 국왕께서는 그러지 못했지. 아크람이 그렇게 강하게 청했다고 들었는데도 말이야.”
“부정이겠죠. 한 번의 실수는 덮어주고 싶은…….”
“성훈. 왕은 누군가의 아비여서는 안 돼. 백성 모두의 아비여야 하지. 국왕도 늙으신 게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그중에서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
어떻게 자식이라도 똑같이 사랑할까?
그리고 사랑의 깊이는 함께해 온 세월에 비례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국왕은 그를 징계하면서 그가 반성하고 변화하기를 기대했지만, 카심은 기대를 저버렸다.
카심에 대한 정의가 내려졌다.
“저건 똥이네요.”
“응? 똥이라니?”
“똥파리가 모이는 중심에 뭐가 있겠어요?”
“당신도 그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던데요?”
그는 말없이 입술을 말아 올렸다.
“혹시 제가 잘못 본 건가요?”
“아니야. 제대로 봤네.”
단지 알리와 친구라는 이유로 싫어하지는 않을 터.
“이유가 뭔가요?”
그는 카심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말이 국방부 장관이지. 아랍의 무기상이나 다를 바가 없어. 우리끼리는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
압둘이 말을 이었다.
“그는 첨단 무기가 자기 나라를 지킨다고 믿는 사람이지.”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아라비아 반도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
이라크의 이란 침공, 또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걸프전. 그 외에도 국지적으로 이어지는 이슬람교 내부의 교리전쟁.
그런 상황에서 무기의 도입은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본적 문제는 해결할 생각도 없이, 무기만 사들인다?’
“심각하네요. 아라비아 반도에 긴장을 고조시켜서 좋은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죠.”
“다 같이 죽자는 말이지. 하지만 그걸 막을 방법이 없어.”
“그렇겠죠. 제 돈으로 산다는데.”
이들은 초고가의 무기를 사들이는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매일 땅에서 수백만 배럴의 돈이 솟아나는데, 돈이 돈으로 보일까?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호전적인 사람들인데.’
남들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싸움으로 동족을 죽이고 있는 자들이다.
단지 마호메트가 기록한 교리의 해석 차이로 말이다.
마호메트가 전하고 싶었던 알라의 뜻은 그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저런 짓거리를 하고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 건가?’
압둘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답이 보이는 군비경쟁인데 말이야.”
사우디아라비아가 무기를 사재기 시작하면?
이라크는?
이란은?
결국, 쿠웨이트도 무기를 사야만 하겠지.
“그럼 아라비아 반도는 화약고가 되겠네요.”
무제한 포커에서 제일 무서운 갬블러는 누굴까?
심리파악을 잘하는 포커페이스?
눈보다 손이 빠른 타짜?
끝이 보이지 않는 돈질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한 번만 실수하면 영혼까지 탈탈 털리지.’
매 게임 베팅을 더블로 올리면, 무슨 수로 이기겠는가?
‘아랍인들이 죽든 말든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그건 하나는커녕, 반도 모르는 소리!
중동 국가들의 관계가 험악해지면 건물 지을 돈이 어디 있겠나? 무기 사재기 바쁘지.
폭격으로 무너질 걸 뻔히 알면서 건물을 올릴 멍청한 재산가는 절대로 없다.
있으면 어떡할 거냐고?
고객 한번 받지 못하고 바로 알거지가 될 테니, 없는 거나 매한가지.
고로 내 작품을 위해서라도 세계는 평화로워야 한다고.
‘그나저나 저 똥 덩어리 폭탄을 어떻게 치우지?’
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생각은 없었다.
새로운 바람이 불기 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