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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310화 (310/427)

건축의 신 310화

취업선물(02)

그는 리무진에 올라타며 말했다.

“성훈. 자네가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함께 뒷좌석에 앉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리! 내가 비행기에서 들은 얘기는 다른데요?’

신문에서는 단지 호텔 투숙객들의 예약 취소로 인해 알리의 수익이 감소했다는 것으로 보도되었지만, 실제로 그의 상황은 신문으로 알려진 것보다 더 심각했다.

아디바가 알리를 걱정하며 말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 건축에 들어간 대출금 상환에 심각한 지장이 생길 거예요.’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 내심 부인하고 있을 뿐.

이대로라면 알리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절대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들도 얘기하지 않았던가?

‘알리 삼촌은 절대로 앓는 소리를 하지 않을 거예요. 자존심이 굉장히 강하거든요!’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다.

중동의 돈줄 하나가 날아가는 거라고!

그의 아픈 부분을 찌를 수밖에.

일단 살아남아야 자존심도 세울 수 있지 않던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렇겠죠. 석 달 정도는…….”

“응?”

툭 던진 말에 알리의 미간이 꿈틀했다.

“어디서 들은 건가?”

“승무원들이 굉장히 미인이던 걸요.”

“아디바랑 나니아인가?”

“네.”

내 대답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녀석들이 아닌데…….”

사실 그녀들도 처음에는 사업상 기밀이라며 말하기를 꺼렸지만, 아직 이십 대 중반인 그녀들을 후려치는 것은 내게 있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더 알고 싶다며 일부러 스튜어디스를 지원한 그녀들이었다.

호기심 많고 진취적인 그녀들은 나와 죽이 잘 맞았다.

시치미를 뚝 떼며 말했다.

“살살 구슬렸죠. 뭐. 당신 조카들이라면서요?”

알리의 광대가 꿈틀거렸다.

“거기까지 말을 하던가?”

“열 시간이면 친해지기 충분한 시간이죠.”

그가 나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보기보다 여자 수완이 좋군. 목석인 줄 알았더니.”

의미심장한 그의 말에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 조카들이 한국 아이돌을 좋아해서 그나마 어려움이 덜했어요.’

***

비슷한 나이끼리 친해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서먹함이 어느 정도 없어지자, 한국과 아이돌에 꽂혀 있던 그녀들은 내게 질문을 던져 왔다.

H.O.T를 아는지, 신화를 아는지.

‘물론! 아는 한도 내에서 말해 줬지.’

지금은 절대 확인 불가능한 정보들.

소속사에서 사활을 걸고 막았던 뜬소문들.

십여 년이 지난 후에 당사자들이 토크쇼에 나와서 했던 말들.

내게는 지나가며 흘려들었던 이야기들이지만, 그녀들에게는 더없이 귀중한 정보가 될 것이다.

지금은 어디서도 이런 말을 들을 수 없거든!

‘절대 불가능하지.’

나는 그런 정보 몇 가지를 그녀들에게 흘렸다.

딱 감질이 날 정도로만.

아디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진짜? 신화, 그 오빠들이요?”

“진짜 맞아요? 어디에도 그런 이야기는 없었는데요?”

신화 팬인 나니아가 가느다란 눈으로 의문을 표했다.

‘그렇지! 걸려들었군.’

그런 그녀들에게 씨익 웃으며 말해줬다.

“그럼! 이건 탑 씨크리트니까. 이게 밝혀지면 그 아이돌 그룹은 해체된다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요?”

속삭이는 내 목소리에 그녀들은 얼굴을 바짝 붙여왔고, 나는 그녀들의 입술에 양 검지를 갖다 대며 말했다.

“쉿! 알겠지? 당신들만 알고 있으라고.”

장난기가 살짝 섞인 행동이었지만, 비밀이라는 말이 그녀들에게는 더 신뢰를 주었던 모양이다.

“정말요?”

둘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며, 입이 헤 벌어진 것도 모르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다른 건요? 또 다른 건 없어요?”

‘왜 없겠어? 백 개라도 읊으라면 읊겠다.’

아디바의 물음에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적어도 지금은! 당사자들이 아니면 절대로 모르는 비밀 정보일 거야.”

“말해 봐요. 얼른!”

발그스레 상기된 채, 기대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들의 요구에 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굽혔던 허리를 바로 세우며, 소파에 느긋하게 기댔다.

“미안하지만, 무료 서비스는 여기까지!”

기대가 무산되자, 아디바는 황당해하는 눈으로 항의했다.

“엥?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성훈!”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지?”

“정보요?”

“응. 정보!”

그러자 나니아는 더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방금 봤잖아요? 우린 당신보다 더 아는 게 없다고요!”

한국 연예계야 그렇지만, 알리 관련은 다르잖아?

“아까 당신들, 알리 조카라고 했었지?”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한국 아이돌에 대한 정보는 성에 안…….”

‘그건 당신들 관심사고! 내게 아이돌 그룹 정보가 왜 필요해?’

그것도 시커먼 머슴애 그룹을.

“그것 말고, 알리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음……. 그건.”

“이렇게 하자고. 내 질문에 대답할 때마다 나도 당신들 질문에 대답해 주지.”

“하지만…….”

고민하는 그녀들에게 말해 주었다.

“알리의 재정 상태는 금방 드러날 거야. 신문사에서 캐고 다닐 테니까.”

그녀들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설마요?”

‘틀린 소리는 아니잖아?’

찻잔을 들어 마시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 정보는 십 년 뒤에도 확인하기 어려울 거야. 그 아이돌 당사자가 말하지 않으면……. 어쩌면 평생 말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정보의 가치는 희소성에 있다.

그게 비록 가십거리라 하더라도.

그동안 침묵하던 나니아가 아디바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디바…….”

나는 그녀들의 선택에 면죄부도 주었다.

“곤란하면 대답하지 않아도 돼. 알려줘도 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내 제안에 그녀들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갈등이 거의 끝나가는군.’

설령 내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하지 않는다 해도, 그녀들의 표정만으로도 답을 알아낼 확신이 내게는 있었다.

“음…….”

둘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이내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렇게 하도록 해요.”

정보를 거래하기 전, 그녀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알지?”

“뭘요?”

“내가 알리랑 아주, 아주 친한 친구라는 거.”

의미심장한 내 말에 그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알리. 해결할 방법은 있나요?”

더는 거론하고 싶지 않은 듯, 그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퉁명스런 한마디를 뱉었다.

“알라께서는 넘지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는다네.”

‘그건 시험을 넘긴 자들이나 하는 말이죠.’

하나의 성공담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실패가 누적되는지 아는가?

다만 눈에 띄지 않을 뿐!

잔혹하지만, 역사는 단 하나만을 기록한다.

성공담, 그중에서도 최고의 성공담을!

항상 자신만만하던 알리에게서 저런 표정을 볼 줄이야 상상이나 했으랴!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미안해요. 이런 상황이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내게 미안할 필요 없네. 겨우 그 정도에 흔들릴 거로 생각했다면, 자네 안목에 실망이야.”

그의 송충이 같은 눈썹이 일순 꿈틀거렸다.

꾹 다문 입술이 그의 의지를 대변하고 있었다.

“이런 잔바람은 사막의 모래바람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지.”

알리가 없는 압둘을 상상할 수 있을까?

‘아니! 절대 불가능하지.’

혼자가 되면 압둘을 저울에 올릴 수가 없다고!

서로 균형이 맞아야 저울질을 할 것 아닌가?

그럼 나 자신을 저울에 올릴 수밖에 없는데, 그 기준이 돈이라면 나 같은 소시민은 단 일 초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알리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말도 그에게는 상처가 될 테니까.

화제를 돌리려는 듯, 알리가 물었다.

“취직이라고 하던데, 역시 현재 건설에 들어가기로 한 건가?”

그의 질문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호응했다.

“네. 그렇게 결정했어요.”

“그때 봤던 그 친구들 때문이겠지?”

“네. 맞아요.”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장차 자네의 행보에 보탬이 될 사람들이군? 그렇지?”

나처럼 젊은 사람에게 행보라는 말이 어울리기나 하겠냐만은, 그는 익히 짐작하고 있었다는 눈빛이었다.

“열정이 있거든요.”

“그렇겠지. 어련히 쓸만한 자들을 뽑았으려고.”

그가 시트 옆의 냉장고에서 물을 따라 건넸다.

“목이 마르겠군. 물이나 한 잔 들게. 그럼 직함은 뭔가?”

“네?”

신입이 무슨 직함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국에서는 직함이 있어야 방귀라도 뀔 수 있다면서?”

“누가 그래요?”

“곽 이사가 그러던데.”

알리의 농담에 웃으며 대답했다.

“훗. 그건 맞는 말이죠.”

“자네가 현재에 봉사하려고 들어갈 그런 선한 인물은 아니질 않나? 안 그런가?”

알리가 재차 물었다.

“그러면 적어도 곽 이사, 그 사람보다는 높은 직책이겠지?”

곽 이사를 내 부하 정도라고 생각하는 알리라면 충분히 할 만한 생각이었다.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제 막 들어갔는데, 직함이 어디 있겠어요?”

알리가 얼굴을 찌푸렸다.

“설마? 뭐 과장, 부장, 팀장 그런 거 있잖아. 왜!”

그게 당연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자, 그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냥 말단이야? 정말인가?”

“원래 신입은 그래요.”

경력직이거나 특별한 경력으로 인정받지 않은 이상, 한국에서 그런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낙하산의 경우는 별개겠지만.

“엥? 원래 그런 게 어딨어? 그럼 연봉은?”

흥분하던 그가 말해 놓고도 아차 싶었던지, 말을 얼버무렸다.

“에잉! 난 적어도 자네가 나와 독대할 수 있는 직함이라도 가진 줄 알았지! 현재 건설 사장은 그렇게나 사람 보는 눈이 없나?”

“아뇨! 난 이게 맞아요.”

“왜?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큰일도 할 수 있는 거라고.”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높은 자리 아니라도, 이렇게 알리 당신과 독대하고 있잖아요.”

그가 뜨악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해댔다.

“크흠. 그렇기는 하지만, 이건 아주아주 특별한 상황이고.”

“네. 저도 그런 상황이죠.”

“자네가 그런 푸대접을 받다니! 안 되겠어. 내 건설회사로 오게! 당장에라도 팀장, 아니 그보다 더한 자리라도 주지!”

큰소리치는 그를 보며 내심 웃었다.

‘그건 안 되죠. 당신한테 일을 따가야 하는데.’

내게 있어 알리는 나를 신뢰하는 물주여야만 했다.

‘그게 내가 당신에게 부여한 포지션이에요. 압둘과 함께.’

물주가 사장이 되면?

내게 의미가 없다.

그럼 내 두 번째 삶은 치트키로 만연한 불량게임이 되어버릴 테니까.

“이 친구야. 웃기는 왜 웃어? 정말이라니까!”

“당연하죠. 당신은 허언하지 않는 사람이죠. 그리고 약속은 꼭 지키죠.”

“그래. 그게 사우디 남자지.”

그가 자신을 믿으라는 듯, 어깨를 세우며 가슴을 텅텅 쳤다.

“하지만 전 제가 가려는 길이 있어요. 옆에서 지켜봐 줘요.”

“흠흠. 그런 건가??”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리는 내게 알리는 쑥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언제든지 내가 필요하면 불러. 난 항상 이 자리에 있을 테니까.”

“알았어요.”

알리가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았다.

“압둘 그놈 말고, 나 말이야. 알리!”

압둘과는 둘도 없는 친구면서, 꼭 자신을 내세우는 알리였다.

‘이번 일로 자존심이 많이 상했나 보네.’

“알았어요.”

알리와 말하는 사이, 그의 저택에 도착했다.

“성훈. 일단 내리지. 저녁 9시에 연회를 시작하니 그동안 쉬고 있게나.”

알리는 집사에게 나를 안내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자신의 서재로 향했다.

처음 봤을 때처럼 여전히 듬직하고 믿음이 가는 등이었지만, 그때보다 발걸음이 무거워 보이는 건 단지 내 기분 탓일까?

뒤돌아 집사의 안내를 받으며 생각에 잠겼다.

‘알리. 잔바람이라고 했나요?’

작품의 시선 몰이는 내가 의도한 바였지만,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알리의 말처럼 아직은 잔바람이었다.

‘그대로 놔두면 작은 불꽃을 피우다 사라지겠지.’

그리고 재만 남은 곳에 다시 불을 피우기는 어려우리라.

‘맞바람을 부쳐주지.’

어느새 나는 객실 앞에 서 있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집사에게 물었다.

“지금 아크람은 어디 있나요?”

“아크람 집사님은 어찌 찾으시는지?”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음. 아마 궁으로 가고 계시겠지요. 지금쯤이면 거의 도착했을 겁니다.”

궁이라고 해 봐야 지척의 거리.

“아크람과 연락을 할 수 있을까요?”

“왕자님께 호출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뇨. 그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괜히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의아해하는 그에게 말을 이었다.

“아크람과 연락할 방법만 가르쳐 주세요. 알리 몰래요.”

내 부탁에 그가 물었다.

“혹여……. 왕자님의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요?”

뭔가를 감지한 눈빛이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집사가 말했다.

“손님을 번거롭게 한다면, 아크람 님께 호되게 혼이 날 것입니다. 쉬고 계시면 연락이 가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알리에게는 비밀로…….”

그의 암갈색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이를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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