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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309화 (309/427)

건축의 신 309화

취업선물(01)

리야드 공항의 VIP 라운지.

초조한 기색의 알리가 말했다.

“아크람. 괜찮대도…….”

왕궁에서 기다리라고 했음에도, 굳이 직접 맞이해야 한다며 고집을 세우는 아크람이었다.

“아닙니다. 초대한 당사자가 맞이하지 않는다니, 얼마나 손님을 무시하는 처사입니까?”

부드러운 어조였지만, 그 물음에는 알리에 대한 가벼운 책망을 담겨 있었다.

‘그렇게 VVIP라고 강조를 했건만, 오기 직전에야 알게 되시다니요!’

말하지 않아도 꾹 다문 입술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알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도착 열 시간 전에 연락을 한 녀석이라고요. 아크람.”

어쩔 수 없지 않냐는 항변이었다.

아크람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해합니다. 그런데 주한 대사도 다음 비행기로 오는 중이라고요?”

알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라고 했어.”

고도의 계산이 깔린 대사 호출이었다.

‘아크람의 잔소리도 반으로 분산될 터!’

“그럼 왕자님을 뵙고, 돌아가기 전에 저를 만나라 말씀 전해 주십시오.”

알리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작전은 성공했군.’

“알았어요. 아크람.”

경호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전하, 비행기가 착륙했다고 합니다.”

알리가 아크람의 허리를 받치며 일어섰다.

“이제 나가 보자고요.”

“네. 왕자님.”

알리의 이마에 긴장으로 얼룩졌다.

게이트로 걸어가며, 아크람이 말했다.

“성훈 님의 대접에 온 힘을 쏟아 주십시오.”

“편하게 해도 괜찮아. 내가 성훈은 잘 안다고.”

알리의 심드렁한 대꾸에도 아크람은 진지했다.

“왕자님. 그분은 과거의 일로도 VVIP 시지만, 이번 방문으로 인해…….”

“알고 있대도 자꾸 그러네.”

“왕자님.”

나란히 걷던 아크람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 들어 알리와 눈을 맞췄다.

알리가 흠칫하며 물었다.

“응? 왜?”

“이번에 리야드 호텔의 예약 취소 건이 많았다지요?”

알리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아크람이 그걸 어떻게…….”

범인은 명백했다.

‘집사! 내 이놈을…….’

하지만 실질적인 징계는 어려울 것이다.

그다음 집사 또한 마찬가지일 테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누가 아크람의 눈길을 피하겠냐만 서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곧 회복될 거야. 아크람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물론!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무던한 알리라고 눈치가 없으랴?

‘그럼 그 걱정스러운 눈빛을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요!’

아크람의 심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왕위 계승이 확고해지는 마당에 다른 변수를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왕이 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리에 적합한 인물이 왕좌에 앉느냐 하는 것일 테니.

그 주름으로 덮인 눈이 말하고 있었다.

‘잠깐의 실수로 당신과 형제들의 왕좌 다툼을 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알리가 말했다.

“걱정 마! 아크람. 어떻게든 할 테니까.”

아크람이 걸음을 내디뎠다.

“오! 이미 해결책을 생각해 내신 겁니까?”

그 질문에 알리는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직은.”

아크람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로열 쿠웨이트’의 호황 원인이 저번에 보았던 건축 모형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응. 일단은 그것 말고는…….”

“그럼 해결책은 성훈 님께 있겠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아크람이 옛 격언을 읊었다.

“옛말에 이르기를, ‘문제가 있는 곳에는 대책도 같이 있다’고 했습니다.”

알리의 눈이 빛났다.

“그래? 확실히 성훈이 해결할 수 있을까?”

아크람이 고개를 저었다.

“알라께서만 아시겠지요. 다만 일의 발단인 성훈 님이시라면, 대응하는 방법 또한 생각해 내시지 않을까? 추측할 따름이지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아크람.”

한껏 기대했던 알리가 그를 타박했다.

아리송한 답보다 더 얄미운 게 있던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지!’

“왕자님께서 하실 일은 한 가지이십니다.”

“…….”

“성훈 님께 다른 방법을 달라고 말씀하시는 것.”

알리의 두툼한 입술이 툭 튀어나왔다.

“집사는 지금 나보고 성훈에게 억지를 부리라는 거야? 채신머리없이?”

“해결책이 있으십니까?”

알리의 송충이 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리고 그 녀석이라고 마땅한 방법이 있겠어?”

디자인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지만, 호텔 경영에 대해서 성훈이 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부정적인 투로 말을 이었다.

“100층짜리 호텔이라고. 100층.”

투덜대는 알리를 보며, 아크람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살아있을 동안은 두 번 다시 왕자님들 간의 다툼을 보고 싶지 않군요. 휴.”

아버지인 국왕보다 더 친근한 사람이었다.

그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수는 없었다.

알리는 기세를 꺾었다.

“알았어. 부탁은 한번 해 볼게.”

“잘 생각하셨습니다. 왕자님.”

게이트에 도착했지만, 아직 열리지는 않았다.

비행기가 자리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생각난 듯, 아크람이 다급히 말했다.

“참! 그리고 저녁 만찬에는 압둘 왕자님을 초대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말에 알리가 미간을 좁혔다.

‘잘 나가다가 왜 삐딱선이야!’

하지만 침 한번 꿀꺽 삼키고, 차분히 말했다.

“녀석을 왜?”

생각만 해도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친우가 아니십니까?”

“친구는 무슨! 그런 놈은 친구도 아니야!”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뭔데?”

“성훈 님께서는 이 일정이 끝나고 쿠웨이트로 가신다고 하지 않으셨는지요?

“그래! 가서 보면 되는걸, 왜 굳이 불러서 그 녀석의 잘난 체하는 꼴을 봐야 하느냐고.”

아크람이 빙긋이 웃었다.

“왕자님께서는 압둘 왕자님께 불만이 많으신가 봅니다.”

“당연하잖아. 여우 같은 녀석. 어제 아침에 전화가 와서는……. 어휴!”

생각만으로도 열불이 치미는 듯, 알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럴 때일수록 너그러운 모습을 보이셔야지요.”

“킁! 그런 놈에게 무슨…….”

말없이 코웃음 치는 알리를 보며 아크람이 미소 지었다.

‘굳이 말하자면 애증의 동반자지요.’

알리와 압둘!

어린 시절부터 친구(親舊)로 같은 대학에서 공부했고,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시에도 압둘의 가장 큰 의지처는 알리였다.

치고받으며 큰다고 했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를 인식했고, 상대를 이기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지금의 자리에 서 있는 거였다.

알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기둥으로!

압둘은 쿠웨이트의 대들보로!

그들의 성장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 바로 아크람이었다.

‘압둘 왕자가 있었기에, 지금의 당신이 있는 겁니다.’

허나 실리적인 이유가 없다면, 알리 왕자가 고집을 굽힐 리가 없었다.

“리야드 호텔의 하루 손해가 얼마입니까?”

“아! 그 얘기는 또 왜!”

알리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오늘따라 왜 이리 잔소리가 심해.’

“성훈님께서 빨리 돌아가시는 만큼, 호텔의 적자가 줄어들 겁니다.”

이미 성훈에게서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 확신하는 아크람이었다.

“며칠 늦는다고 나 안 망해!”

알리가 고집을 부렸지만, 아크람은 조용히 달랬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성훈 님께서 쿠웨이트로 가면 며칠 만에 돌아가실 수 있을까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압둘 왕자님이 쿠웨이트 국왕께 어떻게 소개할지 저는 머리에 훤히 그려집니다만.”

“친구라고 소개하겠지.”

얼마 전에도 녀석이 은근히 자랑하지 않았던가?

‘성훈의 저 시계 보여? 내 친구라는 증표야!’

압둘은 자랑하듯이 자신의 눈앞에 제 팔목을 흔들어 댔었다.

아크람이 빙긋 웃었다.

“아마 영민하신 압둘 왕자님께서는 제 이름도 팔겠지요. 저, 아크람이 인정한 귀빈이라고요.”

“으, 응. 그렇겠지.”

뭔가 단순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감이 온 알 리가 쉴 새 없이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적어도 중동에서 아크람을 무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의 초대를 받은 귀빈도.

‘그럼 국왕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끄응. 아크람의 이름에는 그 정도 영향력이 있지.”

“저 같은 게 무슨 영향력이 있겠습니까? 다만 쿠웨이트 국왕께서 시선 한 번쯤 주실 이유는 되겠지요.”

“끄응. 그래서?”

“과연 쿠웨이트 국왕께서 성훈 님의 뛰어난 점을 못 알아보실까요?”

“그럴 리가 없잖…….”

국왕이 눈이 멀지 않을 이상, 당연히 성훈의 뛰어난 점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아니 눈이 멀어도 알 수 있을걸? 압둘, 그 녀석이 옆에서 조잘대며 친구 자랑을 해댈 테니’

“왕자님께서는 성훈 님을 사이에 두고, 압둘 왕자와는 비교도 안 되는, 쿠웨이트 국왕과 경쟁을 하셔야 합니다.”

“…….”

“이길 자신 있으십니까?”

“그건…….”

“그분은 강대국이었던 이라크의 침공을 받고도 여전히 건재하신 분이시죠.”

말이야 곱게 했지만, 요약하면 이 말이 아니던가?

‘호랑이 앞의 하룻강아지.’

“아직도 압둘 왕자께서는 그분 앞에서만 서면 오금이 저리다고 하더이다.”

알리라고 그와 다르랴!

조곤조곤한 아크람의 말에 알리는 한 마디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압둘 왕자님을 만찬에 초대하려 합니다.”

아크람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왕자님?”

알리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래. 초대해.”

“너그러운 모습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왕국의 장래는 왕자님 어깨에 있사옵니다.”

알리가 헛기침했다.

“험험. 저기 성훈이 나오는 것 같은데.”

***

‘아크람이 나와 있을 줄이야.’

지팡이를 짚은 그의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크람.”

그는 미소 지으며 다가와 내 등을 감싸 안았다.

“아닙니다. 성훈 님. 저야말로. 이제야 이 늙은이가 관에 들어가서도 눈을 감겠군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 옆의 알리도 포옹하며 물었다.

“성훈. 오는 길에 불편한 점은 없었나?”

“에이. 불편함이라뇨. 저기서 나오기 싫던 걸요.”

너스레를 떨자, 알리가 등을 치며 기꺼워했다.

“우리 아크람의 소원을 들어줘서 고마워.”

알리가 손을 이끌며 말을 이었다.

“그럼 우리는 이쪽으로 먼저…….”

“왜요?”

알리가 말없이 눈짓했다.

슬쩍 쳐다보니, 꼬장꼬장 허리를 편 아크람이 알라위를 포함한 둘과 대치하고 있었다.

한 마디 꾸중도 없음에도, 그는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눈동자만 데굴거리고 있었다.

“아크람이 왜 저러시는 거예요.”

그쪽으로 몸을 돌리자, 알리가 내 소매를 붙들었다.

“저건 아크람의 일일세. 신경 쓰지 말게.”

“그래도 저분들 때문에 편하게 왔는데.”

“저러다가 말아! 아크람은 평민들에게는 굉장히 관대하거든.”

“그래요.”

미심쩍은 눈으로 보자, 알리가 화제를 바꿨다.

“참! 쿠웨이트 안 가도 된다네!”

“네? 왜요?”

“그게 말이야. 자네가 두 나라를 다 가려면 번거로울 것 아닌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미안한데, 더 고생을 시킬 수야 없지.”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사실상 쿠웨이트 방문은 나한테도 부담이거든.’

압둘이야 문제가 안 되지만, 그의 아버지인 국왕을 만나는 것이 마냥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압둘보다 몇 배는 여우라고 들었는데! 만에 하나라도 잘못 엮이면, 둘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한다고!’

두 왕자를 양쪽에 두고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라, 두 왕 사이에 끼어 갈가리 찢어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은 없는 게 낫다고!

그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계산했다.

‘아직은 그 둘을 상대할 위치가 아니야.’

나중에 필요한 시점이 오면, 그때는 부르지 않아도 찾아갈 거다.

적어도 내가 국왕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역량을 가졌을 때!

자신 없으면?

알리나 압둘, 얘네 둘이 왕관 쓸 때까지 기다리지 뭐!

이제 본론을 꺼내야 할 시간이었다.

“알리. 비행기에 타고 오면서 들었는데…….”

“흥. 압둘 녀석이 잘 되는 것?”

“아뇨. 당신 호텔에 파리 날리는 거.”

알리가 얼굴을 붉히며,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대체 소문이 어디까지 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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