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307화 (307/427)

건축의 신 307화

첫 번째 일거리(03)

사장이 말했다.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까, 그렇게들 알고 나가 봐!”

최 팀장은 인사를 하고 일어섰지만, 곽 이사는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

“뭔가? 아직도 자네 팀에 달라고 떼를 쓰고 싶은 건가?”

한번 말한 것은 웬만해서는 번복하지 않는 사장이었다.

“아닙니다.”

“그럼 뭔가?”

곽 이사가 다시 자리로 앉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성훈 군이 그냥 갔습니까?”

뜬금없는 그의 물음에 사장이 눈매를 좁혔다.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곽 이사는 사장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이것만은 확인하고 싶었다.

“혹시 성훈 군이 조건 같은 걸 걸지 않았는지 여쭤 보는 겁니다.”

사장이 순간적으로 미간을 좁혔다.

‘이것까지는 예상하고 있을 줄이야!’하는 눈치!

‘역시! 내 예측이 맞았군.’

척하면 척이지, 그냥 간다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되지?

사장은 그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입매를 비틀었다.

“역시 곽 이사! 자네는 성훈이를 잘 아는군.”

곽 이사는 속내를 감추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알아온 세월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 외에는 아무도 들을 사람은 없었지만, 사장은 크게 헛기침을 했다.

“험험! 여기서부터는 들어도 못 들은 거야.”

‘무슨 말을 하려고?’

지금부터 성훈과 사장, 그 둘만의 대화가 나올 터!

곽 이사는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럼 그렇지. 성훈 님이 어떤 분이신데, 회사 좋은 일만 시키겠어?’

그가 아는 성훈은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는 인물이었다.

사장이 나직하게 말했다.

“간단하게 말하지.”

“네. 말씀하십시오.”

“일을 따오게 되면, 그 총수익의 15%를 달라고 하더군.”

“네? 15%를 말입니까? 순수익도 아니고?”

곽 이사는 억! 소리가 날 정도로 놀랬지만, 성훈을 떠올리자 이내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정도는 질렀겠지. 배포가 보통이 아니니까.’

좀 전의 상황이 떠오르는지, 사장이 피식 웃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느냐고 물으니, 오히려 이렇게 반문하더라고.”

곽 이사와 달리, 최 팀장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게 일개 개인이 할 수 있는 말이야?’

마른 침을 삼키며, 사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자기가 회사만 차리지 않았다 뿐이지, 시행사나 다를 게 뭐 있냐고 말이야.”

말은 바른 말이다.

일을 따내고 분양까지의 과정을 총괄하는 것이 시행사라면, 공사를 담당하는 것이 시공사이다.

그 과정에서 시행사는 입찰 과정을 통해, 시공사를 선정하게 된다.

사장이라고 할 말이 없었으랴!

“내가 물었지. 시행사가 얼마나 하는 일이 많은데, 그걸 다 하려고 하느냐고.”

둘이서 얼마나 줄다리기를 했을까?

“그러니까 녀석이 피식 웃더라고. ‘그러니까 입찰 과정 없이 바로 현재로 넘기는 거 아닙니까?’ 경쟁자가 없으니까, 현재는 더 좋은 단가를 받을 수 있지 않겠냐고 하더구만.”

“끙!”

곽 이사가 저도 모르게 신음성을 뱉었다.

‘대놓고 브로커 비를 달라고 했군!’

일한 만큼 대가를 받아내는 성훈이었으니, 예측하기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사내에 소문이 퍼졌을 때는 그 여파가 만만치 않으리라.

그러니 사장도 말을 아끼는 것일 테고 말이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많더라고. 어린 녀석이.”

“그래서 해 준다고 하셨습니까?”

“내가 미쳤어?”

“아!”

“녀석의 속내가 뻔한데! 일 따오고 나서는 무슨 핑계를 대든, 분양까지 우리 회사에 떠넘길 게 훤히 보이는데!”

곽 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분명히 그럴 겁니다.”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기 싫어서 넘기는 것일 터!

가만히 듣던 팀장이 감탄사를 토하며 말했다.

“김성훈, 이 친구! 대단하네요. 공사 단가가 십억이면, 일억오천인데…….”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걸 앉은 자리에서 먹겠다는 거지.”

하지만 곽 이사는 생각이 달랐다.

‘이 친구야. 왜 10억이라고 생각을 해?’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금액대 이상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을 터!

하지만 어떻게든 결론이 났으니, 성훈이 사우디로 갔을 것이다.

곽 이사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결론이 나신 겁니까?”

“아무리 시행사라고 해도, 우리가 다 주도를 하게 되는데 15%는 터무니없는 금액이지.”

“네. 맞습니다.”

“그래서 5%를 하자고 하니까, 그건 자기가 너무 남는 게 없다고 하기 싫다고 하더군.”

최 팀장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눈치였다.

“이사님. 그래도 오천이면 큰돈이지 않습니까?”

그 말에 사장이 답했다.

“왔다 갔다 비행기 값이며, 경비만 천만 원이 넘는데, 노력 대비 남는 게 없다고 하더군.”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기는 하군요. 그래도 큰돈인데…….”

“그래서 타협안을 짰지.”

둘의 시선이 동시에 사장에게로 향했다.

“10%로 결정 봤어.”

최 팀장이 탄성을 내질렀다.

“캬! 이거 한 건만 잘하면, 부장 월급은 뛰어넘겠는데요. 하하하.”

사장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게 말이야! 젊은이가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곽 이사가 답답한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그러니까 사장님! 왜 그게 꼭 십억이라 단정하시냐는 말입니다!’

사장과 팀장은 딱 그 나이 또래의 청년이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하고 있었다.

‘햐! 이게 어떻게 스물여섯이냐고!’

나름 약삭빠르게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이사의 자리에, 이제 곧 전무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 그도 이 나이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충분히 성공가도를 달려왔음에도 말이다.

그저 일에 치여 필사적으로 살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건! 레벨이 다르잖아.’

자기 팀에 들였으면, 두고두고 꿀을 빠는 건데, 아쉬움을 달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기회는 또 오는 법! 다음에 잘 해야지.’

최 팀장이 물었다.

“정말…… 주실 생각이십니까?”

그의 물음에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줘야지. 취직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끽해야 일이십억짜리겠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야?”

최 팀장이 사장의 말에 호응했다.

“네. 그렇겠지요. 그래도 패기가 대단합니다.”

“그래. 나도 그 점을 높이 사고 있다네.”

곽 이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만약에 백억짜리를 따오면 어떻게 하실…….”

사장은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어허! 곽 이사, 자네까지 왜 이래? 사우디에 아는 사람이 좀 있나 본데, 영업이 인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잖아.”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켰다.

사장이 문득 생각난 듯, 곽 이사에게 물었다.

“참! 자네 생각은 어때? 성훈 군이 사우디에 그렇게 인맥이 많아? 성훈 군이랑 친분이 있잖아.”

곽 이사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인맥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그런 말을 했지? 근거 없이 빈말하는 친구는 아니었는데.”

사장이 의문을 제기했지만, 곽 이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많지는 않은데……. 그 하나가 어지간한 인맥 백 명보다 훠얼씬 낫다는 게 문제지요.’

알리 왕자가 성훈이라면 껌뻑 죽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용의주도한 사람인데.’

또한 그런 고급 정보는 그건 아는 사람이 적을 때,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 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거라고.’

불여우 황 전무는 성훈의 정체를 알면, 자신부터 밀어내고 성훈의 옆자리를 차지할 사람이었다.

곽 이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사장님 말씀처럼 일이십억 때문에 움직일 분이 아니시라고!’

곽 이사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알리 왕자가 일이 십억짜리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잖아.’

하다못해, 그의 호텔 한 개 층의 인테리어 공사만 따와도 십억이 넘을 터!

‘어떻게든 성훈 님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야!’

입술을 깨물며 각오를 다졌다.

‘성훈 님께서 돌아오시면, 회사에 지각변동이 생길걸.’

그때를 대비해야 했다.

이번 일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몰라도, 마무리되었을 때의 성훈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위상을 가질 것이다.

‘어중이떠중이가 다 들러붙지 못하도록 대비를 단단히 해야겠어.’

***

중동에 가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다.

편의점을 지나가는데, 눈에 익은 모형 사진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한국의 전통 건축, 쿠웨이트를 장악하다!>

가판대에 있는 신문을 집어 들었다.

‘역시 압둘! 행동력 하나는 끝내주는군.’

어쩐지 서두른다 했더니, 벌써 그의 호텔 로비에 전시를 마친 모양이었다.

그 자극적인 제목 아래로 쿠웨이트의 6성 호텔 ‘로얄 쿠웨이트’의 투숙 예약객이 어제에 비해 3배나 늘었다는 기사가 달려 있었다.

성훈이 신문을 보며, 피식 웃음 지었다.

‘압둘이 대대적으로 광고를 때렸나 보군.’

아니나 다를까?

외국 신문들도 그 기사로 첫 번째 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돈을 뿌리지 않고서야, 이토록 여러 신문들에서 한결같이 동일한 내용을 담을 수 있을까?

‘역시! 압둘을 선택한 것이 옳은 판단이었어.’

성훈은 그의 발 빠른 대처에 혀를 내둘렀다.

한편, 모형을 구매하지 못해 아쉬워하던 알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쯤 잔뜩 골이 나 있겠군.’

압둘이 내 작품을 이런 식으로 써먹을 줄, 알리가 상상이나 했을까?

성훈이 매표소로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내 작품으로 이런 성과를 거둔다는 건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지만, 둘 사이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겠는데?”

둘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경쟁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압둘 쪽으로 저울추가 많이 기울어진 상황이었다.

“둘이 비슷해야 한다고. 이래서는 안 되지.”

지금은 균형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알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리. 잘 도착하셨어요?”

-그래. 신경 써 줘서 고마우이. 덕분에 잘 도착했다네.

몇 가지 형식적인 안부 말이 오가던 중 알리가 물었다.

-궁금한 점이 하나 있네. 성훈.

“말씀하세요. 알리.”

-원래는 자네의 결정을 듣자마자 물었어야 했지만, 자존심이 상해서 하지 못했던 말이네.

그는 잠시 망설이다 힘겹게 말을 이었다.

-왜 압둘을 선택한 건가? 내가 백만 달러나 더 제시했음에도 말이야.

흥분을 잘하는 그답지 않게, 차분한 물음이었다.

“저는 제 작품이 더 많은 사람의 눈에 띄기를 원했습니다. 돈은 그다음 문제죠.”

그 당시, 알리는 사우디 왕립 도서관에 보관하겠다 했고, 압둘은 자기 소유의 호텔 중앙 로비에 전시해 둘 거라는 말을 했었다.

-음. 그랬다면 압둘이 선택되는 것이 당연한 거였군. 내가 자네에게 뭔가 섭섭하게 한 게 있는지 오해를 하고 있었다네.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가? 그럼 되었어. 자네 생각을 먼저 읽었어야 했는데……. 돈으로 밀어붙이려고 했던 내 실책이었군.

“갑작스러운 제안이라서, 충분히 제 의도를 전하지 못한 제 잘못도 큽니다.

-아닐세. 이미 지나간 바람 붙잡아서 뭐하겠나? 다만 부탁 하나만 하고 싶네.

“말씀하세요.”

-다음에 또 이런 경우가 생긴다면…….

그의 말에는 자금력으로 앞섰음에도, 바라던 일을 성사시키지 못한 아쉬운 마음이 묻어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그로서는 하기 어려운 말.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성훈이 말했다.

“제가 생각이 짧아 알리에게 심려를 끼쳤습니다. 사과라고 하기는 뭐 하지만, 다음 일은 당신께 먼저 제안을 하겠습니다.”

-하! 그래 주겠나? 고마우이.

알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 생각난 게 하나 있는데.”

-그래? 뭔가?

알리의 목소리가 한층 가깝게 느껴졌다.

성훈이 말했다.

“자세한 건 이따 만나서 얘기하시죠?”

-응? 이따 만나자니 무슨 말이야?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 알리가 물었다.

“취직을 하게 됐거든요.”

-취직? 그거랑 약속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지금이 아니면 아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취직을 하면 개인적인 사정으로 짬을 내기가 쉽지 않거든요.”

-아, 아니. 잠깐! 그럼 지금 온다는 말이야?

미처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네. 집사님도 만날 겸, 일 이야기도 할 겸요.”

-음…….

“곤란한가요?”

-그런 건 아니지만. 의전도 준비해야 하고…….

“음……. 그럼 쿠웨이트를 먼저 들르죠.”

알리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그 녀석은 또 왜?

“나중에 알리와 똑같은 원망을 듣기 싫거든요.”

-나한테 먼저 제안한다 하지 않았던가?

“네! 맞습니다. 동시에 제안한다 하더라도, 왕자님께 우선권을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방금 거부하시기 전까지는.”

-어허이! 이 사람. 성격 급하기는! 누가 거부한다고 했나? 당장 오게나! 열렬히 환영한다네.

“흠. 그럼 압둘은 다음 코스로 잡아야겠군요.”

-킁! 쿠웨이트를 가겠다고?

알리의 콧김 뿜는 소리가 들렸다.

“네. 그의 의견도 들어봐야 할 테니까요.”

-그 의견 내가 물어봐 주지.

“그래도 일국의 왕자인데, 제가 직접…….”

-일단 이쪽에 먼저 오라고. 나머지는 그 뒤에 생각하도록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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