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306화 (306/427)

건축의 신 306화

첫 번째 일거리(02)

곽 이사는 다급히 비서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장님 계시나?”

“네. 지금 면담 중이신데요?”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미친개와 양 이사는 전화를 했다고 했으렷다?’

그렇다면 지금 본사에 없다는 말이었다.

대놓고 찾아갈 인간들이지, 답답하게 전화통 붙들고 있을 놈들이 아니거든!

‘그럼…….’

“혹시 디자인 최 팀장인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더는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언제 들어간 건가?”

“방금…….”

그렇다면 아직 용건을 말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장은 그의 말을 듣기 전에 디자인팀의 동향부터 물을 테니까.

디자인 팀장이 개별적으로 사장을 찾는 경우가 그리 흔하던가?

‘당연히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직접적으로 묻는 것이 아니라, 안부를 묻는 척 두루두루 물어보며 문제를 파악할 것이다.

‘내가 거기 한두 번 당했어?’

곽 이사가 다급히 말했다.

“사장님께 연결해 주게.”

“하지만…….”

“박 팀장하고 같은 용건이야. 괜히 아까운 시간 버리시게 하지 말고, 얼른 의견이나 여쭤 봐!”

이미 다 알고 왔다는데, 무슨 반박을 할 것인가?

그녀가 조용히 수화기를 들었다.

사장실로 들어서니, 디자인 팀장이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곽 이사님께서 여기는 어쩐 일로…….”

곽 이사의 광대가 씰룩거렸지만,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사장님. 곽 이삽니다.”

“그래. 여기 앉게나. 같은 용건으로 왔다고? 뭐기에 같은 용건이라는 거야?”

같은 용건이라는 말에 최 팀장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설마!’

그걸 본 곽 이사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아직 이야기도 꺼내지 못했다는 거네. 흐흐흐.’

팀장의 반응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건 먼저 집는 놈이 임자거든.’

사장이 자리를 권하며 물었다.

“허허. 그래. 무슨 용건이기에 그래? 둘이 의견이 겹칠 때가 있다니. 신기하군.”

최 팀장이 서둘러 말을 꺼냈다.

“사장님. 그게…….”

“최 팀장!”

곽 이사가 인상을 굳히며 말을 잘랐다.

팀장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내가 자그마치 2년 동안 공들인 사람이야.”

“네? 하지만 이사님.”

곽 이사가 같잖다는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께서 결정하실 일이지. 우리가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둘의 날카로운 신경전을 지켜보던 사장이 말했다.

“흠. 심각한 문제인가?”

비스듬히 둘을 바라보다 말했다.

“곽 이사가 먼저 말해 보게.”

그는 최 팀장을 보며,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장이 턱짓했다.

‘뭔데?’

“성훈 군! 저한테 주십시오.”

선수를 빼앗긴 최 팀장이 항변했다.

“어! 곽 이사님. 저번에 같이 보셨잖습니까? 그 친구는 디자인 팀에 와야 한단 말입니다.”

“왜?”

“그 재능을 그렇게 썩히는 건 죄악이란 말입니다. 우리 팀 수준이 대번 높아질 텐데.”

곽 이사가 비릿하게 웃었다.

“혹여나 실적 때문이라면 관두는 게 좋아.”

최 팀장이 말없이 묘한 눈빛을 건넸다.

‘근거가 뭐냐는 거겠지?’

그럴 수밖에 없지. 그런 괴물을…….

“내 확신하고 말하는데……. 그 실적, 절대로 자네 실적 안 돼!”

“그게 무슨 말씀…….”

“성훈 군이 들어가면, 자네는 자리 걱정부터 해야 돼!”

“허 참! 이사님도 제가 짬밥이 얼만데…….”

어이없다는 웃음으로 곽 이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곽 이사는 그걸 끝으로 말을 멈췄다.

그저 묵묵히 그의 눈빛을 받을 뿐이었다.

“하하하. 사장님.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물으려 했지만, 사장은 그저 눈길을 피할 뿐이었다.

“사, 사장님.”

사장이 차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자네가 하려는 말이 성훈 군 문제였다면……. 접게.”

“…….”

“녀석이 가고 싶어 하면 몰라도.”

“그럼. 곽 이사 말씀이…….”

조용히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곽 이사 말 틀린 거 하나 없어. 그놈 가면 자네 팀 물갈이해야 돼.”

“그럼 어디가 적당하다고 보십니까?”

흥분한 최 팀장의 말에 곽 이사가 치고 들었다.

“당연히 설계팀, 그중에서도 현장이지! 그림 잘 그리는 건 나도 그때 처음 봐서 말을 못했지만, 성훈 군은 천상 현장 체질이야. 그렇지 않습니까? 사장님.”

사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말도 틀린 건 아니지만, 굳이 따지면……. 만능이 아닐까?”

곽 이사가 쾌재를 불렀다.

‘최 이사, 그 인간은 성훈 님이라면 치를 떨면서 싫어하지! 그럼 남은 곳은……. 흐흐흐.’

곽 이사는 확신했다.

“그러니까 사장님! 성훈 군은 반드시!”

사장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이 정도 각오는 있어야, 성훈 님을 얻는 거지.’

계속 보좌하면서 회사 내에 입지를 넓혀 가면 되는 거다.

종내에 승리하는 자는 그 누구도 아닌, 나 곽순일이 될 거라는 말이지!

전무가 아니라 부사장이 되는 날도 머지않았다.

짜릿한 황홀감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그러니까 저희 팀에 주셔야 합니다.”

확신의 말에 최 팀장이 고개를 푹 숙였다.

곽 이사는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사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사장이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곽 이사.”

“네!”

“그런데 말이야.”

“네! 말씀하십시오.”

말을 아끼며 뜸을 들이던 사장이 말했다.

“이미 늦었네.”

곽 이사의 눈이 번뜩 뜨였다.

“그, 그럼 최 이사 그 인간이!”

전혀 생각지도 않은 놈에게 뒤통수를 맞다니!

이빨이 으드득 갈렸다.

‘개 쌍노무 자식! 배알도 없나?’

하지만 아직은 기회가 있었다.

사장이 마음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최 이사, 그놈은 안 됩니다. 그 인간이 얼마나 성훈 군을 싫어하는지 잘 아실 것 아닙니까? 그 미친개 같은 놈이 우리 성훈 군을 얼마나 고생시키겠습니까? 이건 말도 안 되는 인사입니다.”

속사포처럼 뱉어내는 곽 이사의 말을 최 팀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말씀들을 하시는 거야? 최 이사가 성훈 군을 왜?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기에?’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끼어들 수는 없었다.

상관들의 대화가 아닌가?

그저 냉가슴 앓듯 끙끙 앓을 뿐이었다.

‘대화를 듣다 보면 알 수 있겠지.’

‘이거 나, 멋도 모르고 너무 거물을 건드린 것 아니야?’

곽 이사의 말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었다.

“서 전무 라인을 아작을 내놨는데, 그 인간들이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그러니까 저희 팀에 주셔야 합니다.”

곰곰이 듣던 사장이 입을 열었다.

“자네 말도 일리는 있어.”

그리고는 말없이 차를 들이켰다.

사장이 입을 연 것은 3분 정도가 지난 후였다.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군.”

조용히 경정하는 부하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은 자네들이 오기 십 분 전에 성훈 군이 이미 여기를 왔다 갔다네.”

“네?”

곽 이사의 머리가 띵해졌다.

‘역시! 인사팀장으로 안 될 것 같으니까, 사장님께 단독으로 요청하러 왔던 거군.’

성훈의 행동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어차피 최종 인사 결정권자는 사장이니까.

허나!

설계 2팀으로 오기로 했다면, ‘늦었다’라는 말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이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혹시 양 이사가 고새?’

최 이사 쪽으로는 머리에 총 맞지 않은 이상 가지를 않았을 테니까.

“그럼 어느 쪽으로 간다고…….”

좋지 않은 예감에 곽 이사는 말끝을 흐렸다.

사장이 아까 일을 떠올리는지, 피식 웃었다.

곽 이사도 사장과 눈을 맞추며 피식 웃었다.

‘사장님! 제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닙니다.’

남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데……. 젠장!

사장도 그가 기다리는 것을 눈치챘다.

“아! 곽 이사. 미안허이.”

“아닙니다. 사장님.”

가능한 한 최고의 미소를 지으며, 눈으로 사장을 재촉했다.

“성훈이, 그 친구, 진짜 맹랑하더라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기 팀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

“네? 자기 팀을요?”

곽 이사가 눈을 번쩍 떴다.

최 팀장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허! 여기가 애들 놀이터라고 착각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천재라도 그건 좀 과한 요구라 생각됩니다.”

곽 이사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는지?”

“당연히 안 된다고 했지.”

곽 이사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휴.’

성훈이 다른 팀에 간다고 해도, 할 말은 없었다.

기회를 줬는데, 잡지 못한 것은 곽 이사 자신이었으니까.

그사이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는지 몰라도, 확실한 건 자신의 팀을 꾸려고 한다는 거였다.

‘확실한 건. 그렇게 되면 옆에서 단물 빨기는 다 틀렸다는 거지.’

사장이 최 팀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는 자네 말처럼 애들 놀이터가 아니잖아.”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최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곽 이사는 어리둥절해졌다.

‘이상하잖아. 성훈 님이 안 된다고 해서 그냥 곱게 물러날 분이 아닌데.’

그의 궁금증을 최 팀장이 대신 풀어주었다.

“실망이 컸겠군요? 아직 사회생활을 많이 해 보지 않아서 그런 걸 겁니다. 이해하고 넘어가시지요.”

도를 넘어서는 행동은 싫었지만, 그래도 최 팀장은 성훈을 감싸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곽 이사는 팀장을 옆 눈으로 흘기며 코웃음 쳤다.

‘이 친구가, 성훈 님을 전혀 모르네. 가란다고 네 하고 갈 사람 같았으면…….’

내가 이렇게 목을 매지도 않는다고.

사장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역시나!’

곽 이사는 그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안 된다고 하니, 녀석이 제안을 하나 하더라고.”

궁금해진 둘이 사장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말이 나올지 기대하는 표정.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다 오겠다고 하더군.”

모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뭘 모르는 신입이라고 해도, 상관의 명령도 없이 어디를 간다는 말인가?

“하하하.”

그런 일은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최 팀장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고, 곽 이사의 얼굴은 돌처럼 굳었다.

“어차피 대기발령 아니냐고. 할 일도 없는데, 회사에는 뭐 하러 있냐고. 허 참!”

“…….”

“그러니까 마땅히 할 말이 없더라고. 허허허.”

사장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곽 이사는 진지했다.

‘그거랑 팀이랑 무슨 상관이 있기에.’

“그래서 성훈 군이 어떤 제안을…….”

사장이 말했다.

“가서 일 하나 따올 테니, 팀 만들어 줄 수 있겠냐고 묻더군.”

곽 이사는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어이쿠! 벌써 구체적인 방법까지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야? 이러다가 완전 찬밥 되겠는데?’

그동안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한 번의 사소한 실수로 한직으로 밀려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쓰라려 왔다.

‘옆에 붙어만 있어도 부사장 자리까지는 무조건 올라가는데.’

마른입을 축이며, 사장에게 물었다.

“그,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영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해 줬지.”

“어떤……?”

“자네가 작년에 따온 알리의 호텔, 그거 딴다고 5년 동안 공을 들였잖아.”

곽 이사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성훈을 설계에 끼우기로 하고, 알리에게 계약을 따냈던 건이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최 팀장도 거들었다.

“아! 작년에 이슈였던 그 건, 말씀이시죠?”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응. 곽 이사, 아니 우리 현재 내에서 단일 실적으로는 역대 최고였지, 아마? 덕분에 자네를 전무를 승진시켜줄 명분도 생겼고 말이야.”

곽 이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니까 성훈 군이 뭐라고 했습니까?”

“힘든 건 알지만, 해 보겠다고 하더군.”

“아. 네…….”

“어떻게든 만들어 올 테니, 그에 맞는 팀을 짜달라고 하더라고.”

곽 이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좋잖아. 패기도 있고! 하지만 그렇게 쉽겠어? 실패도 하면서 인생 배우는 거지.”

“그럼 혹시…….”

“그래. 해 보라고 했어.”

최 팀장이 놀라서 목소리를 높였다.

“네?”

곽 이사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진정이십니까?”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성훈이, 그 친구는 내가 계속 데리고 쓸 사람이야. 실패의 경험도 나쁘지 않다고 봐!”

“혹시……. 만에 하나라도 일을 따오면 어쩌시려고.”

곽 이사의 말에 사장이 피식 웃었다.

“기껏해야 일이십억짜리 따오겠지.”

“아니……. 그게 아니라.”

사장은 곽 이사의 염려를 귀 등으로 흘렸다.

“그걸로 현장 경험이라도 하라고 내버려두지. 뭐. 그걸로 우리 회사에 정붙여도 좋고.”

되면 좋고, 그만 안 된다고 해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장이었다.

그래서 곽 이사는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만약에 말입니다. 수백억짜리를 따오면 어떡하실 겁니까? 그때도 팀을…….”

사장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곽 이사. 자네는 성훈 군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그 친구 능력은 알지만, 그건 현장과 그림에 관해서야. 영업은 다르지. 암!”

“그래도 만약…….”

같은 물음의 반복에 짜증이 났을까?

가만히 생각하던 사장이 인상을 굳혔다.

“어쩌긴 뭘 어째! 약속인데 만들어 줘야지.”

“아, 네…….”

이내 굳은 인상으로 으르렁거렸다.

“그러고 나서! 영업이사들부터 몽땅 잘라버려야지. 그런 애도 따오는 일을 못 하는 무능한 것들이! 내가 왜 월급 주고 일 시켜!”

사장의 호통에 곽 이사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곽 이사, 자네 생각은 어때?”

“네. 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그의 대답에는 힘이 없었다.

최 팀장이 분위기를 살리려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곽 이사님.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겠습니까?”

사장도 호쾌하게 웃었다.

“그렇지? 따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데.”

침울해하는 곽 이사를 보며 말을 이었다.

“농담이야. 곽 이사. 그럴 일 없어. 안 그래?”

“네.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하! 하! 하!”

곽 이사가 영혼 없는 웃음을 토했다.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그의 어깨는 움츠러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