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04화
서울행(06)
한 교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까지 긴장할 필요 있겠니?”
내 반응이 너무 과하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휴! 제가 너무 설치고 다녔네요. 이제 그들도 전통이 상품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 거겠죠.”
“아직은 그렇다 할 움직임이 없잖아.”
S대가 그런 생각을 했다면, 다른 학교 혹은 기업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거네.’
그런데도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지켜보는 거겠죠. 제가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
내 말에 한 교수는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하면 바로 뛰어들 생각이겠구나.”
“네.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것에 투자하기는 싫다는 거겠죠.”
내 성공을 보는 순간, 득달같이 달려들어 나를 추월하려 할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 가능했다.
‘가지고 있는 인맥, 경제력이 다르거든.’
더군다나 후발주자의 강점은 선례가 남긴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다.
그들은 그동안의 내 노력을 한순간에 뒤집을 수 있는 무서운 존재들이었다.
“네가 올라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게 있을까? 차라리 쉬면서 재충전하는 것도 괜찮지 않아?”
그의 목소리가 술에 젖어 나지막하니 울렸다.
무표정하게 생각에 잠겨 있으니까, 한 교수가 술을 따르며 하는 말이었다.
“아뇨. 지금이 적기에요.”
“어떻게?”
“아직 그들은 사람을 모으지 못했어요.”
“음. 하긴 모으려면 금방이겠지.”
“네. 적어도 대목장 정도의 인지도 있는 사람을 모을 수는 없겠죠.”
남은 두 명의 대목장을 차지하는 자가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한 교수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그럼 두 개 그룹 정도가 라이벌이 되겠네?”
“그 둘이 가장 강력하겠죠.”
대목장을 끌어들일 능력이 된다는 것은 그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힘 있는 그룹일 것이다.
적어도 내가 온 길을 똑같이 답습한다면, 대목장을 섭외하는 것은 필수적인 요소가 될 테니까.
“그들이 사람들을 다 모으기 전에 먼저 치고 들어가서 가시적인 결과를 내야 합니다.”
사람들의 눈에 제일 먼저 보이는 게 선발주자다.
“박람회만 가지고는 아직 부족해요.”
“음. 그래. 그걸로는 아직 임팩트가 약해.”
“중동의 호텔 하나 정도는 집어삼키면,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지겠죠.”
“흐흐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되기만 하면 시선 집중이 안 될 수가 없겠지.”
생각만 해도 재미가 있는 모양인지, 한 교수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웃음이 걸렸다.
“그럼 생각해 놓은 건 있냐?”
“아뇨. 아직은 없어요.”
하지만 그는 기대하는 목소리였다.
“뭐가 되었든, 성훈이 네가 하는 거다. 어쭙잖은 결과는 나오지 않겠지. 잘해 봐라.”
“지금쯤이면 이럴 거라 예상했어야 했는데. 너무 마음을 놓고 있었네요.”
하지만 한 교수는 씁쓸한 듯 했다.
“쉬기도 해야 할 텐데, 아직 젊으니 걱정하지 않는다만,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서 안쓰럽다.”
“쉬는 건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후가 될 거예요.”
“네가 말하는 성공이 어디까지냐?”
“이 시스템이 한 바퀴 도는 시점입니다.”
음료수를 홀짝이던 소피가 물었다.
“한 바퀴라뇨? 그게 뭔데요?”
한 교수와 눈빛을 교환했다.
‘이 이야기를 해도 되겠느냐.’고.
그는 나와 이 계획을 입안한 사람이었으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하는 일에 소피아 양도 끼어 있잖아. 굳이 안 끼울 생각이라면 몰라도.”
“하긴 그렇네요.”
소피를 보며 말했다.
“난 우리나라 전통 건축을 살리고 싶었어.”
소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장인들에게 금전적 도움을 주는 건 일회성이지. 언제까지나 도와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차 있는 술잔을 비우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자생할 수 있게 하고 싶었어. 그러려면 끊임없이 할 일을 만들어 줘야 해.”
“맞아요. 수요가 없으면 장인들이 사라지죠.”
소피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귄터가 산으로 들어갔던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그것이 아니던가?
기계에 밀려난 손기술의 장인들.
“응. 맞아. 하지만 거기에는 순서가 필요하지.”
“어떤 순서요?”
“살 사람이 있어야, 만들 가치가 있지.”
소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구매할 사람이 없으면, 애초에 만들 필요가 없으니까.
동의하는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우선 나는 우리 전통문화가 얼마나 독특하고 아름다운지를 세계에 알리고 싶었어.”
“성공적이었죠. 저도 박람회에서 봤어요. 무척이나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그들은 잠재적인 구매자들이었고, 충분히 한국의 전통작품을 위해 지갑을 열 사람들이었다.
‘그걸 봤으니, 다른 곳에서도 침을 흘리는 거겠지.’
소피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걸 만들 사람들도 구해 뒀어. 하지만 한 번으로 끝나서는 안 되니까, 학과를 만들었고.”
“아! 실력 있는 장인들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였군요.”
한 교수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완전하다고 못 해.”
소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또 뭐가 필요한 데요? 생산자와 구매자가 있잖아요.”
“있기만 하지. 그것만으로는 돌아가지 않아.”
소피는 금방 이해했다.
“아직 멈춰 있는 자전거네요.”
“응. 하지만 한 번 구르면, 그때부터는 자동으로 굴러가지. 아직 그 첫발을 떼지 못했어.”
“그렇군요.”
“이 결과로 성공이냐, 실패냐가 결정된다는 말이야. 딱 한 번이면 돼.”
시스템은 간단하다.
장인들의 작품들이 돈으로 환산되고, 그 돈은 다시 장인들의 생활과 후학들의 교육에 투자된다.
다시 그 후학들은 작품을 만들고 돈을 번다.
이 선순환이 완성된다면, 그 이후는 딱히 손대지 않아도 굴러간다.
‘그쯤 되면, 올바른 방향으로 굴러가는지만 관리하면 되는 거지.’
“하지만 성훈 씨가 하는 일이니, 당연히 성공할 거고! 이미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가고 있잖아요. 급할 게 없잖아요.”
또랑또랑한 눈으로 그녀가 묻고 있었다.
“그렇지는 않아. 앞서간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은 시스템이 완성 뒤의 이야기! 여기서 한발이라도 삐끗해서 실패하게 되면, 바로 다른 사람이 내 자리를 대신하겠지.”
“설마 그게 그렇게 쉬울까요?”
그녀의 말에 웃음이 피식 나왔다.
‘그건 소피 당신이 몰라서 하는 말이야. 중국이 짝퉁 제작의 일인자로 군림하기 이전에는 그 자리를 한국이 차지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내 입으로 내 조국을 짝퉁 왕국이라고 말할 수 있으랴?
“한국인들의 따라 만드는 실력은 만만치 않아.”
한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성훈이 말에 동의. 똑같게 만들지 않을 거야. 비슷하게 만들겠지.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그게 그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는 정확히 분석하고 있었다.
“그럴 겁니다. 똑같이 진짜를 만들기에는 시간이 부족할뿐더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대충 만든 모조품을 내놓겠죠.”
한 교수는 예상되는 결과에 한숨이 내쉬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게 최악이거든.”
말없이 채워진 잔을 비웠다.
한 교수가 내 마음을 대신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성훈이가 노력하면서 만들어 놓은 게…….”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쓰레기가 되겠죠. 그 짝퉁의 오명은 제가 다 뒤집어쓸 거고요.”
한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지, 소피아 양도 알겠지? 다시 시스템을 재정비한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거라는 거지.”
‘황금이 똥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지.’
그때 가서 ‘내가 원조다. 우리는 작품으로 속이지 않는다! 믿어 달라!’ 아무리 그렇게 소리쳐도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한국 전통작품이라고 하면, 손가락질부터 할지도 모르고.
소피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무조건 성공해야 해. 실패하는 순간, 다시는 이 아이템으로 승부를 볼 수 없으니까.”
한국 전통문화에 해를 끼치는 것이 한국인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그렇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단 1%도 들지 않았다.
소피가 물었다.
“성훈 씨.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물어봐.”
“무슨 말인지 다 알겠는데, 어떻게 단 한 번으로 사이클링이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해요?”
“왜 우리나라에서 변호사 의사가 각광받는 직업인 줄 알아?”
“음. 인권과 생명에 대한 사명감? 꿈?”
정석적인 대답에 웃음이 나왔다.
그게 응당 당연한 답이건만…….
독일도 그러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알고 있는 답을 물어볼 필요가 뭐가 있으랴?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월급을 많이 받기 때문이야.”
직업의 위상?
그건 월급 명세서에 새겨진 숫자로 결정된다.
의사, 변호사의 연봉이 높지 않았더라도, 과연 인재들이 그렇게 모였을까?
부모가 의사 되라 변호사 되라며 강요했을까?
사명감에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만, 대다수는 돈벌이로 선택했을 것이다.
‘엘리트가 전통장인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어?’
그럼에도 왜 장인은 선망직업 일 순위가 되지 못할까?
가난하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한국은 고유의 것을 잃어간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되는 거지, 돈 때문에 포기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이 사이클이 한 번 돌고 나면, 전통장인들의 위상이 확 바뀌어 있을걸!”
한 교수의 양 볼에 미소가 고였다.
생각만으로도 흐뭇한 미래가 아닐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의 가치는 입증 받았다.
압둘이 20억을 내고 우리 작품을 사갈 때부터.
“소피. 한국에는 대기업 지원자나 의사 변호사가 되려는 사람보다, 전통장인 지망자가 더 많아질 거야.”
소피가 눈빛으로 물었다.
‘왜요?’
“그 사람들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을 벌 테니까.”
***
다음 날.
소피와 성훈이 카미를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하고 있다.
“성훈 씨.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 제가 운전할게요.”
난처해하는 성훈에게 소피가 떼를 썼다.
“아직 숙취가 덜 깼을 거 아니에요. 어제 그렇게 마셔놓고는!”
“멀쩡하게 잘 들어갔거든! 나 말술이거든! 안 그래요, 교수님?”
한 교수가 성훈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런 놈이 소피아가 부어주는 줄도 모르고, 넙죽넙죽 잘도 마시더라. 외간 남자가 어쩌고저째!’
한 교수가 외면하자, 성훈이 소피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자! 맡아봐! 술 냄새가 나는지? 지금 시간이 오후 한 시가 넘었어.”
***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한숨만 푹 나왔다.
이제 간다고 한 교수에게 인사나 할까 해서 왔는데, 소피도 사무실에 와 있었다.
한 교수에게 꿀물을 타주면서 말이다.
그러고는 소피에게 발목을 잡혔다.
‘따라가서 뭐 어쩌려고?’
말만 한 처자가 못하는 말이 없다.
외국 여자들은 다 이런 건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놀러 가는 거 아니야. 그리고 너하고 놀아줄 틈도 없을 거야.”
하지만 소피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 일은 거의 다 끝났단 말이에요. 성훈 씨.”
팔을 붙들고 늘어지는 소피의 손을 떼어놓으며 말했다.
“아직 세부적인 사항들도 그렇고, 학과를 만든 뒤에도 마찬가지고. 모두 네가 조정해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총장은 방심해서 될 사람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네가 반드시 여기 있어야 돼!”
내 장문의 반박을 옆에서 듣던 한 교수가 피식 웃었다.
“네가 걱정 안 해도 어련히 알아서 할까 봐.”
“에이. 그래도 아직 애라서 불안해요. 잘 좀 옆에서 도와…… 교수님. 얘 좀 떼 주세요.”
“어허. 그게…….”
한 교수가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소피아가 인상 쓰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교수가 등을 돌리며 말했다.
“나는 모른다. 둘이 알아서 해라.”
젠장! 이러면 최후의 수단을 쓰는 수밖에!
소피에게 말했다.
“난 자기 일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하고는 상종하고 싶지도 않아!”
자존심이 상했으리라.
내 팔을 놓으며, 그녀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삐쳐도 어쩔 수 없지. 여자를 옆에 끼고 무슨 일을 한다고.’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고 말했다.
“여기 일 다 끝내고 나면, 놀러 와도 돼.”
“정말요?”
“대신! 한 교수님한테 OK 사인을 받아야 돼.”
소피의 입가가 살며시 올라갔다.
“교수님 허락만 받으면 된다! 그거죠?”
“응.”
소피가 손을 흔들었다.
“잘 가요. 성훈 씨. 금방 따라갈게요.”
성훈이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교수님. 우리 소피 좀 잘 부탁해요.”
소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교수님. 잘 부탁해요.”
한 교수가 먼 산을 바라보며, 뒤통수를 긁었다.
‘허허. 나, 얘네들 틈에 끼어서 제 명에 못 죽는 거 아닌지 몰라.’
***
식후 오수(午睡)는 장수의 근본이라 했던가?
곽 이사는 의자를 젖히고 노곤한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따르르릉.
“어떤 놈이야? 이 시간에.”
눈을 반개한 채, 책상 위를 더듬었다.
“어? 누구세요.”
-곽 이사님.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라면, 님자를 붙일 리가 없는 법.
“어. 누구…….”
-저. 성훈입니다.
“어, 업!
부리나케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야야!’
“녜. 녜. 셩훈님!”
어찌나 다급하게 일어났는지, 경황 중에 혀를 깨물어, 혀 짧은 소리가 났다.
-어디 아프세요?
혀를 한 번 내두르고는 얼른 대답했다.
“아닙니다. 울산에는 잘 내려가셨습니까?”
-아! 네. 저 지금 다시 서울로 가는 중이에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장님께서는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저 지금 현재에 입사하러 가는데, 남는 자리 하나 있나요?
‘이 무슨 벼락에 콩 구워 먹는 소리야?’
“지, 지금 말입니까?”
-네. 안 돼요?
“안 되다니요……. 그 무슨…….
-곤란하신 모양이네요.
곤란한데, 뭐! 어쩌라고?
또 다른 데 간다고 하려고?
이제 하도 들어서 식상할 만도 하건만, 언제 들어도 가슴 철렁 내려앉는 소리가 아니던가?
“아닙니다. 올라오십시오. 당장 자리 만들어 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