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91화
졸업작품(01)
박람회에서 대상을 타고, 울산으로 돌아왔다.
학교 정문에서부터 행정 건물로 가는 중간중간에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건축학과와 공대! U 대학의 명성을 떨치다!]
총장실에 들러 총장의 치하를 받은 후, 행정 건물 밖으로 나왔다.
보람이 물었다.
“성훈아. 그나저나 다음 해 졸업생들, 불쌍해서 어쩌냐?”
“왜?”
“총장이 열변을 토하던데.”
총장은 현재 건설 특채를 학교의 명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게 학교의 고정 옵션이 되면, 입학생들의 수준이 높아진단 말이지.’
열정에 활활 타오르는 눈동자로 말을 이었었지.
‘지방에 있는 대학이라고 해도, 실력으로는 한국의 일류대학에 꿇리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겠네.’
라며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는 성훈과 팀원들의 어깨를 부여잡고 당부의 말로 끝을 맺었었지.
‘그래서! 자네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확실하게 현재 그룹에서 자리를 잡아주게나. 응? 내가 확실하게 교육해서 밀어 넣어줄 테니.’
***
“나도 모르지. 무슨 계획이 있으니 그런 거겠지.”
내 계획의 핵심은 전통건축과 건축학과에서의 인재 풀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다른 공과대에서도 그만큼의 성과를 내주면 좋겠지만, 그건 그들의 역량일 뿐.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원하는 건축을 하는 거지. 학교의 발전이 아니거든.’
보람이 비관적인 눈빛으로 물었다.
“성훈이 너도 없는데, 과연 가능할까?”
“총장이 알아서 할 거야. 우린 이제 우리가 자립할 길을 모색해야 돼.”
수십 개 학과의 학생들이었다.
각자의 방식대로 현재의 계열사에서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보람에게 말했다.
“긴장할 것 없어. 다 똑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니까.”
“너야……. 이미 해 봤으니 쉽게 말하지만…….”
보람의 말은 학교 다니면서 실습하는 것을 말하는 거겠지만, 나는 지난 삶을 떠올렸다.
‘질리도록 해 봤지. 정말 질리도록.’
작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 해 봤으니까 하는 말이야.”
그리고 말을 이었다.
“별거 아냐. 능력만 보여주면 돼. 그게 다야.”
옆에서 듣던 승범이 성훈을 보며 피식거렸다.
“짜식. 정말 쉽게 말하네. 알았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이마.”
이제는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고생 많았다. 다들.”
팀원들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 현재 그룹의 계열사로 들어가는 것이 결정되었으니,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보람이 말했다.
“성훈아. 3년이랬다. 그 전에 우리 불러야 돼!”
“알았어. 그 전이라도 실전경험이 충분히 쌓이면, 전화해. 할 일은 널려 있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모두 자기 학과로 돌아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박람회!
그 긴 여정의 막을 내렸다.
전원 특채라는 희대의 결과물을 남긴 채.
***
“한 교수님. 저 왔어요.”
책상에서 도면을 보던 한 교수가 고개를 들었다.
“어. 성훈이냐? 고생 많았다.”
그리고는 다시 책상으로 고개를 박았다.
성훈이 투덜거렸다.
“타지에서 고생하고 온 제자에게 이게 웬 푸대접입니까?”
하지만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꾸했다.
“그래서 고생했다고 했잖아. 그래도 대꾸할 힘은 남아 있나 보네. 거기 커피나 한 잔 따라주라. 지금 정신없어 죽겠다.”
성훈이 피식 웃으며, 커피 두 잔을 소파 테이블 위에 올렸다.
“저도 힘들어서 거기까지 못 가겠어요. 커피 여기 둘 테니, 와서 드세요.”
마지못해 일어선 한 교수가 기지개를 켰다.
“끄으응! 아이쿠, 삭신이야.”
그가 투덜거리며 소파로 다가왔다.
“거참. 바쁘다니까.”
“이렇게라도 안 하면, 하루 종일 일어나지도 않을 거잖아요. 대자보 걸려 있던데 못 보셨어요?”
“봤지!”
“U 대학의 명성을 떨친 장본인이라고요.”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성훈을 보더니, 그가 커피를 홀짝이며 피식 웃었다.
“그게 어디 U 대학을 위한 거였냐? 네놈 좋자고 한 일이지?”
“어쨌거나 저쨋거나죠.”
성훈의 농담에 한 교수도 웃으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래. 결과론적으로는 같은 말이겠지.”
그리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뭐 할 거냐?”
향후의 진로를 묻는 것이리라.
“글쎄요. 한 건 끝내고 나니까, 진이 약간 빠지네요.”
‘학교에서 더 할 것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며 성훈이 말을 이었다.
“이제 남은 거라면, 졸업작품 정도가 되겠네요.”
하지만 그것도 심드렁하기는 마찬가지!
“그런데 별로……. 관심이 안 가네요.”
툭 던지는 말에 한 교수도 피식 웃었다.
“하긴 네 녀석은 이미 작품을 몇 개나 만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졸업작품의 의미가 무엇인가?
4년 동안 열심히 배우고 익혔으니, 그 결과물을 남기고 졸업하겠다.
그 정도 의미가 아니던가?
그저 작품의 의미로만 따지자면, 졸업작품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
한 교수의 생각도 비슷했다.
창밖의 먼 산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성훈을 보며 생각했다.
‘과연 녀석 또래에 이런 결과를 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제 쉬고 싶어진 건 아닐까?
간혹 있는 일이 아니던가?
무언가를 완성한 후에 밀려오는 공허감.
멍한 표정의 성훈을 보며, 한 교수가 말했다.
“녀석. 이제 쉬고 싶은 모양이구나?”
여전히 시선은 창밖을 향한 채, 성훈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지금 당장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래. 그럴 때는 쉬어 주는 것도 방법이야. 쉬다 보면 하고 싶은 게 또 생기겠지.”
성훈이 한 교수에게 농을 걸었다.
“하긴. 이제 학교에서 알아서 학점 줄 텐데요. 뭘.”
한 교수가 장난스레 인상을 찡그렸다.
“어떤 놈이 그러더냐? 점수 준다고?”
그가 입술을 씰룩이며 말을 이었다.
“나, 한승원 사전에 공짜 학점은 없어! 형평성에 어긋나잖아. 형평성에! 그리고 박람회 건하고 내 학점은 전혀 관계가 없어!”
당연하다는 듯이, FM을 말하는 한 교수였다.
‘그렇죠. 그래야 당신 답죠.’
“알았어요. 열 내지 마세요. 농담한 거니까.”
“졸업할 때까지 공짜 학점 받으려고 하다가는 국물도 없을 줄 알아. 비싼 돈 내고 학교 왔으면 뭐 하나 배워갈 생각을 해야지!”
잔소리가 길어질 것 같아서,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교수님. 아까 보고 계시던 거 뭐예요?”
그 말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모양인지, 한 교수는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내가 저번에 얘기 안 했던가? 현재 건설 사장 별장 설계를 의뢰받았다고?”
“아뇨. 금시초문인데요?”
“하긴! 나나 너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으니.”
말할 틈이 없었거나, 혹은 듣고 잊어버렸으리라.
누구랄 것도 없이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재미있어 보이는 것이 생겼다는 것!
“별장이라? 재미있겠는데, 그런데 왜 골치 아파하세요?”
구미가 당기는 듯한 성훈의 말에 한 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도 마라. 머리 아프다.”
“대체 무슨 요구를 했기에 그러세요?”
책상 위에 널브러진 도면과 카탈로그들이 바로 그것들이리라.
성훈이 일어나, 도면을 집어 들었다.
“공간 잘 빠지고, 동선도 멋들어지게 짜졌는데, 뭐가 문제예요?”
“구조는 아무 문제가 없지!”
당연한 말이겠지!
울산의 유명건축가들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 한 교수였다.
한 교수 자체도 구조가 전문이니, 다른 말이 필요 없으리라.
“거기 카탈로그들 봐라.”
고풍스러운 가구들로 가득한 책자들이 책상에 층을 이루고 있었다.
“전부, 완전 안티크 풍인데요?”
생각하니 더 머리가 아픈 듯, 한 교수가 고개를 숙인 채 대꾸했다.
“그래! 그 양반, 완전 오타쿠야. 안티크 오타쿠.”
성훈이 자료들을 들고 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찬찬히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완전 최고급으로 도배를 할 생각인가 보네요? 역시 부자가 다르기는 달라요.”
이태리제 원목 가구, 독일제 소파 등등.
보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대의 제품들이었다.
개 중에는 지난 삶에서 보지도 못했던 가구들이 즐비했다.
성훈 자신도 나름 수입가구 전문가라 여겼지만, 눈앞의 제품들은 천외천이었다.
‘이렇게 비싼 가구들이 있었어? 내가 다뤘던 건, 이거에 비하면 싸구려네. 싸구려!’
적게는 몇 배에서, 많게는 ‘0’이 몇 개 더 붙어 있었다.
“허! 이 양반! 개인 호텔이라도 만들 생각이래요? 기껏해야 별장이라면서.”
일 년에 별장을 가 봐야 몇 번이나 가겠는가?
하지만 그 내용물들은 최고 중에서도 최고로만 채울 요량인 모양이었다.
“다 만들어지면 볼만 하겠는데요? 안티크 가구 박물관 같겠네. 그것도 최고급 박물관. 저 소파를 저기 놓고…… 저건 여기 놓고.”
“다 쓸데없는 짓이야. 마음에 안 든대.”
“예? 이것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요?”
동그란 눈으로 되묻자, 그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눈은 또 디립다 높아! 젠장!”
“허허. 참!”
헛웃음을 터뜨리는 성훈에게 그가 비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그게 거실용이야. 다른 방들은 또 다르게 디자인해 달래.”
“직접 만나서 말씀해 보신 거예요?”
한 교수가 인상을 찌그러뜨렸다.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겠어? 시안만 보낸 거지.”
“왜요?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게 당연한 거죠.”
“학생들 가르치랴, 논문 쓰랴, 울산 도시계획 총괄하랴, 이거 설계하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거든.”
그리고 성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앞에 앉아계신 누구 때문에 말이야!”
“심심하다고 하셨을 때는 언제고?”
“그건 고맙다. 녀석아. 덕분에 무미건조할 뻔했던 내 삶이, 숨 돌릴 틈도 없이 스펙타클해졌으니까…….”
***
주저리주저리 이어지는 그의 하소연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부자들은 취향이 독특하다더니.’
자수성가해서 부자가 된 사람들과 태어날 때부터 부자였던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관점이 달라 보였다.
알리나 압둘만 봐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아낀다는 개념이 없지.’
일반인들은 절약을 위해 약간의 불편 정도는 기꺼이 감수하지만, 그들은 코털만큼의 불편함도 참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편리해졌지.’
계단을 걷기 싫어하는 자들 때문에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앞으로 내가 상대할 사람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돈 때문이냐고?
전혀!
돈이 없는 자들은 상상하지도 않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당연한 요구를 수용하는 건축은 결국 콩나물시루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세상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은 천재이거나 혹은 불평하는 자들이었지.’
태초부터 불편은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추위를 피하려고 불을 피웠던 것처럼!
‘얼마나 까다롭기에, 한 교수가 혀를 차는 걸까?’
우리나라 0.1% 부자로 손꼽히는 그의 취향을 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차피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기회가 왔을 때 해치워야지.’
이 일은 내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
내 생각이 끝날 때쯤, 한 교수의 푸념도 끝났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지치는구나.”
“말씀 다 끝나신 거예요?”
무미건조한 내 답에 그는 섭섭한 표정이었다.
“내 말 듣기는 들은 거냐?”
눈썹을 으쓱하며 말했다.
“교수님. 그거 제가 할게요.”
“엉? 진짜? 무리할 필요 없는데.”
한 교수는 순간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이렇게 착한 놈이었나?’하는 표정.
하지만 내 진지한 표정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가 헛살지 않았구나. 제자 하나는 제대로…….”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졸업작품, 이걸로 대체할게요.”
“엉? 뭐라고?”
의문을 제기하려는 그의 입을 말로 막았다.
“좋잖아요. 어차피 인테리어니까. 명분도 서고, 교수님은 귀찮은 일 하나 떨구고.”
그가 미심쩍은 눈으로 물었다.
“정말 자신 있어? 혹시 기숙사 인테리어 해 봤다고,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가지는 거 아니야?”
“그게 무슨 인테리어 축에나 끼겠어요?”
“그걸 아는 녀석이 그런 말을 해? 현재 사장을 상대하는 일이라고. 경험이 없으면 안 돼!”
그에게 검지를 흔들어 보였다.
“그때랑은 저도 많이 다르죠.”
“뭐가?”
“저, 유럽 물 좀 먹은 놈입니다. 제 눈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아세요?”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가 말했다.
“하지만 녀석아. 실전에 쓰려면…….”
“걱정 마세요. 여기 싸인 받아오면 되는 거죠?”
“허!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래도.”
성훈이 도면을 챙겨 들고 일어섰다.
“어디 가?”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
‘확신이 있으니, 하는 일이겠지.’
그렇다고 성훈의 확신이 자신의 확신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가는 성훈의 뒤통수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졸작이라고 대충 하면 죽는다!”
“별 되도 않는 걱정을. 제가 대충하는 거 보셨어요?”
드르륵. 쿵.
‘대충 안 해도 문제잖아!’
다시 고함을 질렀다.
“고집 세우다, 사장이랑 싸우지 말고!”
복도에 울리는 성훈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알았다구요.”
한 교수가 입맛을 다셨다.
“벌써 여섯 번이나 뺀찌를 먹었네. 그 양반 설득시키는 게, 쉽지는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