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90화
포석(03)
시장과 헤어지고 현재건설 사장을 만나러 갔다.
다른 사장은 모두 돌아가고 사장만이 남아 아직 가지 않고 나머지 전통 건축 모형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민수와 승범 등 주축이 되는 팀원들이 사장에게 모형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등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현재건설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질문하는 시간이기도 했던 것 같다.
민수가 나를 반가이 맞았다.
“성훈 형, 사장님 얼굴 모르셨죠?”
“응, 오늘 뵌 게 처음이야.”
“글쎄요, 예전에 기숙사 현장에서…….”
말하는 민수의 말을 막았다.
“이따가 얘기하자. 지금은 사장님과 할 말이 있어.”
그리고 바로 사장에게로 향했다.
“사장님, 저 녀석들 각자 전공에 맞게 입사시켜 주실 수 있나요?”
“응? 자네가 다 통솔할 것 아닌가?”
그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어설픈 애들 데리고 대장 노릇 하는 데는 관심 없습니다.”
“어설프다고?”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장님 보시기에도요. 저 녀석들 그대로 현장에 투입해서 써먹을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렵지.”
그게 어설픈 게 아니면 뭔가?
사장이 물었다.
“자네가 가르치면 될 것 아닌가?”
“제가요? 제가 가르칠 수 있는 게 뭐 있는데요? 제가 전기나 기계에 대해서 뭘 안다고 녀석들을 가르치겠어요? 그렇다고 현재건설이 교육할 겁니까? 그럴 능력은 되고요?”
사장의 얼굴이 굳었다.
내가 도발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리라.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그렇게 각 계열사로 퍼뜨린 다음에는 어쩌려고.”
“실무를 완전히 익혔을 때 다시 모을 겁니다.”
“그러고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진행할 겁니다. 바로 건축을요.”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회사의 인력으로도 가능할 텐데.”
그럴 수도 있다.
늘 그래 왔으니까.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게 가장 효율적이겠죠. 건축에 필요한 인재들만 모아서 일을 진행하는 거니까요.”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하지만 그들은 건축에 필요하지 않은 것을 말하지 않겠죠.”
“필요 없는 것을 왜 말하나?”
필요 유무를 왜 각 분야 전문가들이 결정하는가?
최종 결정자인 건축가가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건 실제로는 불가능하지.’
조명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설계자가 세상의 모든 조명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조명 전문가에게 물어보기보다는 조명 회사의 카탈로그에 의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귀찮으니까, 그리고 모르니까.’
걸러내는 것에도 지식이 필요하다.
“건축가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집도 마찬가지고요. 그저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일을 진행할 뿐이죠.”
“그게 잘못된 건가?”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신 완벽하지 않죠.”
이상을 추구하는 내게 사장이 코웃음을 쳤다.
“훗! 성훈 군, 왜 우리라고 완벽을 추구하지 않겠나? 하지만…….”
그의 말을 가로챘다.
무슨 말을 할지 너무나 뻔했으니까.
“그걸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게 너무 많죠.”
그게 자본가의 방식!
1%의 불량률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개선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1%의 불량을 감수하고 물건을 만들어낸다.
재수 없는 1%에 걸린 사람은 어떡하냐고?
배상 청구를 제기하는 사람에게는 교환해 주겠지. 단지 재수가 없었음을 원망하라면서.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지.
‘세상에 완벽한 게 어디 있어요? 다 그렇고 그런 거지.’
하지만 나는 예술가이며 장인이다.
‘예술가가 완벽을 따지는 게, 뭐 어때서.’
“그걸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나?”
“그럴 가치가 있으니까요.”
“어떤 가치?”
스스로 가치 없다고 평가절하 당한 듯,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세계 최고의 건설 회사가 갖추어야 할 가치요.”
“세계 최고라고?”
“당연하다는 듯, 콘크리트 속에 쓰다 남은 스티로폼 조각이 들어 있고, 욕조 속에는 쓰레기가 들어 있죠. 그게 우리나라 건설 회사의 현실입니다.”
순간 사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왜 그랬을까?
그에게 물었다.
“현재는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
“만약 그렇다면 사장님께서는 현재건설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실 수 있으십니까?”
사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우리나라 건설 회사는 세계 최고가 되지 못할까?
그에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돈만 밝히는 천민자본주의 때문이 아닐까?
돈이 무슨 죄가 있으랴!
제 일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인간이 잘못이지.
왜 욕조 안에 쓰레기가 들어 있었을까?
만약 자기 일에 자부심이 있었다면 과연 자신의 책임을 등한시했을까?
이유는 하나다.
‘쓰레기가 돈이 되지 않으니까.’
내 몸 하나 편한 것이 중요하지, 내 자부심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몇 년 후, 그 욕조의 설치자를 욕할 거라 예상했다면, 설치한 사람의 얼굴과 이력이 붙어 있다면, 과연 쓰레기를 버리고 올 수 있을까?
얼굴이 상기된 그에게 말했다.
“어떤 건물이 되었든 제 얼굴을 붙여도 부끄럽지 않은 건물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요합니다. 물론 저와 말이 잘 통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요.”
사장은 눈 아래만 꿈틀했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걸 위해서 저 사람들이 필요하다?”
“믿어주는데 끌고 가야죠.”
“우리 회사에서도 자네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잖나?”
곽 이사나 양 이사를 말하는 것일까?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쓸 곳이 있지 않겠습니까?”
내 진심을 알아줬던 걸까?
사장은 꾹 다문 입술을 열었다.
“알겠네. 그러도록 하지.”
사장은 이 일을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아야 했다.
“반드시 해주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알겠네. 반드시 그렇게 해주지.”
“어떤 상황이 와도 말입니다.”
“어허, 사람 참! 해준다니까 그러네.”
“알겠습니다. 그럼 믿겠습니다.”
확신하는 사장을 보며 씁쓰름한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저 친구들이 제 몫을 하게 되면 과연 다른 계열사에서 놓아주려 할까?’
물론 그것 말고도 방법은 많다.
정히 막힐 경우는 계열사를 퇴사하고, 현재건설로 들어오면 되니까 말이다.
계열사라고 해서 그것까지 막을 권리는 없겠지.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졌고, 이직은 직장인의 권리가 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건 최후의 방법이지.’
다른 계열사들에 협조를 요청할 일도 많을 텐데, 굳이 척을 질 필요는 없었다.
그의 약속을 받아내고 팀원들에게로 돌아섰다.
“너희들, 나 따라온다고 했지?”
보람이 대표로 대답했다.
“응, 그랬지.”
웃음 가득한 얼굴이었다.
이제 저 얼굴에 찬물을 끼얹어야 한다.
“그럼 잠시 헤어져 있어야겠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각자 전공에 맞는 계열사로 들어가서 실무를 익히라는 말이야.”
팀원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보람이 그들을 자제시키며 말했다.
“야! 난, 아니, 우리는 너 따라가려고 하는 거라고. 네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그는 버림받은 새끼강아지처럼 으르릉거렸다.
다른 팀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잠시의 소요가 일었다.
“지금까지 너희가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어.”
“그런데 왜 그러는 거냐?”
“너희는 아직 실무 감각이 많이 모자라.”
“제대로 된 설명이 필요한데.”
“초보들을 데리고 일을 할 수는 없다는 말이야.”
팀원들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들을 향해 침착하게 말했다.
“지금까지 했던 건, 장난 축에도 끼지 못하는 거야. 건축 모형 몇 개 만들고, 갑돌이 같은 장난감을 만들었다고, 설마 모든 것을 경험했다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헤어지는 마당에 무슨 위로가 필요하랴!
너희를 버리려는 게 아니다.
이런 구구절절한 변명 따위는 필요 없었다.
말없이 눈만 부라리는 그들에게 말을 이었다.
“너희가 이번 작업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실수와 오류를 경험했는지 기억 안 나? 이런 실력으로 실무에서 통할 것 같아?”
이들은, 아니, 우리 전부는 현재건설에 스카우트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장난감 자동차를 몰아본 어린아이가 차를 몰겠다고 덤비는 모양새.
‘기고만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
그들에게 일갈했다.
“그 실수들을 또 반복할 생각이야? 실제 건물을 만드는 게 그렇게 만만해 보여? 실수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고치면 된다고? 일이 장난이냐?”
보람이 반박했다.
“그런 실수도 하고 하면서 성장하는 거 아니냐? 넌 뭐 처음부터 완벽했어?”
“그래서 나도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건설 회사에서 실무를 배우려는 거야. 그래서 너희를 돌봐줄 여유가 없어.”
“뭐? 넌 이미 실무를 했다면서! 스타타워 현장에서.”
그게 어디 현장 축에나 끼겠어?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지만, 반대로 해석하면 자그마치 삼 년이나 연습해야 한다는 거지.
한낱 개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사람이야.
풍월이 그러한대, 건축이야 말할 필요가 있으랴.
“실무 몇 번 했다고 현장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애송이의 착각일 뿐이야.”
“착각이라고?”
“응!”
욱한 보람이 물었다.
“뭐가 착각인데.”
“너희들이 즉시 써먹을 수 있는 전력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그게 첫 번째야. 너흰 아직 아마추어야.”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말할 줄을 몰랐던지, 움찔한 보람이 물었다.
“그건 인정하지. 그럼 두 번째는 뭐냐?”
“그런 너희들과 내가 함께 일할 거라고 하는 점. 그게 두 번째야.”
“뭐라고?”
“기분 나쁘게 듣지 마. 그냥 사실을 얘기하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현재건설 특별 채용에 합격했다고.”
“입사한다고 자격이 갖춰지는 게 아니야. 이제부터가 시작인 거지.”
저들의 목표는 회사의 입사였으니까, 저런 말을 하는 게 당연했으리라.
하지만 현재건설은 내 목표의 과정이었을 뿐이다.
회사 입사보다 거기서 뭘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 아니겠나!
자랑스러워할 이유는 되지만 그게 목표 달성의 의미는 아니었다.
“난 국내 기업들과 고만고만한 경쟁을 할 생각이 없어. 고로 너희 사정을 다 봐주면서 내가 그들과 경쟁을 할 수는 없단 말이야. 정말 너희가 나와 함께 가려고 한다면 그전에 어떤 전문가와 붙는다고 해도 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키워. 나와 함께 가는 건 그 이후가 될 거야.”
보람이 침음성을 삼켰다.
“음…….”
보람과 전체를 향해 말했다.
“3년 준다. 그 안에 인정받지 못하면 함께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거야. 그 녀석은 우리 중 누군가에게는 걸림돌이 될 테니까! 그렇게 되고 싶어?
“그럼 그 이후에는 함께할 수 있는 거냐?”
“응, 그때까지 살아남는 녀석과 팀을 꾸릴 거야.”
이제 결정은 그들의 몫이었다.
***
성훈이 그들을 두고 돌아섰다.
사장이 물었다.
“자네 얘기를 듣고 나니 의문이 생기는군.”
“뭡니까?”
“자네가 삼 년 후에 이들을 데리고 나가버리면 어떡하나?”
타당성 있는 의문이었다.
‘그럼 굳이 건설사에 모일 필요도 없겠죠.’
이 친구들을 모아서 나가버리면 그만이지 말이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인원뿐만 아니라, 현재건설의 시스템이었다.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어떻게 장담하나?”
그의 말에 웃음으로 답했다.
“일단 현재건설을 세계 최고의 건설사로 만들겠습니다.”
성훈의 자신감에 넘치는 말이었다.
‘현재건설은 꽤나 쓸 만한 회사거든.’
불가능을 생각하지 않은 얼굴.
“그리고 그 후에 다른 걸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장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정말인가? 가능하겠어?”
“네, 현재 정도의 시스템과 지원을 받고도 최고가 되지 못한다면, 그 뒤는 볼 필요도 없겠죠.”
“그럼 그 후에는?”
사장 또한 세계 최고를 의심치 않는 눈빛이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래요. 아직 젊으니까요.”
성훈의 목표는 얼마만큼의 권력을 혹은 돈을 얻느냐가 아니었다.
어떤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가? 상상을 얼마나 실체화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스스로의 명성으로 회사를 차려서 나가든, 아니면 계속 현재건설의 시스템을 이용해 일을 벌이든, 그것은 성훈의 선택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오히려 현재건설에서 그가 나가지 않기만을 빌어야 하는 것 아닐까?
“끄응, 그런가?”
사장의 입에서 작은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때라면 현재건설도 이미 충분히 투자한 만큼의 이득을 취한 뒤가 되겠죠. 그리고…….”
“그리고 또 뭔가?”
“굳이 나갈 필요가 없다면 그럴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사장이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영원히 나가고 싶지 않게 만들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