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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88화 (288/427)

건축의 신 288화

포석(01)

“아까는 나도 당황했다네.”

“뭐가요?”

“시장 얘기 한 것 말일세.”

말을 하다가 다시 상황이 떠올랐던지, 대목장은 배를 움켜쥐고 박장대소를 했다.

“크하하하.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놀래킨 거나 다름없지 않나?”

있지도 않은 시장으로 총장을 제압한 걸 칭찬하고 있었다.

그를 보며 피식 웃음 지었다.

‘제일 먼저 당한 사람은 최 옹이시라고요.’

자기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건 생각도 안 나는 모양이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시장이 우리를 보고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 나를 찾고 있었던 걸까?

두리번거리다가 나를 보고 방향을 바꾸었다.

그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시장님.”

이 말에 반응한 이는 대목장이었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가 물었다.

“허허허, 내가 또 속을 줄 아나 보지?”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듯 눈에는 각오까지 어려 있었다.

‘순진한 양반!’

그를 겨냥한 것도 아니었지만 낚싯줄을 던지는 대로 멋모르고 걸려드는 망둥어라고나 할까?

그냥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뒤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목장 어르신! 또 속으시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뜨끔 놀란 대목장이 경기를 일으키며 뒤돌아 보았다.

“아이고, 시장님.”

시장이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으로 대목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여전히 건강해 뵈시니, 반갑습니다.”

그러고는 나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성훈 군, 근데 무슨 이야기 중이었기에 대목장께서 이리 놀라시는가?”

“총장님하고 말다툼이 있었는데, 시장님 이야기를 하니, 한발 물러서시더라고요. 그래서 역시 시장님의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그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허허허. 그런가?”

그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대목장도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참, 그런데 시장님은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은, 우리 도시의 장인들과 학생들이 이리 선전을 하고 있는데, 지역장인 내가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나? 그저 응원차 올라온 거지.”

지역 유지들의 경조사를 챙기기도 바쁜 양반이 어지간히 우리 때문에 왔겠다.

‘쩝쩝! 어디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아무 말 하지 않고 입맛을 다시자 시장이 너구리 같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실은 아랍의 왕자들을 만나러 왔다네.”

“갑자기 아랍 왕자들은 왜요?”

“이제 도시계획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데, 외부 투자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서울, 부산에 이어서 돈 많은 도시라면 울산인데, 더 투자가 필요하다니?

“대체 얼마나 큰 계획을 세우신 거예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이 사람아!”

그러고는 나를 타박하듯 말했다.

“쯧쯧. 도시계획의 대장이라는 자네가 말이야. 이렇게 모르고 있으니.”

그동안 울산 도시계획을 등한시한 건 사실이었다.

“그만큼 틀 잡아주고, 사람 붙여줬으면 됐지 뭘 더 바라세요?”

울산의 성장만큼이나 박람회는 내 미래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었다.

‘나 없는 동안, 얼마나 스케일을 키운 거야?’

건축가들의 역량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믿지 못하는 것은 시장의 능력이지.

설계와 시행은 다른 거 아니던가?

아무리 화려한 계획이라도 완성되지 않으면 그것은 미완의 명작이 될 뿐이다.

그래도 시장은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한 교수를 믿고 맡긴 것 같아? 자네한데 맡겼지.”

“그래도 한 교수님 일 잘하시죠. 다른 건축가분들도요.”

그는 볼멘소리를 하다가도 그들의 평가에는 주저 없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암! 그건 더 할 말이 없어. 그 사람들 때문에 울산의 미래가 확 바뀔 거야.”

그럴 것이다. 한 사람만 있어도 도시를 바꿀 정도의 역량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렇게 수십 명을 모아 뒀으니 그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그렇겠죠, 그럴 역량이 있는 분들이니까요.”

현재건설로 들어가려는 것은 내 계획의 큰 그림 중에서 일부를 완성하는 거였다.

‘울산에서만 머무를 사람들이 아니지. 더 큰 도시에서 그들의 역량을 펼치게 할 수 있을 거야.’

해외 유명 도시를 계획하기 전, 울산에 역량을 쏟아붓는 것은 예행연습이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있겠는가?

울산을 계획하면서 겪는 시행착오들이 그들을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다.

‘여기서 자신감이 붙으면 다른 도시들을 계획하는 건 문제도 아닐 거야.’

그들의 트레이닝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어차피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큰 그림은 내가 잡아도 나머지 세부적인 계획을 아귀가 맞게 조립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내게 있어서 그들은 최고의 엔지니어였다.

‘당신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봐! 다음 무대는 세계가 될 테니까.’

왜 그들에게 기회를 주느냐고?

아니다.

이건 그들이 내게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베푼 작은 호의는 산처럼 큰 눈덩이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분명히.

시장이 흐뭇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만 나는 자네가 더 대단해. 그런 인물들을 어떻게 발탁을 했는지.”

뭔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 듯 호기심 어린 눈을 보고 얼른 말을 돌렸다.

“참! 말이 중간에서 샜네요. 왕자들하고 얘기는 잘되셨어요?”

“아차차. 그랬지. 그것 때문에 자네를 만나려고 한 건데.”

“마침 잘되었네요. 저도 시장님을 만나 뵙고 싶었는데.”

시장이 유쾌하게 웃었다.

“자네가 나를? 이거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먼. 맨날 귀찮아하더니.”

‘그럴 만도 하죠!’

나는 시장이 귀찮다. 그것도 아주 아주!

다른 사람들은 내 재능과 결과물을 탐내는 데 반해, 시장은 나라는 인간 자체를 탐낸다.

‘정치하자는 말만 안 해도 이렇게 귀찮아하지는 않는다고요.’

만날 때마다 은근히 권유하는데, 귀찮아하지 않을 인간이 어디 있겠나?

“시장님, 먼저 말씀하세요. 왜 절 찾아오신 건데요?”

“거 봐. 또 귀찮아하는 눈이 됐어.”

“얼른 말씀 안 하시면 그냥 갈 겁니다.”

“알았어, 알았어. 젊은 사람이 성질 급하기는.”

그가 너스레를 떨며 말을 이었다.

“오다가 생각해 보니, 사우디나 쿠웨이트랑 울산이 형제 도시 결연을 맺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뭔가?”

“형제 도시요?”

“그래! 내 생각이 어때? 이거면 그들에게 투자를 제안할 구실도 생기고 말이야.”

‘시도는 좋군.’

다만 그 알맹이가 없고, 목표만 있어서 문제지.

그에게 물었다.

“두 왕자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나요?”

“왜 없겠어! 세계에 이름이 알려진 도시, 울산이라고. 서로 간에 얻을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지.”

시장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어려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울산이 발전하는 게 그의 눈에 보이니까 말이다.

그가 시장이 된 이후, 아니, 울산이라는 도시가 생겨난 이후 가장 빠른 성장세가 될 것이다.

울산이 돈이 부족해 허덕일 정도로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말이고, 그 돈의 대부분은 도시계획 산업, 즉 도시 인프라에 투자되고 있었다.

‘이게 활성화되기만 하면 그야말로 초고속 발전을 하겠지.’

시장이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자세한 건 차후에 천천히 협조해 가면 돼!”

“한 교수랑 의논하고 오신 거 아니죠?”

어떻게 알았냐는 눈으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오다가 생각이 난 건데.”

“그럴 것 같았어요. 그라면 반대했을 테니까요.”

“왜?”

‘적어도 그는 알리가 얼마나 계산적인 사람인지 잘 알거든요.’

형제 도시가 되면 춤출 사람은 시장밖에 없었다.

다음 선거 플래카드에 붙일 문구가 하나 더 늘어나는 거니까.

하나 왕자들은 구체적인 이득이 보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내 작품을 사 줄 정도로 돈이 넘치지 않느냐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보다.

‘두 배의 값으로 구입한 내 몰딩도 거기에 다시 두 배 마진을 붙여서 팔아먹은 사람이라고.’

그 전에 평민을 만나줄지도 의문이지만!

내 말에 납득하기 어려운 듯 시장이 물었다.

“그들도 시민들의 지지가 있으면 더 좋을 것 아닌가?”

“압둘 왕자나 알리 왕자 지지율 아세요?”

“…….”

“지금도 최고예요. 그걸 바탕으로 차기 국왕으로 거론되는 거라고요. 나라를 더 발전시킬 차기 군주감으로 추앙받기도 하구요.”

정작 그게 두 왕자에게는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정확히 알 수 없다.

‘투표로 왕을 뽑는 게 아니니까.’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으면 좋기는 하지만, 그들이 왕권을 유지하는 절대 필요조건이 아니다.

“그들을 군침 흘리게 할 만한 게 없잖아요.”

“그런가?”

“이미 만나 봤을 거 아니에요? 왕자들은 뭐라던가요?”

시장이 주저하며 말했다.

“그게 말이야…… 바쁘다고 안 만나 주더라고.”

실망한 모습이 얼굴에 여실히 드러났다.

한국에서는 날고 긴다 하는 시장도, 그들이 보기에는 평민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쯧쯧.’

그가 서울에 온 첫 번째 이유는 나를 만나는 것이었을 테고, 두 번째 이유는 아랍 왕자들을 만나는 게 아닐까? 하고 예상하고 있었다.

‘다른 이유가 없잖아.’

시장은 돈이 되거나,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바쁜 사람이었다.

“차라리 그게 잘된 거 같네요.”

“엉?”

“준비를 해서 가야죠.”

“그보다 말일세. 성훈이 자네가 좀 소개해 주면 안 될까?”

이게 시장이 나를 찾아온 핵심인 모양이다.

반짝이는 그의 눈이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 게 다 인맥 아니겠어?’라고.

그의 눈빛을 싹 무시하며 시장에게 물었다.

“울산 도시계획, 언제 끝나요?”

단호한 내 표정에 놀랐던 모양이다.

“어! 어, 한 달 정도만 있으면 마무리된다고 하더군.”

“그 계획! 한 번에 끝내는 걸로 세웠겠죠?”

시장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압둘이나 알리 왕자의 투자를 유치한다는 가정하에 세운 거구요?”

또 다시 시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나 안 보나, 투자받아 오겠다는 큰 소리를 쳤겠지.’

시장에게도 계산은 있었을 것이다.

다음 선거에서 이길 자신도 있을 것이고, 연임할 것을 예상해서 계획을 짜라고 했겠지.

당연한 말이겠지만 건축가들은 그에 따라 계획을 구체화시켰을 것이다.

‘그들에게 시장의 임기까지 생각하라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그런 만큼 시장에게는 투자자가 필요했고 그게 지금은 알리나 압둘이 된 것뿐이지.

“두 번에 나눠서 작업할 수 있게 계획을 짜라고 하세요.”

“엉?”

눈을 모로 뜨며 말을 이었다.

“투자만 받으면 충분하다고.”

“그 투자, 나중에 받으세요. 후반부는 투자받아서 할 수 있도록 계획 변경하세요.”

“흠, 그래도 말이…….”

“지금 설계도나, 그렇게 변경하는 설계도나, 시공 순서만 약간 바뀔 뿐이니까, 시방서만 조금 손보면 돼요.”

여지를 남겨 두고 마무리 지으라는 말이었다.

시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왜 그러나, 성훈이. 나도 듣는 귀가 있는 사람이야. 아크람 집사라는 대단한 사람도 왔다갔다면서.”

알리 왕자라면 충분히 비빌 구석이 있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차갑게 말했다.

“그래도 싫습니다.”

냉정한 내 말에 시장이 흠칫 놀래며 물었다.

“왜 그래? 성훈이. 이건 자네한테도 득이 되는 거라고.”

그의 말은 맞다.

단기적으로는 내게도 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실이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지!’

또한 시장의 말대로 할 수 있었다.

부탁할 수는 있다.

내가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는데, 투자 좀 해 줄 수 있지 않느냐고.

알리나 압둘은 투자를 결정해 줄지도 모른다.

아마 높은 가능성으로 그럴 것이다.

그들은 내 가능성에 아주 높은 점수를 매기고 있거든.

그 일례가 압둘이 우리 작품에 매긴 가치였다.

전체 가격 200만, 내 이름값에 50만.

압둘이 말했었다.

‘부족하면 얘기해!’

그걸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는 전체 가격을 말하는 걸로 들었는지 몰라도 그 말은 내게 한 것이었다.

‘내가 성훈, 너의 가치를 잘못 책정했다면 언제든지 얘기해.’

이 말을 할 때의 압둘은 나를 뚫어질 듯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내 계획의 일부일 뿐인, 울산 도시계획이었다.

시간이 좀 늦춰진다고 해도 하등의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리고 그 상대가 왕자들이라고.’

그래서 더더욱 하기 싫었다.

‘덜 된 밥을 들이밀며, 사라고 하는 게 무슨 경우냐고!’

친구로서의 예의도 아닐뿐더러 하찮은 정에 기대 장사를 한다고 경멸의 시선만 받을 것이다.

나도 똑같이 생각할 거니까!

‘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밥을 만들어서 내밀어야지.’

그리고 그때가 되면 그건 부탁이 아니라, 정당한 거래다.

시장이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왜 그래? 성훈이.”

“자존심 상해서 싫습니다.”

시장의 계획은 내게 필요한 것이었다.

‘하기는 할 거라고. 당신의 아이디어도 좋고.’

시장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

‘명분이 있잖아!’

얼마나 멋있어?

사우디아라비아에, 쿠웨이트에 울산보다 업그레이드된 도시를 계획한다니!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내게 부탁하는 형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절대로 부탁하지 않는다.

자존심은 이럴 때 세우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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