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285화 (285/427)

건축의 신 285화

변화(03)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말해 보게.

목소리가 한 톤 가라앉은 것으로 보아 자신의 설득이 어느 정도 먹힌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네까짓 게 어쩔 거냐?’라는 마음도 있었으리라.

“팔겠습니다.”

-뭘 말인가?

“모형 말입니다.”

-그러도록 하게나. 자네의 공이 가장 크니, 자네가 결정하는 게 좋지.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내 의도는 알지 못했지만.

“하지만 학교의 몫은 따로 지급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판매금의 사용처는 제가 지정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학교에는 한 푼도 주지 않고, 혼자서 다 차지하겠다는 말인가?

압둘이 애초에 계산한 대로, 직접 일을 한 사람들에게 각각 지급할 생각이었다.

물론 알리는 좀 더 놓은 금액을 제시할 것으로 보였으니, 둘 다 의견을 타진해 봐야겠지만.

총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게 어디 자네 혼자서 한 일인가? 200만 불을 다 가지겠다니! 사람이 왜 그렇게 욕심이 많아!

돈에 엮이니, 목소리가 올라간다.

나라고 할 말이 없으랴!

“함께 작업한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할 겁니다.”

-그럼 학교는? 학교는 한 일이 없어 보이나?

“학교 홍보비 때문에 장비를 사줄 수 없다고 하셨죠?”

-그런데?

“압둘 들에게 팔 겁니다. 그것도 신문에 빵빵 때려가면서요.”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는 거겠지.

-음…….

“외국 신문이나 매스컴에도 실리겠죠.”

스티브와 약간 말을 맞추면, 이런 각본을 짜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그에게 약간의 혜택을 주면 되겠지.’

아직도 머리를 굴리는 모양이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작은 신음소리만 들렸다.

-음…….

“어설프게 돈을 쓰는 것보다 더 확실한 홍보가 될 겁니다. 그리고 …….”

-그리고?

“우리 작품의 사용처 또한 이미 정해 뒀습니다.”

-팔면 그 사람들 건데 어떻게…….

‘그건 당신이 나와 그들의 깊은 관계를 모른다는 반증이죠.’

그의 정보력은 넓기는 했지만, 깊이는 내 생각보다 얕았다.

“내 의도와 맞지 않으면 팔지 않는다고 엄포를 놨죠. 그런데도 계속 콜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사용처는 어찌 되어도 좋으니, 물건을 탐내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에게 말을 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지속적인 홍보가 될 겁니다.”

이로써 총장과 대학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명확히 전달이 되었으리라.

신문 기사와 매스컴에서의 보도, 그리고 알리나 압둘이라는 이름값이 고작 몇 십억의 돈과 비교할 가치가 있을까?

잠시 후 총장이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았네.

“이번 해는 어쩔 수 없다 이해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번 해?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이런 특전을 한 번으로 퉁 치려고 했습니까?’

나라면 이 기회를 사골처럼 두고두고 우려먹을 거라고! 그럼 당연히 나도 그 기간만큼 혜택을 누려야지.

“다음 해부터는 전통학과 예산을 최우선적으로 배정해 주십시오.”

-이제 막 신설한 학과야! 결과를 보고, 투자를 더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 그런데 무조건적으로 우선 배정하라니, 그게 말이 되는가?

“안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하지.

“그렇다면…….”

-그렇다면 뭐!

“팔지 않겠습니다.”

-자네, 지금 나랑 장난치자는 건가?

“장난 아닙니다.”

이미 내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그는 흥분으로 인해 내 기분을 알아채지 못했다.

-듣자 하니, 너무 안하무인이군. 자네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했네만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판매에 있어서 자네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인정하네만, 그렇다고 자네 의견이 절대적이지는 않아!

그는 단정하듯 말을 이었다.

-나라고 팔 곳이 없는 줄 아는가? 다 자네 입장을 고려해서 자네에게 양보했던 걸세.

인맥이 좋으니, 여러 곳에 구매의사를 타진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과연 그들이 사 줄까?’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파실 수 있다면 팔아 보십시오.”

-왜? 내가 못할 것 같아서 그런가?

그는 상황을 잘못 읽고 있었다.

압둘과 알리가 탐내는 물건이라고 해서, 모두가 그것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말이다.

그들이 정한 것은 가치뿐이다.

적어도 200만 불이라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탐내는 것과 소유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욕망이 모두 현실화될 수는 없지.’

그에게 물었다.

“어디다 파실 겁니까?”

-자네도 세계에 퍼져 있는 내 인맥을 알 텐데.

‘풋!’

당연히 웃음이 나오지 않겠나?

어중간한 거부 백 명보다 압둘 하나가 압도적으로 세다.

“알겠습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미리 명복을 빌어두죠.”

-응? 명복?

“그 물건을 탐내는 사람이 왕자들이라고요. 돈에 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죠. 그들이 원하는 물건을 가로채는 게 되는데, 그 둘이 가만히 있을까요?”

세계 부자를 꼽을 때, 100위권에 항상 이름을 올리는 두 사람!

또한 그들은 사우디와 쿠웨이트의 차기 국왕을 거론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둘이었다.

그런 호승심 강한 왕자들이 가만히 내버려 둘까? 체면이 상해서라도 작살내지 않을까?

“압둘과 알리, 둘이 경쟁을 해서 누군가가 가져가는 건 문제가 없어요.”

둘의 재력이 비슷한데다, 또한 서로가 선의의 경쟁자로 여기기 때문이다.

말없는 총장에게 물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사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

“훗. 두 왕자를 몰라도 너무 모르시네요. 정히 그러면 제가 미리 말해 둘게요. 당신들이 가지지 못해도 섭섭해 하지 말라고요.”

‘거기다가 몇 마디 더해야지.’

내 뜻이 아니다. 학교에서 그렇게 한 거다.

포기를 모르는 총장이 대안을 꺼내 들었다.

-압둘이나 알리 왕자에게 파는 수도 있…….

총장의 말을 잘랐다.

“그들은 제가 파는 게 아니면 안 살 겁니다. 그건 제가 확신합니다.”

‘그 둘이 누구 손을 들어줄 건지 정도는 계산을 하고 말씀하셔야죠.’

-끄응…….

총장의 입에서 기어코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내 말에 약간의 모순이 있다는 건 안다.

왕자들이 장난 치냐고 하겠지.

판다고 했다가. 사지 말라고 했다가!

그 부분을 총장이 걸고 넘어 졌다.

-그래도 일국의 왕자들인데, 너무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물론 짜증은 내겠지만, 금방 풀릴 겁니다.”

-…….

왜 확신하느냐고?

그의 소리 없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친구거든요.”

알리야 아크람 때문에 화를 못 낸다고 해도, 압둘은 짜증을 부리겠지.

‘알게 뭐야. 짜증내는 인간한테는 안 팔아.’

그리고 그들은 왜 내가 변덕을 부리는지 금방 알아챌 것이다.

뭔가에 열 받았다는 것!

여기서 내 요구가 들어지지 않으면, 관계가 파탄 날 정도의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

‘확실히 인지하겠지. 내가 학교와 갈등 중이라고.’

총장에게 말을 이었다.

“그 둘이 누구의 편을 들어 줄지는 알아서 판단하십시오.”

과연 박람회 건에 대해서 총장이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을까?

‘최대한 조사는 해 보겠지.’

그러나 실행 가능한 방법은 아주 드물다.

총장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팔지 않는 것,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최악의 수라는 거지.’

과연 그가 막대한 홍보 효과를 포기할까?

총장의 머릿속에 이제 200만 불이 남아 있기나 할까?

“아! 물론 팔지는 않고, ‘아랍 왕자들이 탐을 낼 정도로 뛰어난 작품을 우리 학교 학생들이 만들었다.’ 이렇게 홍보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기사를 낼 수는 있겠지.

“하지만 믿어줄까요? 누가요?”

“미쳤다는 소리들을 걸요? 수억 불짜리 보잉기를 쇼핑하듯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고작 200만 불짜리를…….”

맘에 드는 데 사지 않을 인간들이 아니다.

루머처럼 떠돌다가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이다.

안티 기자를 만나면, 두고두고 까일 게 뻔하고.

총장이 물었다.

-지금까지 나는 최대한 자네 편의를 봐 줬다네. 그런데 이렇게 학교와 척을 져서 자네가 얻는 게 뭔가?

그와 똑같은 대답을 해줬다.

“학교가 저와 척을 져도 얻는 건 드물 겁니다.”

승부를 걸어왔는데, 예의를 차릴 것인가?

죽이고자 덤비면, 똑같이 대응해 주는 것이 예의이고, 버림받기 전에 버리는 게 이득 아니던가?

-자넨 자네가 만든 전통학과를 이대로 와해시킬 작정인가?

“와해라뇨?”

-학교에서 그 기반을 이루었는데, 그걸 어디로 옮긴다는 말인가? 돈이 얼마나 들어간 건지는 아는가? 이렇게 투자를 해줄 만한 곳이 또 있는가?

“총장님. 뭔가 착각하시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 착각?

“전통학과에서 중요한 것은 장비나 교사동, 그리고 투자금이 아닙니다.”

-…….

“사람입니다. 대목장 휘하의 장인들입니다.”

-…….

거기에 더 나아가, 또 하나의 착각은 전통학과가 내 약점이 될 거라는 계산일 것이다.

내 목적은 학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통장인들을 써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나는 총장과 대목장의 인맥을 통해서, 구하고자 하는 사람을 모두 구했다.

지금 내가 학교에 아쉬울 게 있을까?

“총장님.”

침묵하는 총장에게 말을 이었다.

“제가 학교에 전통학과를 만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인재의 수급이 쉽다는 거죠.”

-음. 그랬었군.

“제대로 투자금을 회수하고 싶으시다면, 투자를 확실하게 해 주십시오.”

“맘에 안 든다고 제가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마시구요.”

옮긴다는 말에 기분이 상해서였을까?

그의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건 너무 경솔한 생각이 아닐까? 생각처럼 그리 쉽지는 않을 텐데.

나를 염려하는 듯하지만, 여기 아니면 갈 곳이 어디 있느냐는 우회적인 말이었다.

‘흥. 저를 대책도 없이 말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셨다면, 너무 띄엄띄엄 보신 겁니다.’

냉소를 띄우며 말했다.

“여기 울산 시장님 와 계신데, 받아주실 의향이 있는지 여쭤볼까요?”

-응? 시장이 거기를 갔다고?

“네. 아까 오셨는데, 모르셨던 모양입니다.”

‘시장은 처음 대목장이 올 때부터 탐을 냈었지.’

오죽하면 대목장을 컨택할 때부터, 경주까지 따라와서는 설레발을 쳤었다.

총장이 가장 경계했던 인물도 시장이었고.

‘시장이 내 부탁을 안 들어줄까?’

-거 참. 그 양반…….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기는…….

총장이 이마를 훔치는 모습이 머리에 선했다.

하지만 아직 내가 바라는 투자 약속은 나오지 않았다.

‘아직 여유가 있으시다, 그거지?’

총장에게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마침 저기 가시네요. 시장님!”

대목장이 내 시선을 쫒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시장을 찾으려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없자, 내게 물었다.

“성훈아. 시장이…….”

시장이 있을 리가 있나?

지금쯤 아랍 왕자들 만나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그냥 나 혼자 원맨쇼 하는 거였다.

눈치 없는 최 옹만 휘둘렸을 뿐이고.

‘쉿!’

조용히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그의 말을 막았다.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신 모양이네요. 그럼 먼저 시장님과 면담해 보는 수밖에요.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잠깐! 잠깐만 성훈 군. 아직 내 말이 안 끝나지 않았나! 끊지 말게.

‘참! 꼭 이렇게 다그치지 않으면 안 된다니까, 능구렁이 같은 양반!’

총장 같은 능구렁이를 상대할 때는 생각할 틈을 줘서는 안 된다.

약간의 시간만 있어도,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 버리니 말이다.

그러고도 그는 시간을 끌었다.

3초가 지났다.

“아! 시장님. 안녕하세요. 네. 아직 통화중이라서. 네. 곧 끝납니다.”

있지도 않은 시장에게 인사를 했다.

그제야 눈치를 챈 최 옹이 썩은 미소를 지었다.

“다름이 아니라, 여기 대목장께서 만든 전통…….”

총장이 고함을 질렀다.

-해 주겠네! 원하는 건 모두 해 주지! 투자! 해 준다니까. 당장 올해부터 해 주지.

“정말요?”

되묻는 내 말에 총장이 급히 소리를 낮췄다.

혹시라도 시장이 들을까 싶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시장하고는 한 마디도 하지 말게. 부탁일세. 성훈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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