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83화
변화(01)
승범이 말했다.
“성훈아, 네가 결정해라.”
“뭘?”
“우리 진로. 그렇게 하기로 우리끼리 의견을 모았다.”
성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내게 자신들의 진로를 맡기려고 하는 걸까?’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승범이 답했다.
얼굴에 확신의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이다.
“그게 가장 좋은 결정이 될 것 같거든.”
따라갈 수 있는 리더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리더가 믿을 만하다면, 그 이상의 선택지가 또 있을까?
여기 모인 50명은 모두 성공을 위해 달리는 자들이었다.
그 첫걸음은 당연히 취업이었고.
최고의 기업에 입사하기를 원했고, 최고의 몸값을 받고 싶어 했다.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안 해본 것이 뭐가 있을까?
학점. 토익. 스펙 쌓기.
그리고 인맥과 연줄까지.
그러나 그들이 최근 일을 겪으며 내린 결론은 허무하리만치 단순했다.
‘우리가 4년 동안 죽을 똥을 싸면서 이뤄놓은 것보다, 녀석과의 일 개월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거든.’
물론 그 당시는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부족한 잠에, 성훈과 비교되는 자괴감,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불확신.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놈이었던가?’
하지만 힘들었던 기억은 지나면 추억이 된다.
심사숙고 끝에 결론을 내렸다.
‘우리들만으로는 불가능해. 지난 한 달보다 더 충만하고 가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가 없어.’
그게 팀원들의 머리를 맞댄 결론이었다.
물론 보람의 한마디도 결정적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 언제였는지 알아? 바로 지난 한 달이야.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어금니가 닳아 없어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으니까.
보람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었다.
‘난 계속 그렇게 빛나고 싶어. 그래서 난 성훈이가 가는 곳을 따라가야겠어. 설령 그게 죽을 것처럼 힘든 곳이라도 말이야!’
***
승범에게 물었다.
“너희들 모두의 의견이야?”
50명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죽음이라도 각오한 녀석들처럼.’
녀석들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서, 머릿속으론 계산기를 두드렸다.
분명히 다른 길은 있었다.
아직 다른 기업들은 우리에게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다.
내가 현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지금까지 만들어둔 기반 때문이다.
녀석들은 다른 곳의 조건도 들어보고 서로의 장단점을 파악한 후에, 내게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그걸 기다리지 않았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거야.’
이건 수동적이거나 피동적이라는 문제가 아니다.
그저 신뢰다.
그것도 무조건적인 신뢰!
머리 한 쪽에서 말했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나를 따라 오겠다?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인상을 하면서도 내 뒤를 따르겠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뭐냐?
‘지금까지 해 온 정도의 일은 충분히 견딜 수 있다는 거지.’
한 달 동안의 미칠 것 같은 강행군이 녀석들을 단련시켰다.
절로 지어지는 웃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괜찮잖아. 이런 것도. 정예병은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거든.’
이들을 갈취해 내 이득을 구하는 거라면 부끄러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거든.
내가 그들을 신뢰해 준 만큼, 녀석들도 내게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걸맞은 응답을 해 줘야지.’
그들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많이 힘들었지?”
승범의 그늘진 눈 밑이 꿈틀거렸다.
‘몰라서 묻는 거냐? 지금.’
어이상실과 분노가 섞인 묘한 눈빛으로 내게 답했다.
“그런데 말이야. 이제껏 해 온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어. 그건 연습이거든. 연습.”
쿵!
50명의 심장이 덜컥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눈동자가 잠시 경련했지만, 동요는 이내 진정되었다.
승범이 입을 비집고 나오려는 신음성을 누르며, 고개를 뻣뻣하게 들었다.
“할 수 있…… 어. 까짓것.”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승범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들의 결심에 부응해 주리라 마음먹었다.
‘좋아. 그럼 더 혹독하게 훈련시켜 주지.’
지금부터 다시 일 년이 지난 후에 녀석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때도 이런 각오가 서 있다면, 난 새로운 수준의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일심동체라고 했던가?
승벙은 등 뒤에 있는 팀원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성훈이 내주는 시험!
쉽지는 않겠지만, 모두 극복해 주지.
‘과연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걸 뛰어 넘을 수 있는 한 마디.
‘그래봐야 죽기 밖에 더 하겠어?’
대충 대충 부품처럼 살면서, 그렇게 신에게 허락된 시간을 때우다가 병석에서 늙어 갈 텐가?
그게 진정 행복이라 생각하는가?
승범의 이 질문에 모두 고개를 가로 저었었다.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
‘명성도 얻고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다고!’
‘죽어도 좋으니, 나를 불태워 보고 싶다고!’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젊음.
그러나 아무도 그 에너지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당한 가치로 환산해 주지 않는다.
100의 일을 했지만, 50을 지급한다.
그게 이 사회의 룰이라고 말한다.
수요 공급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어진다.
허공으로 사라진 50의 가치가 아까워진다.
스스로를 불태워야 할 동기가 사라진다.
그렇게 사회의 부품이 되어 소모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렇게 늙어 흙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아니 다르게 살 기회가 생겼다.
사회의 룰?
그건 그 사회의 룰이 되었다.
왜냐고?
‘그게 몽땅 개소리라는 걸, 성훈이 증명했다고.’
박람회가 끝나면 창고에서 썩어 가리라 생각했던 그 작품들을 아랍의 부자가 사겠다고 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 200만 불에.
그걸 성훈이 코웃음 치면서 거절했다고.
사는 사람이 갑이 아니라, 파는 놈이 갑인 경우는 승범의 입장에서는 살다 살다 처음이었다.
성훈의 입장은 간단했다.
‘당신이 만들 수 있으면 만들든가!’
그럴 자신 없으면 돈 들고 와서 사가라.
‘그 순간에 내 몸값이 수직 상승했다고.’
연봉 2,000만에서 월봉 2,000만으로!
압둘은 그러고도 부족하면 말하라 했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해 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현재 사장? 회장?’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잠재력은 인정하되, 가격을 깎으려 들 것이다.
그게 상인이니까.
하지만 성훈은 상인이 아니다.
상인으로 하여금, 제대로 된 값을 지불하게 만든다.
그 대상이 아랍의 부자이든, 기업이든 상관없이!
병석에서 손주들 보면서 늙어죽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아느냐! 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
이렇게 되묻겠다.
‘그게 어떻게 행복이냐?’
늙어서도 정정한 모습으로, 할아버지의 무용담을 이야기해 줘야지!
손주들에게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할아버지. 진짜야! 저 건물을 진짜로 할아버지가 만들었어?’
입을 딱 벌린 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대형 스크린을 가득채운 건물을 가리키겠지.
그때, 직접 지은 자가 아니면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야.
거짓말 같은 진짜 이야기가 손주 녀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것이다.
현장에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 투성이니까!
특히나 성훈의 현장이라면 두말 할 필요도 없지!
‘그때! 이 할애비가 말이야.’
수 세대를 걸쳐 내려가도 지겹지 않을, 전설 같은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이게 젊음이고, 그게 야망 아니던가?
내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성훈의 손을 잡는다.
‘이 녀석이 우리를 어디까지 끌고 들어갈지, 나는 감히 가늠할 수 없어.’
녀석이 우리를 인도하는 곳은 지옥의 밑바닥일 수도, 천국의 꼭대기일 수도 있다.
녀석이 질주를 멈추는 곳에 결과가 있을 것이다.
중간 중간에 확인할 수 있지 않냐고?
그와 동행해 본 사람은 모두 똑같이 말한다.
‘옆에 돌아볼 틈 따위는 없어. 따라가기도 숨차!’
목적지에 도달해서야 알게 되겠지.
녀석이 신인지 아니면 마왕인지.
신이면 천국일 것이고, 마왕이면 지옥일 테니까.
설령 마왕이라고 해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60년 뒤에 말이야. 누군가가 내 평생 가장 잘한 선택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성훈을 따르기로 한 것을 꼽기에 주저하지 않을 것 같거든.’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 절호의 찬스, 그게 지금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내일은 또 어떤 재미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팀원들과 눈을 마주쳤다.
이제는 눈만 봐도 생각이 읽힌다.
왜냐고?
한 달 간의 특훈 때문이다.
시간이 부족하니 일일이 말로 설명할 것조차 우리는 아까워했었다.
‘그리고 깨달았지.’
때로는 눈빛이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는 걸.
말이나 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뉘앙스까지도.
척하면 척!
딱! 딱! 딱!
끝!
수고했어. 박수! 짝짝짝!
말이 왜 필요한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녀석들도 나하고 똑같은 생각을.’
***
이제 박람회는 끝났다.
이 후에 진행될 일을 진행해야 할 때였다.
최 옹에게 물었다.
“어르신, 학과 창설은 잘 되어 가세요?”
“그래. 잘 되어 가고 있지.”
실질적인 자금이나 시스템은 학교에서 지원하지만, 장인들이 그에 능동적으로 적응을 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학과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두우세요?”
“엥? 내가 표정이 어두워? 그럴 리가.”
그는 감추려고 했지만, 내 눈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학과 창설의 문제는 아니라고 했으니, 다른 문제일 터!
“무슨 문제가 있는지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보세요. 혹시 알아요? 제가 도움이 될지?”
내게 전통건축학과는 끊임없이 장인들을 공급하는 인재풀이 될 예정이었다.
그 시작에 삐걱거리는 소음이 발생하기를 원치 않았다.
“흠. 굳이 이런 걸로 자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은데 말일세…….”
이렇게 대목장이 얘기를 꺼낸 것은 고가의 기계 장비를 구입하는 문제였다.
“오억 정도가 있으면 된다는 말이네요. 학교에 구입해 달라고 하시면 되잖아요?”
대목장이 눈썹을 으쓱이며 말했다.
“안 해 봤겠나?”
저 표정은 분명히 반려를 당한 거다.
‘총장, 이 양반이! 데리고 올 때는 무조건적인 지원을 해 준다고 해놓고는.’
최 옹이 말을 이었다.
“이미 학교에서는 우리 때문에 돈을 많이 썼지. 암.”
어떻게 총장에게 설득을 당했는지 몰라도, 반려가 당연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총장에게 미안해하는 표정도 보였다.
‘이 능구렁이 같은 양반이!’
내가 없다고, 순진한 최 옹을 구워삶았다 그거지!
세상 법 없이도 살 양반인데, 그걸 이용해?
살짝 열이 올랐다.
“총장이 뭐라고 하던데요?”
최 옹이 입을 다시며 말했다.
“쩝! 학과를 만드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지출이 있었다고 하더군.”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 지금은 안 어렵고, 다음에 구입해 주겠다고 하더군.”
정치인과 행정가의 입에 붙은 말이다.
‘다음에.’
내년에는 또 ‘다음에’를 반복하겠지.
‘이미 박람회로 이슈를 탔다 그거지?’
본전을 뽑았으니, 더 이상 투자하기 싫다는 말이리라.
“총장이 직접 그랬어요?”
최 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무 뭐라 하지는 말게. 총장도 할 만큼 했지.”
그는 이미 욕심을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이만큼 해 준 것만 해도, 어디냐?’ 하는 얼굴.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건 어르신 생각이시구요.’
학교에 돈이 모자랄 리가 없다.
없으면 꿔서라도 메꾸는 곳이 학교다.
매년 입학하는 신입생의 입학금으로 자금이 빵빵할 것이고, 정 없다면 대출이라도 한다.
대학의 신용도가 얼마나 높은데!
‘그냥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말이잖아. 지금 누굴 핫바지로 보시나!’
다른 과에서 징징댔겠지.
왜 전통학과에만 투자 하냐. 우리도 해 달라.
총장도 전체를 조율하는 입장이니, 다른 학과와의 형평성을 고려했겠지만, 나하고의 약속을 어기면 곤란하지.
‘입장은 이해해. 하지만 납득이 안 된다고.’
힐끗 쳐다본 최 옹의 이마에 주름이 늘어 있었다.
잠시 박람회에 몰두하는 사이, 혼자서 자금을 조달하려고 전전긍긍했던 모양이다.
대목장 주변에 돈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그리고 투자해 줄 사람은?
당연히 없지.
“그런 일이 있으셨으면 저한테 말씀을 하시지.”
안쓰러워하는 내게, 그는 더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도 양심이 있는데, 그럴 수야 있나. 잠도 제대로 못자고 다니는 사람한테.”
이렇게 순박한 사람한테 말이야.
인내하고 노력해서 성과를 내는 착한 사람에게는 상을 줘야 한다.
‘넌 잘 참으니, 좀 더 참으라고 할 게 아니라.’
이렇게 성과를 내는 우리를 뒷전으로 밀겠다고?
다른 과에서 학교를 위해 한 게 뭔데!
수화기를 들었다.
“어디다 전화하려고?”
“총장한테요. 당장 내놓으라고 해야죠.”
“그럴 필요까지야. 다음에 해준다고 하는데.”
순진한 대목장의 말에 코에서 콧김이 나왔다.
“다음은 다음이구요.”
그가 나를 만류했다.
“너무 우리 편의만 찾으면, 다른 과에서 우리를 이기적이라 하지 않겠나?”
잘 뛰는 말이 당근을 먹겠다는데, 거기서 이기적인 게 왜 나와요?
달리지도 않는 것들이 똑같이 당근 먹겠다고 덤비는 게 더 이기적이지.
말리는 손을 뿌리치며 버튼을 눌렀다.
“내 권리 내가 찾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요.”
칙사 대접을 해 줘도 시원찮을 판에, 예산을 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