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82화
마지막 방문자(05)
이대로 가다가 성훈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회장이 탐내는 것은 둘째 치고, 현재 건설로 들어올 가능성도 희박해질 것 같았다.
제 입으로 현재 말고도 건설사는 많고, 해외에도 갈 곳은 많다고 말하고 다니던 놈이었다.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던 놈이, 제 맘대로 할 수 없는 회사에 들어오려고 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성훈의 행동으로 미뤄 짐작했을 때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회장은 건축보다 더 크고 화려해 보이는 것에 성훈이 메리트를 느낄 거라 판단하는 모양이지만, 그가 알고 있는 성훈은 전혀 다른 인간의 부류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게 통했을지도 모른다.
남들에게 건축은 성공을 위한 수단이었을지 몰라도, 그가 판단한 성훈은 건축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돈을 마다하고 저작권을 고집할 리가 없지 않겠어?’
성훈을 일반적인 부류와 똑같이 생각하며, 미끼를 던지는 회장에게 제동을 걸 필요가 있었다.
‘아버지, 출발 자체가 잘못 되었습니다. 녀석은 권력이나 돈 따위에 관심이 없습니다. 건축에 대한 흥미라면 몰라도 말이죠.’
미끼란, 사냥감의 흥미를 유발할 때 의미를 가진다.
코끼리를 잡는데 소고기를 미끼로 써서야…….
A++등급을 갖다 놔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도리어 비린내에 다가오지도 않을 것이다.
“회장님, 지금 녀석은 경영이나 기획에 관심이 없습니다.”
회장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야망 없는 인간은 저렇게 성장할 수 없거든.”
“분명한 건…… 지금은 관심이 없습니다.”
“흠, 그건…….”
“굳이 가지 않으려는 길을 억지로 끌고 가서 흥미를 잃어버리게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회장에게 말을 이었다.
“일단은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고, 그다음에 흥미를 가지게끔 유도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강요보다는 살살 구슬리라, 그거군.”
“그렇습니다. 설령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곳으로 가게 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어차피 우리가 데려가지 못하면, 적이 되어 나타날 테니까.”
어디로 가든 한자리할 놈인데, 적이 되어 나타난다면 그보다 머리 아플 일이 또 있겠는가?
사장이 말을 이었다.
“오늘만 날이 아니질 않습니까? 나중에 천천히 회유하심이 나을 것 같습니다.”
사장의 간곡한 부탁에 회장도 마음을 고쳐먹었다.
‘일단 들이고 볼 일이지’
돈을 땅바닥에 버리는 한이 있어도, 제대로 된 인재는 절대로 버리면 안 된다.
회장이 욕망을 억눌렀다.
“나는 저 녀석이 탐난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네? 그걸 왜 제게…….”
“네가 저놈에 대해 제일 잘 안다면서?”
약 올린 건 회장이면서 사장에게 답을 내놓으라 하고 있었다.
“끙.”
하나 지금으로서는 놈을 달래는 게 급선무였다.
녀석이 들어오면 맡기려고 벌써 프로젝트팀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양 이사와 곽 이사를 필두로 말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지.’
당장 성훈을 달래기 위해 무리수를 강행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회장님, 저는 녀석에게 특채 4명을 약속했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네. 나머지에게도 5%의 가산점을 약속했다면서. 그런데?”
“회장님, 장수를 제압하려면 말을 쏴야 하는 법입니다.”
회장이 대번에 알아들었다.
“사람 수를 좀 늘리자는 말이렷다.”
“네, 그렇습니다.”
사장의 말에 회장이 다른 사장들을 돌아보았다.
“다른 사장들 생각은 어때?”
의견을 물어본다는 것은 다른 계열사로 인원을 분담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리 회장이라고 해도, 각 계열사의 경영자들은 존중해 주어야 하는 법!
물론 그래 봐야 결정은 회장의 뜻대로 나겠지만 말이다.
정유 사장이 물었다.
“저희들도 특채 고용을 분담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왜? 싫으냐?”
언짢은 듯한 회장의 말에 모두 말꼬리를 흐렸다.
“싫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오라 저희는 인원이 이미 다 찼습니다. 그리고 저렇게 대규모 인원을 받아들였다가는 기껏 정리해 놓은 내년 계획이…….”
회장이 그의 말을 끊었다.
“됐고, 조선은?”
“그게…… 기계과와 전자과는 검증이 되었습니다만, 나머지는 아직 모르는 것 아닙니까?”
검증되지 않은 인물을 회사로 들여, 격을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다.
조선 사장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이 제안 자체가 건설 사장에게서 나온 것 아닙니까? 그걸 왜 저희가 떠안아야 하는 겁니까?”
건설에서 나온 일이니 스스로 책임지라는 그 말이, 건설 사장은 오히려 반가웠다.
말만 하지 않았을 뿐, 은근히 그리 되기를 바라지 않았던가?
말이 장수를 따라가는 것이 이치에 부합하겠으나, 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면 반드시 장수를 따르라는 법이 있는가? 장수가 따라올 수도 있지.
그리고 그는 성훈의 마음이 일편단심 건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성훈을 차지할 가장 높은 가능성은 자신에게 있었다.
이 위기만 잘 모면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그룹에 빼앗기지만 않으면 돼!’
성훈과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건설은 어떻게 생각해?”
그가 고민하는 척하며 말했다.
“셋째 형님 말씀대로, 제가 꺼낸 말이었으니, 제가 해결하도록 해보겠습니다.”
회장이 염려하듯 물었다.
“되겠어? 50명인데?”
50명이 대수일까?
하지만 그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꺼냈다.
최소한 망설이는 척은 해야 했다.
“좀 부담되기는 합니다만…….”
“그러면 다른 계열사와 분담해도 돼, 허락한다.”
그 말에 다급히 양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어찌 그런 민폐를…… 괜찮습니다.”
‘말이 50마리나 되어서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이 정도에 흔들릴 현재 건설이 아니지.’
데리고 가려면 모두 한꺼번에 데려가는 것이 나았다.
적어도 그러면 성훈의 눈길이 한 번은 더 갈 것 아닌가?
저들의 동료 의식도 보통이 아닌 것 같으니, 자신의 생각이 확신으로 굳어졌다.
‘녀석! 네가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목장을 만들어주지.’
아니, 오히려 녀석들을 영입함으로써 성훈을 영입할 가능성을 높일 수만 있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회장이 말했다.
“그럼 결정 났군.”
성훈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 있는 팀원들 전원, 우리 현재로 영입하고 싶은데? 성훈, 자네 생각은 어떤가?”
승범을 비롯한 팀원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전원이래, 전원!”
“가산점이 아니라, 전원 특채?”
현재의 제안을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이처럼 파격적인 제안이 또 있을까?
성훈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상의를 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상의?’
회장을 비롯한 사장단의 얼굴이 뚱해졌다.
‘그런데도 아무도 녀석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회장이 승범에게 물었다.
“자네들, 현재의 가산점 때문에 이 박람회를 시작한 것이 아니었나?”
“맞습니다.”
“특채를 원하고 있다고 들었네.”
“그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상의하자는 말에 왜 아무도 말도 하지 않는 건가?”
“이 결정이 우리의 평생을 좌우할 겁니다.”
그만큼 의미가 있는 제안이었다.
“저는 그 결정을 성훈과 깊이 있게 상의해 보고 싶습니다.”
성훈을 바라보는 승범의 눈빛은 신뢰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성훈이 어떤 결정을 해도 따르겠다는 그런 표정으로.
‘허허, 이거 참.’
성훈이 물었다.
“회장님, 전원이 아니라도 상관없겠죠? 개개인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흥분에 동요되지 않은 차분한 물음이었다.
상의를 하는 것도 모자라서, 거부할 수도 있다고?
‘이거, 우리가 녀석들을 뽑는 건지, 우리가 녀석들에게 선택되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군.’
하지만 자존심 상한다고 뱉은 말을 철회할 수는 없는 법.
“깊이 잘 생각해 보게. 그런데 성훈 군, 자네는 어떤가?”
“뭐가 어떻다는 말씀이신지?”
“자네는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네.”
성훈이 담담하게 말했다.
“현재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 알겠네.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네. 그리고 박람회는 수고가 많았네.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회장이 돌아갔다.
***
회장의 차가 나가는 곳, 사장단이 줄줄이 도열해 있었다.
그가 사라지고 나면, 자신들의 사옥으로 돌아가 바쁜 업무를 처리해야 하리라.
회장의 차가 그들의 앞에 멈춰 섰다.
왕비서가 조수석에서 내려 그들에게 말했다.
“회장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잠시 모여 주시겠습니까?”
현재그룹의 사장단이 회장의 차 앞에 섰다.
리무진의 뒤창이 스르르 아래로 내려갔다.
회장이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아까 말을 하려다가 보는 눈들이 많아서 못했던 말이 있다.”
사장들의 눈에 긴장감이 서렸다.
혹시 꾸중을 하려는 것일까?
회장이 입을 열었다.
“다섯째야.”
부름에 건설회장이 앞으로 나아갔다.
“네, 회장님!”
“아까 그놈. 사위로 삼고 싶다.”
예상치 못한 말에 건설 사장이 뜨악했다.
“갑자기 그런 말씀을…….”
“데리고만 와! 내 지분의 10%를 주지.”
파격적인 제안에 그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엑!”
이것이 언제나 냉철한 판단만을 내리는 회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란 말인가?
“회장님, 그 친구에게 무슨 그런 가치가 있다고, 그리고 왜 다섯째에게만 그런 특권을 주십니까?”
건설 사장에게 주어진 특권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하자, 회장이 피식 웃었다.
‘녀석의 가치도 제대로 모르는 것들이.’
하지만 기회는 동등해야 하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너희들도 시도하거라. 어떤 놈이든 좋다. 녀석을 데리고 오면 10%.”
그 말은 그룹 경영의 권한을 더 주겠다는 말과 같았으며, 차후에 이루어질 후계 구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파격 발언이었다.
“하지만 저는 딸이 없잖습니까? 아버지.”
딸 없는 중공업 사장이 하소연했다.
“양자로 삼든, 양녀로 들여서 사위를 삼든, 그건 아무 상관하지 않겠다. 내 앞에만 데리고 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장이 있을까?
성훈이라는 생판 모르는 사람을 후계 경쟁에 끼우겠다는 말과 같았다.
혹은 그만큼의 비중을 주겠다거나.
10%가 아닌 5%만 가져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데, 10%라니!
이건 그냥 물려주겠다는 의지와도 같았다.
중공업 사장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회장님, 그 친구가 뛰어난 건 인정하겠는데, 그렇다고 우리와 경쟁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허 참! 이놈들 말하는 거 보게나.”
회장은 기가 찬다는 듯, 혀를 찼다.
그리고 으르렁거렸다.
“네놈들 중 누구 한 놈이라도, 저 나이에 그 녀석보다 나은 놈이 있었냐?”
“아버지, 그건…….”
“그만큼 교육을 시키고, 경제적 지원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천둥벌거숭이 같은 그 녀석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낸 놈이 있었느냐는 말이다!”
마지막 말은 호통에 가까웠다.
기량이 다른데, 경쟁 자체가 될 리가 있으랴!
지금도 위태로운데, 시간이 흐르면 녀석은 완전히 괴물이 되리라.
“아까 녀석들을 다 뽑은 것도 불만이 많겠지. 내가 왜 저 녀석들을 다 현재로 뽑으라고 한 줄 알아?”
“그야 실력이 있으니까.”
“실력은 당연한 거지. 그런데 내가 묻는 말에 녀석들이 뭐라고 답했는지 기억나나? 모두 성훈이가 시켜서 했다고! 모형도 성훈이가 시켜서, 갑돌이도 성훈이가 시켜서. 모든 일의 시작이고, 모든 일의 끝이 되는 놈이라는 말이다.”
회장이 탄식하듯 말을 이었다.
“우리 회사에 저런 놈 있어? 성훈이 그 녀석 하나만 있어도, 웬만한 기업보다는 나을 거다.”
흥분한 회장의 어조가 빨라졌다.
“그럼 저런 놈이 졸업하면 뭐하겠어?”
대답이 필요할까?
“사업하겠지. 그럼 일 등을 목표로 하겠지! 네깟 놈들이 털리는 건 순식간이야! 알아? 우리는 지 쫄다구들을 모셔간다고 했는데, 그 쫄다구들은 저놈이 부르면 당장에라도 달려갈 기세라고.”
가장 다루기 어려운 자들이 돈에 움직이지 않는 자들이다.
회장이 신음하며 말을 이었다.
“저놈들 다 데리고 와도, 성훈이 저놈을 못 데리고 오면, 우리는 계속 폭탄을 안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건 너무 과장된 우려인 것 같…….”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무조건 내 앞으로 데리고 와! 우리 사람이 안 되면, 몇 년 내로 우리 최대의 맞수가 될 놈이다. 저놈이 구멍가게라도 내면, 네놈들이 잠이나 제대로 잘 것 같아?”
회장이 말하는 구멍가게는 그 스케일도 남다를 것이다.
차장을 닫기 전, 회장이 일갈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훗날 곽 이사는 이날의 일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나?
“거 봐! 왕 회장님께서 정말 당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면, 성훈 님을 그렇게 끌어들이려 했겠어? 노망이라도 드시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