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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81화 (281/427)

건축의 신 281화

마지막 방문자(04)

‘어디서 되도 않는 승부를!’

겉으로는 웃음을 터뜨리고 있지만 회장은 매서운 눈으로 사장을 책망하고 있었다.

항상 승부는 자신의 손으로 맺어왔었다.

붙지 않았으면 모르되, 이미 시작한 이상은 반드시 승리를 거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승자의 미덕인 법!

아량은 승자만이 베풀 수 있는 거니까.

사장이 민망함에 고개를 숙였다.

그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사죄를 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회장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되었네. 이 건에 대해서는 이따가 얘기하기로 하지. 지금은 때가 아니야.”

회장이 정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는군. 나가서 바람이나 쐬고 있게나.”

권고의 형식이었으나, 꼴 보기 싫으니 앞에서 사라지라는 축객령이었다.

몇 년을 모셔왔는데, 어찌 그 뜻을 모르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사장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뒷걸음질로 물러나 대기실을 나갔다.

남은 사장들의 눈에 희미한 미소가 고였다.

성훈을 바라보던 회장이 입술을 말아 올렸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

‘이 내가 지금 조바심을 내는 건가?’

방금 전에도 그랬다.

사장들은 회장을 앞에 두고 절대로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아니, 그의 지시가 없으면 움직이지도 않았다.

‘큰일을 하려면 행동이 가벼워서는 안 된다.’

그가 항상 원칙으로 내세우던 말이었다.

그 원칙으로 볼 때, 회장은 흥분한 중공업 사장을 말리고 혼을 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성훈을 흔들어 보기 위해 그의 행동을 묵인했던 것이다.

‘하나 이거 웬걸!’

도리어 보기 좋게 반격을 당하고 말았다.

일개 학생일 뿐이라고 생각을 해 만나기 전 녀석의 기를 너무 죽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했을 정도로 얕잡아 보고 있었다.

그는 승부가 끝난 후에 어떤 멋있는 모습을 보일까를 준비하고 있었다.

‘적당한 때에 승부를 매듭짓고, 경영자로서의 아량을 보였어야 했는데…….’

그러나 작전은 이미 틀어진 후였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대기실을 벗어나는 둘째를 보며 혀를 찼다.

“쯧쯧.”

둘째의 뚝심 하나는 인정했기에, 중공업을 맡겼던 것이다.

그리고 경영을 하면서 더 성장하기를 바라지 않았던가?

그러나 다섯째, 건설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좋게 보던 이미지 또한 반감되었다.

‘성훈이 녀석과의 인연이 둘째의 기숙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던가?’

기숙사를 잘 지었다고 소문이 나서, 구경하러 갔다가 만났다고 들었다.

어떤 녀석은 인재 하나를 구하려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데, 어떤 놈은 제 품에 굴러 들어온 호박을 밖으로 내친 꼴이 아닌가?

‘다섯째가 확인을 하러 갈 정도면 뭔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눈치챘어야지. 쯧쯧.’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재가 먼저였다.

건설을 잘하는 놈은 조선에 데려다 놔도 잘한다.

실무가 아닌, 관리의 영역에서 보면 절대로 그것이 옳았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을 잘 다루는 것이 관리자의 요건이었다.

회장 자신이 만능이던가?

자동차도, 건설도, 조선도, 반도체도.

그는 전문가가 아니었다.

사람을 다루는 데 전문가였을 뿐!

‘아둔한 놈!’

오늘의 일로 인해, 중공업 사장의 평가가 하향 조정되었다.

다혈질이기는 하지만 뚝심은 있는 녀석에서, 그냥 아둔한 녀석으로 말이다.

‘맡겨진 일은 끈기 있게 하지만, 그룹을 통솔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군!’

아직은 아무도 모르지만, 현재그룹의 후계 구도에 중요한 변경 사항이 생겼다.

물론 사장들은 대충 눈치를 채고 있었지만…….

회장이 물었다.

“우리 사장들 생각은 어떤가?”

“실력이 있는 건 같기는 한데, 제 분야가 아니라 뭐라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제각각의 의견을 내놓았다.

한국에서 머물 인재가 아니라는 김 소장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세계라는 벽은 높아만 보였고, 자신들도 넘지 못한 벽을 일개 학생이 깨뜨렸다고 납득할 수 없었다.

건설 사장만이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건 형님들이 저 녀석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괜히 압둘과 알리 왕자가 성훈의 곁에서 맴도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는 굳이 그걸 설명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굳이 다른 계열사까지 세계화로 나갈 필요는 없잖아!’

아직은 다른 사람들이 성훈의 진가를 모르는 것이 중요했다.

성훈이 날개를 펴는 것은 자신의 품에 들어온 뒤여야 했다.

그런 건설 사장의 꿍꿍이를 눈치챈 회장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쯧쯧. 그러니까 아직도 우리 그룹이 세계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지.’

하지만 정보도 힘이다.

그걸 바탕으로 경영 계승의 순위가 매겨지는데, 자신의 정보를 오픈하는 것도 바보가 하는 짓이리라.

***

‘승부가 났군.’

성훈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회장을 바라보았다.

‘어때요? 우리 팀원들의 실력이?’

승부를 건 사람은 중공업 사장이었지만, 그것을 승인한 자는 회장이었다.

그 승부를 통해 우리 실력이 세계에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었다.

회장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자신감도 있고, 그걸 받쳐 줄 실력 또한 충분해.”

승부를 결정지은 승범과 정민은 물론이고, 다른 학우들의 눈에도 자부심이 복받쳐 올랐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입을 열면 환호의 함성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였다.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저 소장은 NASA에서 온 사람이라잖아. 그런 사람에게 인정을 받은 거라고.’

지금까지 성훈의 말을 들으면서도 반신반의했었다.

그럴 수밖에 없질 않은가?

한국의 귀퉁이에 있는 조그마한 대학의 학생이 세계와 경쟁이 가능하다니, 누가 그걸 믿겠느냐는 말이다.

그들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우리 실력이 통한다고.’

한 달 동안 치고받으며 토론한 것들이, 실전에 적용했던 긴가민가했던 것들이,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회장의 인정으로 확인받은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현재그룹의 회장이라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도 될 것이다.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할 시간.

성훈이 말했다.

“아직 좀 다듬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정도면 꽤 쓸 만하지 않겠습니까?”

“쓸 만하다 뿐인가? 지금 당장에라도 현장에 투입할 수 있을 정도로군. 이러니 스티브 감독이 인정을 했겠지.”

“감사합니다.”

성훈이 모두를 대표해 고개를 숙였다.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다.

스티브에게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관심을 받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 정도의 품질을 갖추었기에 그의 인정을 받았다고.

‘뭐 어때, 선후는 바뀌었지만, 인정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잖아.’

하지만 회장은 이곳에 팀원들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었다.

‘그건 여흥일 뿐이지.’

왜 별 기대도 없던 박람회가 외신에서도 다루고, 한국에서도 연이어 신문의 첫 페이지를 차지할 정도로 유명세를 탄 것인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좋은 결과를 낸 것에는 그에 걸맞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고.’

그런데 웬걸, 기대도 하지 않던 인재가 여기에 있었다.

처음에는 잠깐만 둘러보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느 새, 성훈의 가이드를 따르고 있는 자신이 보였다.

그저 정신없이 자신의 작품을 보게 만드는 힘!

시작은 무용이었다.

‘화려하고 멋있었지.’

하지만 그게 메인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을 휘어잡고는, 그것을 놓을 새도 없이 바로 건축물로 이동해 버렸지.’

다른 곳으로 눈 돌릴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성훈의 가이드를 듣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 이후, 그가 박람회를 지켜보며 주목했던 것은 건축 모형의 완벽할 정도의 완성도도, 갑돌이 로봇의 뛰어남도 아니었다.

이 박람회에서 그들만이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아니, 주목받지 않을 수 없도록 판을 짜놓은 치밀함이었다.

그 치밀함으로 만들어낸 관객들을 향한 지배력.

가히 압도적이라 할 만했다.

휘하의 사장들, 모두 가이드가 끝나고 나서야 제정신을 차렸으니까.

그것이 회장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인도했던 것이다.

회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건 시킨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기계 장비를 잘 다루는 사람은 구할 수 있다.

시간과 비용의 문제일 뿐, 구하려 들면 언제든지 가능했다.

누구나 한 분야에서 몇십 년을 보내면 전문가가 되는 법이니까.

그런데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도 구하기 어려운 인재가 있다.

‘바로 이런 놈이지.’

시키지도 않은 짓을 척척 해내는 놈!

가만히 놔둬도 대형 사고를 치는 놈!

일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방식이 다른 놈!

회장은 녀석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젊어서 재능이 있으니, 한없이 건방지리라.’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성훈 자신은 나서지 않으면서, 그 공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그러면서도 동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말이지.’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리는 악마 같은 녀석!’ 이라 투덜거리지만, 그 기저에 깔린 성훈의 대한 무한 신뢰를 어찌 모를 수가 있으랴!

‘거기다 사람만 잘 다루는 게 아니더라고.’

건축과 학생이면 응당 건축을 잘해야 한다.

하지만 녀석은 서른이 안 된 어린 나이에, 건설 사장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큰 성과를 냈었다.

굵직한 설계를 몇 개나 했다니, 저만하면 발군의 인재이지 않은가?

건설 사장은 몇 번이고, 현재 건설에 어울리는 인재라는 말을 강조했었다.

‘그런데 아깝다고.’

저 뛰어난 능력을 고작 건축이라는 한 종목에다가 쏟아붓다니 말이다.

이러니 팀원들이 얼마나 실력이 뛰어나다 한들, 그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회장이 물었다.

“시작할 때, 무용에서 모형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더군.”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한 방편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무용수를 따라서 자네의 모형 설명을 듣고 있더군. 대단한 몰입감이었네.”

성훈이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래서 하는 말인데. 기획이나 경영 쪽에도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혹시 해볼 생각 없는가?”

“네?”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못한다고 생각했다기보다는 관심이 없었다.

건축 한 우물 파기도 어려운데, 다른 것이야 말할 필요가 있으랴?

“자네 역량에 비해서 건축이 너무 단순하지 않은가 하여 묻는 거라네.”

한국 산업의 전반을 휘어잡고 있는 회장에게, 건축은 단순한 일이리라.

혹여 성훈에게 더 큰 야망이 있는지 떠보는 것인지도 몰랐다.

“만약에 말일세. 입사를 했는데, 다른 일을 맡게 된다면 어쩔 것인가? 아무래도 회사의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우선 아니겠는가?”

하지만 성훈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뇨, 전 건축을 할 겁니다. 기획을 해도, 건축에 관련된 일이 아니면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 만약에 그룹의 경영에 참여하게 된다면, 영향력이 더 커질 텐데? 구미가 당기는 일 아닌가?”

성훈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관심 없습니다.”

회장이 속으로 웃음 지었다.

‘사람 마음이란 간사하지. 지금은 그래도, 실제로 들어와서 보면 관심이 갈걸?’

사장단들의 눈가에도 비릿한 웃음이 고였다.

‘끝났군, 저놈은.’

‘저런 놈은 회사에 쓸모가 없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면 회사를 왜 들어와? 기업이 제 놈 뒷바라지를 하는 곳이야?’

직원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 줘야 한다. 적어도 그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왕의 말대로 움직이지 않는 말은 필요가 없다.’

그것이 회장의 경영 방침이었다.

“회장님!”

“응?”

옆을 바라보니 건설 사장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건설 사장이 속삭이듯 말했다.

“이런 말씀은 안 드리고 싶었습니다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저 녀석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압니다.”

그동안 주의 깊게 지켜봐 왔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사장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저렇게 조용히 있으니 얌전해 보여도, 강골도 저런 강골이 없습니다.”

그는 미처 말하지 않았던 스타타워 저작관 사건과 현장에서 있었던 소장 퇴출 사건을 말했다.

회장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그렇다는 말이지? 내 맘에 쏙 드는 놈 아니냐?”

반대로 사장의 미간에는 주름이 팼다.

‘그러니까 말씀을 안 드린 거지요.’

회장과의 경쟁에서 이기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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