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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80화 (280/427)

건축의 신 280화

마지막 방문자(03)

사장의 도발에 승범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거! 어리다고 물로 보시네. 난 지난 한 달 동안 완전히 실전에 매달렸다고!’

성훈의 핀잔과 구박을 참아가며, 머리에서 잠자던 이론을 몽땅 현실로 구현시켰다.

하루에 4시간 자본 적이 없다고!

갑돌이같은 소형 로봇의 제작과 이론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현재 중공업 연구실장, 아니 그 할아버지가 온다고 해도 질 것 같지 않다고!

그의 자신감은 압둘 왕자의 베팅도 아니고, 스티브의 칭찬도 아니었다.

그 근원은 승범, 자신의 실력이었다.

성훈을 보며 고개를 쳐들었다.

‘해 보자. 성훈아! 저 양반이 네 진가를 모르시네.’

기계의 원리를 알고 모르고는 둘째 문제였다.

성훈은 눈이 하늘처럼 높았다.

이론은 개뿔도 모르면서, 어떻게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는지는 귀신같이 알고 있었다.

승범, 자신이 한 것은 성훈의 말도 안 되어 보이는 지시를 죽을 똥을 싸며, 실제로 만든 것 뿐!

‘내가 성훈이랑 작업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뭔지 알아? 이 양반아!’

그건 ‘어! 이게 가능하네?’였다구.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음에도, 성훈은 당연히 된다고 예상하고 있었던지, 피식 웃을 뿐이었다.

‘거 봐! 되잖아!’하면서!

그 때 승범은 성훈을 인정했다.

괴물 같은 놈이라고.

‘처음에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 놈인가 싶었다고. 사람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그런 녀석을 만족시키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데.

‘우리를 판단하겠다고? 당신네들이? 크게 만드는 것보다, 작게 만드는 게 백 배는 더 어렵다고!’

적어도 로봇의 제작에 있어서는, 한 걸음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NASA 정도면 몰라도, 고철 덩어리 같은 기계나 만드는 현재 중공업에게 밀려서야, 기껏 트레이닝해 준 성훈을 볼 낯이 없지 않겠어?

‘적어도 성훈이, 널 부끄럽게 만들지는 않겠어!’

그는 자객 예양(豫讓)의 말로 각오를 다졌다.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사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며, 여인은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이를 위하여 용모를 가꾼다.’

회장도 흥미가 돋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해 봐!”

중공업이 질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거기 퍼부은 돈이 얼마고, 쌓인 노하우가 얼만데 이런 애송이들에게 지겠어?’

오히려 기대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녀석의 냉정한 판단이 정말 냉정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상황의 풀림에 따른 기고만장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회장이라고 기계에 대해서 뭘 알겠나?

‘우리 연구실장을 상대로 선전만 해도, 너는 바로 스카우트해 간다!’

몇 년을 키워도 써먹기 어려운데,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면, 돈이 아까울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기대하는 또 하나!

‘부하 놈을 보면, 저 녀석의 역량도 보이겠지.’

호부 밑에 견자를 본 적 있는가?

훌륭한 장수 아래 겁쟁이 병사가 있겠나?

지금까지는 속을 알 수 없는 놈이었다.

‘능구렁이 같이 피해간다는 말이야. 양파 같은 놈!’

성훈이 승범에게 눈썹을 으쓱하며, 신호를 줬다.

‘해 봐! 당당해도 돼! 네 실력을 보여주라고!’

실력이 뒷받침된다면, 누가 뭐라고 할 텐가?

맞는 말을 하는데!

승범이 말했다.

“정민아. 갑돌이 여분 있지! 한 기만 가져와 봐!”

그에 대응하듯, 중공업 사장도 말했다.

“나가서 연구소 김 소장 들어오시라고 해!”

회장이 물었다.

“얼마 전에 NASA에서 극비로 스카우트했다는 그 사람인가?”

사장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회장님! 저도 그 사람을 여기서 써먹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쯧쯧. 흥분하기는.”

회장의 핀잔에, 스스로도 민망함을 느꼈다.

‘하긴 너무 과한 걸 수도 있지. 소 잡는 칼로 쥐새끼를 잡는 건데. 그래도 녀석들에게 수준 차이를 느끼게 할 수는 있겠지! 세계는 무슨 세계. 진짜로 세계가 어떤 건지 느껴봐라.’

결과는 당연한 것이고, 덤으로 성훈 때문에 불쾌했던 기분을 만회할 수 있으리라.

잠시 후, 승범과 김 소장이 논쟁에 들어갔다.

***

어느새 정민이 승범에게 가세해 있었다.

갑돌이의 렌즈를 이야기할 때, 성훈의 눈짓을 받고 잽싸게 논쟁에 끼어들었던 것이다.

“전자공학과의 김정민입니다.”

정민의 인사에 승범이 소개를 덧붙였다.

“이 친구가 갑돌이의 눈에 대해서는 총괄했습니다.”

그는 뒤통수를 긁으며, 머쓱하게 웃었다.

“사실 저도 눈 부분은 잘 몰라서요…….”

그러나 눈 이외의 로봇 본체를 이야기할 때만큼은 눈을 매섭게 뜨고 덤벼들었다.

‘울산에 있는 지방대라고 들었는데, 어디서 이런 괴물들이 튀어나왔지?’

KAIST를 졸업하고, NASA에서 근무하다가 마지막 근무지로 현재 중공업을 선택했다.

조국에 대한 빚을 갚는다는 마음도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똑똑하다는 놈들은 다 만나 봤는데, 이 녀석들은 한국에 머물러 있어야 할 수준이 아니었다.

하물며 지방대라면 말해 무엇 하랴!

‘내가 미국에 가 있는 사이에 새롭게 명문이 된 곳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론이 탄탄한 것은 물론이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신선하지 않은가?

명문 공대가 아니면,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 아니던가?

‘녀석들은 분명히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럼에도 문제점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정론을 깨부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려들었다는 추측을 쉽사리 할 수 있었다.

그의 감상은 이것이었다.

‘무식하게 두드려 부쉈네.’

그 둘 앞에서 이론이나 원리, 정석이라는 말은 무의미했다.

NASA에서 처음 느꼈던 정체성 혼란의 느낌!

자신을 깨어 부셔야만 했던, 그때가 생각났다.

‘킴! 이론이 뭐가 중요해? 과학이 되었든, 마법이 되었든, 결과만 만들어 내면 된다고! 아흑! 이럴 때는 마법이라도 쓸 수 있으면 좋겠어!’

이런 얼토당토않은 말을 뱉은 사람은, 그가 처음으로 NASA에서 사귀었던 친구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던 션(Sean)이, 지금은 NASA의 연구소장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기본을 벗어나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

기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신에게 션은 도리어 머리가 굳었다며 잔소리를 하지 않았던가!

‘이 멍청한 친구야! NASA에서는 우주를 목표로 한다고! 지구에서 통하는 상식이 반드시 기본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 이론 따위 알게 뭐야! 난 결과를 만들고 싶다고! 뉴턴이 만유인력을 말하기 전에 지구 중력에 대해서 생각이 해 봤겠어? 폭넓게 생각하라고!’

그런 션을 둘이나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

‘난감하군.’

고작 해야, 대학생 둘이었다.

승범과 정민이 김 소장을 궁지로 몰고 있었다.

그리고 분위기는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토론의 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기계 전공이 아닌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가 있었다.

알 수 있는 것은, 승범과 정민이 김 소장과의 토론에서 거의 밀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사장의 눈가가 미세하니 파들거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저런 애송이들이 연구실에서 가장 베테랑인 김 소장을!’

사장이 아는 한, 김 소장은 현재 중공업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최고의 인재였다.

김 소장이 갑돌이의 렌즈를 보며 물었다.

“그게 어떻게 말이 되나? 완전히 기본 이론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

승범이 도리어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물었다.

“여기 이렇게 했잖아요!”

정민도 그 말을 거들었다.

“소장님! 저희도 무작정 말씀드리는 것 아니에요. 직접 해 보고 말씀드리는 거라니까요. 이렇게요.”

조이스틱의 조작에, 렌즈가 이동을 반복했다.

위잉! 윙!

미세한 소음이 들리고, 모니터가 잠시 흐려졌다가 이내 맑아졌다.

단 0.1초!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끄응. 완전한 실시간이군.”

“하지만 모터에 부담이 너무 많이 가서, 좀처럼 이렇게까지 사용하지는 않아요. 또 교체를 자주 해야 하는 단점도 있고요.”

김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렇게까지 토크 값을 올렸으니, 당연한 거겠지. 하지만 중요한 건, ‘할 수 있다.’는 거지. 모터의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

승범과 정민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렇죠? 이해하시는 군요. 저희도 이거 때문에 교수님들께 많이 혼났거든요.”

소장이 소탈하게 웃었다.

“교수님들도 혼내실 만도 하지. 그렇게 막무가내로 공식을 분리 조립했는데.”

경쟁자가 아닌 후학에게 말하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허허. 그런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나? 보통은 하기 어려운 생각일 텐데.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일세.”

승범이 성훈에게로 눈을 돌렸다.

“이건 우리 팀장 생각입니다. 저희는 저 친구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관철한 것뿐이죠. 그가 없었다면 이런 결과는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겁니다. 절대로!”

강하게 확신하는 승범의 말에, 소장이 신음성을 흘렸다.

“그랬던 건가? 시킨다고 만든 것도 대단하지만, 그런 무모한 생각을 했다는 게 더 놀랍다고 생각했더니. 코치가 있었던 건가?”

승범이 너스레를 떨었다.

“악마 같은 놈입니다. 작업하다가 죽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에이. 선배! 악마는 약과죠. 대마왕 정도면 몰라도.”

“악마 같은 코치라……. 훗! 말은 그리 해도 저 친구를 신처럼 떠받드는 것 같은데?”

농담 섞인 그의 말에 승범이 어깨를 으쓱했다.

“신이나 악마나! 둘 다 제 수준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김 소장이 성훈에게 물었다.

“어이, 자네!”

“네. 말씀하십시오. 소장님.”

“원래 이렇게 무모……. 아니, 모험을 즐기는 타입인가?”

“가끔 때에 따라서는요.”

“그래? 건축 전공이라 들었네만.”

“네. 맞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위험한 시도를 한 건가?”

“건축에서는 이런 실험을 하기가 어려우니까요. 생명과 직결되는데 함부로 시도할 수 없죠. 그러니 이런 기회를 활용하는 수밖에요.”

그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이미 알고 있었군. 몰랐다면 혼쭐을 내주려 했는데, 쓸모없게 되었어. 허허허. 그래도 아까 모형에 장난 쳐놓은 것을 보니, 완전히 모험할 생각이 없는 건 아니던데?”

예리한 질문이었다.

성훈이 입맛을 다셨다.

“쩝. 하고 싶기는 하지만, 아직은 어렵죠. 기술력도 따라주지 못하고……. 그래도 조만간 시도는 해 볼 생각입니다.”

“흠. 그래? 그 때가 기대되는군. 건축에서의 혁신이 이루어질 테니!”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닙니다. 하고 나면 ‘아!’할 테니까요.”

“콜롬부스의 달걀이란 말이군.”

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죠.”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성훈에게서 눈을 돌렸다.

“사장님. 오랜만에 제대로 된 열혈 공학도들을 본 것 같군요.”

그가 승범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생각에 한계가 보이질 않아요. 그리고 창의력과 열정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더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은…….”

중공업 사장의 눈이 일그러졌다.

‘김 소장! 당신에게 칭찬이나 하라고 부른 게 아니란 말이오!’

그의 속도 모르고, 김 소장은 말을 이었다.

소탈하되, 눈치는 없는 사람 같았다.

“이론만큼이나 실전도 탄탄합니다.”

“김 소장. 나도 자세한 건 모르네만, 공학이론은 제멋대로 응용했다는 말이 들리던데, 그럼 기본이 약하다는…….”

김 소장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내저었다.

“하하하!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가 하는 말입니다. 이론을 깨부수고 실전에 맞춰서 재조립한다는 건, 기본이 탄탄하지 않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기에 대단한 실력이라 인정하는 거지요. 누가 보면 한 십 년은 현장에서 구른 베테랑 같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월급 주는 사장을 초보로 만들어 놓고도, 그는 적을 칭찬하고 있었다.

승범의 입술이 기분 좋게 씰룩거렸다.

‘저 괴물 같은 놈하고 한 달만 지내보십시오.’

시간과 작업량, 그리고 목표지점을 향한 열정의 밀도의 차이가 아닐까?

성훈의 미래지식도 한몫을 했겠지만 말이다.

김 소장이 양 손을 들었다.

“졌습니다. 졌어요. 내 조국의 기술이 이렇게 발전한 줄 알았으면, 진작 들어올 걸 그랬습니다. 허허허!”

중공업 사장이 허탈하게 웃었다.

“하. 하. 하.”

“뭐. 완전히 박살이 난 입장에서 이런 말씀드리기가 송구스럽습니다만.”

‘더 할 말이 남아 있다는 말인가?’

사장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괜찮소. 말씀하시오.”

“이런 인재는 미국에서도……. NASA나 가야 적수를 찾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장님.”

“그래서요? NASA에라도 보내라는 말이오?”

그의 이어지는 말에, 가까스로 평온을 유지하던 사장은 안색이 시커멓게 썩어 문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역시 사장님과 저는 통하는군요. 캬! 말 나온 김에 진행하는 게 어떨까요?”

김 소장, 그는 연구에는 도사인지 몰라도, 사회생활에는 영 젬병이었다.

그런 그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장님과는 소울이 통하는 것 같습니다. 연구소 생활이 마구 마구 즐거워 질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마침 거기 소장과 제가 막역한 사이이니…….”

“허. 김 소장. 그게 무슨…….”

얼이 빠진 사장은 차마 뒷말을 잊지 못했다.

“중공업 사장이 한 방 먹었군. 그래. 크하하하!”

회장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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