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79화
마지막 방문자(02)
말로만 듣던 왕회장과의 첫 만남이었다.
작은 키에 까무잡잡하고 주름진 얼굴.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길가다 지나쳐도 특별한 것 같지 않은 사람.
“자네가 성훈인가? 아까 갑돌이를 조종하던?”
무게를 잡는 모습이 아니었음에도, 그의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힘이 있었다.
은연중에 압박하는 목소리라고 할까?
‘수십 년을 꼭대기에서 군림했으니, 그럴 수밖에. 압둘이나 알리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걸.’
왕자들이 태어날 때부터 익힌 기품이라면, 이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다.
시작점이 달랐으니, 지금의 상태 또한 차이가 나는 것이리라.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난 삶에 동경해 마지않던, 태어나서 처음 만나보는 거인을 대하고 있었다.
그에 기죽지 않기 위해, 스스로 당당하기 위해 선택한 내 나름대로의 각오였다.
‘녀석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대장인 내가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어떡해? 다른 녀석들은 더 주눅들 텐데.’
***
“처음 뵙겠습니다. 김성훈입니다.”
성훈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절대 갑에 대한 굴종이 아니라, 한국 경제에 한 획을 그은 거인에 대한 존중이었다.
회장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허리를 숙였으나, 그것은 잠시!
존중의 예만 표시하고 자신을 직시하고 있다.
‘그것도 서른도 안 된 새파란 녀석이!’
재미있지 않은가?
자신과 동일한 눈높이에서 회장인 그를 탐색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몇몇을 제외하고 자신에게 저런 눈빛을 보낸 자가 얼마만이던가?
‘하지만 아직 어리지.’
젊다는 게 뭘까?
단순명쾌하다는 것 아닐까?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일 것이다.
시도해 보지 않았기에, 실패의 두려움을 모르고, 또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잃을 것이 없기에,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노련하지 못하며, 감정의 기복이 심하며, 감추기에 능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침착하다고 해도 가슴에서 회오리치는 감정을 갈무리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지!’
그래서 젊은이는, 판단을 하기에도 단순명쾌하다.
‘딴 사람은 몰라도 내 눈을 피할 수는 없지.’
한 번의 흔들림이라도 있다면, 그 그릇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살짝 띄워줘 보자. 어떤 반응을 보일까?’
회장의 생각이 끝났다.
“잘 보았네. 성훈 군. 자네의 작품.”
성훈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감사합니다.”
회장이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그렇지. 내 예상이…….’
하지만 이어지는 성훈의 말에 자신의 성급했음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작품입니다.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 성훈과 회장은 공간을 양분하고 있었다.
입구 쪽의 회장단, 안쪽의 박람회 관계자들.
성훈의 그 말에 회장 쪽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감히 누구 말에 토를 다는 거지? 건방진 녀석.’
‘회장님 말씀 한 마디에 모두 입사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는데, 경박하군.’
‘저래서 젊은 녀석들은 불안해. 감사합니다. 그 한마디면 될 것을…….’
각자의 생각은 비슷했다.
‘겨우 이 정도 결과로 기고만장한다면, 쓰라린 맛을 보게 될 거야.’
수만 명의 사람을 거느린 사장들조차도 감히 할 수 없는 말을, 일개 젊은이가 생각 없이 내뱉고 있었다.
아니 수만 명만 되겠는가?
아래 딸린 하청기업들까지 포함하자면 그 수십, 수백 배는 족히 되리라.
그런 거물들임에도 불구하고, 회장의 말에는 반박하는 경우가 없었다.
왜냐고?
그의 말은 항상 옳았고, 그 결정은 언제나 명성에 어울리는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회장의 앞이라 경거망동하지는 못하지만, 아래로 처진 입꼬리가 불쾌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다만 한 사람, 건설 사장만이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훗! 그럼 그렇지. 안 그러면 안전모가 아니지.’
그의 등줄기로 기분 좋은 전율이 흘렀다.
반면, 성훈 쪽의 분위기는 들떠 올랐다.
‘성훈이 녀석. 누구에게 칭찬을 받는지 모르는 거 아니야? 무려 현재그룹 총수라고! 크크.’
‘저래야 성훈이지. 왕회장 얼굴 굳은 거 봐!’
‘으윽. 소름 돋아!’
‘우리 면접 보는 자리라고 하지 않았어? 성훈 선배가?’
‘응. 그랬지!’
‘그런데 이래도 돼?’
‘몰라. 임마! 성훈 선배가 알아서 하겠지.’
‘하지만 기분은 좋다. 그치!’
대목장의 얼굴에도 미소가 고였으나, 그는 마냥 즐거이 이 상황을 즐길 수는 없었다.
‘녀석. 굳이 우리까지 챙길 필요는 없는데. 저 하나라도 잘 되면 되는 것을. 쯧쯧.’
성훈의 말에 회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었기에, 대목장은 내심 긴장이 되었다.
단 한 마디로 대기실의 분위기는 양분되었다.
한쪽은 냉랭한 한풍으로, 나머지는 훈훈한 봄바람으로.
한기류와 난기류가 만났으니, 토네이도가 생길지도…….
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반골인 건가? 그렇기 보이지는 않았는데.’
그룹을 경영하면서, 수십 년 동안 인재를 찾고 키워왔다.
자신의 눈을 좀 더 믿어보기로 했다.
‘처음이니, 겸양의 말을 하는 거겠지.’
그래도 저 정도면, 젊은 녀석 치고는 꽤나 인내심이 있는 것 아닌가?
소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모두가 함께 만들었으니, 저런 결과가 나왔겠지.”
그가 대목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런 작품들을 만들다니, 장인들께서도 젊은 학생들과 함께 정말 수고들이 많으셨습니다. 외신에서도 떠들썩하게 만들어 놓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그려.”
대목장이 흐뭇하게 웃었다.
“저희들이야 뭐 한 일이 있겠습니까? 젊은 녀석들이 하고자 하니, 뒤에서 받쳐준 것뿐이지요. 오히려 저희가 많이 배웠습니다.”
회장이 성훈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일세. 건축이라 해서, 건축 설계도나 모형만 있을 줄 알았더니, 로봇도 있더군. 그리고 그렇게 건물에 동작을 집어넣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네그려. 스티브 감독도 놀랄 정도로 말이야.”
한 번 더 찔러보는 칭찬의 연속.
‘스스로 이룬 결과에 뿌듯함이 없을 리가 없지!’
회장 자신의 경험에서 나오는 생각이었다.
부장이 보기엔 별 것 아니라도 신입에게는 엄청난 성과이고, 대기업에서는 쳐다보지도 않을 아이템이 구멍가게에서는 대박인 것처럼 말이다.
지금의 성과는 회장 자신이 보기에도 자랑할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쯤 자신감이 자만으로 바뀔 시기이기도 하지.’
잘 붙들어 키우면, 그룹에 도움이 되는 인재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인재를 놓쳐서는 아깝지 않은가?
기고만장해서 건방지다면?
‘한 번 혼내고, 다시 가르치면 되는 거지.’
“스티브 감독을 만난 건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호오. 운이라……. 꼭 그렇게 평가할 필요가 있나?”
“그건 운이 맞습니다. 회장님. 하지만…….”
회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하지만?”
“설령 스티브 감독의 인터뷰가 없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갑돌이는 충분히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성훈의 평가에 갑돌이의 책임자, 승범은 코끝이 찡해졌다.
‘야! 그래도 세계적이라니……. 너무 띄우잖아.’
성훈에게 ‘이것밖에 실력이 안 되느냐?’는 쓰라린 구박을 받으면 만들기는 했지만, 이 순간 그동안의 고난들이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성훈의 인정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
승범을 위시한, 학우들의 어깨가 올라갔다.
‘건방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건 냉정한 판단이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성훈은 알고 있었다.
로봇의 소형화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사람의 관절처럼 움직이는 자연스러움을 행동으로 구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랬기에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었으리라.
“저런! 건방진! 세계적인?”
보다 못한 중공업 사장이 발끈했다.
“결과가 자네 생각보다 잘 나왔다는 건 인정하네만, 너무 자만하는 것 아닌가?”
성훈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말했다.
“자만이 아닙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젊은이의 거만을 더 들어주기 어려웠던지, 중공업 사장이 일갈했다.
“성훈 군! 자네는 건축학과인 걸로 아는데, 그렇지 않은가?”
“맞습니다.”
“훗. 그럼 기계의 원리와 역학에 대해 잘 아나?”
“아뇨. 저는 기계에 대해서 모릅니다.”
“그런데 왜 그런, 책임 못 질 장담을 하는가?”
“세계적인 평가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 말씀입니까?”
‘평가는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텐데, 왜 초짜인 네놈이 나서서 세계적 평가를 운운하면서, 그런 건방진 말을 하느냐!’는 의미일 것이다.
이미 스티브에게 평가를 받았는데, 그게 무슨 의도일까?
어쩌면 우리의 실력이 진짜인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딴죽을 거는 것인가?
‘그렇다면 대환영이지. 나도 궁금했거든!’
성훈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우리나라 최고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쪽의 인맥이 없는 관계로 비교할 만한 대상을 찾지 못했었다.
내로라하는 기업인 현재 중공업이라면?
그 진가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으리라!
‘지면 어때! 그만큼 얻는 것이 있겠지.’
“잘 아는군.”
“죄송합니다만, 자만이 아니라 냉정한 평가였습니다.”
“하! 냉정한 평가? 기계의 ‘기’자도 모르면서, 냉정한 평가?”
사장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그렇게 자금을 투입한 우리도 세계는 아직 요원한데…….’
학생들이라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현실이 그랬다.
사장은 냉정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단지 잠시 흥분했을 분이다.
그런 사장에게 성훈이 불을 질렀다.
“네! 스티브가 아닌 누가 되었든지, 전문가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런 반응을 보였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 승범아?”
“쯧쯧. 스티브가 애들을 버려놓았군.”
국내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기에, 그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훈이라고 무모한 승부를 걸었을까?
‘저건 5년 후에나 실현 가능한 거라고.’
NASA에서 로봇산업의 획기적인 발전이 있을 때마다, 뉴스에서 며칠을 떠들어 댔었다.
이론은 까막눈일지언정,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결과는 알 수 있었고, 그때마다 NASA애서는 신기술의 대략적인 원리를 공개했었다.
사장은 불편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 자신감! 실력으로 증명할 수 있나?”
‘훗! 예상했던 결과?’
중공업 사장이 코웃음 쳤다.
고작 해야 학생일 뿐이다.
물론 결과가 좋아서 기고만장한 것도 이해한다.
‘스티브에게까지 칭찬을 받았으니…….’
하지만 학교에 얼마나 제대로 된 장비가 있었을 것인가?
갖춰진 게 없는데, 그런 결과를 만든다고?
그렇게 쉽게 만들 정도라면, 우리가 먼저 했어야지. 실력 있는 전문가들을 다 끌어 모았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이해하려고 노력이라도 해보지.’
“네! 증명할 수 있습니다.”
성훈의 당찬 대답에 사장이 뒷목을 움켜잡았다.
‘이 정도로 점잖게 경고를 했으면, 인정도 할 줄 알아야지!’
그나마 회장의 앞이라 자중하던 사장이 자제심을 잃어버렸다.
‘젊은 놈이 똥오줌을 못 가리는군! 현재 중공업이 동네 구멍가게로 보이나?’
사장의 얼굴이 분노로 달아올랐다.
‘그 알량한 실력! 제대로 밟아주지!’
그는 회장에게 양해를 구했다.
“회장님. 저리 당당하니, 대충이라도 실력을 한 번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황을 지켜보던 회장이 사장의 부탁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다혈질인 녀석! 아까부터 울그락푸르락하더니, 제대로 열 받았구만.’
적당히 끝낼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회장이 성훈을 힐끗 쳐다본다.
‘할 수 있겠어? 현재 중공업을 상대로 말이야!’
성훈도 미소로 응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승리가 최고의 결과겠지만, 꼭 이기지 않아도 좋았다.
‘이긴다고 기고만장할 녀석들도 아니지만.’
최악의 경우라 해도, 패배에서 얻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성훈이 보기에는 질 요소가 없었다.
‘녀석들이 자신감이 없었던 건, 비교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지, 실력 부족이 아니었다고.’
그런데 그 비교 대상이 현재 중공업이라면?
입사를 바라마지 않는 그곳이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어? 제대로 된 수업 한번 받는다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니야?’
힐끗 훔쳐보니, 승범의 눈에 자신감이 어른거렸다.
‘그래! 이제 너희들의 진가도 보여줘야지!’
나에게는 시험의 순간이었고, 팀원들에게는 승부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