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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78화 (278/427)

건축의 신 278화

마지막 방문자(01)

가이드를 하던 중이었다.

뒤편에서 술렁거리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기자들이 웅성대는 소리와 카메라의 셔터 소리로 보아 누군가 방문한 모양이었다.

‘지금 왔나 보군.’

지금 방문할 사람들은 한 부류밖에는 없었다.

현재 그룹의 사장단.

“저희 때문에 박람회의 분위기를 망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이따가 따로 인터뷰할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누군가의 완곡한 부탁이 있었고, 더 이상의 소요는 없었다.

하지만 팀원들의 동요는 느껴졌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고?’

갑돌이의 움직임은 내 조이스틱으로 컨트롤할 수 있었지만, 건물의 움직임까지 하나하나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건물의 움직임까지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조이스틱이 두 배는 커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0.1초의 시간 차!

즉 거의 지시와 동시에 작동되던 건물들의 개폐 시간이 0.5초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물론 관객들이 보기에는 큰 차이가 아니겠지만, 0.1초에 익숙하던 나는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긴장하기는!’

그들은 뒤에서 내가 안내하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내 작업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

“저 녀석이 자네가 얘기하던 친구인가?”

회장이 건설 사장에게 묻는 말이었다.

사장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회장님.”

“흠, 훤칠하게 잘생긴 젊은이군.”

사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저래 보여도 강단이 보통이 아닙니다.”

회장이 매서운 눈으로 성훈을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이 스타타워 설계자라고 했던가?”

“네, 맞습니다.”

“실시 설계할 때도 거의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면서?”

“네, 그리고 실제로 현장에서도 일을 했었지요.”

“그래? 설계하는 녀석이 현장에 나가서 일을 했다고?”

회장 자신이 현장 출신이니, 더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그가 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현장 일은 좀 하던가?”

“네! 제법 현장 생리도 잘 알고, 인부들을 다룰 줄 아는 놈입니다.

“그래? 아직 대학 졸업도 안 했잖아? 그런데 그걸 할 줄 알더라고?”

“네, 녀석 덕분에 현장을 한 달 빨리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호오! 그래? 현장에서 다른 문제는 없었고?”

“저놈하고 현장 소장이 갈등이 있기는 했지만 잘 해결되었습니다.”

회장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갈등이 있었는데?”

“소장이 리베이트를 받았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입니다.”

경영을 통솔하며, 자금의 흐름에 누구보다 민감한 그들이, 암암리에 리베이트를 받는다는 것을 몰랐을까?

아니, 알지만 소장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묵인하는 것이었다.

잘못된 관행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가 소장이 되기 위해 열심히 하겠는가?

월급만으로는 큰돈을 모으기가 어려우니, 소장이라도 되어 떡값으로 아파트라도 마련하려고 필사적으로 소장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회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베이트가 마음에 안 들어? 소장들 중에 리베이트 안 받는 놈도 있어? 왜 굳이 그걸 가지고.”

“그걸 모를 정도로 숙맥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리베이트가 문제가 아니라, 하청업체 직원들이 말을 안 들었던 거지요.”

“쯧쯧. 그래도 봐줄 건 봐 주고 넘어가야지! 그래서? 화해는 잘한 모양이지?”

사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현장 소장을 밀어냈습니다.”

소장에 딸린 식구가 얼마인가?

그러면 당연히 구심점이 되는 소장이 잘려나갔으니, 현장은 혼란에 휩싸였을 터!

“현장을 몇 달이나 빨리 끝냈다면서? 어떻게? 그때 여름이었잖아? 국내에 노는 일손이 하나도 없었을 텐데.”

회장은 몇 마디 안 되는 사장의 말을 근거로 정확히 현장을 파악하고 있었다.

사장은 그때의 상황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곽 이사가 그 현장 담당이었는데, 자기도 현장이 멈출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답니다.”

“당연하지. 멈추면 손해가 얼마나 막심한데! 그래서 어떻게 처리를 했는데?”

회장 자신도 곤란했을 일을, 한참이나 어리고 경험도 없어 보이는 젊은이가 해결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우디 현장에 있는 기술자들을 데리고 왔더군요.”

“사우디 현장? 황 이사 있는 거기?”

“네, 거기 석공사 하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차기석이 있었습니다.”

“차기석이 그 녀석이 왔다고? 아무나 부른다고 올 놈이 아닌데? 황 이사, 고놈이 고이 보내 줄 놈이 아니고.”

회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날 바로 전화해서 비행기에 몽땅 태워서 끌고 왔다고 하더군요.”

“호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아침에 현장으로 투입했답니다.”

회장이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그거 참! 그런 맹랑한 놈이 있어? 이걸 믿어야 되는 거냐?”

“직접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마찰은 없었던 건 아닌데, 바로 해결을 해버렸다, 그 말이네?”

“네, 현장에 직접 들렀을 때도 확인했습니다. 현장과의 마찰을 겁내는 놈이 아닙니다.”

회장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강단이 있기는 있구만.”

회장이 염려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너무 대쪽 같으면 안 좋은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다른 작업자들하고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그랬으니 현장이 한 달 먼저 끝난 거지요.”

“흠……. 그렇단 말이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회장이 물었다.

“혹시 저놈에 대해서 아는 거 있으면 다 털어놔 봐라.”

사장은 그제야 가슴이 뜨끔해졌다.

‘이런! 실수다. 적당히 띄웠어야 했는데.’

혼자서만 가지려고 했던 성훈이었다.

성훈이 제 자식처럼 생각되어 자랑을 한 것인데, 하다 보니 생각보다 과했던 것이다.

‘쯧, 이럴 것 같아서 처음에 오신다고 했을 때 만류했던 건데.’

박람회는 그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이슈를 만들었고, 회장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회장님께서 방문하실 정도로 대단한 건은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며 회장의 방문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결정내린 사항을 번복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

회장의 인재 욕심이야, 두말할 필요가 있으랴!

인재를 보는 안목 또한 탁월하기 그지없었다.

탐탁지 않은 마음에 사장은 말꼬리를 흐렸다.

“회장님, 그게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라…….”

“괜찮다. 말해봐라. 부족한 건 내가 조사하면 되니까.”

이미 회장이 마음먹은 이상, 아는 대로 털어놔야 했다.

빠진 것이 있으면 회사를 통솔한다는 놈이 그것도 몰랐느냐고, 불호령이 떨어질 테니까.

회장에게 신뢰할 수 없는 녀석으로 찍히고 후계 구도에서 밀리느니,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나았다.

그는 성훈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을 하나하나 늘어놓았다.

중동에서 있었던 성훈과 압둘, 그리고 알리와의 관계!

그리고 성훈이 프랭크와 시장과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 까지도 말이다.

“그래?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대단하지 않냐? 어린 녀석이!”

회장은 성훈을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사장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버지, 제가 얼마나 공을 들인 놈인데, 털도 안 뽑고 드시려고 하십니까?’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녀석이니, 회장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노릇이겠다.

‘하지만 너무 마음에 들어도 곤란한데 말이지.’

그가 생각했던 최고의 시나리오는 박람회에서 대상을 타고, 성훈을 자연스럽게 현재건설로 영입하는 것이었다.

보물은 자기 손에 있을 때 보물인 것이다.

회장이 직접 관리를 하고자 나선다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으로 흘러갈 공산이 높았다.

‘녀석의 재능을 최적으로 살릴 수 있는 곳에 배치를 하시겠지.’

하지만 그곳이 반드시 건설이 될 거라고는 확신할 수 있을까?

전자나 자동차, 심지어 조선이 될 수도 있었다.

‘전공이 엄연히 다른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나도 경영을 전공했지. 건축을 전공한 건 아니지 않던가?

그리고 성훈의 거취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녀석이 공을 세워도 그건 내 실적이 아니게 되잖아?’

아무리 존경하는 아버지라고 해도, 자신의 몫을 빼앗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죽 쒀서 남 좋은 일 시킬 필요는 없잖아.

사장이 찌뿌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제가 봐도 대단합니다. 저 또래 중에서는 감히 비교할 만한 사람이 없을 겁니다.”

확신하는 그에게 회장이 물었다.

“그런 놈을 네가 휘어잡고 일할 수 있겠어?”

“네?”

회장의 우려하는 모습에 사장이 반문했다.

“저런 놈을 네가 컨트롤할 수 있겠나? 이걸 묻는 거야!”

사장의 미간이 저도 모르게, 내 천(川)자를 그렸다.

‘벌써 찜하시려는 건가?’

거의 잡았던 보물이 솜사탕처럼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큭! 그래도 제가 경륜이 있는데, 그 정도를 못하겠습니까?”

자신감 있게 말하는 그를 보며, 회장이 피식 웃었다.

“그래?”

‘진짜야? 뭘 믿고 그렇게 장담하는데?’ 라고 물을 때, 나오는 웃음이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의 앞에서 경거망동할 수는 없는 법!

사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네, 할 수 있습니다.”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지켜보도록 하지.”

“믿으셔도 될 겁니다, 회장님!”

성훈에게로 눈을 돌리는, 회장의 얼굴에 흥미로운 웃음이 고였다.

그가 혼잣말을 읊조렸다.

“그럼 한번 만나서 확인을 해볼까? 진짜배기인지 아닌지…….”

수십 년 사업을 하면서, 겪어보지 않은 일이 뭐가 있으랴!

그중에서 그를 가장 두근거리게 하는 건 회사의 성장이었다.

‘회사가 크려면 인재가 있어야 하지.’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기분 좋은 심장의 박동 소리!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기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

“성훈아, 아까 온 거 맞지?”

보람이 대기실로 들어서는 내게 물었다.

현재건설의 인물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다른 팀원들은 벽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니, 그들의 존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홀의 분위기가 변했다는 것만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응, 기자들하고 인터뷰 중이더라.”

“이쪽으로 오지 않을까? 설마 그냥 보기만 하고 가는 건 아니겠지?”

녀석의 쓸데없는 걱정에 웃음이 나왔다.

저렇게 거창한 멤버들이 왔는데, 설마!

‘그냥 갈 거라면 처음부터 오지를 않았겠지.’

보람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너 많이 긴장한 모양이더라. 아까부터 반응이 느려.”

“크, 티 났냐? 자꾸 신경이 쓰여서 말이야.”

“아직 끝난 거 아니니까, 아직은 긴장 풀지 마.”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팀원들도 현재건설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열댓 명의 사람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우리는 박람회장의 창고를 통째로 빌려서 대기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거의 80명이 넘는 사람들로 북적였음에도 좁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좁게 느껴졌다.

나도 그만큼 긴장했기 때문이리라.

***

누가 회장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를 필두로 사람들이 따라오고 있었으니까.

회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친근한 미소로 말했다.

“여기 있는 이 사람들이 우리 회사로 들어올 친구들이가?”

건설 사장이 슬쩍 다가서며 귀띔했다.

“이 중에서 몇 명만 특채로 뽑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대상을 타면, 참가자 전원에게 현재건설 지원 시에 가산점을 주기로 했습니다.”

회장이 잇소리로 말했다.

‘알고 있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응?’

그러고는 눈짓으로 말했다.

‘뒤로 물러나 있거라.’

성훈에게 거의 다가섰을 때쯤, 그가 너스레를 떨며 그를 칭찬했다.

“그래? 건설 사장이 생각을 많이 했구만. 그래, 그게 바로 산학협동 아닌가? 안 그래?”

“네, 맞습니다, 회장님.”

회장이 팀원들과 장인들을 보며 인사를 했다.

“이거 불쑥 찾아와서 폐를 끼치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적절하게 예의를 차리면서, 사람 좋은 웃음으로 첫인사를 건넸다.

성훈도 그에게 허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회장님. 오히려 이렇게 관심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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