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77화
추종자들(07)
내가 현재건설 사장이라면 무슨 생각을 할까?
‘이건 거저먹는 거구나. 하고 생각을 할 거야.’
연봉 5,000을 불러도 시원찮다고 생각하고 왔다가, 4,000만 부를 거라고.
왜?
‘너희들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
그 정도만 해주셔도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이렇게 이미 허리를 이고 영접하는데, 눈높이를 맞춰 줘야 하지 않겠어?
오히려 당당하게 말하겠지.
‘이보게들 4,000만 해도 특별 대우를 해주는 거라네. 앞으로 충성하게나. 지금처럼 알아서 허리도 숙이고 말이지.’
기특하다고 뒤통수 한 번 툭툭 쳐 줄지도 모르지.
어떤 결과가 되었든 내 가치를 깎고 시작하는 것이다.
‘난 그게 싫다고! 내가, 아니, 우리가! 왜 그래야 하는데?’
공급과 수요의 법칙?
그럴 거면 외국 기업으로 가겠다.
스티브라면 훨씬 더 좋은 대우를 해줄 것이다.
‘굳이 돈만 본다면 현재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민수야, 만약에 너한테 현재에서 연봉 4,000을 제시하면 어떻게 하겠어?”
“당장 계약해야죠.”
“최고의 조건이니까?”
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민수가 물었다.
“형은 뭐라고 하실 건데요?”
“나는 싫다고 할 거야.”
“하긴 형은 부자니까. 그것도 어마어마한.”
“아니! 지금 당장 내 수중에 한 푼도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나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기업과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있다면 말해보라!
백이면 백, 다 반박해 주겠다.
***
그사이에도 압둘의 설명은 계속되고 있었다.
“내 계산의 기반에는 서른다섯 명의 장인과 쉰 명의 자네들이 한 달 동안 일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네.”
“그리고 그동안 성훈이 먹을 거 다 먹이고, 재울 거 다 재우고 일 시키지는 않았을 거야.”
그 말에 팀원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은 것이 기분 좋았던지, 압둘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그렇게 일을 시킬 성훈이 아니지, 암!”
성훈을 바라보고 피식 웃고는 압둘이 말을 이었다.
“원래는 장인과 도제들 일당을 350, 250달러로 책정했었지. 내 호텔 건설 현장에 나오는 사람보다 좀 더 높게 책정했다네.”
압둘은 가진 자답게 거들먹거리며 생색을 냈지만 아무도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그는 흡족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거기에 수당이 있으니, 장인은 700, 도제들은 500이라는 계산이 나오지. 다시 30일을 곱하면 대략 장인들은 일인당 21,000달러, 자네들은 15,000달러의 계산이 나오지. 혹여 인건비에 불만 있으면 말하게.”
압둘의 계산에 대기실이 술렁거렸다.
“우리가 한 달에 만 오천 달러를 번다고?”
“일당만 오백 달러야.”
“그럼 한국 돈으로 얼마가 되는 거지?”
“지금 1달러에 천오백 원 정도니까, 헉! 2,250만 원? 한 달에?”
“그리고 일당은 75만 원이 되는 건가?”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에 보람이 제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는 쥐어짜는 목소리로 말했다.
“헉! 지금 현재건설 신입 연봉이랑 같아!”
“그럼 목수 어르신들은 3,150만원?”
“이게 나올 수 있는 액수야?”
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저 압둘 왕자라고. 지금이라도 바로 현금으로 지급할걸!”
성훈이 입을 삐죽이며 물었다.
“압둘, 그래 봐야 고작 150만밖에 안 돼요. 나머지 50만은 어디 간 거예요?”
압둘이 느긋한 표정으로 눈썹을 으쓱였다.
“총괄 기획을 한 사람에게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 않겠어? 자네 몫으로 50만을 남겨 뒀지.”
학우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들었어? 성훈 선배한테만 50만이래.”
“150만이 고작이란다. 누가 들으면 150만 원인 줄 알겠어.”
하지만 아무도 성훈을 시기하지 않았다.
보람이 말했다.
“쩝! 성훈이는…… 뭐, 그럴 만 해.”
“인정해요. 성훈 형은 뭐…….”
그들에게는 당장 판매를 하고 손에 거금을 쥐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들의 몸값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가치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높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잘됐네요. 팀원들이 자신감이 붙은 것 같아요.”
“그래, 이걸 바랐던 거지.”
“이렇게 쉽게 바뀔걸. 아까는 왜 그랬는지.”
안도하는 민수에게 말했다.
“그게 당연한 걸지도 몰라.”
“뭐가요?”
“이 친구들은 한 번도 자신의 몸값을 스스로 판단해 본 적이 없을 테니까.”
주면 주는 대로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건 지난 삶의 나조차도 마찬가지였었다.
자신의 몸값을 스스로 정한다니, 어불성설이지.
민수도 내 말에 수긍했다.
“그러게요, 기껏해야 시간당 몇천 원짜리 아르바이트가 전부였겠죠.”
“그도 아니라면, 한 달에 몇십 만 원짜리 과외가 자신들의 몸값을 가늠하는 전부였겠지. 하지만 그건 남들이 정해놓은 거지.”
최저임금제를 임금의 적정선이라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이야 어쩔 수가 있으랴!
열심히 청소하고 노력해도 삼천 원, 시간만 때워도 삼천 원이라면, 아르바이트생의 선택은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노력의 대가가 더해지지 않는데도, 최선을 다하는 바보만 사는 세상이 아닌 바에야 말이다.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는 이상,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긴, 남들과 똑같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데 높은 몸값을 지불할 리가 없겠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이제 제 몸값을 알았으니 태도도 달라지겠지.”
“어떻게 변할지 기대가 되네요.”
***
대기실의 분위기가 흡족했던지, 압둘이 말했다.
“부족하면 얘기해! 더 지불할 용의도 있으니까, 저 작품은 그만큼의 가치가 충분히 있어!”
하나 그 말에 딴죽을 거는 한 인물이 있었으니!
“역시 쿠웨이트는 가난하군!”
적절한 가격을 제시했기에, 기분이 좋은 압둘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은 알리였다.
“뭐야? 알리 자네는 어떤 계산으로 300만이 나왔는지 모르겠군.”
알리는 묘한 웃음을 띤 채 말했다.
“기본적인 계산이야, 다를 게 있겠어?”
“그런데 어디서 100만이나 차이가 나는 건가?”
“그래서 자네는 생각이 짧다는 거야.”
원하는 대답은 하지 않고, 약만 올리고 있으니, 압둘의 검은 얼굴이 검붉어졌다.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으면,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테니, 각오해!”
“흥, 넘어가지 않으면, 다른 수라도 있는 건가?”
민수가 말했다.
“형, 어떻게 좀 해보시죠. 또 한 판 붙겠어요.”
‘하여간 저 둘은 앙숙이야, 앙숙’
두 왕자에게 말했다.
“두 분 싸우실 거면 나가서 해주세요.”
이제 저들이 필요한 용무는 끝났다.
압둘만 해도 지금 팀원들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놀랐는데, 알리가 더 큰 금액으로 베팅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팀원들의 간땡이가 퉁퉁 부을걸!’
적당한 자신감은 활력을 불어넣지만, 과도한 자신감은 협상자를 궁지로 몰아갈 것이다.
내 목적은 현재와 적정한 선에서 타협을 보려는 거지, 현재를 내치려는 게 아니거든!
아직 내게는 다른 기업보다는 현재가 좋았다.
‘곽 이사나 양 이사 같은 인물이 있으니까!’
다른 곳에 가서 또 이런 인맥을 만들라고?
물론 만들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이미 인지도가 있는 나를 이용하려고만 들 게 뻔했다.
대기실을 나서기 전, 압둘이 물었다.
“팔기는 팔 거지?”
“네, 조건이 맞다면요.”
알리의 얼굴이 환해졌다.
“얼마면 되는데? 말만 하라고.”
“작품의 판매는 돈의 액수에 좌우되지 않을 겁니다.”
두 아랍인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그럼 뭐!”
“그래! 액수가 아니면 뭔데?”
도대체 물건을 사는 데, 가격 말고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압둘도 알리도, 둘 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성훈이 말했다.
“저 작품이 얼마나 사람들의 눈에 오래 보일 수 있느냐 하는 게, 제가 작품을 파는 요점입니다.”
압둘과 알리의 얼굴이 고민에 휩싸였다.
“끙…….”
“일단 돌아가세나, 압둘.”
***
왕자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우리만 남았다.
“자! 다들 긴장하라고!”
팀원들의 생기 도는 눈을 보며 말을 이었다.
“현재에서 오는 순간, 우리는 협상 테이블에 앉는 거야.”
“이를테면, 면접 같은 거군요.”
한 팀원의 적절한 비유였다.
“응, 하지만 그 면접은 현재가 우리를 평가하는 것도 있겠지만 우리도 현재를 평가하는 시간도 될 거야.”
“현재가 우리한테 평가를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면접이 별거냐? 서로 얼굴 맞대면 면접이지. 왕이 평양 감사를 하래도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거야.”
학우들이 키득거렸다.
아까의 부담감과 과도한 긴장은 사라져 있었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현재에게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것은 박람회 대상이 될 것이다.”
보람이 웃으며 물었다.
“아직 대상을 탄 것도 아니잖아.”
“결과는 마찬가지야!”
쉽게 말해 이거였다.
우리는 대상을 수상할 실력을 가졌다.
이런 우리에게 현재건설은 얼마만큼의 가치를 부여하고 우릴 고용하겠느냐?
‘진검승부가 벌어지는 곳이지.’
말을 이었다.
“거기서 너희들은 자기 가치를 현재건설에게 인정받아야 할 거야.”
한 학우가 물었다.
“성훈 선배가 협상해 주면 안 될…….”
하지만 그 말은 보람에 의해 저지되었다.
“안 돼! 네 일이야. 그리고 우리 일이야. 성훈이 왜 작품을 팔지도 않을 거면서, 저 왕자들에게 가격을 물었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나이 먹은 녀석이 좀 낫네.
보람의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거기에 내 마음도.
“맞아, 각자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택이 될 거다.”
“…….”
“그걸 내가 결정해 줄 수는 없어. 만족도 후회도 모두…….”
보람이 내 말을 이어받았다.
“자신의 몫이 되어야 하겠지.”
각오를 다지는 보람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현재에서 온다. 각자의 각오를 다지고 현장으로 들어가라. 자신의 가치는 누가 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상 해산!”
내 말을 끝으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민수가 자리로 가는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결국 형은 스스로 협상을 하고, 제 손으로 결정하라는 말씀을 하고 싶었던 거네요.”
“응.”
“그런데 아까처럼 자신감이 없으면, 손해를 볼 게 뻔하니까. 이렇게 했던 거구요.”
“맞아, 내가 한다면 조금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는 있겠지.”
누가 오든 적어도 나는 자신이 있었다.
이렇게 대안이 많은데, 협상에서 질 이유가 애초에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 이루어낸 협상이 온전히 그들의 실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성공을 해도, 실패를 해도 스스로의 손으로 결정지어야 한다.
잘되면 그게 자신의 실력이고, 진정한 가치라고 착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런 착각은 평생을 망치기도 하지.’
채찍질을 가해 가며, 소들을 웅덩이까지는 데리고 왔다.
눈을 감고 흙탕물을 마시든, 눈을 부릅뜨고 맑은 물과 푸른 풀을 뜯든 그들의 선택이었다.
그들이 자력으로 생존하는 것, 그게 내가 이들에게 원하는 마지막 요구 사항이었다.
‘그들이 현재건설에서 완벽하게 자생해야 내가 맘 편하게, 그리고 온전하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지.’
민수가 물었다.
“이런 형의 마음을 저들이 알아줄까요?”
“훗, 아는 놈도 몇 있던 것 같던데. 그 정도만 해도 어디야.”
민수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사실 너 하나만 해도 충분해.”
내 농담에 민수는 머쓱했던지, 시선을 피하며 씨익 웃었다.
***
“보람이 형. 성훈 선배는 여기까지 같이 와 놓고, 왜 이제 와서 발을 빼는 걸까요?”
보람이 그를 보며 미소 지었다.
“성훈이는 말이야, 끝까지 같이 가고 싶은 거지.”
“네? 이게 끝까지 같이 가는 거라고요?”
“박람회 말고…… 이것 이후의 일을 말하는 거야.”
“당최 무슨 말인지 저는 잘…….”
보람이 그의 등을 툭 쳤다.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일단은 일에 집중하자고. 얼른 돌아가!”
“그럼 전 보람이 형만 믿을게요.”
후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보람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두 번째 시험인 건가?’
악착같이 잠을 줄이며, 성훈의 스케줄을 쫓아왔다. 그것이 그의 첫 번째 시험이었으리라.
그리고 지금!
가장 팀원들에게 환호를 받을 수 있는 시점!
‘아마 녀석이라면…… 최고의 협상 결과를 만들어 냈겠지.’
하지만 성훈은 자신들에게 바통을 넘겼다.
그냥 내팽개친 것이 아니라,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준 후에.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결과를 못 내면…….’
보람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이 정도의 능력과 배려라면 평생 따라가도 괜찮지 않겠어? 성훈!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가 주마!’
그러나 우선은 눈앞에 닥친 현재와의 협상을 마무리해야 했다.
주먹을 꽉 쥐며, 각오를 다졌다.
‘일단은 이걸 잘 마무리 짓자고. 그러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