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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75화 (275/427)

건축의 신 275화

추종자들(05)

아마 손녀인 미현이 말한 것이니, 왕 회장이 오는 것은 확실하리라.

‘의외인걸?’

그녀가 현재 건설 사장의 딸이었다는 것도, 그리고 그런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수수했다는 것도 말이다.

‘이렇게 현재와 계속 엮이는 건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미현과 헤어진 후, 곧장 팀원들을 찾아갔다.

‘녀석들이 전면으로 나서지는 않겠지만,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있어야겠지.’

지금은 우리 모두에게 승부의 시간이었다.

그들에게도 어느 정도 각오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와는 다르게 그들은 현재 건설의 특채 혹은 가산점을 위해 지금까지 경주를 한 거니까.’

게다가 박람회가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서는 정신무장을 확실히 해야 용두사미가 되지 않을 것이다.

씨를 뿌리고 땀을 흘렸으니, 이제는 성과를 거두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수확의 시간이지.’

한 톨의 알갱이도 흘리지 말고, 가능한 성과는 모두 뽑아 먹어야지.

***

대기실에 들어가자 압둘과 알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두 분이 왜 여기 계세요?”

내 물음에는 답도 하지 않고, 압둘이 물었다.

흥분한 목소리였다.

“성훈, 저 작품 팔 거라면서?”

‘무슨 소리야?’

영문을 몰라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민수가 상황을 귀띔해 주었다.

“형 박람회가 끝나면 작품을 판다는 얘기가 나왔나 봐요.”

그 한마디로 대충 감이 잡혔다.

“그래서 팔 거면 자기한테 팔아라.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거지? 그런데 왜 웃어?”

민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아서요.”

“알리네 집에서 있었던 그 몰딩 경합?”

“네, 완전 그때랑 판박인데요? 둘이 서로 안 지려고 하는 것도 똑같고.”

나이 지긋한 양반들이 승부욕 하나는 끝내준다.

“고작 이백만으로 이 작품을 가져가겠다는 말이야? 물건을 보는 눈이 없군, 압둘!”

알리가 가당찮다는 투로 말하고 있었다.

압둘도 질 수 없다는 듯 응수했다.

“흥! 그럼 자네는 얼마를 부를 건지 듣고 싶군.”

“난 적어도 삼백만을 제시할 계획이야.”

알리의 당찬 제안에 압둘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자금을 투입하고도, 과연 수익을 뽑아낼지가 의문이군.”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난 저걸 보자마자 어떤 사업이 머리에 딱 떠올랐으니까 말이야.”

그들은 이미 내가 판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 총장이나 박람회의 관련자들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그래도 내 의지가 가장 큰 요소인 것은 사실이었다.

다들 실감나지 않는 얼굴로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야! 저 삼백만이 삼백만 원은 아니겠지?”

보람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건 스케일이 다르지 않냐?”

아랍의 왕자들에게는 크게 부담가지 않는 금액일지는 모르겠지만, 팀원들에게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부르는 단위가 상상을 초월하니,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리라.

보람이 씁쓸한 듯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꼭 장난치는 것 같아.”

“하지만 말하는 사람들이 워낙 거부이다 보니 그런 느낌도 안 들어.”

현실적으로 계산을 하는 학우도 있었다.

“정말 우리 작품에 저만한 가치가 있을까?”

“나도 그래. 원가라고 해봐야, 겨우 이, 삼천이나 될까 말까 할 텐데 말이지.”

나무 값이 해봐야 얼마나 하겠는가?

과연 그럴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너희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어!’

그들 스스로만 모를 뿐이었다.

장인, 그것도 나라에서 인정받은 무형문화재들이 몇 명이나 달라붙었다고!

게다가 우리 학교의 엘리트들이 몇이나 붙어서 만든 건데, 고작 몇 천을 얘기해?

스티브에게 인정받은 게 바로 어제였고 모두 열광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스티브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를 인정했다면, 이 둘은 그 가치를 눈에 보이는 액수로 규정하고 있었다.

팀원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이거 이러다가 분위기가 망가지겠는걸?’

이제 마지막 승부를 앞두고 있는데 이래서는 곤란했다.

두 사람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은 작품의 판매에 대해서 거론할 생각이 없습니다. 박람회가 끝나고 나서 말씀을 해주세요.”

압둘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맺었다.

“크흠, 내가 너무 성급했군.”

“나도 미안하군. 마음이 급하다 보니, 실수를 했어.”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말했다.

“오늘 현재그룹에서 방문한다고 한다. 아마 오후 정도가 될 거야.”

보람이 흥분하며 물었다.

“정말이야? 드디어 오는 거야?”

“응, 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잖아. 이제 정말 박람회의 마지막 방문자가 되겠지.”

보람이 호들갑을 떨었다.

“현재그룹에서 온다니까 갑자기 긴장되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한 그건 보람 혼자만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다들 얼굴이 굳어 있었으니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긴장한 것은 모두 비슷해 보였다.

손뼉을 치며 주의를 모았다.

그리고 그들을 격려했다.

“자! 모두들 주목! 지금까지 해온 대로만 하면 돼! 기죽을 이유도, 긴장할 필요도 없어.”

지금 현장의 분위기는 뭐랄까?

뒤숭숭했다.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까지 잘해 왔음에도, 긴장으로 인해 일을 망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해해. 너희들에게는 면접이나 마찬가지니까.’

멀쩡하게 잘하던 사람도 면접을 하면 긴장하지 않던가?

지난 삶에서 취직하기 위해서 수십 번을 면접 본 내가 이들의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보람에게 말했다.

“왜 긴장해?”

“긴장 안 하게 생겼어? 저번에 그 이사라는 분이 왔을 때도 긴장했는데 이번엔 사장님이 직접 오시는 거잖아.”

녀석의 긴장감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회장도 온단다.’

말 안 하길 잘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과연 이렇게 긴장할 이유가 될까?

압둘이나 알리 앞에서도 긴장하지 않았던 녀석들이 말이야.

“너희는 능력이 있다고! 그걸 증명했잖아. 너희는 스티브가 인정을 한 사람들이라고.”

팀원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가 나만 인정한 거라고 생각했어? 그는 우리 작품을 인정한 거야. 난 대표로 그와 인터뷰를 했을 뿐이고.”

“성훈이 네가 대표로 나간 건 당연한 거야. 그건 우리도 인정해. 안 그러냐?”

눈으로 주변의 동의를 구한 보람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너하고 똑같은 레벨이라는 말은 아니지. 여기까지 이끌어 준 것만도 우린 충분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몇 달간을 동고동락하며 나를 따라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인연을 만들어갈 동료들이었다.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될 텐데.’

대기업이라는 이름 앞에서 기가 죽은 걸 보니 마음이 아려왔다.

“이거 하나 물어보자. 저 작품들 나 혼자 만들었냐? 아니, 만들 수나 있었겠어?”

“…….”

대답 없이 나를 보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이건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 작품이란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너하고는 상황도 다르고, 그 뭐냐, 스케일 자체가 다르잖냐?”

이들은 지난 삶에서의 나보다 훨씬 더 진취적이고 강한 녀석들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모습이라니.

취직이라는 게 기업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그냥 나를 어필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일에 필요한 사람을 뽑고, 내 꿈을 이루기에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을 찾는 것.

노동력을 지급하고 그 정당한 대가를 얻어내는 것.

그것이 회사와 사원의 관계가 아닌가?

물론 가족적인 분위기가 있다면 좋기는 하겠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은 종속적인 느낌이었다.

굽실거리며 뽑아주기를 기다리는 느낌!

‘능력이 안 되는데, 취직시켜 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잖아. 너희들은 당당하게 해도 돼!’

면접관이 예의를 볼 것 같은가? 아니면 능력을 우선시할 것 같은가?

물론 둘 다 보겠지만, 나라면 후자에 비중을 더 많이 둘 것이다.

‘구체적인 가치판단이 필요하겠군.’

이대로 가다가는 사장이나 회장이 왔을 때,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굽실거리는 이들을 누가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할 텐가?

적어도 고개 들고 떳떳하게 말해야지.

‘내 능력이 이 정도입니다. 필요하다면 그에 걸맞은 대가를 지불하십시오’라고.

보람에게 물었다.

“아까 봤지?”

‘뭐가?’라는 표정들.

“우리 작품에 얼마의 가치가 매겨지는지.”

“그야…….”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저 사람들이 몇백만 달러, 몇 십억이라는 거금을 제시할 정도로 우리가 한 일이 가치가 있다는 말이잖아.”

일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다시 한 번 확신하며 말했다.

“그런 우리가 고작 기업체에서 온다고 긴장해서야 되겠어?”

보람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성훈아, 고작 기업체가 아니라고! 한국에서 손꼽히는 기업이라고.”

그래서 뭘 어쩌라고.

우리가 그 손꼽히는 기업에 꿀릴 게 뭐가 있어?

그들과 나의 현실적인 입장 차이가 태도를 달리 하고 있었다.

보람이 대기실 한 쪽에 팔짱끼고 앉아 있는 두 왕자를 눈짓하며 말했다.

“성훈아, 저 사람들은 아랍의 거부들이야. 가지고 싶은 것은 다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팀원들이 웅성거렸다.

“그래, 우리하고는 차원이 다르다고.

이게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다.

물론 실감나지 않겠지.

녀석들에게는 아랍의 부자들이 장난감을 사듯, 장난치는 것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뭐!’

그 사람들이 돈으로 장난쳤을 것 같아서?

두 왕자가 내 작품을 그냥 가지고 싶어서 베팅을 한 거라고?

‘아닐걸! 그들은 천생 장사꾼이야.’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흔하디흔한 졸부가 아니라고.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녀석들,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군.’

저 아랍의 왕자들이 얼마나 계산에 빠꿈이들인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녀석들 말대로 돈이 썩어날 정도로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손해날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일례로 압둘은 이전에 내 몰딩을 독점 구매했었다.

가격을 올리고 싶었던 내 장난으로 인해서 그는 몰딩을 원래 가격의 두 배로 구입을 했었다.

‘그래서 압둘이 손해를 봤느냐고?’

다르게 말해서, 압둘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자존심 때문에 베팅을 했느냐고 하면 그건 절대로 아니었다.

‘압둘은 거기서도 이익을 배로 남겼거든.’

그는 내 몰딩을 충분히 팔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애초에 4배의 가격으로 팔 생각으로 베팅을 한 것이었다.

‘원래의 기대 수익보다는 줄어들었겠지. 그래도 그는 확실히 이득을 봤다고.’

근본부터 장사꾼인 두 왕자가 단지 내 얼굴을 보고 작품을 사겠다고 덤볐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지.’

그들이 가격을 부른 순간, 그 둘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계산이 끝나 있었을 것이다.

저걸 어떻게 활용해서, 어떤 식으로 수익을 거둘 거라는 확실한 계산 말이다.

나와의 의리를 생각해서 작품을 사 준다고?

세상에 그런 바보 천치들이 어디 있나?

‘부자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이미 나는 성공을 확신했는데, 이들은 아직 확신하기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승리의 땅에 도착했는데, 녀석들은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고?

진정한 승리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참이나 시간이 흘러서야, 이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되겠지.

‘굳이 현재가 아니라도 갈 곳은 널렸다고.’

신문에서 떠들고 방송에서 조명이 되었는데, 어느 얼빠진 기업이 넋 놓고 다른 놈이 채 가길 기다리고 있겠는가?

‘우리가 이뤄놓은 결과가 그것을 말하고 있다고.’

그럼에도…….

확신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승리의 기억이 인간을 성장시킨다.

그 짜릿함은 뇌에 각인되기 때문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너희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해주지. 너희들의 몸값이 얼마인지를.’

이들은 알 자격이 있었다.

자신들이 한 달 동안 만든 작품에 대해, 그들의 노력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의 가치를 매기는지.

압둘에게 물었다.

“압둘! 아까 우리 작품에 얼마를 제시했죠?”

“이백만.”

“달러?”

“당연하지?”

“혹시 내가 만들었다고 의리로 사려는 건가요?”

압둘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성훈, 자네는 내가 이득도 나지 않을 곳에 투자하는, 그런 멍청한 장사꾼으로 보이는 건가?”

그에게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 금액이 나왔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내 동료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말이죠.”

마뜩찮은 듯 미간을 찌푸리는 그에게 덧붙였다.

“이 작품을 팔고자 하면, 이 친구들의 동의도 필요하니까요. 엄연한 동업자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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