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271화 (271/427)

건축의 신 271화

추종자들(01)

성훈은 방송을 보던 것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자! 자!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최선을 다해서 아름답게 마무리하자!”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대상은 우리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대상을 못 먹으면 이건 뭔가 조작이 있는 거라고.”

우리는 자타공인 1등이었다.

관람객이 몰리는 수준이 달랐기 때문이지.

그리고 스티브의 인터뷰까지 겸해진 상황이니 정말 큰 이변이 없는 한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파이팅을 외치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개장 오 분 전! 긴장들 하라고.”

***

외교부 과장이 수화기를 들었다.

“네? 지금 사우디의 알리 왕자가 이리로 온다고요?”

-전혀 예정에 없던 일이니까, 제대로 준비하고 있어. 아마 압둘 왕자와 친분이 있으니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닐까 예상할 뿐이지.

“제가 맞으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지금 차관님 모시러 가고 있다. 그렇게 알고 있어.

“차관으로 되겠습니까? 알리 왕자가 누군지 모르세요.”

‘알리 왕자라니.’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계승권 서열 3위였지만, 현 국왕의 총애를 받으며, 차기 국왕에 가장 근접했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공문 한 장 달랑 띄우고는 전용기로 날아오다니!

수화기에서 짜증 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럼 어쩌라고. 미국에 가 있는 장관이라도 오라고 할까? 아니면 대통령이라도 불러? 응?

상관의 말에 찍 소리도 못하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그는 부하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야! 카펫이라도 깔아! 젠장! 왜 하필 지금 오냐고! 압둘 왕자도 부담스러워 죽겠는데.”

***

알리와 수행원들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외교부 박승후 과장입니다. 지금 차관께서 오고 계시니, 잠시 기다려 주시면…….”

하지만 그의 말을 알리에게 전달되지도 못했다.

그의 앞을 막아선 것은 사우디아라비아 대사였다.

“이번 방문은 왕자님의 지인을 만나기 위한 사적인 방문이시랍니다. 대한민국 외교부에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대사, 방문 사유 정도는 말씀을 해주셔도 괜찮지 않습니까?”

대사와는 안면이 있었기에 물어볼 수 있었다.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알리의 눈치를 살폈다.

“박 과장, 갑작스런 일정이라 미안하지만 이미 외교부에서 허락한 사안이오. 지인을 만나러 오셨다는데, 나도 자세히는 몰라요. 외교부에 미리 귀띔한 것도 저로서는 최선을 다한 거예요.”

“휴!”

“미안하오, 박 과장. 우리 왕자님이 어떤 분인지 아시잖소. 예측이 안 된다는 말이오.”

가는 길이 지체되자 알리의 수하로 보이는 자가 다가왔다.

하얀 콧수염과 구레나룻이 인상적인 백발의 노인이었다.

대사가 뜨끔하며 그 노인을 소개했다.

“아! 우리 왕가의 수석 집사님이십니다.”

집사가 말했다.

“개인적인 일을 마무리 지으신 후에 한국 외교부와 다른 대사들에게도 시간을 내어주시겠다 하십니다. 그렇게 진행을 해줬으면 좋겠구려.”

알리 왕자가 저렇게 곱게 말했을 리는 없다.

이 집사가 말을 완곡하게 소화한 거겠지.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지금 알리 왕자의 얼굴빛이 좋지 않았거든.

뭔가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사우디 대사가 물었다.

“박 과장, 이리 무례하게 계속 길을 막고 계실 겁니까?”

그제서야 박 과장은 다급히 길에서 물러났다.

“실례했습니다.”

집사가 말을 이었다.

“번거롭게 해드렸다면 죄송하구려. 그리고 협조해 주셔서 감사하오.”

그는 웃으며 박 과장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입장일 뿐, 박 과장도 얼굴에 웃음을 띠고는 있었지만 생각은 달랐다.

‘젠장, 그럼 조용히 오라고! 압둘을 만날 거면 너희 동네에서 만날 것이지. 여기는 왜 와?’

그는 긴장감으로 인해 머리가 멍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라고 모르랴!

그처럼 거물급이 오는데 외교부에서 모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리라!

하나 생각을 입 밖으로 내었다가는 개인의 앞길은 물론 국제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일단 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 했다고.’

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럼 좋은 시간되시기를.”

상대방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대사가 길을 안내하기 위해 알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알리의 발걸음은 곧바로 박람회장으로 향했다.

뭔가 화나는 것이라도 있는 듯 그의 발걸음이 쿵쾅거렸다.

알리가 물었다.

“대사! 어디 있나?”

“압둘 왕자님이시라면 귀빈 휴게실에서 쉬고 계십니다. 어찌할까요?”

그가 생각하는 지인은 압둘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갈지, 모셔올 것인지를 묻는 것이리라.

“그런 배신자 따위는 필요 없어!”

알리는 툴툴거렸고 내막을 아는 집사가 조용히 그에게 귀띔을 했다.

“김성훈이라는 분이 계실 것이네. 여기서 박람회를 한다고 들었네만,”

“음, 김성훈이라니…….”

그에게 성훈은 갑돌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어제 스티브와 함께 인터뷰를 한…….”

“아!”

그제야 갑돌이의 본명이 성훈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왜 알리 왕자가 그를 찾는단 말인가?

그리고 왕가의 수석 집사가 왜 이곳을 왔다는 말인가?

‘왕가의 대소사가 아니면 움직이시지 않는 분께서.’

왕자가 찾으니 그곳으로 모시면 될 일이지만, 그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집사에게 소곤거리며 물었다.

“수석 집사님, 그런데 무슨 연유로 그 친구를 찾으시는지?”

집사의 안색이 변했다.

“친구? 감히!”

대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집사도 집사 나름이 아니던가?

그를 일개 집사로 본다면 그건 크나큰 오산이다.

그는 알리 왕자를 거의 키우다시피 한 인물이었다.

그는 현 사우디 국왕에게 가장 신뢰를 받는 사람으로 그의 말 한마디면 대사는 물론이고, 장관 모가지라도 열 번은 치고 남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대사가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아니, 그게, 아크람 수석 집사님.”

돌처럼 굳은 집사의 얼굴을 보고, 대사는 다급히 해명을 했다.

“워낙 그분께서 저를 비롯한 다른 대사들에게 친근하게 대하시는지라…… 실수를 했습니다.”

“이번만 모른 척 넘어가 주지. 왕자님 앞에서는 입조심을 해야 할 거야.”

그가 근엄하게 말을 이었다.

“성훈 님은 우리 왕가의 문장을 새롭게 디자인해 주신 분이시네. 그 일로 인해, 3왕자님께서 전하의 총애를 받는 계기가 되었지. 왕자님께는 친우나 다름없는 분이신데, 뭐라! 친구! 왕자님과 친구를 하겠다는 말인가? 자네가 감히!”

말을 하다 보니 또 화가 났던 것인가?

집사의 목소리가 올라가자 대사가 거듭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 분이신 줄 전혀 몰랐습니다. 워낙 소탈하신 분이시라, 정말입니다.”

“알았으면 되었네. 안내나 하게. 어디 계신가?”

“저기서 박람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자리를 알고 있으니, 안내하겠습니다.”

성훈을 찾는 것은 쉬우리라.

제일 사람이 많이 몰린 곳으로 찾아가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때, 압둘이 나타났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칼 같은 등장이었다.

“어이! 압둘, 초대받지 못한 자! 여긴 왜 왔어?”

놀리는 듯한 말에 알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너는 친구라는 녀석이! 이런 일이 있으면 내게 연락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내가 너한테 연락을 했어야 하는 거냐? 왜?”

압둘이 얼굴을 들이대자 알리의 얼굴이 더 험상궂어졌다.

압둘은 간만에 알리를 만나서 신이 난 모양이었다. 왕자의 체통을 생각해 더 놀리지 못하는 것이 억울한 모양새였다.

집사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압둘 왕자님, 못 본 새 더 얼굴빛이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압둘이 뜨끔 놀래며 뒤로 물러섰다.

“이크! 아크람 집사님도 오신 겁니까?”

“네, 왕가의 은인을 뵙고자 노구를 이끌고 왔습니다.”

“아! 그랬군요, 그럼 저리로…….”

당황한 압둘이 허둥지둥 안내를 하려하자 집사가 말했다.

“그리고! 친구 사이라고 하여도 그런 말투는 사적인 자리에서만 하시라고 거듭 권고를 드렸습니다만…….”

압둘이 억울한 표정으로 알리를 노려보았다.

‘이 노인네가 왔으면 진작 말을 할 일이지.’

타국의 왕자인 압둘은 둘째 치고, 그의 아버지 쿠웨이트 국왕마저도 감히 하대하지 못하는 유일한 평민이 사우디 왕가의 수석 집사였다.

알리가 기세등등하게 웃었다.

‘그럼 네놈이 안 나타났겠지. 혼 좀 나 봐라, 압둘. 크크크.’

집사가 말을 이었다.

“왕자님께서도 성훈 님께서 우리 왕가의 은인인 줄 아실 터!”

캐물으려 하는 집사의 움직임이 보이자, 압둘을 급히 둘러댔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 억측이에요, 억측! 제가 뭐 성훈이 하는 줄 알았겠어요? 현재건설 곽 이사가 초대하기에 온 것뿐이죠.”

그는 곽 이사에게 책임을 떠넘겼지만 아크람은 그의 눈빛만으로도 정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기는 개구리는 솔개가 무엇을 보는지 모르는 법.

집사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압둘 왕자님.”

“집사님, 그런 사소한 걸 기억하셔서 뭘 하겠습니까? 저도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으니,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리로…….”

쿠웨이트 왕자, 압둘이 안내역을 자처하고 나섰다.

***

가이드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 누구야?’

난 내 가이드에 집중하지 않는 게 가장 짜증 난다고!

압둘 때도 이런 소란은 없었는데, 어디 대통령이라고 온 거야?

뒤돌아보니 각국의 대사들이 서로 앞다퉈 어떤 노인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집사님, 이 먼 곳까지 웬일이십니까?”

“건강이 좋지 않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어찌…….”

대사들은 다 아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오히려 직급이 안 되는 사람들은 누군지를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그 옆의 알리가 보였다.

‘알리의 지인인 건가? 그런데 집사?’

그렇다면 알리가 주목을 받아야 마땅하건만, 대사들에게 존경의 시선을 받는 이는 집사였다.

알리도 나를 알아보았다.

“성훈, 오랜만이네.”

그러자 그 늙은 집사의 눈길도 내게로 향했다.

그가 몸을 이끌고 내게로 다가왔다.

“성훈 님이십니까?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수석 집사, 아크람이라고 합니다.”

‘아! 아크람!’

사우디에 관심이 없는 나라도 알 정도로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회귀 전 그가 타계했을 때, 중동 지역의 모든 지도자가 슬퍼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인물.

사우디의 국왕조차도 한동안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그를 사랑했었다.

그런 인물이 여기에 왜?

알리는 내가 그를 모를 것이라 생각했던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 왕가의 수석 집사인 아크람일세. 궁의 원로시고 웬만한 일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네. 그래서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

“그런데 그런 분이 왜 여길 오신 겁니까?”

“아무리 오라고 해도, 자네가 안 오니까 그렇잖아!”

뜬금없는 대답이었다.

‘당신이 오라고 하면 가야 하는 거냐?’

사우디는 한 번으로 충분했다.

중동의 건조하고 후끈한 기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똑같은 후끈함이라도, 지중해 쪽이 나와는 맞았다.

‘어쨌거나 제일 큰 이유는 튀고 싶지 않았던 거였지만!’

그에게 물었다.

“그 말과 지금 이 상황이랑 무슨 상관이냐고요.”

“집사는 우리 왕가의 문장을 리뉴얼한 이방인에 대해 많이 궁금해했다네.”

대사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베일에 싸여 있던 인물이 아닙니까?”

“알리 왕자의 지인이라고만 알려져 있었는데, 그 사람이 여기 이, 성훈 군이라고요?”

“그럼 왕가의 문장이 바뀌었던 이유가 성훈에게 있었단 말입니까?”

지난 삶에서 충분히 남에게 휘둘리며 살았다.

이번 삶에서만큼은 휘둘리고 싶지 않아. 내가 휘둘렀으면 몰라도 말이다.

자기소개가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아크람이 내게 말했다.

“제가 죽기 전에 꼭 왕가로 모셔 와 은혜에 보답을 하고 싶었지요.”

아주 정중하면서도 권위 있는 모습이었다.

뭐랄까?

‘거절’을 ‘거부’하는 아우라가 있다고 할까?

그가 말했다.

“지금껏 은인을 만나 뵙기를 원했지만 알리 왕자님께서 극구 반대를 하셨습니다.”

알리가 내게 눈짓했다.

‘거 봐! 난 잘못 없다고.’

“은인께서 원치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은인만의 이유가 있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얼굴을 알리셨으니, 그 금제는 풀린 것이 아닙니까?”

그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