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69화
각자의 하고 싶은 것(03)
“이번 박람회의 한국 전통 건축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스티브의 말에 기자가 물었다.
“감독님께서는 평소에도 한국 전통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나요?”
외국인이 자신의 문화에 대해 감동적이라고 말을 하니, 질문을 하는 한국 기자의 어조도 약간 격앙되어 있었다.
“아니요, 저는 한국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질문을 했던 한국 기자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러셨습니까?”
“제가 감동적이라고 했던 것은 이번 박람회에 출품한 건축 모형을 두고 한 말입니다.”
왜?
왜 그는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인가?
평소에 관심이 많았었다는 전제가 있다면 이해라도 될 텐데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의 전통 건축이 아니라, 그것들을 만들어놓은 사람들의 자세와 실력입니다. 이거 보이십니까?”
그는 자연스럽게 질문자와 카메라맨들의 시선을 팔상전으로 돌렸다.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평범한 모형일 뿐인데?’
‘그러게 기둥에 금박을 칠한 것도 아니고, 전혀 색달라 보이지 않는데?’
스티브가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는 자만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설명을 이었다.
“거기서 보시면 모릅니다. 좀 더 가까이 다가오셔야 보일 겁니다.”
대체 무슨 말이야?
카메라맨들이 투덜거리며 모형에 접근했다.
스티브가 음흉한 눈빛을 내게 보냈다.
“성훈 군, 갑돌이 컨트롤러를…… 좀…….”
‘능글맞은 노인네!’
결국은 이걸 만지고야 마는군.
보는 시선이 많았기에 거부를 함으로써 그의 기를 죽일 수는 없었다.
“쳇!”
그는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컨트롤러를 넘겨받았다.
“고맙네, 성훈!”
그는 조심스러운 조작 끝에 갑돌이의 조정법을 간략하게 마스터하고는 빔 포인터를 팔상전의 기둥으로 쏘아 보냈다.
“여기…… 아니, 여기……. 이런!”
“으헛!”
갑돌이가 그의 통제에서 벗어나 카메라맨의 카메라에 빔을 쏘아 보냈다.
갑작스런 붉은빛의 공격에 카메라맨이 다급한 비명을 지르며 카메라에서 눈을 떼었다.
“앗! 깜짝이야.”
그는 눈을 비비며, 스티브에게 눈총을 주었다.
“미안합니다, 제가 아직 컨트롤이 미숙해서 실수를 저질렀네요. 아무래도 하던 사람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허허?
그는 당황한 눈으로 내게 도움을 청했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금방 주인을 버릴 갑돌이가 아니지.’
당황한 척, 그에게 다가가 컨트롤러를 빼앗듯이 다시 넘겨받았다.
“감독님, 제가 하겠습니다.”
“허허, 그래 주겠나? 내가 너무 성급했나 보이.”
투덜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아깝다, 할 수 있었는데…….”
스티브가 설명을 이어갔다.
“팔상전의 기둥, 그렇지! 거기.”
스티브와 나, 그리고 모형이 한 장면에 들어갔다.
“이 기둥을 잘 봐 주십시오. 결이 보이십니까?”
그제야 카메라맨들이 탄성을 질러댔다.
“오오! 이럴 수가!”
“이건 건물만 1 대 20의 스케일이 아니라, 나뭇결까지도 완벽하게 재현을 했습니다.”
다른 기자들도 모두 탄성을 자아냈다.
“확실히 대단하기는 하군요.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가 있었는지?”
“혹시 그리거나, 혹은 나뭇결 시트지를 붙인 것 아닙니까?”
그 말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런 오해를 받을 수는 없지!
그 말을 한 기자를 지적하며 말했다.
“기자님, 보스턴 신문이셨죠?”
“네, 그렇습니다, 성훈.”
그를 가까이 오도록 불렀다.
“의심되시면 만져 보세요.”
“그래도 됩니까?”
“확인을 시켜 드려야 하니 어쩔 수 없죠.”
잠시 후, 그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확실히 나뭇결을 새겨 넣으신 거네요.”
그가 얼굴을 상기시키며 사과를 했다.
“정말 대단한 솜씨군요.”
“당연한 겁니다. 우리 학교의 전통건축과의 교수님들이 한 결 한 결 새겨 넣으신 거니까요. 그분들은 모두 중요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들이십니다. 한국에서 인정을 받으신 분들이라는 말이죠.”
그리고 대목장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대목장을 비롯한 박 목수와 그의 동료들이 멍하니 인터뷰를 보고 있다가 다급히 복장을 정리했다.
‘험험, 얼빠진 얼굴 하지 말고, 자세들 똑바로 하세나.’
최 옹이 그들을 챙기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한 모습들이 역력했다.
“저분들이 정성 들여 모형에 생명을 불어넣으신 겁니다.”
“험험.”
방송을 타는 것을 즐거워하면서도 막상 카메라를 직시하는 것은 낯 뜨거웠던지 연신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스티브가 말을 이었다.
“이 작품은 저분들이 모형이 아니라, 이 본래의 건물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지었다는데 저는 감동을 받은 겁니다. 크기가 축소되었을 뿐, 이것에 새겨 넣은 정성은 축소되지 않았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런데 이것에 제가 왜 의미가 있느냐 물으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성훈 군, 좀 안내를 해주게나.”
잠시 동안 카메라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긴장할 것도 없었다.
내가 평소에 하던 것들이었으니.
스티브가 말했다.
“방금 성훈 군과 갑돌이 로봇이 움직이는 것에 영화의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마치 실제 건물을 지은 것과 똑같은 느낌이죠. 아무런 CG의 도움도 없이 말입니다.”
물 한 잔을 마신 후 스티브가 말을 이었다.
“이런 미니어처를 만들 수 있으면 SF 영화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납니다.”
기자들과 카메라맨의 손놀림이 분주해졌다.
“지각변동이라는 말입니까?”
“네, 지각변동입니다. 저것 자체로 영화를 찍으라고 해도 저는 찍을 수 있을 정도로 퍼펙트한 퀄리티를 뽐내고 있잖습니까?”
“저는 저 작품을 보게 됨으로써,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마 한국의 전통 건축을 이용한 영화를 찍으시려는 겁니까?”
한국 기자의 말에 스티브가 눈썹을 으쓱하며 웃었다.
“제가 한국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걸 찍겠습니까?”
나도 그 말을 들으며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뭔가 대단한 특종을 잡으려고 나온 모양이네.’
말끝마다 스티브와 한국을 연결 지으려 하는 게, 특종을 바라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내일 어떤 기사가 나올지 기대가 되는군.’
하지만 스티브는 개의치 않고, 말을 계속했다.
“아직 시나리오를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제게는 꼭 찍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습니다. 무려 20년 전에 구상을 했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 이야기를 영화로 구현할 만큼 과학이 발달되지 못했으니까요.”
“그럼 지금은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강산이 무려 두 번이나 바뀐 세월이 아니던가?
“하지만 지금은 그걸 만들어낼 장인이 없습니다. CG로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요? 훗! 가끔씩은 아날로그를 고집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건 그런 시나리오입니다.”
스티브는 차분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요점은 이겁니다.”
모든 장면을 다 편집한다고 해도, 이 말만큼은 어느 방송사에서도 편집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스티브도 그걸 의도한 발언이 아닐까?
만약 이 말을 빼고 편집하는 방송사가 있다면, 아마 그 방송사는 두 번 다시 스티브와 인터뷰를 할 수 없을 테니까!
역지사지라 했다.
‘내가 스티브라고 해도 안 할 거야! 그딴 방송국들과는!’
“한국의 기술이 이렇게 뛰어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장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 말을 들은 장인들의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던 것이 제 착각이었고 오만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걸 가르쳐 준 한국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감회가 새로운 듯,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 말씀은 그만큼 이 박람회가 완벽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스티브 감독님?”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은 또 한국의 기자였다.
스티브는 나를 힐끗 보더니 말을 이었다.
“완벽이라는 말을 인간이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작품 중에서는 가장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기자들의 플래시가 번쩍거렸다.
보스턴의 기자가 물었다.
“그래서 아까 신의 안배라고 말씀을 하셨던 거군요.”
스티브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바로 그렇습니다. 이 팔상전을 만든 장인들의 손재주라면, 제가 세계인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저의 판타지를 충분히 구현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감독의 오래된 열망이 담긴 작품이 빛을 보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기자들은 이미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한때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일컬어지던, 스티브의 제안을 거절할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애초에 그가 프러포즈를 한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
스티브의 인터뷰를 보면서, 대목장과 박 목수는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거 보게나. 내가 무어라 했는가? 녀석이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게 말입니다. 어르신의 말씀이 이렇게 딱 맞을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은근하게 숨겨 둔 우리의 정성을 한눈에 파악하다니, 저치도 보통은 넘는구먼.”
“괜히 세계 최고의 감독이겠습니까? 저도 저 사람이 그런 예리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놀랍군요.”
대목장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생했네, 박 목수. 자네가 고생한 것이 인정을 받았으니 나도 기쁘구먼.”
“제가 뭐 한 일이 있겠습니까? 어르신께서 잘 가르쳐 주신 덕분이지요. 하하하.”
스스로 겸양을 했지만, 박 목수의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인정받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그동안의 짜증과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같은 한국인들에게도 공업화, 세계화가 먼저라는 명목으로 박대를 받았건만, 외국의 유명인이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 주는 것이니 그 기쁨은 배가 되지 않았을까?
대목장이 말했다.
“그러니 앞으로는 성훈이 녀석과 부딪치지 말고, 녀석이 원하는 대로 해주게나.”
그 말에 박 목수가 멋쩍은 듯 웃었다.
“어르신, 제가 언제 녀석이랑 싸움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누가 싸웠다고 했나?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알겠습니다, 어르신.”
박 목수는 뿌듯한 가운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성훈아, 그동안 미안했다. 앞으로는 네 녀석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토를 달지 않으마.’
그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혹여 있다고 하더라도 다음회의 박람회 정도가 아니겠느냐고?
‘그리고 그때는 녀석은 졸업하고 없을 거라고. 녀석 같은 놈이 또 있을 리도 없고. 암! 있어서는 안 돼!’
그가 대목장에게 다짐했다.
“저를 한번 믿어보십시오. 앞으로는 녀석의 말이라면 군말 없이 하지요.”
성훈이 어제 스티브와 무슨 약속을 했는지 안다면, 절대로 저런 생각을 못할 텐데 말이다.
스티브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설마? 감독의 제의를 거절한다고?’
기자들의 카메라가 대목장에게로 향했다.
갑작스런 주목에 대목장들이 긴장했다.
모두들 그의 입에서 ‘예스’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스티브가 말을 덧붙였다.
“기회가 허락한다면, 팔상전과 석굴암 같은, 이런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한국의 장인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영광일 것 같습니다.”
나와의 약속도 있었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 확인을 하고 싶었으리라.
모두의 주목을 받은 대목장이 말했다.
“스티브 감독, 제안은 고맙소만…….”
기자단이 경악하며 숨을 멈추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리와 하고 안 하고는, 당신 옆에 있는 성훈이와 상의하시오. 우리 모두는 녀석의 의견을 따를 터이니. 커흠.”
대목장이 한발 물러섰다.
스티브는 이미 예상이나 한 듯이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이 작품을 꼭 만들어야 죽을 때 눈을 감을 수 있겠소.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이 꼭 필요하오. 성훈 군의 의향은 어떤지 묻고 싶소만.”
스티브는 자신의 하고자 하는 바를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았다.
그의 물음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러브콜이라.’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내게 정중하게 프러포즈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