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67화
각자의 하고 싶은 것(01)
소세키는 마에다의 일이 정리된 직후, 내게 스티브를 소개해 줬다.
“성훈 사마, 스티브 감독입니다.”
“네? 그 스티브? 주라기 공원의?”
“네, 맞습니다.”
예전에 스티브와 일하게 해주겠다고 나를 꾀더니, 이번엔 당사자를 데리고 온 모양이다.
포기를 모르는 일본인들!
그렇게 생각하니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아! 그래서 그렇게 눈썰미가 좋았구나.’
명품의 가치는 아는 자만이 안다.
수억짜리 시계를 차고 있어도,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시계일 뿐이다.
어떤 유명 장인이 만들었고, 그걸 수작업으로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그게 얼마인지 그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시계는 시간만 맞으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지.’
그걸 보고 돼지 목에 진주라고 한다.
그런데 스티브는 내 작품을 처음 보는 순간, 그 가치를 알아봤다.
이 얼마나 좋은 고객인가?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내 작품을 보고 좋은 평을 해주면 얼마나 좋겠어.’
잘만 구슬리면 최고의 홍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하기 싫어도 홍보에 도움이 된다면 좋다.
‘좀 더 친절하게 대해야겠는걸?’
어중이떠중이가 칭찬해 주는 것보다 명사가 좋을 말을 해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홍보가 어디 있겠는가?
매정하게 떼어놓았던 스티브에게 나를 따라다녀도 된다고 선심 쓰듯 허락했다.
그리고 박람회가 진행되는 내내 스티브는 내 뒤를 쫓아다녔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갑돌이를 조종하는 부스였지만.
‘귀찮지만, 이틀만 참자.’
모레가 마지막 날.
그 전에 스티브를 꼬셔야 했다.
알 건 다 알 법한 노인네가 궁금한 건 왜 또 그리 많은지, 하아!
진이 다 빠지는 하루였다.
그날 밤, 그가 내게 말했다.
“성훈! 나와 함께 일해 보지 않겠어?”
“싫어요!”
스티브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으잉?”
단칼에 거절을 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모양이다.
소세키가 옆에서 스티브를 놀렸다.
“스티브, 거 봐! 내가 안 될 거라고 했지?”
“아, 거참! 불난 집에 부채질하나? 나 스티브야. 적어도 고민하는 모습은 보여야 하는 거 아니야?”
그는 자존심이 상한 듯 입을 댓 발이나 내밀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소세키는 결과를 예측하고 있었던지, 전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우리도 2년 전에 부탁해 봐서 잘 알지. 그때도 지금 같았어. 이렇게.”
소세기가 손날로 자기 목을 치며 말을 이었다.
“단칼에, 끽!”
스티브가 인상을 썼지만 소세키는 보라는 듯 더 환한 얼굴로 말했다.
“스티브, 끽!”
스티브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약 올리는 소세키에게 양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중지를 곧추세웠다.
“이거나 먹고, 좀 닥치시지. 미스터 소세키!”
스티브가 안달 난 표정으로 물었다.
“성훈! 왜 조건도 듣지 않고 ‘NO!’라고 말하는 거지? 내가 신뢰가 안 가서 그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다거나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니까요.”
“응? 그게 무슨 말이지?”
애초에 영화 쪽의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조건은 들어서 어디에 쓰겠나?
스티브가 물었다.
그의 눈빛은 더없이 진지했다.
“성훈, 유명해지고 싶지 않은가?”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유명해지고 싶었던 거야?’
유명해지고 싶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유명해지고 싶어서 건축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명성이 따라오는 것이지, 명성을 쫓다 보면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재능 있는 루키들이 한순간에 망가지는 게 그런 이유 때문이지.’
그러나 나는 그들과 달랐다.
살아온 세월이 다르고, 시궁창 같은 세상에서 구정물을 너무 많이 마셨다.
‘운이 좋아 두 번째를 살지만 이번 생만큼은 제대로, 의미 있게 꿈을 쫓아가고 싶다고.’
일은 내가 하는 거지만 명성은 남이 주는 거다.
일은 내가 휘두를 수 있지만 명성은 휘둘리는 거다.
이 차이를 모르면, 명성에 취하게 되지.
지금의 내게 명성이 가지는 가치는 하나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움이 될까?’
당연하지 않겠어?
인지도가 높으면 투자를 받기도 쉽겠지!
그리고 네 작품에 더 주목을 해줄 거야.
내 안의 성훈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영화로 유명세를 탔다고 해서 건축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될까?
거기서 쌓은 인지도가 과연 좋은 영향을 미칠까?
신중하게 생각해 보라고.
‘와! 영화 제작을 하던 성훈이 이번에는 건축물을 만든대, 정말 기대되는걸?’
이렇게 말할까?
내 안의 성훈이 비웃었다.
‘너 그렇게 순진했었어? 정말 그럴 거라 믿어?’
십중팔구 사람들의 반응은 정반대일 것이다.
‘영화 쪽에서 뜨고 나니, 건축은 아무것도 아니게 보였나 보군. 건방지고 오만해!’
성훈의 시작이, 그의 기반이 건축이었다고 해도 그걸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거니까.
성훈이 내게 물었다.
‘너! 언제까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는 왜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 이미 한 번 죽음을 경험한 내게.
그가 말을 이었다.
‘사람은 말이야.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그의 말은 정확했다.
운석이 떨어져 머리에 구멍이 날 수도 있고, 재수가 없으면 맨홀 구멍에 빠져서 죽기도 하지.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는 동안 심장이 멈추기도 하거든.
내 뜻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수명이다.
대꾸하지 못하는 내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차에 치어 죽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었어?’
미친 소리지.
누가 차에 치어 죽는다는 상상을 하나?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녀석이 말했다.
‘성훈아, 죽을 때 죽더라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죽자. 당장 오늘 밤에 죽어도 후회하지 않도록!’
이번 삶에 돌아와서 가장 한이 맺혔던 것!
내게는 건축이었다.
‘내 목숨이 언제 다할지 알아? 사방팔방으로 재능 있다고 추켜세워 준다고 다 할 거냐? 그 장단에 춤추다 보면,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건 하나도 못해! 그건 낭비야. 시간 낭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해지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나는 두말없이 스티브의 제안을 수락했을 것이다.
아니, 건축이 아니라 다른 것을 선택했겠지.
슈퍼카를 몰고 크루즈도 끌고 다니고, 동서양의 모든 미녀와 화려한 연애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욕망은 그것을 거부했다.
‘아무리 계산기를 때려 봐도 그건 손해라고!’
유명해지는 것.
그것은 내게 목적이 아니라, 결과가 될 것이다.
혹은 수단이거나.
명확한 건, 그게 절대로 내 삶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것.
그에게 물었다.
“스티브, 당신은 유명해지고 싶어서 영화를 시작했나요?”
“끙!”
“소세키, 당신은요?”
“전 제 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죠. 내 머리 속에 있는 것들을.”
‘이게 정상이지.’
무언가에 몰입하는 사람들은 명성을 바라지 않는다. 명성을 바라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명성을 선사한다.
목적이 아니었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그만.
그게 일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괜히 유명 예술인들이 칩거 생활을 할까?
혼자만의 사색을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어느 세월에 팬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을까?
팬들이 원하는 게 예술가가 명성에 취해 흥청거리는 걸까? 아니면 더 나은 작품을 만드는 걸까?
‘여기서 팬들이 자신을 본다, 추종한다고 착각한 사람들은 너나없이 망했지.’
인풋할 시간이 없는데, 아웃풋이 나올 리가 없다.
스티브를 보며 말했다.
“당신도 그랬을 거 아니에요.”
“그랬지.”
“당신의 그 말은 유명세를 미끼로 나를 유혹하는 것밖에 안 돼요.”
스티브의 얼굴이 붉어졌다.
돈, 명예, 인기, 권력!
눈을 현혹하는 반짝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들이 목표가 되는 순간, 인간은 그것들의 노예로 전락한다.
‘뭐! 너무나 진부한 말이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은 이십 대의 젊은이를 유혹하는 데는 더없이 좋은 재료가 된다.
안타깝지만 나는 이십 대가 아니었다.
소세키가 웃었다.
“크크큭! 안 된다니까. 스티브, 성훈 사마는 애송이가 아니라고.”
“으윽! 그래도 나는 성훈이 필요하다고.”
왜일까?
건물을 만드는 손재주?
아니야, 그건 대목장이나 박 목수가 나보다 백배는 뛰어나지. 당장 민수만 해도, 나 따위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갑돌이?
그걸 만드는 기술?
나는 시키기만 했을 뿐, 만들지 않았다.
기술만 따진다면 미국을 따라갈 수 있을까?
그런데 왜?
그에게 물었다.
“왜 내가 필요한 건데요.”
소세키도 말을 거들었다.
“그래, 나도 궁금해. 성훈 사마의 재능이야 나도 부럽지만 스티브 자네는 왜 그러는데?”
스티브는 나를 직시하며 물었다.
“난 말이야. 자네가 만든 모형들을 보면서 전율이 일었다고. 으으. 이거 봐! 보이지? 지금도 그걸 생각하면 닭살이 돋는다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그가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
“그 세세한 나무의 결, 세월의 손때가 묻어나는 기둥하며 대들보! 정말 최고였지.”
“하지만 그걸 만든 사람은 따로 있어요.”
“그건 나도 알아. 한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까. 자네 팀의 어떤 장인이 그러더군. 처음에 그걸 만들라고 했을 때, 연장을 부숴 버리고 싶었다고.”
‘박 목수 어른이겠구만. 언제 또 그분을 만났는지.’
안 봐도 훤했다.
그렇게 만들라고 했을 때, 무슨 쓰잘데기없는 소리냐며, 연장을 내팽개쳤으니까.
최 옹의 협박과 회유가 아니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거야.
스티브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누가 그런 제안을 했느냐고 물어봤지. 누구였겠나?”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이었다.
“성훈, 자네라고 하더군.”
그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 때문에 여러 사람이 고생 좀 했죠.”
스티브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어떻게 했는지 아나? 난 그런 부분을 모두 CG로 처리했다네. 왜냐고? 낭비로 보였거든. 시간 낭비, 인력 낭비! 어느 천 년에 그렇게 나뭇결과 나이테를 새겨 넣고 있겠나? 시킨다고 하는 장인도 없었고 말이야.”
내가 그 마음을 왜 모르랴!
“장인들이 고생을 좀 했죠.”
스티브도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말이야. 난 자네의 작품을 보면서 처음으로 그때의 선택을 후회했어. 그때 만약 이렇게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때로는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느낌을 살릴 때도 있죠.”
“자네 말이 맞아. 그게 꼭 필요할 때도 있지.”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렇게 아날로그로 한 줄 한 줄 결을 새겨 넣은 사람도 대단하지만, 그렇게 하라고 고집을 세우는 인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거든? 그런데 그걸 끝까지 관철하는 미친…….”
그는 말을 하다 말고, 기가 찬다는 눈빛으로 나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성훈, 자네는 건물을 만들면서 갑돌이도 함께 만들었어. 그렇지?”
“네.”
“왜 그렇게 만들었나?”
“독자들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서요.”
내 말에 스티브가 물었다.
“단지 건물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면 3D로 만들었어도 되는 거잖아! 그리고 소세키들의 말을 들어보면 자네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고 하더군.”
소세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성훈 사마, 저도 그게 궁금했습니다.”
나는 남들과 다르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관람객들의 시선을 지배하고 싶었다.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모형만 만든 사람은 많았어요. 아니, 거의 대부분이 그래 왔다고 봐야죠.”
스티브도 인정했다.
“사실이지.”
“그런데 말이죠. 만들어진 걸 그냥 보라고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여행의 반은 가이드가 차지하지 않던가?
말 잘하고 그 지역에 대해 잘 아는 가이드를 만나거나 홀로 여행을 갔어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어디를 가도 재미있고 즐겁다.
돌아올 때는 남은 돈을 그들에게 다 주고 와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 반대라면?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여행지가 되겠지.
“재미가 없다? 그 말이지?”
“당연하죠. 갑돌이를 따라서 관람하는 게 훨씬 생동감 있고 재미있죠. 원래 그런 거 아닌가요? 관광이란 게?”
세상은 혼자서 걸어가야 한다.
하지만 길잡이가 있다면, 하지 않아도 될 실수를 피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빨리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스티브에게 말했다.
“나는 이번 박람회에 온 사람들에게 한국 전통 건축을 제대로 즐기게 해주고 싶었어요. 혼자서 보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보다, ‘이렇게 보면 재미있다. 여기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즐겨라.’ 이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요.”
다음에 다시 박람회가 열렸을 때, 한국 전통 건축을 반드시 찾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