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63화
음모(07)
성훈이 물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을 여기까지 데려오신 이유가 뭡니까? 저번의 복수전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지만 마에다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사실을 부인했다.
“설마요? 당신이 보기엔 제가 그렇게 속 좁은 사람으로 보입니까?”
‘쳇! 아까 제 입으로 증명하겠다고 해놓고는 말 바꾸기는…….’
마에다가 말을 둘러댔다.
“깝또리. 당신은 나를 망신 줬다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저는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흥!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그래도 말투는 점잖으니 다른 관람객들은 정말 그런 줄 믿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저 득의양양한 표정을 보라고.
“하하! 깝또리 상! 당신은 정말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는 코웃음 치며 말을 이었다.
“이런 분들이 당신 하나 보자고 움직일 리가 있습니까?”
마에다의 해명이 계속 이어졌다.
“제가 실력 좋은 사람이 있다고 하니, 한번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렇지 않나요, 소세키 상?”
소세키가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에다에게 물었다.
“보시면 어쩌시려고요?”
“성훈…….”
소세키가 뭐라고 말하려 했으나 마에다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
“좀 실력이 있다고 생각이 되면 스카우트라도 해서 제자를 삼으려는 것 아닐까요?”
그 말에 소세키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거기서 확신이 들었다.
‘훗. 녀석들은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왔군.’
소세키가 알았다면 이런 자리에 나왔을 리가 없지. 아까도 다급하게 도망치는 모양새였는데.
‘적어도 아직은 소세키들은 내가 실력으로 누를 수 있거든! 적어도 아직은.’
나를 가르친다고?
하수가 고수를?
그건 어느 나라 교수법이야?
내가 알던 미래의 3D의 발전 정도에 비하면 이들의 실력은 아직 한참 멀었다.
거기다 15년의 시간을 단 2년으로 앞지른다는 것은 저들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다.
소세키와 시선을 마주치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러셨군요. 감사합니다.”
당황한 소세키가 눈을 부릅뜨며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기고만장한 마에다가 말했다.
“영광으로 여기세요. 당신 같은 사람은 평생 가도 만날 수 없는 귀한 분들이니까!”
“알겠습니다. 영광으로 생각하지요. 말씀이 끝나셨으면 계속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마에다가 말했다.
“그러세요.”
돌아서는 성훈에게 그가 말을 이었다.
“깝또리 상!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설마 잡아먹기야 하겠어요? 한 수 배운다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진행하세요.”
‘말 속의 뼈’라 했던가?
오늘 마에다의 말에 딱 어울리는 격언이었다.
***
마에다의 언중유골이 강해질수록 소세키들의 눈동자도 급격히 흔들렸다.
동료들이 소세키에게 원망의 눈빛을 날렸다.
‘아까 도망쳤어야 했어!’
소세키라고 다른 심정이랴!
자신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사람, 그 성훈을 제대로 된 자리에서 만나고 싶었고, 자신들의 성공을 축하받고 싶었다.
한데 이 어인 운명의 장난인가!
한편은 되지 못하더라도, 적은 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소세키의 눈에 성훈은 용이었다.
‘건드리지 않으면 아무 피해도 없지. 가끔씩 비도 내려준다고. 하지만 역린을 건드리면…….’
적어도 당사자는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소세키가 이를 으드득 갈았다.
‘망할 마에다 자식! 끝나기만 해봐! 박살을 내주겠어!’
성질 같아서는 지금 당장에라도 마에다의 멱살을 끌고 나가 작살을 내주고 싶었지만 여기가 누구의 현장인가?
그로 인해, 잠시라도 관람 분위기를 망친다면 성훈은 그것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릴 게 분명했다.
‘이 사람만은 뒷감당이 안 된다고!’
소세키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억울한 표정으로 성훈에게 어필하기, 그리고 이 일의 원흉인 마에다를 저주하는 것밖에 없었다.
성훈이 말했다.
“그럼 질문은 끝나고 받겠습니다. 그동안 생각들을 잘 정리해 두시길.”
***
그사이, 스티브는 그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팔상전을 제외한 나머지 모형들의 관찰을 마쳤다.
그리고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여기가 다른 곳과는 뭔가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는 뭐가 다르지?’
보이는 것도 분위기도 차이가 났다.
‘음. 설명을 꽤 조리 있게 잘하는군.’
하지만 단지 설명을 잘한다고 납득하기에는 결정적인 뭔가가 모자랐다.
로봇의 조종에 있어서 미세한 움직임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왜 이 친구가 보여주는 데는 설득력이 있는 거지?’
그것은 숙련도의 차이였다.
원래 계산대로라면 가이드는 성훈 하나뿐이었다.
그랬던 것이 계획을 바꾸면서 다른 사람들이 투입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루 이틀의 연습으로 성훈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따라잡을 수는 없는 법!
그 작은 숙련도의 차이는 따라갈 수 없는 격차를 만들어냈다.
그런 속사정을 스티브가 알 리는 없었지만 결과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냈다.
결과는 분명히 다르지만 그 원인을 금방 파악하는 것은 아무리 스티브라도 불가능했다.
‘여기는 관람객 숫자의 단위가 다르지 않은가? 어떻게 열 배나 차이가 나는 거지?’
분명히 한 부스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진행한다고 들었다.
갑돌이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확실히 다르군.’
모두 동일한 로봇을 조종하고 있었지만 이 갑돌이가 보여주는 부분은 다른 곳과는 달리 생동감이 있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인가?’
이 갑돌이는 관람객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시선도, 정신도.
그저 관객들이 할 수 있는 리액션은 감탄뿐이었다.
가이드 특유의 경쾌한 내레이션!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아니, 궁금해해야 할 것들을 미리미리 짚어가며,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러니, 여기에 관람객이 많이 모일 수밖에…….’
6대의 갑돌이 중에서 이 팔상전의 가이드만이 온전히 관람객들의 시선을 장악하고 있었다.
‘원래의 기획자라서 그 역량이 다른 것인가?’
다른 갑돌이 조종자들도 모두 이 팔상전의 갑돌이를 최고라 생각하고 있었다.
스티브의 눈이 커졌다.
“오오!”
다른 사람들은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지만 그만은 알 수 있었다.
“이것은……. 꿀꺽!”
다른 로봇들과 비교하면 반드시 한 두 걸음을 더 나아간다.
그러기에 더 세밀한 목재, 기둥이나 대들보의 나뭇결이 보였다.
‘이 한 걸음이 의도된 움직임이라면?’
그렇다면 놀라운 기획력이고, 그저 감각에 따른 거라면 천재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스티브 자신이 감독을 하면서 영화를 만들어 가는 것처럼 원조 갑돌이는 모형 안의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갑돌이가 안내하는 환상의 세계로 스티브가 발을 들이밀었다.
***
‘뭐지! 아까부터, 저 E.T 모자 노인은?’
왜 E.T 같다고 하냐고?
E.T라고 쓰여 있는 모자를 쓴 흰 수염의 노인이었으니까.
170이 될까 말까 한 체구에 편한 청바지, 카키색 아상을 입고 있었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외국인이고, 정장을 차려입은 것에 비하면 상당히 눈에 뜨이는 차림이었다.
아까부터 그는 튀어나올까 두려울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안경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작품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것도 작품에 코를 박을 듯이 갖다 대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모니터에 꽂혀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그는 수시로 감탄사를 내질렀다.
“호오! 원더풀! 대단한 솜씨로군.”
다시 안경을 쓰고 얼굴을 떼더니, 모니터를 바라본다.
“헉!”
그리곤 저 혼자 소름이라도 돋은 듯 팔뚝을 매만진다.
‘뭐 하는 사람이지?’
다른 관람객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그러더니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호감과 호기심이 서린 눈이었다.
‘어딘가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인가 보네.’
관심을 가져주니 고마울 뿐.
그가 물었다.
“이 로봇, 당신 아이디어인가?”
로봇 마니아인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질문이라 나도 모르게 답변이 튀어 나갔다.
“네.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요?”
그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로봇스럽게 움직이는군.”
당연한 말을 하는군.
“네. 로봇이니까요.”
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혹시 영화를 전공했는가?”
“아뇨. 건축학 전공입니다.”
관객석에서 작은 투덜거림이 나왔다.
“모자 아저씨, 우리도 질문하고 싶은데, 참고 있습니다.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니, 있다가 물어보시면 안 되겠습니까?”
E.T 모자가 아쉬운 표정으로 손을 들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팔상전의 설명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갑돌이가 말했다.
“이제 팔상전의 내부를 관람하시겠습니다.”
“기다렸습니다. 갑돌이!”
환호와 함께, 관람객들이 외쳤다.
“카운트다운! 쓰리. 투. 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제 열리는 타이밍까지 다 알고 있구먼.’
마에다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소세키 삼인방과 E.T 모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로봇이 춤이라도 추려나?’ 하는 눈빛이었다.
키릭!
빗장이 풀어지는 소리.
위잉! 철컥!
팔상전의 앞마당에 직사각의 구멍이 생겼다.
관객 중 하나가 소리쳤다.
“오옷! 어제랑 달라!”
“브라보! 난 이거 보는 재미에 매일 여길 온 거라고.”
오늘이 처음인 관객들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뭐라고? 어제랑 또 다르다고? 어제는 어땠는……. 엇!”
뚜뚜뚜!
팔상전의 전면 벽이 본체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앞에 생성된 검은 구멍으로 다가가 서서히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5층 꼭대기가 모습을 감추었을 때.
위잉! 철커덕!
한 벽을 삼킨 구멍이 다시 메워져 마당이 되었다.
남은 것은 팔상전의 내부와 3면의 벽.
관객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오! 브라보. 오늘은 어제하고 또 다른데! 갑돌 씨. 이건 미처 생각을 못했어요!”
“멋있어요! 최고예요!”
“몇 번을 봐도, 여기가 가장 소름끼쳐!”
***
하지만 스티브는 다른 곳에 넋을 홀리고 말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목을 거북처럼 빼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모니터에 드러난 모습은 실제 건물을 찍어온 것 같았다.
석굴암에 갔다가 그냥 온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이 봤던 것처럼 자세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냥 실망만 하고 돌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는 달랐다.
모니터에는 전체를 지탱하는 중심 기둥이 보인다.
각 층마다 거미줄처럼 엇갈린 대들보도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그런 구조물들의 웅장함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
밝은 조명이 비춰짐으로 인해 더 잘 보이는 디테일들.
“어떻게……. 건물이 나이를 먹었잖아!”
그제야 그는 왜 자신이 혼이 빠진 듯 모형을 볼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달았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알 수 없었던 거야!’
건물의 스케일에 맞춰서 나뭇결까지 비율을 맞췄을 줄이야!
‘그래서 그때의 석굴암이 실제로 찍은 것처럼 보였던 거야! 처음부터 3D가 아니었어. 왜 그걸 미처 알지 못했을까?’
매번 영화 세트를 만들 때 보던 그런 흔한 모형이 아니었다.
모형의 제작에는 자신을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내심 자부했건만!
매스를 만들고, 색감을 입히고, 광택을 내지.
하지만 금박으로 떡칠을 해도, 여기 대들보 하나의 품질을 따라갈 수가 없어.
‘하아! 이 작품에는 세월이 살아 있었어!’
SF의 거장, 스티브는 다리가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