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61화
음모(05)
소세키 삼인방이 박람회장 앞에 섰다.
“여기가 승부를 치를 장소인가? 마에다 녀석은 마중도 나오지 않고 말이야.”
각자의 감회는 남달랐다.
“이 땅에 성훈 사마가 계시다는 말인가?”
구라야마도 들뜨기는 마찬가지.
“성훈 사마께서 계신 땅이라 생각하니 공기마저 다른 것 같구나. 빨리 만나 뵙고 싶구나!”
소세키가 주의를 환기시키며 말했다.
“성훈 사마보다 승부가 먼저라고, 정신 바짝 차려. 마에다 녀석의 궤변에 빠져서 휘둘리지 말고.”
깝또리라는 녀석을 만나기 전에 마에다를 만나서 명확한 선을 긋는 것이 먼저였다.
그들의 감상에 스티브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들이 대체 뭐하는 거지? 성훈교라는 종교 단체라도 생긴 거야? 어제부터 아주 성훈 사마를 입에 달고 다니네.’
아까 공항에서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도, 그냥 대단한 사람이라는 두루뭉술한 대답을 들었을 뿐이다.
입구 계단에서 너무 시간을 지체했던 것일까?
급히 뛰어가던 군복 입은 젊은이와 소세키의 어깨가 부딪혔다.
군복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엇, 죄송함다.”
소세키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아직 승부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기분 상하는 일이 생기다니!’
“이런! 고노…….”
마사키가 그런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참게, 소세키. 성훈 사마의 나라라고.”
그 말에 다혈질의 소세키도 흥분을 가라앉혔다.
“알았어. 내가 한국에서 추한 모습을 보일 수야 없지.”
그사이, 군복의 젊은이가 어색한 일본말로 사과했다.
“쓰미마셍임다!”
마사키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는 손짓을 보냈다.
어색한 한국말이지만, 제법 조리 있게 말했다.
“괜찮스무니다. 조븐 곳에 있던 우리의 잘못이무니다. 몬저 올라가십니다.”
군복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그럼 바빠서 먼저 가보겠슴다.”
그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일단 알고 넘어 가야겠어.’
스티브는 내내 그의 머리를 어지럽히던 것을 묻고야 말았다.
“소세키, 도대체 성훈 사마가 누구야?”
“그분은 대단하신 분이지.”
스티브가 벙찐 얼굴이 되었다.
‘아까도 그러더니! 밑도 끝도 없이 대단하신 분? 그건 신에게나 하는 말이라고.’
이런 형식적인 대답에 그는 살짝 짜증이 났다.
“육하원칙에 따라서 설명해 보라고. 나도 좀 알자! 대체 뭐 하는 놈이기에, 네 녀석들이 사마라고 부르냐고?”
그 사람 좋아 보이던 마사키가 인상을 썼다.
“스티브, 아무리 당신이 대단하다고 해도, 내 앞에서 그분을 놈이라고 하는 건 용서할 수 없어.”
“그래, 나 스티브야.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감독이라고. 자네들보다 나이도 많아, 명성도 높아. 그런데 나한테는 사마라고 부르지 않잖아?”
그 말에 마사키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당연하지. 스티브, 당신과 우리는 사업상의 동반자라고. 동업자끼리 무슨 존경이야? 그리고 당신이 뛰어난 건 인정하지만, 그분은 뛰어남과는 다른 차원의 뭔가를 갖고 계시다고!”
확신하는 마사키의 말에 스티브는 더 약이 올랐다.
그가 광대를 씰룩거리며, 입을 열었다.
“자네들, 옛날에는 한국인이라면 질색하고 싫어했잖아.”
“우리가 언제?”
소세키들이 눈을 부라리며 따졌다.
“분명해. 삼사 년 전에 주라기 공원 할 때 말이야. 그때, 한국인 스태프를 그렇게 못살게 굴었잖아.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말이야.”
“흥. 그야 그 친구가 실력이 없었겠지.”
“훗. 아니야, 그 친구도 실력은 좋았어. 내가 직접 뽑았으니까! 자네들에 비하면 약간 뒤쳐졌을지 몰라도, 그렇게 무시당할 실력은 아니었어. 그때 소세키, 자네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나?”
맞은 자의 기억은 뼈에 새겨지고, 때린 자의 그것은 물에 흘려보낸다고 했던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과거를 더듬었지만, 소세키는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몰라! 더 열심히 정진하라고 했겠지.”
스티브가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아니, 그때 자네는 조센징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고 했어.”
마사키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물들었다.
“자네, 정말 그런 말을 했던 거야?”
소세키가 눈을 내리깔았다.
“내가 설마…….”
옆에 있던 구라야마는 생각이 달랐다.
“그때의 소세키라면……. 그랬을 수도 있어. 한국이라면 무조건 싫어했거든.”
스티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그때 조센징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고, 자네들의 편협한 민족주의에 경악을 금치 못했어.”
“그럼 왜 우리랑 일을 한 거야?”
“그래도 실력은 믿을 만했으니까, 브라운관에 자네들의 사상이 드러날 리도 없잖아!”
부끄러운 과거가 들춰지자, 소세키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뭐냐고? 갑자기 개과천선하기라도 한 거야?”
스티브가 따지듯 말을 이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한국인을 신 떠받들 듯하고 있으니 말이야.”
‘이 녀석들이 말하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알아야겠어. 녀석들보다 대단한 인물임은 틀림없겠지.’
처음 알았을 때부터 이 세 명은 뛰어난 기술자였다.
3D 분야에서 스무 손가락에 꼽으라면 항상 거론되는 실력자!
‘그래, 그때도 실력이 좋았지.’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어떻게?
‘이 셋을 빼고는 3D를 논할 수가 없다고.’
베를린 박람회에서 주가를 올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부르고 싶어도, 쉽게 부를 수 없는 자들이 되었다.
건방져서가 아니다. 일이 밀려 있기 때문이다.
돈을 싸 들고 가서 부탁해야, 겨우 시간을 뺄 수 있을까?
‘감독이라고 다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수요 공급의 법칙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희소성이 높을수록,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이번에 따라온 것도, 다음 작품에 같이 작업해 주겠다는 언질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가만 올라갔다면, 나 스티브가 이렇게 목 멜 이유가 없지.
주가보다 더 올라간 것은 실력!
박람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3D를 구현하는데, 입이 딱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차원이 달랐다고.’
디테일만 고집하던 편협함을 벗어던지고,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편집을 하는데 그 속도가…….
이 세 명이 삼 개월이면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손 털 작업을, 다른 팀에게 맡겼더니, 일 년이 넘어서야 겨우 끝이 보였다.
‘끝난 게 아니라, 그제서야 끝이 보였다고.’
누가 그랬던가?
끝나기 전에는 끝난 게 아니라고.
그 실력의 격차는 베를린에서 시작되었고, 이들의 겸손한 행동 변화도 그때부터였다.
그렇다면 이들이 떠받드는 인물도 그때 만났을 것이며, 그는 허구가 아니라 실존 인물이었다.
‘내가 함께 일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소세키들의 말을 십분지 일만 믿는다고 해도, 이 셋을 합친 것보다, 성훈 사마 한 사람이 더 뛰어나다는 말이거든!
“그래도 그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어.”
“왜?”
“그분 스스로가 자신을 감추려 하시는데, 우리가 나서서 밝힐 수는 없어. 그건 성훈 사마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마사키의 말에 다른 두 명의 일본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더 그분의 복귀를 바라는 것은 우리라고. 우리만이 그분의 진정한 실력을 알고 있지.”
“응, 또한 그분의 마음은 바다보다도 넓지.”
“스티브 당신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그분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야!”
“끄응.”
스티브는 저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주 중증의 기억 미화거나, 아니면 대신성이 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말이군.’
궁금하지만 어떡하겠나?
저렇게까지 감추고 드는 데에야!
그가 포기 선언을 했다.
“그럼 나중에 만나게 해줄 수는 있나?”
소세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자네는 분명히 그분을 귀찮게 할 거야! 성훈 사마께서 허락하신다면 기회가 생기겠지.”
스티브가 속으로 가슴을 쾅쾅 쳤다.
‘이거 봐. 이 친구들아! 나 스티브야, 스티브!’
하나 옹고집 같은 녀석들에게 더 말해 무엇하랴!
자존심만 구길 뿐이었다.
“쩝. 알겠네. 올라 가세나.”
소세키도 각오를 다졌다.
“마에다, 이놈! 이번에도 약속을 안 지키면, 내 직접 그놈 배를 따주겠어.”
***
팀이 쉬고 있는 휴게실에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충성! 일병 김한석! 드디어 복귀했슴다! 크하하하!”
미운 정도 정이라더니, 나도 오랜만에 보는 한석이 반가웠다.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인사도 제대로 할 줄 알고 인간돼서 나왔구나.”
“원래 인간이었지 말임다. 곰인 줄 아셨슴까?”
능글거리며 엉겨 붙는 건 여전했다.
“그래, 뭐 먹고 싶냐?”
“네! 일병 김한석! 짜장면이 먹고 싶슴다.”
“훗!”
어느 군대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나도 첫 번째 휴가 나왔을 때, 가장 먹고 싶었던 게 짜장면이었었다.
벌써 이십 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휴가 나와서 짜장면을 찾던 그 기억은 남아 있었다.
“그래, 배가 터지게 사줄 테니, 맘껏 놀다 복귀해라.”
“정말이심까?”
입이 찢어지는 녀석을 보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액면이야 몇 살 차이 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귀여운 조카를 보는 기분이랄까?
‘좀 눈치가 없는 녀석이기는 해도, 악의가 있는 놈은 아니니까.’
간만에 만난 녀석에게 좋은 선배로 기억되고 싶었다.
가장 반가워했던 건 민수였다.
한석과 얼싸안고 포옹을 했다.
“한석아! 너 군대 체질인가 보다. 살이 포동포동 찐 거 보니까. 힘들 지는 않아?”
“학교생활에 비하면, 거기는 천국임다, 천국!”
“고참들은 잘해주고?”
“성훈 선배님에 비하면, 천삼다, 천사!”
무관심을 가장하며 걸어가던 나도 사람인지라 저런 말엔…….
잠시 꿈틀했지만, 참기로 했다.
‘너 같은 놈 천국으로 안 보내는 내가 천사다. 이 자식아!’
아까도 말했지만 눈치가 없어서 그렇지, 악의가 있는 놈이 아니었다.
‘십 일만 참자! 술이나 진탕 먹여서 기절시켜야지.’
떠벌이 한석의 입을 막으려면, 그 수밖에 더 있으랴!
***
드디어 드림팀이 도착했다.
마에다가 그의 사무실에서 그들을 맞았다.
대뜸 소세키는 조건부터 내걸었다.
‘또다시 이 의심병 환자에게 휘둘리는 건 질색이라고.’
“마에다, 확실하게 하지. 우리가 여기 온 것으로 내가 너에게 갚아야 할 빚은 끝난 거다.”
자기 예상과는 달랐던지, 마에다가 눈을 끔뻑이며 반론했다.
“하지만 저 깝또리…….”
“그놈이 사기를 쳤든 아니든 그건 우리가 밝혀낼 문제다. ‘네 말이 옳다, 저놈이 틀렸다.’ 그걸 증명하려고 온 게 아니란 말이다.”
소세키들과 스티브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에다 씨, 우리는 진위 여부만 확인할 뿐입니다. 당신의 편이 되어줄 생각은 없습니다.”
마에다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삐딱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당신이 대체 뭐라고, 그런 말을 하는 거요!”
허름한 옷차림에 모자를 눌러쓴 백염의 노인이었다. 알아보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공항에서야 여권 때문에 알아볼 수밖에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얼마든지 변장이 가능했다.
마사키가 말했다.
“스티브 감독입니다.”
“네?”
마에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미처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스티브 감독님.”
“괜찮습니다, 마에다 씨.”
마에다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그런데 왜 그런 차림으로…….”
소세키가 아직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는 마에다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럼 스티브처럼 유명인이 얼굴을 드러내고 다니란 말이야? 그게 말이 돼?”
“아! 그렇겠군.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무리 유명인이라고 해도, 마음먹고 감추는 데야 확인할 방도가 있으랴! 그쪽 계통의 사람이 아닌 한은 불가능해 보였다.
스티브가 말했다.
“마에다 씨. 저는 정체를 드러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저 그 사람의 실력을 보고 싶어서 왔을 뿐입니다.”
마에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깝또리. 그는 사기꾼일 뿐입니다.”
“모르지요. 영상만 봤을 때는 뛰어난 실력이었습니다. 의혹이 있다고 하니, 정말 실력자인지 확인도 할 겸 온 것이지. 마에다 씨를 편들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놈은 사기꾼이 확실합니다.’
마에다는 끝까지 주장을 하고 싶었지만 말하는 사람이 누군가?
그 이름도 유명한 스티브 감독이 아닌가?
마에다가 황송한 표정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렇겠지요. 저는 그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부디 진실을 가려 주십시오.”
소세키들이 씁쓸하게 혀를 찼다.
‘쯧. 유명하다니까 허리 숙이는 꼴 하고는. 아예 엎드리지 그러냐?’
소세키는 마에다와 생각이 달랐다.
‘그 실력은 진짜였어. 이런 실력자라면 충분히 친해질 가치가 있다고.’
편집이든 교묘한 짜깁기든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곧 실력이다.
설령 심증이 있다고 해도 진짜가 아님을 증명하지 못하면 가짜라 규정할 수 없는 것처럼.
소세키가 못을 박았다.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지 마라. 더불어…….”
마에다도 진중한 표정으로 동의했다.
“알겠다, 두 번 다시 내가 은혜 이야기를 꺼낸다면 전에도 말했다시피 할복하겠다니까!”
“그럼,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