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260화 (260/427)

건축의 신 260화

음모(04)

갑돌이의 인사와 함께 가이드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십니까! 가이드 갑돌이입니다. 이번 작품은 법주사 팔상전으로, 여러 번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처음 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그 말에 누군가 장난스런 말투로 성훈에게 제동을 걸었다.

“브리핑은 됐어. 갑돌, 팔상전을 오픈해 달라고.”

“그래, 그 장엄한 모습을 보고 싶어서 왔다고.”

호응하는 관객들의 말에 성훈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조단 미국 대사님. 슈미트 독일 대사님. 자꾸 그러시면 안 열고 그냥 지나가는 수가 있습니다. 셧업, 플리즈.”

하얀 턱수염을 기른 중후한 신사가 입을 닫았다.

“그건 갑돌이의 횡포야. 횡포! 다들 아는 내용이니, 빨리 지나가자는 말이지. 안 그런가요? 슈미트 대사님. 흠흠.”

실내에는 훈훈한 축제 분위기가 감돌았다.

각자가 보고 싶은 장면이 얼른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셔터 누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이스틱을 들고 있는 사람은 나라고?’

즐거움의 파도가 술렁댄다고 할까?

농담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는 자연스레 무르익었다.

키릭.

잠시 후, 팔상전 전면부가 갈라지며, 그 내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찰칵. 찰칵.

어린아이들이 장난감에 환호하듯, 나이 든 사람들이 건축물의 변신에 환호성을 보냈다.

‘훗. 이제 자동이네. 자동!’

몇 번의 가이드를 통해, 관객들이 어떤 장면을 좋아하는지를 훤하게 꿰뚫고 있는 성훈이었다.

각자 취향에 따라 반응이 갈리는 것도 있지만, 팔상전의 오픈 부분에서는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진행을 하는 입장에서 관객들의 호응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으랴!

한 달간의 고생이 보답받는 순간이었다.

장인들이라고 남다르냐.

관객들의 환호를 보며, 박 목수가 코를 팽 풀었다.

“아이고. 무식한 코쟁이들이 좋은 건 알아가지고. 훌쩍.”

“기계 부품들이야, 제 놈들이 앞설지 몰라도, 손재주는 아직 우릴 따라올 수 없죠. 암!’

“그래도 아직 멀었구먼. 제대로 눈이 박혔으면, 저게 얼마나 고차원적인 기술인지 알 텐데, 쯧쯧. 돼지 목에 진주지.’

“그래도 저렇게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박 목수는 목이 메었다.

‘저걸 만들겠다고, 성훈이 그놈한테 당한 것을 생각하면.’

이 미친놈이 글쎄…….

팔상전 대들보를 만들고 있는데,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더란 말이지.

‘박 목수님.’

‘왜 불러?’

‘뭔가 모자란 것 같은데요?’

성훈이 특기가 뭐냐?

장인들한테 시비 거는 거거든.

제 놈은 만들 생각도 없으면서, 눈은 또 지랄 나게 높아!

그래서 이렇게 말해줬지.

‘뭐가? 이 정도면 수준급이지.’

‘쩝. 그렇겠죠. 수준급.’

하지만 나는 놈이 말꼬리에 중얼거리는 걸 분명히 들었지. 귀를 닫았어야 했는데.

‘고작해야 수준급…….’

그 말을 듣는데 머리가 돌아? 안 돌아?

그래서 물었지.

‘뭐가 부족한데? 말해봐. 다 해줄 테니.’

녀석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됐어요. 수준급이라는데.’

그런데 그날따라 그 수준급이라는 말이 영 거슬리더란 말이지.

수준급이면 수준급이지, 고작해야는 왜 붙어?

버럭 고함을 질렀지.

‘다 해준다고. 뭐가 부족한지 말만 해. 이 망할 놈아!’

뜸들이던 놈이 말하더군.

‘수준급이긴 한데……. 세월이 안 보여요.’

이런 떠그랄!

세상 천지에 모형을 만드는데, 세월을 말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어?

그런데 놈이 하는 말이 또 일리가 있더란 말이지.

‘500년이 다 되어 가는 건축물을……. 이렇게 근접 영상으로 보여 주는데, 새하얗게 예쁜 나무면 재미가 있을까 생각이 들어서요. 쩝. 아무래도 그건 어렵겠죠? 전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고 싶은데.’

내가 누구냐! 박 목수!

세월을 다루는 데는 도가 튼 사람이라고.

하지만 저 말에는 하겠다는 말을 못하겠더라고.

저도 양심은 있는지,

‘너무 많은 걸 바랐네요. 죄송해요.’

녀석이 물러가나 했지.

‘그냥 대충 하죠. 뭐, 대충.’

그 말에 완전히 이성이 날아가 버렸지. 젠장!

‘이 썩을 놈아, 한다, 한다고! 나중에 대충 했니 뭐니 하는 쓸데없는 소리 나오면, 나한테 혼쭐이 날 줄 알아!’

그러고는 한 달 동안 허리 한 번 못 펴고 작업을 했단 말이지. 아이고, 허리야!

그런데 이 정도 반응에 만족을 하겠어?

들어도 들어도 나, 박 목수가 만족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슈미트가 반백의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허허허. 나는 지금 세 번째 보는데도, 탄성이 멈추지를 않는구려. 압권이란 말이지.”

그 말에 조단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허허허. 슈미트 씨, 나는 네 번째라도 마찬가지라오. 처음부터 봤었거든요.”

“그러시군요. 이번에 한국에서 정말 제대로 준비를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슈미트 대사, 옷이 바뀌셨습니다?”

“으하하. 어떻습니까? 어울립니까?”

분명히 어제까지만 해도 연미복을 입고 나왔었는데, 오늘 슈미트는 한복을 입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조단의 흰 눈썹이 씰룩거렸다.

“내 얼굴에는 이 색깔이 더 잘 어울린답디다. 한복점 마담께서 해준 말이오.”

“흥! 잘 어울리기는 하는군.”

“질투하는 게요? 애처럼? 조단 대사께서도 하시면 될 게 아니오?”

“예약 밀려 있다고, 박람회 끝날 때쯤에나 된다고 합디다. 처음부터 예약을 했어야 하는 건데. 에잉!”

슈미트가 화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미국에서는 사람을 보내기로 했다면서요?”

“허. 소식이 빠르십니다. 그건 또 어떻게?”

슈미트가 눈썹을 으쓱하며 말했다.

“다 아는 수가 있지요. 괜히 정보강국인 줄 아십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빠를 겁니다. 문화부 차관이 직접 지시하셨거든요.”

대체 뭘 말하는 것일까?

“우리도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장관께서 직접 언급하셨거든요. 흐흐흐.”

“흥. 사실은 대통령께서 직접 지시하셨다는…….”

“우리도 수상께서 직접 지시하셨다는…….”

“에잉. 그만합시다.”

“그럽시다.”

조단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우리는 연줄이 있지요. 저 성훈의 지도 교수인, 한 교수가 예일 대학 출신이라서 이번에는 독일도 쉽지 않을 거요.”

“우리는 소피아 양이 있소. 봤잖소! 입술이 부딪히는 모습을……. 그녀에게 잘 비벼 봐야죠.”

“슈미트! 치사하게…… 미인계를 쓰는 거요?”

“뭐 성훈의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최고의 대우를 해줄 생각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요. 다음 박람회 때에는 반드시 독일을 누르고야 말겠소.”

두 대사가 벌써부터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압둘이 내게 오더니 말했다.

“소피는 참 아름답군.”

압둘의 솔직한 감상평이었다.

“네, 아름답죠.”

“난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천사가 강림한 줄 알았다네.”

이해한다. 누구나 그러니까.

“하지만 난 뼈를 끊는 심정으로 포기했다네.”

갑돌이 옷을 갈아입히다가, 압둘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이건 또,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그의 검은 콧수염이 스르륵 물결쳤다.

그가 선언하듯 말했다.

“나 압둘은 은인의 여자를 탐할 정도로 파렴치한이 아니거든.”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더위 먹었어? 한겨울에?’

혹시 소피를 말하는 건가?

누가 소피를 내 여자라고 했는데?

이번 생에서는 결혼을 최대한 미루고 싶다고.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벌써 족쇄를 채우려고.

‘이미 살아 봐서 안다고.’

행복한 점도 분명히 있지만, 솔로라서 누릴 수 있는 행복도 무시할 수 없지.

밤늦게까지 일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지.

몇 달을 외국에 다녀와도 간섭하는 사람 없지.

결혼하는 순간 그건 모두 끝이라고.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압둘은 자기 말만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내 형제 카미의 목숨을 구해준, 자네와의 의리를 버릴 수가 없어.”

‘버려도 되는데!’

나도 몰딩 건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정리하고 싶은데 말이야.

매대에 시선을 두던 압둘이 말했다.

“난 자네와 소피가 이어지기를 알라께 진심으로 기도드렸네. 부디, 인샬라. 오! 저기. 나의 천사가 오는군. 크흑.”

나이도 지긋한 양반이…….

돈으로 후려치던 맹수 같은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사랑에 상처 입은 나약한 초식동물만이 남아 있었다.

소피가 물었다.

“성훈, 압둘과 무슨 이야기를 한 거예요?”

내가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저 혼자 사랑에 빠졌다가, 저 혼자 실연당한 사람을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겠는가?

압둘이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소피아!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 편이오.”

터벅터벅 걸어가는 압둘을 보며, 영문을 모르는 소피가 울상을 지었다.

그리고 나를 보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표정으로 말했다.

‘으! 느끼해요.’

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하는 걸까?’

소피와 성훈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엄마도 봤는지, 혀를 쯧쯧 찼다.

“현주야, 어제 난리가 났었다면서?”

“왜?”

“성훈 총각, 여자 친구가 찾아 왔다면서?”

현주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누가 그래? 여자 친구라고?”

그렇지 않아도 가슴이 조마조마한데, 엄마가 그녀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관심도 없는지, 엄마가 성훈이 있는 쪽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여자 손목도 못 잡아본 것처럼 쑥맥으로 봤더니, 그게 다 연기였던 거야! 난 척 보고 바람둥이인 줄 알아봤지.”

현주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냥 아는 여자일 뿐이야. 그 여자가 혼자 성훈 씨를 좋아하는 거고, 성훈 씨는 별 관심도 없어.”

현주의 말을 듣기나 했는지, 엄마는 제 할 말만 하고 있었다.

“쯧쯧. 얼마나 남자가 바람기를 흘리고 다녔으면……. 독일에서 저 어린 애가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오겠니? 안 그래?”

엄마가 걱정 가득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저런 남자는 결혼해 봐야 마음고생만 해.”

현주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 근거도 없으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엄마!”

“아! 깜짝이야! 왜? 내가 틀린 말…….”

하지만 현주의 꾹 다문 표정에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앞으로는 내 앞에서 성훈 씨 험담하지 마. 절대로.”

“왜? 내 입으로 말도 못하…….”

그녀는 말을 잇다가, 현주의 원망스러운 눈빛에 입을 닫았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야. 누군가의 말만 믿고, 그렇게 쉽게 판단할 남자가 아니라고.”

“현주야, 그게 아니라, 엄마는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소피아 때문에 신경이 예민한데, 엄마까지 그 위에 얹고 싶지 않았다.

성훈이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집으로 데려다주는 차에서 이야기 나눠본 바로는, 엄마에 대해 그다지 좋은 감정이 없는 것 같았다.

하긴 자신이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성훈 씨는 아무 생각도 없는데, 엄마가 먼저 나서서 그러면 나는 어떡하라고!’

미현의 말처럼, 성훈과의 관계는 자신이 만들어 가는 거였다.

주변의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스스로 그 남자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되는 거였다.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도 알아.”

“그런데, 왜?”

그녀의 딸이 언제 자신에게 이런 단호한 말을 한 적이 있던가?

항상 순종적이고 말 잘 듣는 아이였는데 말이다.

“성훈 씨와 잘 되든 안 되든, 적어도 이것만큼은 내 의지대로 하고 싶어.”

“이것아, 내가 언제 너한테 해되도록 한 적 있니?”

“어쨌든 내 앞에서 성훈 씨 험담할 거면 여기 오지 마!”

“어쩜, 엄마한테 그렇게 말할 수가 있니?”

붉으락푸르락하는 엄마를 뒤로 한 채 말했다.

“나, 성훈 씨한테 가 봐야 돼!”

단호한 현주의 태도에 엄마가 할 말을 잃었다.

***

“역시 스티브야. 사인받는 인파가 저렇게 많을 줄이야.”

“그러게, 비공개적으로 왔는데도 저 정도이니.”

김포공항에 들어온 소세키 일행이었다.

그들의 부러움 가득한 말에, 스필버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이 친구들아, 객쩍은 소리 말고, 얼른 갑돌이나 만나러 가자고.”

“뭐 그리 급해, 스티브?”

“기껏 섭외하러 왔는데, 다른 사람이 채 가기라도 해봐. 허사라고, 소세키!”

“당신 정도의 거물이 제의하는데, 싫다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걱정하지 말라고. 설령 다른 라이벌이 있다고 해도 당신에게 오케이할 거니까. 그러니까 좀 더 느긋하게 가자고? 한국에 왔으면 팥죽도 좀 먹고 불고기도 먹고 해야지.”

마사키도 웃으며 말을 붙였다.

“온 김에 성훈 사마도 만나 뵙고 가자고.”

“크, 마사키 자네는 아주 성훈 사마를 신으로 모시듯 하는구먼.”

“소세키 상. 자네도 알잖나! 그분의 넉넉한 카리스마를…….”

스티브가 의아해서 물었다.

‘나한테는 항상 비즈니스 이상으로 대하지 않던 인간들이…….’

성훈이라는 사람을 말할 때는 극존칭을 붙인다.

어찌 궁금하지 않으랴?

“대체 그 성훈이라는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야?”

마사키가 얼굴을 찌푸렸다.

“성훈 사마! 그런 사람이 있어. 진짜 대단하신 분이지.”

소세키가 택시를 잡았다.

“자! 얼른 가자고. 그 인간을 처리하고 나서 바로 성훈 사마를 만나 뵈러 가자.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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