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259화 (259/427)

건축의 신 259화

음모(03)

한국의 00일보.

편집장이 탁자로 ‘뉴욕타임즈’를 내던지며 인상을 구겼다.

“이거야 원.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있나.”

눈 감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 후 수화기를 들었다.

“어제 박람회 기사 가지고 온 글마들, 당장 내 방으로 오라고 해라. 뭐라꼬? 오늘도 거기 가 있다꼬? 또 한복 사진이나 한 뭉탱이 찍어 올란갑지. 지금 당장 기들어 오라꼬 해. 안 그라믄 다리 몽디 몽창 뿌사삘끼니까!”

“편집장님, 부르셨습니까?”

밖에서 주의를 들었던 대로, 편집장실은 뿌연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이거 잘못 걸리면, 뺑뺑이 돌겠는데?’

어제는 분명히 칭찬을 들었었다.

현주라는 무용수의 아름다움을 절묘하게 찍었다고 말이다.

김 기자는 후배와 조용히 들어와, 편집장 앞의 소파에 앉았다.

편집장이 무거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김 기자.”

“네, 편집장님.”

편집장의 숨 가다듬는 소리만 들렸다.

한참 만에야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제 있다 아이가! 찍을 끼 진짜로 한국 무용밖에 없드나?”

평소의 표준말 대신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가 튀어나오자, 김 기자는 바짝 긴장이 되었다.

그 말은 곧 편집장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이고, 어제의 기사를 거론한다는 것은 기사에 문제가 있다는 말과 같았다.

잘해 줄 때는 부처 같아도, 엄할 때는 호랑이 같은 편집장이었다.

‘뭐가 편집장님 심기를 건드린 걸까?’

“그것 외에 건축 모형, 한복, 짚신……. 뭐 많았습니다만…….”

“다만……?”

“선택과 집중 아니겠습니까? 가장 임팩트 있는 곳에다가…….”

“몰빵을 했다? 그기지?”

김 기자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니 선택은 옳았다.”

‘휴.’

“오늘 신문 판매량이 니를 살릿다. 운 좋은 줄 알아라.”

“네, 알겠습니다.”

편집장의 말이 이어졌다.

“그란데, 니 선택은 틀릿다.”

“네?”

아까는 옳았다고 하고, 지금은 틀렸다니?

김 기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편집장이 그의 앞으로 외국 신문 두 개를 집어던졌다.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

“갑자기 이건 왜?”

편집장이 퉁명스레 말을 던졌다.

“니가 쓴 거하고 비교해 보그라. 어떤 기 더 임팩트 있노?”

<한국 전통 건축, 세계 진출을 향한 첫 포문을 열다.>

이 타이틀과 함께, 첫 페이지를 장식한 사진은 로봇 갑돌이와 석굴암의 사진이었다.

현주의 사진은 일면 하단에 잠깐 얼굴을 비췄을 뿐, 자신이 일면을 장식한 것과는 천양지차였다.

한국의 전통 건축이 하이테크놀로지를 적극 활용해 전통 문화 홍보에 나섰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어떻게 하면 한국의 전통을 즐길 수 있고, 친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접근 방법까지 세세하게 전달하고 있다. 한국을 몰랐던 사람들은 그 새로움에 매료될 것이며, 이미 알고 있던 이들도 그 색다른 관점에 재미를 느낄 것이다.

본 기자는 어제의 박람회를 통해서 한국 문화에 열렬한 팬이 되었다. 이 박람회는 미국식 블록버스터에 지친 사람들에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문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관람 문의 : 02-000-0000>

관람 장소와 시간, 즐기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나와 있었다.

편집장이 말했다.

“일마들은 자질구레하게 설명 안 한다. ‘보고 싶으믄 가서 봐라. 이만큼 재밌다.’ 니가 쓴 거랑 비교하믄 어떻노?”

김 기자는 고개를 숙였다.

어제 본 것들을 정확하게 나열하되, 그 중심을 잃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심은 전통 건축이었지, 춤사위가 아니었다.

“그게 너무 화려해서, 잠시 정신을 놓았었나 봅니다. 면목 없습니다.”

편집장이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그래도 니가 제일 사진을 잘 찍으가, 우리 신문이 젤로 마이 팔릿는갑더라. 별 문책은 없을기다. 하지만 이거는 기자 자존심 아이가? 우리보담 외국놈들이 더 우리 문화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으믄 니 쪽팔리가 외국 나가겠나? 한국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나?”

은근하게 달래는 말에 김 기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니를 그리 갈챠났으이, 내 잘못도 있겄지? 내가 거기를 안 가봤으이까네 말을 몬했는데, 내가 봤으믄, 제임슨가 뭔가 하는 일마맹키로 기사를 썼을 끼다. 솔직히 내도 이번 해나 작년이나 뭐가 다르겠노 생각했지, 이래 변화가 심할 줄 알았나? 알았으믄 선수를 쳤을 낀데.”

그는 많이 아쉬운 듯, 마른침을 삼켰다.

“지나간 일은 인자 됐고, 마지막 글 봤나?”

“네?”

“함 읽어봐라.”

기사 말미는 이렇게 장식하고 있었다.

<더 적고 싶은 것이 많지만, 오늘은 석굴암을 이야기하는 데만도 지면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아쉬워하지 마시라. 내일은 다른 건축물로 독자들을 찾아갈 테니.>

“재미있으믄 내일 또 사보라꼬 광고까지 하고 있다 아이가! 장사는 이래 하는 기다.”

편집장이 말을 이었다.

“김 기자야, 맨날 말초신경이나 자극하는 기사만 쓰믄, 삼류 못 벗어난데이. 제대로 해가 우리도 일류 소리 함 들어야 될 거 아이가. 으잉?”

“네! 이번에는 확실히 하겠습니다.”

“어떻게?”

“네?”

“어떤 놈을 붙들 거냐고?”

“그게…….”

“쯧쯧. 의욕만 앞서 가지고. 기사 대충 읽어 보믄, 어떤 놈한테 소스를 얻었는지 딱 나온다 아이가! 어제 젤로 눈이 띄는 놈이 누구더노?”

“로봇을 조종했던.”

“그래, 아마도 글마한테서 소스를 얻었을끼라.”

김 기자의 머리에 어제 성훈이 백인 기자들과 이야기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게 대충 넘길 게 아니었네.’

앉아서 천리안이라 했던가?

편집장은 현장에 가지 않고도, 돌아가는 상황을 꿰뚫고 있었다.

기자 30년 경력이 아깝지 않은, 편집장의 통찰력이었다.

“하루!”

“네?”

“시간 하루 더 준다꼬!”

“네, 편집장님.”

“지대로 쫌 해가 온나! 내가 느그 때문에 명대로 몬 살겠다. 으잉!”

“네, 편집장님. 확실히 해오겠습니다.”

김 기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래, 그래야지. 얼른 나가 봐라. 다른 신문사 아들잔테 자리 빼앗기믄 안 되지. 일 보거레이.”

하루의 시간을 벌었다.

‘그 갑돌이라는 녀석을 제대로 붙들어야겠는걸.’

이 정도는 아주 양호하게 넘어간 것이고, 다른 몇 군데의 신문사에서는 재떨이가 날아다녔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겠다.

***

기다리던 전화벨이 울렸다.

폰을 열자마자, 흥분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이거 누구 작품이냐?

미국은 아직 밤, 그럼 일을 마치자마자 바로 확인을 한 모양이었다.

마에다가 말했다.

“깝또리라는 놈이다.”

-깝또리? 마사키, 그런 이름이 있어?

마사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니, 같이 있는 사람과 대화중인 모양이었다.

잠시 후, 그가 퉁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에다! 혀 짧은 소리 하지 말고, 제대로 발음해라. 갑돌이다. 갑돌이! 이름을 보니, 한국 사람인가 보군.

“그렇다, 그걸 어떻게 안 거지? 아는 사람인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지인 중에 한국 사람이 있어서 그렇다.

마에다가 그의 의견을 물었다.

“어떤가? 소세키. 이상한 곳이 보이지 않던가?

-이상한 곳?

“그래, 메일에 썼다시피 아무래도 이상해서 말이야. 석굴암이라는 동굴 안에만 들어가면, 꼭 실제로 찍은 것처럼 나온단 말이야. 내 생각에는 현실에서 찍은 것을 편집을 했던지, 아니면 3D라는 의혹을 지울 수가 없거든.”

-나도 그 부분을 유심히 봤지. 하지만…….

소세키가 고개를 젓는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e. 이상한 점을 찾을 수가 없었어. 석굴암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다가, 네 말대로 이게 만약 3D라면……. 정말 할 말이 없군.

소세키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감탄해서는 안 된다고. 녀석의 약점을 잡아야 한단 말이다. 빠가야로!’

마에다는 언짢은 투로 소세키의 감상을 잘랐다.

“착각하지 마라. 소세키! 그놈은 절대로 사기꾼이다. 그것도 기가 찰 정도로 절묘한 사기꾼이지!”

-사기꾼? 쳇! 소개시켜 준다는 게 아니었어? 이 정도로 3D를 다룰 정도면 그야말로 괴물이라고. 우리도 한 수 접어줘야 할 정도로.

“자네가 해야 할 일은 그것에서 이상한 것을 찾아내는 거야.”

-날더러 고작 진위 여부를 확인하라는 말이냐? 내가 니 시다바리냐? 엉?

“너희들이 꼭 해줘야만 한다. 일본의 명예가 달린 일이란 말이다.”

-또 헛소리! 너, 그거 과대망상이다. 니가 일본이냐? 거절한다. 귀찮다. 돈 안 된다. 더 이유가 필요하냐? 양심이 있으면 그만 전화해라.

귀찮음이 풀풀 묻어나는 그의 말에 마에다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소세키! 네 녀석들이 처음 미국으로 진출할 때, 내게 입은 은혜를 잊은 것이냐? 너란 녀석은 그렇게 은혜를 모르는 인간이었나?”

-휴. 또 은혜 타령이냐. 지친다.

하지만 그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소세키를 설득했다.

“이번은 진심이다. 이번의 일만 해결해 주면, 다시는 은혜를 들먹이지 않겠다.”

-천황 폐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해라.

마에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렇게 맹세하고 나면 두 번 다시 부탁을 할 수 없으리라.

소세키도 그것을 알기에 하는 말이겠지만.

하지만 이번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진실을 밝혀내야 했다.

‘감히 한국 따위의 후진국이 일본을 능멸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

그가 결심을 굳혔다.

“알았다. 천황 폐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시에는?

“할복하겠다. 반드시 지킨다.”

소세키가 한숨을 내쉬며 승낙을 했다.

-좋아! 그럼 3D 원본을 보내! 이런 실력자는 이런 동영상 파일로는 진위 분간이 어렵다고.

“아니! 그럴 수는 없다. 직접 와서 확인해라.”

-뭐야? 지금 일본으로 오라고? 미쳤냐? 여기 미국이야!

“아니, 한국이다. 그리고 내 부하, 스즈키가 목숨을 걸고 구해온 파일이다. 그의 수고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야 없지. 반드시 해내야 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시간도 얼마 없다. 적어도 모레까지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영원히 완전 범죄로 남을지도 모른다.”

수화기 너머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데, 이렇게 통화가 길어지는 겁니까?

-몰라. 깝또리라는 놈 작품이 아무래도 편집된 영상인 것 같다고. 한국에 외서 진위를 확인해 달라고 하네?

-미친 놈! 또 누가 빠가 돌게 한 모양이네. 하지 마!

-이제 은혜 안 들먹인단다. 이참에 끝내자. 끌려다니는 것도 지겹다.

-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한번 가 보자. 잘만 하면, 성훈 사마를 능가할 놈일지도 모른다고.

-3D가 아닐 가능성도 높다고.

-그럼 그것대로 대박이지. 스티브한테 보여 줬더니, 자기한테 소개 시켜 달라고 하던데?

-그럼 스티브도 가자고 해볼까? 이 정도 실력이면……. 사실 만드는 건 우리가 나아도, 보는 건 그 사람이 더 좋잖아!

-그래, 만약 진짜배기면 바로 우리 팀으로 영입하자고. 스티브가 채가기 전에.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성훈 사마? 그 자식은 또 뭐하는 자식이야?’

하지만 그는 들려오는 대답에 의문을 접었다.

-알았다. 지금 바로 출발하지.

내일이면 소세키의 드림팀이 한국으로 들어온다.

그것도 스티브 감독이라는 무적의 옵션을 데리고 말이다.

이건 어떤 놈이라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꾹 다문 어금니 사이로 승리의 웃음이 삐져나왔다.

“깝또리, 고노야로. 네놈은 이제 끝났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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