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57화
음모(01)
그의 집무실로 돌아온 마에다는 수치심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치사한 녀석! 감히 나의 약점을 잡으려 하다니!’
그는 억울했다.
깝또리는 자신과 정면승부를 하지 않았다.
그저 주변의 상황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선동해서 자신을 바보로 만들었다.
‘정녕 나를 설득시키려 했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지. 정중하게 내 논리에 반박을 했어야 했다고.’
성훈이 알았다면, ‘뒤에 숨어서 트집이나 잡는 놈이 승부를 논해? 당장 입을 뭉개놓겠어!’라고 방방 뛸 일이었지만, 마에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지. 칙쇼! 내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는다고!”
생각 같아서는 당장 전문가를 불러들이고 싶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먼저 증거를 확보해야지!’
그는 심복인 일등 서기관 스즈키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영사님!”
마에다가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스즈키 군. 자네가 우리 일본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그의 말을 들은 스즈키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또 무슨 일을 시키려고.’
거창하게 나라를 들먹일 때의 마에다는 결코 손쉬운 일을 지시하지 않았다.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계급이 깡패라 하기 싫은 일도 해야만 할 때가 있지 않던가?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아마 박람회의 일과 관련된 것이겠지.’하고 짐작을 해볼 뿐이었다.
그가 마에다와 함께한 일한 지도 일 년이 넘었으니, 이제 그의 숨소리만 들어도 기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척하면 척, 착하면 착!
꼭 말을 해야 상관의 기분을 알겠는가?
‘제발 엉뚱한 것만 시키지 말아주십쇼!’
아니다 다를까, 예상했던 말이 나왔다.
“스즈키! 내가 아까 한국 전통문화 박람회를 다녀왔다네.”
“아! 그러셨습니까? 저도 총영사님을 보좌해 따라갔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그 말에 마에다는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별로 볼만한 것도 없었어. 이런 후진국에서 하는 것들이 다 그렇지. 뭐 볼게 있겠어?”
“아! 그랬습니까?”
스즈키는 말하지 않았지만, 마에다가 박람회에 참석해서 어떤 망신을 당하고 왔는지, 외교관저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주변의 반응은 늘 그러하듯, 한결 같았다.
‘어떻게 총영사라는 사람이 그런 품위 없는 행동을 할 수 있어요? 부끄럽지도 않나요?’
‘그 사람에게 교양 있는 행동을 희망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그런 사람이 내 상관이라니, 낯부끄러워서 바깥을 나갈 수가 없어요. 스즈키 서기관이 한마디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 말에 스즈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 나라고 당신과 다르겠습니까?’
스즈키가 보기에,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말이 통하는 사람과 마에다 같은 사람.
이미 다른 나라의 영사관에도 오늘의 일은 파다하게 소문이 퍼져 있었다.
모르는 것은 단지, 마에다 본인뿐!
외교관저의 사람들도 모두 알지만, 총영사라는 그의 지위 때문에 알고도 모른 척, 쉬쉬하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그 일이었군.’
스즈키의 찌푸려지는 미간은 안중에도 없는지, 마에다가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이상한 걸 보고 왔다고.”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스즈키가 친절하게 웃으며, 그의 비위를 맞췄다.
“석굴암인가 하는 동굴의 모형을 만들었다는데, 그게 너무 뛰어나다는 말이야!”
뛰어난 데 뭐가 이상하다는 말인가?
“저는 도무지 무슨 말씀이신지…….”
“이 나라의 미개한 장비와 손재주로 그런 세부적인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해! 자네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마에다가 바라는 것은 동의였겠지만, 스즈키라고 생각 없는 바보이겠는가?
“굳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제 한국도 예전과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삼송이 쏘니를 반도체로는 완전히…….”
“그만! 스즈키 군.”
마에다가 역정을 냈다.
“자네가 지금 나를 가르치는 건가?”
“그게 아니라, 마에다 총영사님. 제 말은 그게…….”
“구차한 변명 따위는 필요 없어! 닥치게! 스즈키.”
이리 말하는데 무슨 충언을 한다는 말인가?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주제넘게 나서서.”
“내가 자네에게 설명까지 해야 하는 건가? 자네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스즈키가 자세를 바로 하며, 즉시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명령이다. 박람회에 잠입해서, 아까 내가 봤던 3D영상과 한국 석굴암에 대한 주요 극비 자료들을 가져와라.”
“밑도 끝도 없이 무슨…….”
“나가 봐! 그걸 구할 때까지는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이런 놈 밑에서 일을 해야 하는 건가? 왜 내 업무하고는 상관도 없는 걸 강요 하냐고!’
그러나 어쩌겠는가?
직장 생활 어디라고 다르겠는가?
축 처진 어깨를 보며, 그도 미안했던 모양이다.
“대신 이 임무에 성공을 하면, 책임지고 일 계급 특진에, 일 개월 유급휴가를 주지.”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그럴 정도라면 얼마나 힘든 일이 되는 것일까?’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건 분명히 실패하는 거라고. 안 돼!’
그의 포상을 귓등으로 들으며,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칙쇼! 고노야로! 씨네바 이이노니!”
(빌어먹을! 이 새끼! 뒈져 버렸으면!)
***
‘이제 석굴암을 마무리 지어야지.’
석굴암의 제작과정을 알리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대금과 가야금 소리가 어우러져,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장단에 맞춰서 비어있던 땅 위에 좌대석이 하나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좌대가 완성되었을 때, 그 위에 가부좌를 튼 본존불이 놓여졌다.
불상을 중심으로 다듬어진 화강석들이 낮게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세워진 돌만으로는 위태롭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함인가?
돌의 이음부에 나비모양의 홈이 파이고, 그 홈에 납으로 만들어진 은장이 삽입된다.
갑돌이의 설명이 이어졌다.
“저건 은장기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은장기법이란, 화강석들을 연결하는 부위에 나비 모양의 홈을 파내고, 납으로 동일한 모양을 만들어 끼워 넣는 것을 말한다.
“이 방법은 돌과 돌의 접합부를 더욱 강하게 조이도록 만들죠.”
관람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천오백 년이 넘는 세월을 굳건하게 견딜 수 있었던 모양이오.”
“돌 하나 쌓을 때도, 이렇게 정성을 들였으니, 그 신심이 어떠했는지는 굳이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겠구려.”
“한국에 이런 문화재가 있었다니, 그동안 한국에 대해 꽤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부끄럽기 그지없구려.”
“그러게 말입니다. 조금만 더 관심이 있었더라면, 알 수도 있었을 터인데.”
관람객들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다시 돌이 그 위를 덮었다.
하지만 이번의 화강석은 조각이 되어 있었다.
본존불의 바로 뒤에 십일면관음이 자리하고, 좌우로 하나씩 조각벽을 첨가해 나갔다.
십(十)나한으로부터 시작하여 보살상, 천부상, 사천왕과 금강역사가 자신의 자리를 잡았고, 예배를 드리는 전실에는 팔부신중이 위치했다.
부처의 자비로 가득한 불국정토를 꿈꿨던 신라인들의 이상향이 이 곳 석굴암에 새겨졌다.
“이것으로 석굴암 안내를 마칩니다. 안내자 갑돌이었습니다.”
갑돌이가 관람객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사람들의 박수와 고맙다는 인사말이 들렸다.
“지금까지 본 한국의 문화재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유익한 설명이었소. 갑도리.”
“난 이런 한국의 문화재가 있었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소.”
“갑도리 씨의 석굴암 소개는 나에게 색다른 감동을 안겨주었소. 이 박람회가 끝나고 나면, 기필코 석굴암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소.”
그들의 말에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시면, 그 느낌 또한 남다를 겁니다.”
그리고 우리 부스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에 우리의 출품작에 관련된 영상을 시디로 제작해 두었으니, 참고하시면 더욱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 그런가? 얼른 가서 구매해야겠군.”
성질 급한 일단의 관객이 그 곳으로 걸음을 옮겼고, 나머지 관람객들도 휴식을 위해 홀로 이동했다.
‘휴! 무슨 폭풍이 지나간 것 같군!’
그리고 나의 양 옆자리는 그것과는 또 다른 의미로 뜨거웠다.
서로 눈치싸움이라도 하듯, 내 옆에서 전혀 물러나지 않았거든!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는 인간이라도, 둘이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 둘은 왜 안 가고, 여기서 버티고 있는 거야?’
시선몰이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피와 현주였지만, 둘의 충돌은 내게 이득 되는 것이 없었다.
‘도움 받은 게 있는데, 마냥 가라고 할 수도 없고. 이거 참. 난감하네.’
그녀들을 좌우로 돌아보며 말했다.
“현주, 소피! 둘 다 수고했어요.”
그리곤 그들에게 잡혀 있는 팔을 슬그머니 빼며 말했다.
“난 갑돌이 옷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러 가야 하는데, 둘은 어떡할 거야? 쉬는 것도 좋겠고.”
소피가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따라가서 도울 게요.”
“아니, 소피는 한국에 도착한지도 얼마 안 됐잖아. 그냥 쉬지 그래?”
내 말에 소피가 나를 잡아먹을 듯 눈을 홉떴다.
현주도 걱정이 되는 듯 말했다.
“그래요. 소피아. 지금 막 비행기 타고 와서 시차 적응도 안 되었을 텐데, 그냥 쉬세요. 성훈 씨 일은 제가 도울 게요.”
현주의 말에 소피도 미소로 대응했다.
“괜찮아요. 아까 그렇게 격한 춤을 춘 사람보다야 피곤하겠어요? 현주 씨야말로 쉬시는 게 어때요? 땀도 좀 난 것 같은데.”
그 말에 현주가 급히 옷에 코를 갖다 대었다.
“성훈 씨.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급히 몸을 돌리는 그녀에게 소피가 말했다.
“현주 씨. 천천히 와도 괜찮아요.”
싸우려면 둘이 어디 가서 결판을 낼 것이지, 왜 내 앞에서 그러는 것인지.
뭔가 둘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여자란 알다가도 모르겠군. 아까는 그렇게 좋다고 하더니.’
얼른 벗어나는 게 상책이었다.
“소피도 따라올 필요 없어. 그 정도는 나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돕고 싶은 걸요?”
“정 돕고 싶으면…….”
소피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부스 끝의 매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가서 시디 판매를 도와주면 어떨까? 아무래도 소피가 있으면 더 잘 팔리지 않을까?”
둘을 보내고, 한복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는 중에 기자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성훈 씨. 잠시 취재해도 괜찮을까요?”
“왜요? 완전히 끝나고 하시지 그러세요? 아직 많이 남았는데.”
“실은 곤란한 일이 있어서 그래요.”
“뭔가요?”
“오늘 당신이 보여준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봐 왔던 한국 전통 건축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그 프레젠테이션에 있어서는 특히나요.”
이 사람들도 그런 건 잘 본 적이 없었을 테니, 당연한 말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요? 문제가 있습니까?”
영문을 몰라서 물었다.
문제될 것이 뭐가 있는가?
“이 친구야! 결론을 먼저 말하라고 빙빙 돌리지 말고. 쯧쯧. 사실은 사진을 찍을 타이밍을 자꾸 놓쳐서 그래요.”
“타이밍이라뇨?”
“당신이 뭔가를 할 때, 셔터를 눌러야 하는데, 셔터를 누르자니, 하는 말을 놓치게 되고, 말을 듣자니 셔터를 누를 수가 없고. 이거야 원.”
“그러게. 당최 뭐가 나올지를 알 수가 없으니…….”
그들이 어깨를 으쓱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문제는 지금까지 제대로 건진 샷이 하나도 없다는 거죠.”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신의 이번 전통건축의 표현은 지금까지와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그래요. 아무도 로봇을 이용해서까지 저런 방법을 쓰지 않았다고요.”
“우리도 한국에 오래 있었지만, 항상 한국 전통건축 박람회는 고리타분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고, 끝날 때나 참석을 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만 했다.
한국의 전통건축은 서양보다 화려하지도 못하고, 그 규모가 웅장한 것도 아니었으니, 굳이 기사화하기에 메리트가 없었을 것이다.
뭔가 새롭거나 대단하거나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것이 있어야, 신문의 일면을 내어줄 것 아닌가?
그리고 그런 것을 특종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루할 틈이 없어요. 오히려 박진감이 넘치더군요. 완전히 감동했어요.”
“그런데 오늘 우리나라 대사님이 보시고 꽤나 감명이 깊으셨던지, 당장 와서 취재를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까지 말씀을 해 두셨는데, 결과가 이래서야……. 미움이나 받지 않을지 몰라!”
“당신들은 제 작품에서 최고의 장면을 찍기를 원하시는 거군요.”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로서도 대찬성이었다.
“그렇지만 매번 그런 장면을 놓쳐서야…….”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그에게 말했다.
“도와 드리죠. 제가 신호를 하면 그때 찍으시면 됩니다. 저도 제 작품이 잘 나오면 좋으니까요.”
“이렇게 감사할 수가! 반드시 일면에 나오게 하겠습니다.”
그들이 내 손을 잡고 좋아했다.
찰스가 물었다.
“혹시 저희가 해 줬으면 하시는 게 있나요? 이리 도움을 받았으니,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타이틀에 이렇게 해주세요. <한국의 전통 건축, 세계 진출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다>라고요.”
둘이 서로를 마주 보며 말했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죠.”
“암! 당연히 그렇게 해드려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