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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56화 (256/427)

건축의 신 256화

갑돌이(03)

“이거 아무래도 처음에는 나 혼자서 하더라도 나중에는 분담을 해야겠어.”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을 해야 처음 예상했던 만큼의 관람객을 소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러면 옷이 부족한데.’

갑돌이도 여유 있게 만든다고 했었는데, 이것 또한 내 계산과 어긋났다.

‘그것도 여분을 더 만들어야겠어.’

가이드 로봇 갑돌이는 일회용에 가까웠다.

모터의 한계치까지 혹사를 하기 때문에 그 수명이 짧았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눈의 렌즈만 해도 급동작, 급제동을 밥 먹듯이 한다.

항상 접사에 가까운 거리에 맞춰져 있다가 아까처럼 원거리에 초점은 맞출 때는 ‘혹시 모터가 타 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으니까!

갑돌이 하나로 삼 회 정도의 행사를 소화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지금으로 봐서는 한 타임은 고사하고 반 구간만 돌아도 거의 폐기 직전이 될 것 같았다.

로봇이 위주인 박람회였다면 절대로 그런 무리한 동작을 하지 않았겠지?

시간만 넉넉했더라도 지금보다 안정적인 모터를 찾거나 고려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갑돌이는 동작은 격하되, 모터는 작아야만 했다.

결국 해결책은 ‘수명은 상관하지 말고 성능을 최우선으로 하자!’였다.

그래서 태어난 갑돌이.

불쌍하지만 이제는 쌍둥이 삼둥이, 혹은 육둥이가 되어야 할지도 몰랐다.

‘고생시킬 때 시키더라도, 옷은 입히고 해야지.’

갑돌이를 손에 쥐고 한복점으로 향했다.

“어! 소피가 여기 웬일이야?”

그녀는 여느 한국 여자처럼 한복을 입고 있었다. 거기다 족두리까지.

‘훗! 잘 어울리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휙 하니 고개를 돌렸다.

“흥!”

‘왜? 내가 뭐 했어?’

난데없는 반응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런데 왜 한복을 입고 나오는 거지?’

분명히 서구 체형의 모델들은 싫어하신다더니.

그런데 한 여사는 멍하니 부스에 기대어, 소피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어, 응, 성훈 군 왔어?”

“쟤, 왜 여기서 한복을 입고 나가는 거예요?”

“성훈 군, 마침 잘 왔어! 소피아 양 옷태가 어때?”

보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나?

말 그대로 천사나 여신이 세상에 강림한다면 저런 외모일 텐데.

‘나라고 미적 취향이 이상한 건 아니라고.’

“글쎄, 저 아이가 자기도 한복을 입어보고 싶다지 뭐야? 너무 예쁘다면서.”

대충 상황이 이해가 갔다.

‘현주나 다른 아이들이 입은 걸 보고 예쁘다고 생각했겠지.’

“그래서요?”

“웬만하면 현주를 생각해서 안 입히려고 했는데, 애가 어찌나 싹싹한 데다…… 어쩜 그리 옷이 착 달라붙는지…….”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물었다.

“성훈 군, 내가 괜한 짓을 한 건가? 늙은 것이 주책이 없어서.”

“아뇨, 잘하셨어요. 생각보다 소피도 한복이 잘 어울리네요.”

“그렇지! 역시! 나도 아직 눈 하나는 믿을 만하다니까. 어찌나 가슴이 참하고, 허리가 가늘던지, 게다가 다리는 또…….”

한 여사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반할 수밖에 없더라고.”

그건 옳은 선택이었다.

외국인들이 한복을 입은 것이 태가 나면, 그녀로서는 좋은 것 아닌가?

동양인에게만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소피에게도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하겠는가?

‘이영애가 광고하는 화장품을 산다고, 다 그녀처럼 산소 피부가 된다고 믿는 건 아니잖아.’

요점은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느냐 하는 거였다.

“입고 나서는 박람회 동안만 입고 있으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고. 자기가 홍보 대사가 되겠다면서 말이야.”

“그래서 승낙하신 거예요?”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처음에는 안 된다고 했지. 내가 현주한테 얼마나 원망을 받겠어?”

“원망을 왜 해요? 어련히 선생님의 한복 모델을 하기로 한 건데요? 모델이 둘이면 안 되는 조건도 없었잖아요.”

그녀는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에그, 내가 말을 말아야지. 하여간 처음엔 안 된다고 했어.”

소피의 곱상한 외모만 보고 그녀를 판단했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또한 웬만큼 고집 강한 노인들도 소피를 어찌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고집으로는 지존이었거든!’

그런 노인에게 단련이 되었으니, 어찌 소피가 나이 든 사람들을 어려워하겠는가?

‘저 좋다고 하는데, 내가 말릴 일도 아니고.’

그리고 내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한 여사에게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 갑돌이 옷 여분으로 여섯 벌만 더 만들 수 있을까요?”

“그렇게나 많이?”

“네, 똑같지 않아도 돼요. 분위기만 비슷하면 돼요.”

나를 보며 빙긋이 웃었다.

“급한 거지?”

“네! 좀 있다가 올게요.”

“알았어, 자네 것 먼저 해놓을 테니. 시간 나면 와!”

한복점을 나오는데, 한 여사의 한복을 입고 박람회장의 각 부스를 제 집 드나들 듯하며 인사하는 소피가 보였다.

‘원래 저렇게 인사성이 좋은 아이였던가?’

물론 그녀 같은 서양 미인이 한복을 입고, 홍보를 해준다면 좋지!

‘저 봐! 지금도 사람들의 시선이 한복으로 쏠리고 있잖아!’

홀의 탁자에서 차를 마시며 쉬던 관람객들이 눈으로 계속 소피를 쫓고 있었다.

‘이런! 이런! 얼른 안 가고 뭐하는 거야? 약속이 있다면서’

미인이 있으면 좋지 않냐고?

현주 하나로도 시선이 분산되는데, 둘이나 있으면 더 분산된다고.

나한데 득이 된다면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한 여사의 선택은 옳았다.

내게는 약간 독이 될 수도 있었지만.

‘한 여사의 취향이 독특하네.’

서구 체형의 동양 모델은 불편해서 못 쓴다고 했으면서, 정통 서양 미녀는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한복의 아름다움이 널리 퍼지기만 하면 되는 것을.

하지만 신경이 쓰였다.

사람들의 눈이 이제는 모조리 그녀에게 몰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이건 아니지! 이래서는 곤란해!’

“소피! 이리 와봐!”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다가 내 쪽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요? 성훈!”

“오늘 약속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녀가 검지를 입술에 대고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시간이 있어요. 괜찮아요.”

그녀가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혹시? 내가 돌아다니는 게 불편한가요?”

‘불편하다 뿐이겠어? 민폐라고! 사람들 시선을 다 끌어당기고 있으면서!’

저 착한 현주조차도 소피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당연한 거 아니야?’

그녀도 힘들게 시선을 끌었는데, 소피로 인해 그녀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 테니까.

‘쫓아 보내는 게 최선이지만, 그게 안 된다면 내 옆에 붙여 둬야지.’

약간 편법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내 작품에의 집중도는 적어지지 않으리라.

“응, 솔직히 불편해! 얼른 일 보러 가든지, 아니면 내 옆에 붙어 있어.”

“붙어 있으라뇨?”

“시선을 다른 곳으로 끌고 가지 말라고! 방해돼!”

그녀는 약 올리듯 내게 물었다.

“싫다면요?”

“흥! 내가 강제로 쫓아버릴 거야.”

“딴 데로 안 가고 붙어있으면 되는 거죠?”

“응!”

그녀가 내 옆으로 와서 팔짱을 끼었다.

“헤, 알았어요. 그럼 붙어 있을게요.”

“이거 왜 이래? 지금부터 안내 시작해야 한다고.”

“그래요? 흥, 그럼…….”

당장 무대에 나가서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젠장!’

“알았어! 자!”

어쩔 수 없이 팔짱을 열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관객들이 다시 내 앞으로 모였다.

‘아! 귀찮아! 갑갑해!’

지금 양쪽으로 두 여자가 팔짱을 끼고 있다.

‘소피는 그렇다고 치고, 현주는 또 왜 이러는 거야? 아까도 그러더니.’

신경이 쓰였지만 지금은 가이드에 집중을 해야 했다.

갑돌이의 안내가 이어졌다.

“아까는 석굴암의 겉을 봤다면 이제부터는 속을 보여드릴 겁니다.”

성훈의 이 말에 한 백인이 농담을 던졌다.

“아까 우리가 본 게, 안쪽이었다고요. 갑도리 씨가 너무 오래 말을 해서 피곤한가 봐요. 이해해 줍시다.”

그의 말에 관람객들도 웃으며 호응했다.

“그래요, 갑도리가 피곤할 만도 하지. 내내 저렇게 레이저를 쏘고 있으니까. 와하하!”

그 말에 갑돌이가 검지를 세우고 말했다.

“아니죠, 아까 우리가 본 것은 안쪽이 아닙니다.”

“그럼 뭐라는 겁니까? 갑돌이?”

“그것의 표면입니다.”

“표면? 껍데기? 흙으로 덮여 있는 그것?”

“돔이니까, 위에서 누름돌을 얹어 뒀겠지?”

“하지만 그걸 굳이 볼 필요가 있을까…….”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한다고 했던가?

갑돌이의 말이 이어졌다.

“백문이 불여일견! 보여드리죠.”

갑돌이의 손에서 레이저가 벽으로 뻗어나갔다.

“저 벽에 뭐가 있나?”

그들의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위잉! 척!

절대 움직일 것 같지 않던 화강석의 벽면이 흡사 누르기라도 한 것인가?

저절로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들리기 시작한 굉음.

기이잉! 철컥!

기이잉! 철컥!

거대한 동력 장치가 움직이는 소리와 날카로운 기계음들이 관중들의 귀를 때렸다.

‘물론 연출이지! 아무런 음향도 없이 쉭 열리면 재미가 없다고.’

이 사람들은 박람회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니까, 즐기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갑자기 웬 기계 소리가 들리는가 하며, 모니터에 눈을 기울이고 있었다.

“뭔가 대단한 걸 준비했나 본데?”

그 순간, 석굴암을 덮고 있던 흙더미들이 뒤로 스르륵 밀려나기 시작했다.

“와! 멋있는데?”

“이런 장치를 해뒀다는 말이야? 준비가 철저한걸?”

“그래, 계속 설명만 했으면, 지루했을지도 몰라!”

재미있다는 듯, 석굴암의 변화를 지켜보며 웃던 그들이 경악성을 질렀다.

실제 석굴암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석굴암의 비밀이 지금 개봉되고 있었다.

‘이게 석굴암을 석굴암으로 존재할 수 있는 비밀이지.’

원통 위에 이글루를 이고 있는 듯한 모습!

그리고 반구형의 돔을 뚫고 길게 튀어나온 돌기둥들!

이글루에 돌기둥을 박아 넣은 듯,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엇! 그런데 저게 뭐야?”

“왜 저런 게 속에 들어 있는 거야?”

“안에서 봤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어떻게…….”

“음, 무시무시하군. 안에서 봤을 때는 천국이나 다름없었는데, 사실은 이런 험악한 뼈대를 가지고 있었다니.”

“맞아요. 만약 이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그냥 평범한 돔인 줄 알았을 겁니다.”

겉과 속의 판이한 반전!

잠시 그들이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들끼리 대화를 나눴다.

“왜 이렇게 만들었지?”

“그러게, 너무 어울리지 않잖아.”

“다른 이유가 있는 거 아닐까? 장식이라든지…….”

“예끼! 이 사람아, 장식이라면 바깥으로 보이게 드러냈겠지. 저렇게 흙으로 덮어 놓았겠어?”

하지만 그들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갑돌이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모두 궁금하겠지. 왜 보이지도 않는 부분에 저렇게 신경을 썼을까?’

갑돌이의 설명이 이어졌다.

“저 튀어나온 돌기둥의 명칭은 쐐기돌입니다.”

“쐐기돌?”

“우리는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꼼짝 딸싹 못하게 고정시킬 때, 쐐기를 박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곤 하지.”

관람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쐐기돌을 사용함으로써 돔 구조의 약점을 보강했습니다.”

“돔 구조의 약점? 그런 게 있었어?”

“그럴 리가 없잖아. 돔은 외부의 압력에 가장 효율적인 구조라고.”

갑돌이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반론을 펴는 사람이 있었다.

“자료 화면을 봐주시죠.”

모니터에는 돔의 3D 영상이 있었다.

“돔은 단단합니다.”

그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이니까.

“하지만 돔을 이룬 석재 중에서 어느 하나만 헐거워지면, 돔 전체가 불안해집니다. 결국 돔 자체를 붕괴시키는 원인이 되죠. 이렇게 말이죠.”

우르르릉. 쾅!

모니터에서 단단해 보이던 돔이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단 하나의 돌을 슬쩍 밀어 올려버린 것으로 말이다.

붕괴를 확인한 관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럴 수가 있었군.”

“확실히 그렇기는 하죠. 사고가 나면 큰 사고가 났었죠. 특히나 지진이 있을 때면 더더욱!”

갑돌이가 쐐기돌을 포인터로 찍었다.

“하지만 이 쐐기돌이 있기에, 이 돔은 더욱더 완전한 돔이 될 수 있습니다.”

조용히 집중하는 관객들에게 말했다.

“그 이유는 이 쐐기돌이 지렛대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지렛대?”

영상으로 설명이 실제로 보여지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이 쐐기돌이 윗돌이 아랫돌에 전하는 힘을 상쇄하기 때문에, 이 석굴암은 아랫돌이 먼저 무너지지 않는 한, 돌이 따로 아래로 떨어질 수 없도록 설계를 한 겁니다.”

그제야 이해한 관람객이 손뼉을 짝 쳤다.

“아! 그래서 저렇게 옥석을 채운 거로군.”

“저리 받쳐주는데, 아랫돌이 빠질 리가 없지!”

“지진으로 땅이 완전히 쪼개지지만 않는다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겠어. 대단해!”

다른 한편으로는 신음성을 토해냈다.

“돔은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자만이었군.”

“천오백 년 전에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니.”

“설마 이런 걸 한국에서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발상의 전환이 놀라울 정도로군.”

“그 까다로운 유네스코가 통과를 시킨 데는 이런 숨겨진 이유가 있었군.”

“박람회가 끝나는 대로 한 번 가 봐야겠어!”

“박람회를 한다기에 예의상 와본 거였는데 안 왔으면 크게 후회할 뻔했어!”

그 말에 답장이라도 하듯, 한 백인이 말했다.

“그럼! 오기를 백번 잘했어! 내일은 우리 아들도 데리고 와야겠는 걸. 이런 거라면 환장을 하거든!”

“나도 그럴 생각인데. 하하하.”

“어떻게 이런 상상도 못한 걸 보여줄 생각을 했던 거지? 갑도리 씨, 대단한데!”

그가 나를 보며 굵은 엄지를 척 세웠다.

“그러게 말이야. 갑도리 씨! 최고야! 이런 신기한 걸 보여주다니. 얼른 다음 걸로 넘어가자고! 계속 따라갈 테니까.”

관객들의 반응도, 호응도 다양했다.

흐뭇한 미소가 내 얼굴에 떠올랐다.

‘이 정도면 첫 단추치고는 잘 끼운 거잖아.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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