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54화
갑돌이(01)
내 소개 따위는 필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 여세를 몰아 분위기를 타는 것이지, 딱딱한 인사말로 상승세를 끊고 싶지 않았다.
로봇이 앞으로 걸어 나와 꾸벅 인사를 했다.
한복을 입고, 호돌이가 썼던 상모를 머리에 쓰고 있었다.
살짝 이마가 보이게 뒤로 눌러쓴, 익살스러운 모습이었다.
“헬로! 레이디 앤 젠틀맨! 나는 갑돌이라고 해요. 우리나라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작은 손을 들어서 관객들에게 흔들었다.
목소리는 내 볼에 붙인 작은 마이크에서 갑돌이의 입에 내장된 스피커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내 굵은 음성을 좀 더 귀엽게 변조시킨 채.
내게 향하던 눈빛이 갑돌이에게 옮겨갔다.
“귀엽네요. 갑또뤼? 갑도리?”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하하.”
작은 웃음이 퍼져 나왔다.
한국 문화에 그나마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갑돌이라는 이름 한 번은 들어봤겠지!
긍정적 반응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현주가 너무 잘해서 걱정을 했는데, 기우였어.’
아직 본론은 시작도 안 했으니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한 출발이었다.
“그럼 여러분. 이제 여행을 떠나볼까요.”
첫 번째 관문을 여는 것은 봄의 석굴암이었다.
짧은 언덕길을 올라 토함산으로 올라가야 했다.
“지금 관람하실 것은 천 년에 빛나는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석굴암이라는 조형물입니다.”
석굴암으로 올라가는 동안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한국인이라면 역사 시간을 통해 어련히 알고 있을 사실이지만 관객 대부분이 외국인이니 기본적인 정보를 미리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서인 삼국사기에 의하면 8세기 중엽에 지어졌으며, 불국사와 비슷한 시기에 중건되었습니다.”
갑돌이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꽃들이 보인다.
개나리와 벚꽃, 진달래. 꽃들이 경연을 벌인다.
그 모습이 진열대 앞의 모니터로 송출되었다.
실제미를 강조하기 위해, 올라가는 길을 숲으로 장식하고, 굽이굽이 도는 길목마다 꽃들을 장식해 두었다.
‘짧은 동선이지만 봄의 풍취는 충분히 느낄 수 있겠지.’
외국인들은 몰라도 나와 내 또래들에게는 불국사와 석굴암은 봄 소풍의 단골 메뉴였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아무리 미니어처를 신경 썼어도, 가까이서 보면 조화라는 게 보였다.
한 여자가 속닥거렸다.
“저 모니터! 갑도리가 보는 걸 보나 봐요? 저 사람 봐요! 모니터만 보잖아요.”
그제야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모니터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성훈의 눈도 갑돌이보다는 모니터에 가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녀의 말에 성훈이 피식 웃었다.
‘갑돌이의 시선이 뭐가 중요하겠어.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걸 얼마나 보여주느냐가 관건이지.’
“어! 정말이네? 난 그냥 거기 가는 길을 찍어서 보여주는 줄 알았는데.”
“그러게. 완전히 속았지 뭐야! 자세히 보니 미니어처군요. 대단히 디테일하게 잘 만들었네요. 모르고 지나쳤으면 끝까지 속을 뻔했습니다. 허허.”
“한국인들이 손재주가 좋다더니, 정말인가 봅니다. 전부 공과대 학생들이 만들었다고 하던데.”
“앗! 돌부리를 밟았나 봐요. 화면이 흔들렸어요.”
평지에서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었다.
“오! 그래도 꽤나 움직임이 자연스러운 걸요?”
“전 오히려 살짝 뒤뚱이는 게 귀여운데요? 오르막을 오르느라 힘드나 봐요. 호호.”
“그래요. 보기에 거북하지도 않고, 저 정도면 굉장한 수준이죠. 한복하고도 잘 어울리고.”
만족스러운 반응을 들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이 석굴암이 인도나 중국의 석굴과 다른 점은 천연 암벽을 뚫고 만든 천연석굴이 아니라, 화강암을 손으로 다듬어 인공적으로 축조한 석굴사찰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곳이 있었어?”
“이 조그만 나라에? 그런데 왜 몰랐지?”
세계는 크고, 인도도 크다.
중국도 크지만, 한국은 작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북한의 도발에 생존을 위협받고, 선진국의 원조에 의존하지 않으면 자립이 불가능한 나라.
그들이 초등교육을 받을 때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국가명은 세계사에 등장하지도 않았으리라.
한국에 관심이 있을 리 없고,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 한국의 전부였을 것이다.
개미처럼 열심히 일만 하는 나라.
‘한국 사람은 일밖에 모르고, 문화와 교양의 뿌리가 없는 천박한 국민성을 가졌다.’
수십 년 전의 쓰디쓴 평가지만 그때는 반박할 수 없었다.
반박해 봐야 우리의 모습은 그들이 보기에 거지나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반박할 수 있다고.’
세계 최강대국, 미국?
당신네 이백 년 역사보다 우리는 스물다섯 배나 긴 반만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당신네는 한국하면 떠오르는 게 고작해야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가 있는 나라, 최고의 PDP 기술, 휴대폰하면 한국을 떠올리겠지만.
‘그건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지.’
딴 나라 말이 우리 입에 안 맞는다는 그런 단순한 이유로 세종대왕께서는 한글이라는 문자를 만들었고!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세계 최초의 철갑선, 거북선을 만들어 전사할 때까지 스물두 번의 전투를 치르면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있고!
금속활자를 최초로 만든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왜 자랑할 것이 그것밖에 없겠어!’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건 몇십 년 전의 가난하고 미개한 나라였다.
‘이제 그렇게 무시받을 이유가 없잖아.’
선진국의 원조, 끊어진 지 오래되었다.
그동안 감사했다. 이제 우리가 원조할게.
그들을 무시할 이유는 없지만 그들에게 우리의 진면목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아! 저럴 때는 저렇게 컨트롤을 하는구나!”
“실시간으로 하는 거니만큼 바로 적용이 되네요. 어쩜 초점이 흐려질 줄 알았는데, 금방 바로 잡았어요.”
“그거 쉽지 않은데 말이죠. 잘못 조종하면 멀미 하거든요.”
“그런가요. 저거 어디서 살 수 있는 건가요?”
“박람회에 나온 물건이니까, 나중에 내놓고 팔지 않을까요?”
“사서 우리 아들 줘야겠네요. 호호.”
하지만!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고 했던가?
뒤에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게 뭡니까? 하려면 제대로 할 것이지! 쯧쯧.”
아까부터 이 목소리의 주인은 관객들이 집중할 만하면 코웃음을 던지며 맥을 끊고 있었다.
‘혹시 내 작업을 방해하러 온 다른 부스의 사람인가? 진짜라면 이따 보자구요.’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지금 혀 짧은 소리였지만 영어로 말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대사관의 직원이거나 관계자이리라.
내가 작품들을 진열하며 거의 대부분의 장인들을 만나 보았다.
갓 만드는 장인부터 짚신을 삼는 장인까지.
‘그분들은 모두 영어라면 질색을 하셨다고.’
조종을 하면서 모형 맞은편의 아크릴로 그가 있을 만한 장소를 찾았다.
계속 신경이 쓰여서는 가이드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그의 입을 다물게 해야만 했다.
‘누구지?’
작은 키의 일본인!
바로 내 오른쪽 뒤에서 이죽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후! 소세키 같은 놈! 로봇 경연 대회도 아닌데, 양해하고 넘어가지? 오타쿠냐? 나도 그 부분은 아직 불만스럽다고.’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분명 지금으로서는 주어진 시간에 만들 수 있는 최상의 결과라고 자부했다.
그의 비아냥거림을 현주도 알아들었는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불만이면 일본말로 할 것이지! 굳이 짧은 영어로 말했다는 건 시비를 걸겠다는 거지.’
이미 누가 조종하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현주가 조이스틱을 들어서 내 손 위에 올려 줬으니까!
현주가 내 쪽을 힐끔 올려 보더니, 부채 쥔 새하얀 손을 살짝 말아 올렸다.
“갑돌이 파이팅!”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한 것인가?
큭큭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작지만 관객들의 응원 소리도 들렸다.
‘갑또뤼! 퐈이팅!’
아마 현주의 팬이거나 갑돌이의 의상과 내 한복이 똑같은 디자인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이리라.
갑돌이 의상을 만들어 주겠다며, 한 여사께서 팔자에도 없는 인형 옷을 만들었다고.
‘얼마나 한 땀 한 땀 정성들인 건데.’
내 아바타 갑돌이를 창피하게 할 수는 없지.
‘크크큭. 갑돌이가 저 사람 이름인가 봐.’
‘어째, 딱 어울리는데.’
‘갑돌이 파이팅!’
곳곳에서 응원의 속삭임이 들렸다.
일본인의 풀죽은 콧소리가 들렸다.
‘흥!’
저게 시작도 하기 전에 초를 치고 있어!
‘한 번만 더 시비 걸어! 바로 족쳐주지!’
끓어오르는 화를 내리누르는 동안, 석굴암 입구에 도착했다.
“지금 보실 석굴암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인류 문화 중 반드시 보존해야 할 것들만 골라서 지정하는 것이니까.
“정말이야?”
“그렇게 까탈스러운 사람들이 그걸 인정했다고?”
그들의 속삭임을 들으며, 갑돌이가 석굴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석굴암이 유네스코에 지정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단지 세계 유일의 인조 석굴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빛 가운데 인자하게 웃고 있는 본존석불이 보였다.
“어머, 진짜 석굴암이 이래요?”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이런 줄 알았으면 진작 가볼 것을…….”
“그러게요. 진짜 석굴암을 옮겨놓은 것 같아요. 모형에 세월이 묻어 있네요.”
‘이 사람은 정말 가봤나 보지?’
그들의 감탄에 성훈의 얼굴에 뿌듯함이 서렸다.
화강석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석공장들을 얼마나 독려했던가!
세월을 살리라고 얼마나 장인들을 닦달했던가!
“에이! 설마요. 실제 석굴암을 찍어서, 교묘하게 편집을 했겠지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저걸 어떻게 편집을 해요?”
“전 이 로봇의 동선도 미리 컴퓨터에 저장을 해둔 거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모니터만 보면서 로봇을 움직입니까? 말이 됩니까? 예?”
‘이 양반아! 내가 이 길을 수십 번을 걸었다고.’
내가 눈을 감아도 갑돌이는 제 길 찾아 걸어갈 걸!
“저게 석굴암과 똑같은 스케일이라고 했죠? 그것도 일부러 그렇게 한 겁니다.”
“왜요?”
“그래야 실제로 찍어온 걸로 대체해도 뷰가 어색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가 기세등등하게 말을 이었다.
“화강석이라고요. 드릴로 해도 잘 안 뚫리는 게 화강석이라고요. 그런데 그걸로 저 스케일로 만드는데…….”
그는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런 디테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의문이 생긴 듯 한 백인이 고개를 숙이고, 입구 안을 뚫어지듯 쳐다봤다.
“이거 보쇼! 진짜 갑돌이가 보는 게 맞는 것 같구먼. 근거도 없는 말로 비방하지 마시오. 이런 격식 있는 자리에서.”
그 말에 그 일본인도 뜨끔했던지 말을 멈췄다.
하지만 이내 다시 말했다.
“아니오. 이건 분명히 조작이오. 우리 일본의 기술로도 이런 건 아직 못하는데. 단언컨대, 한국의 기술로는 불가능합니다.”
‘넌 아웃이다. 망할 자식!’
진짜 석굴암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절대 저런 말을 못한다.
왜?
본존불 앞 주실 입구에는 유리벽이 서 있거든!
일반인들은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헛소리를 하려면 제대로 알고 하든지!’
그놈의 말을 들었음인가?
갑돌이가 석굴암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이 로봇으로 몰렸다.
“왜 나오는 거지? 문제가 있는 건가?”
석굴암 앞마당으로 나온 갑돌이가 소리의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고개와 검지를 들어 좌우로 돌렸다.
애초에 검지밖에는 펼 수 없지만, 의도는 충분히 전해졌다.
‘당신이 틀렸어!’
틀렸다고? 뭐가?
앙증맞은 행동에 관객들의 궁금증이 더해졌다.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갑돌이가 손을 어깨 위로 치켜들었다.
손을 천천히 내리면 그를 조준했다.
슉!
“엇!”
주변 사람들이 그의 얼굴로 동시에 시선을 모았다.
‘왜? 무슨 일이지?’
그가 이상한 느낌에 눈을 미간으로 모았다.
하지만 보일 리가 있나?
자기 미간에 찍힌 붉은 점이.
다급히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들리는 모터의 소음!
지잉. 지잉.
갑돌이 눈의 조리개가 한계치까지 돌아가는 소리였다.
흐릿하던 모니터의 영상이 점점 뚜렷해졌다.
“엇! 내 얼굴이잖아. 웬 점이지?”
그제야 그는 갑돌이의 레이저가 그의 이마를 조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필살기를 저딴 놈 대갈통에서 첫 선을 보여야 하다니! 젠장!’
그는 당황했다.
“어. 어. 어.”
그와 동시에 갑돌이가 익살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카운트 들어갑니다. 쓰리…… 투…….”
다른 사람들의 귀에도 그의 비아냥은 어지간히 거슬렸던 모양이다.
관람객 중 일부도 갑돌이의 카운트에 동참했다.
“쓰리…… 투……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