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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49화 (249/427)

건축의 신 249화

마무리 작업(05)

“모델들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생각을 해 봤어요. 그런데 일반적인 패션쇼와는 달라서, 무리가 따르더라고요.”

내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계속 어울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해요.”

하릴없이 멍하게 서 있는 것보다 어색한 게 또 있을까?

한 여사도 내 말에 동의했다.

“그렇지. 맞아.”

“하지만 한복점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죠.”

스스로 입고 있는 한복을 소개할까? 판매원처럼!

이건 어떤 비단이고, 염색과 재단을 어떻게 했으며, 어떨 때 입는 옷이라고 설명해?

‘목적 없이 움직인다면, 부산스럽기만 할 뿐, 그 가치를 제대로 보일 수도 없지.’

“그래서 생각이 난 건데요. 저희와 협업을 하시면 어때요?”

“협업?”

“네. 제가 한복을 입고 설명을 하는 거죠. 그럼 자연스럽게 현주 씨도 제 옆에 서는 겁니다.”

한 여사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그려졌을 것이다.

“어머! 남녀 커플을 말하는 거야? 그럼 더 좋지. 정말 그래 주겠어?”

서로 다른 성이기에 비교 대상이 안 될 것 같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비교가 된다.

더 중요한 건, 서로를 돋보이게 해준다는 거다.

남자의 한복은 점잖지만, 여성의 한복은 화려하고 고우니까.

남자가 있기에, 여자가 더욱 돋보이는 법.

한 여사의 호응에 슬쩍 발을 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전, 현주 씨처럼 저런 무용은 못해요. 절대!”

한 여사가 장난스럽게, 내 팔뚝을 툭 쳤다.

“남자는 그런 거 안 해도 돼. 옆에 있어 주기만 해도 돼!”

그녀는 벌써부터 어떤 그림이 나올 지를 상상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뒤로 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물었다.

“현주 어머님 생각은 어떠세요?”

그녀는 내가 현주와 커플이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응? 그게…… 말이야.”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현주는 어떻게 생각을 할까?’

그녀를 바라보니, 묘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부끄러운 건지, 민망한 건지 알 수 없는 표정.

오른 눈썹을 으쓱했다.

‘어떻게 할 거야? 주체는 너라고.’

그녀가 내 마음을 눈치 챘다.

“엄마!”

왜 부르냐며 눈을 마주치는 엄마에게 말했다.

“성훈 씨가 안 하면, 나도 안 할래요.”

엄마의 고민은 금세 끝났다.

“어머! 내가 뭐라고 했니? 네가 모델을 할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이 있겠니?”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승낙을 했다.

왜 자꾸 현주를 끌어들이느냐고?

‘그녀도 영어를 꽤 하거든.’

긴장해서 버벅거리는 정희보다는, 여러모로 더 효과적일 것이다.

모형의 설명이 되었든 아니면 시선집중의 면에서든 말이다.

“하지만 성훈 군?”

“네?”

“아까 얘기를 들어보니, 박람회 날에 엄청 바쁠 것 같던데, 시간이 되겠어?”

“시간이랄 게 있나요? 그냥 한복을 입고 움직이는 것뿐인데요.”

“그렇기는 하지만.”

“자연스럽게 박람회장을 거닐 수가 있죠. 하루 종일.”

현주를 보며 말을 이었다.

“시간마다 아까 같은 춤을 출 겁니다. 마네킹처럼 멍하니 서 있다가 춤추러 나오는 것보다, 내 옆에 서있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럽지 않겠어요?”

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그래요. 춤추지 않을 때는 성훈 씨 옆에!”

“그, 그럴까?”

확신하지 못하는 한 여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요. 한복이 눈에 띌 수밖에 없어요.”

‘그러고 나서는 그 시선을 몽땅 우리 모형으로 끌어올 거거든요.’

왜 시간마다 춤을 추냐고?

한복에 시선 집중이 될 수도 있는데?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거라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루 종일 같은 사람을 상대하는 게 아니니까.

사람들이 오갈 때마다, 한번 물갈이가 될 때마다 춤사위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아름다운 무용수들이 전통건축을 설명하는 남자들 옆으로 돌아오는 거지.

‘그럼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로 가겠어?’

하지만 한복에 관심이 집중된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라고.

한복이 주가 되느냐, 부가 되느냐는 생각하기 나름일 뿐이다.

“우리는 한복으로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고, 선생님은 한복의 자연스러운 태를 보일 수 있으니까, 선생님께도 좋은 선택일 거라 생각됩니다.”

“음…….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녀가 턱에 손가락을 대며 고심했다.

‘고민해 보시던가? 어차피 결론은 나와 있으니까.’

나는 당당하다.

‘내가 한복 모델도 해주는데, 그 정도의 대가는 받아야 하지 않겠어!’

“현주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힘들 것 같아요?”

염려와 달리, 그녀는 보조개를 띄며 말했다.

“아뇨. 전혀요. 오히려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현주 씨.”

“네?”

“과 친구들 몇 명만 더 데려올 수 있어요?”

“네. 가능해요. 그런데 왜요?”

마네킹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는 옷을 혼자서 다 입을 수는 없잖아요. 혼자서 군무를 출 수도 없고.”

“군무까지요?”

“현주 씨 하나라도 충분할 거라 생각하지만, 주변에 배경이 될 친구들이 있으면, 당신이 더 돋보이지 않겠어요?”

‘이왕 이런 옷까지 입혔는데, 그냥 갈 수 있겠어? 한바탕 춤사위를 하면서 시선을 끌어야지!’

현주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잘하는 애들로 골라서 올게요.”

그녀가 말하는 동안, 나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려면 아예 중앙 무대를 만드는 게 좋겠어. 아까 그 부장에게 말하면 되겠지?’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처음 시작할 때, 군무 한 번 추고, 그 중심에 있는 현주가 나와 같이 건축 모형을 설명한다?

어디로 시선이 집중될까?

‘관람객뿐만 아니라, 참가 스텝들의 영혼까지. 몽땅 내 작품으로 옮겨주지.’

현주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한 여사의 고민도 끝났다.

“성훈 군?”

“네?”

“이미 당신 머릿속에는 어떻게 진행을 할 건지, 계획이 완벽하게 서 있는 모양이네요.”

갸름한 눈으로, 나를 얄밉다는 듯 보고 웃었다.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 대충은요.”

“휴. 자네 머리에서 나왔으니까, 성훈 군 마음대로 해. 대신! 우리 한복도 돋보이게 해 줘야 해. 알았지?”

“당연한 말씀을 하시네요.”

드디어 그녀의 승낙을 받아냈다.

이제 본론을 말해야지.

내 자리를 돌려달라고?

‘그런 말을 왜 해? 난 그저 곤경에 처한 한 여사를 돕는 것뿐이라고. 자리는 덤이지.’

“그런데 선생님의 작품이 돋보이려면, 지금 있는 자리보다, 저기 맨 처음 입장하는 자리가 더 좋을 것 같아요.”

“저 첫 번째 부스 말하는 거니?”

“네!”

“왜 그렇게 생각해?”

“여기에 있으면, 사람들이 들어와서 우리 모델들을 볼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요. 임팩트가 약하다고요. 이미 다른 작품을 보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까요.”

단번에 시선몰이를 하지 못하면 어수선해 보일 가능성도 많았다.

‘다른 곳에 눈을 돌리기 전에, 우리 작품을 머리에 새기게 해야 한다고요.’

그만큼 내게도 그녀들의 위치는 중요했다.

한 여사도 내 의견에 동의했다.

“그렇기는 해.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수십 개의 작품들이 있을 테니까.”

“처음에 빡! 임팩트 있게 시작하려면, 무엇보다 자리가 중요해요. 상황이 바뀌면, 대처도 달라야 하는 법이죠. 제가 보기엔 저 자리가 딱이에요.”

“그건 나도 성훈 군의 생각에 동의하네만, 지금 와서 자리를 바꿔달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이든 게 염치도 없이. 이 자리도 겨우 졸라서 얻어낸 자리인데 말이야.”

갈등하는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럼 방법만 있다면 하겠다는 거네.’

“하실 마음이 있으시면, 그건 제가 주최 측에 말해서 바꿔드리겠습니다.”

“정말? 그게 가능해? 어머나. 이렇게 자꾸 신세를 져서 어떡하니?”

그녀는 정말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선생님께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빚을 어떻게 다 갚는담.”

“나중에 우리 작품이나 보시고 꾸밀 곳이 있으면 좀 꾸며 주세요.”

“그런 걸로 되겠어?”

마음의 빚은 남겨 둘수록 좋다.

‘현주가 내 부탁을 들어주는 게, 내가 좋아서 그런 거겠어? 빚 갚으려고 하는 거겠지.’

영원히 갚지 못한 마음의 빚이라면 더 좋겠지만, 그게 어디 생각대로 되겠는가?

“성훈 군, 장가갈 때는 꼭 내게 연락 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한복을 만들어 줄 테니까, 알았지?”

“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주최사무실에 다녀올 테니, 얘기들 나누고 계세요.”

자리를 뜨는 내게 현주가 따라와서 물었다.

“성훈 씨. 무용수들이 그렇게 많으면, 누가 성훈 씨 파트너가 되는 건가요?”

“물을 필요가 있나요? 당연히 현주 씨죠.”

“정말이요?”

“네. 항상 우리는 짝꿍이었잖아요.”

소개팅 할 때마다 참가자들은 바뀌었지만, 주선자는 항상 나와 현주였다.

맨날 우리 둘이 짝꿍!

‘마음이 안 맞아서 삐걱거리면, 그 자체로 민폐라고.’

***

“그럼. 현주 씨. 우리 다른 옷도 한 번 입어볼까요? 모델이 좋으니까, 힘이 막 솟구치는 걸.”

한 여사도 현주도 웃으며 호응했다.

“저도 예쁜 옷을 입으니까, 날아갈 것 같아요.”

하지만 이미 엄마의 관심은 한복이 아니었다.

그녀가 속닥이며 물었다.

“선생님. 성훈 군은 학생으로 보이던데, 이런 중요한 행사의 일정을 맡겨도 되는 건가요?”

안심이 되느냐는 말이었다.

한 여사는 오히려 이상하다는 눈빛이었다.

“왜 그런 말을 하죠. 성훈 군은 옆 부스의 총책임자예요. 그냥 학생이 아니죠.”

현주에게 옷을 갈아입히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바꿔줄 자신이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한 거겠죠. 그건 금방 결과를 알 수 있을 테고.”

현주 엄마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주 양 모친이 보기엔 어떤지 몰라도, 나는 저런 청년을 한 번도 본적이 없어요. 50년 가까이 일을 하면서도 말이죠.”

“그럴 정도인가요?”

“나한테 딸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사위 삼고 싶구먼.”

단순히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저리 칭찬하는 것은 아니리라.

한복 치수 재는 작업이 끝나고, 성훈을 기다렸다.

“엄마. 성훈 씨. 어때 보여요?”

처음 봤을 때보다는 좀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물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아직도 부정적이었다.

“뭐. 사람은 능력도 있고, 마음에 드는데……. 그래도 경제력이 중요한 거 아니겠니?”

“그게 무슨 상관이야?”

“적어도 우리 집하고 격은 맞아야 할 거 아니니?”

현주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엄마는 무슨? 지금 사윗감 고르는 거야?”

“그럼 이것아. 말만한 년이 연애할 생각이었어?”

“절대 성훈 씨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 알았어?”

어디 성훈이 여자에게 눈을 돌리기나 하던가?

그동안 소개팅을 하면서, 현주라고 유혹해 보지 않았겠는가?

현주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가 자꾸 이러면, 있던 호감도 없어진다고.’

***

주최 측과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벌써 협의를 보신 겁니까? 원래는 저희가 해드려야 하는 건데…….”

“가능한 거죠?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아주세요.”

“그럼요. 그렇게 양보를 해주셨는데, 저의도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그리고 홀 중앙에 무대도 하나 만들어주세요. 대여섯 명이 무용을 할 수 있는 걸로.”

“무용이라고요?”

“네. 그 편이 훨씬 화려하고, 박람회 분위기도 살지 않겠어요?”

“그럼요. 두말하면 잔소리겠지요.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확답을 듣고 사무실을 나왔다.

한 여사에게 결과를 전달하고, 성훈이 돌아왔다.

“집안에 돈만 좀 있으면, 저런 사윗감이 없는데 말이야. 쯧쯧.”

“엄마! 제발 좀!”

같이 주차장으로 내려왔을 때, 엄마가 속삭였다.

“어머! 현주야. 무슨 차가 저렇게 생겼니?”

광택 나는 노란색에 검은 줄무늬.

어디에 내어놔도 눈에 튈 수밖에 없는 차!

“세상에 저런 차를 타고 다니다니. 저렇게 돈 많은 사람도 있네.”

“성훈 씨 차야.”

엄마의 눈이 동그래졌다.

“얼마 정도 하는 차니?”

“나도 몰라요. 그냥 외제차야. 카마로라던가? 한국에 몇 대 없어요.”

“그러니? 정말!”

그들이 속삭이는 사이, 그 앞에 성훈이 섰다.

“혹시 차를 안 가져 오셨으면, 제가 모셔다 드렸을 텐데 아쉽네요.”

“네. 저도 아쉬워요. 그럼 다음에……. 앗. 엄마!”

현주가 인사를 하다가 엄마의 엉덩이에 부딪혀 균형을 잃었다.

성훈에게 안기며 몸을 세웠지만, 깜짝 놀란 현주가 뒤돌아보며 물었다.

“엄마……. 왜 이래?”

엄마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현주야. 내 정신 좀 봐. 급한 약속이 있었는데, 깜빡했네.”

“약속은 무슨…….”

그녀는 다급히 차를 타고, 시동을 걸었다.

“미안해요. 정말 급한 약속이라 그래요. 우리 현주 좀 부탁 할게요.”

영문을 모르는 성훈이 얼떨결에 말했다.

“네. 그러죠. 뭐.”

“그리고 아까는 미안했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현주가 좋아한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했던 거.”

성훈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건 어머니께서 오해하신 거예요. 현주 씨가 워낙 미인이시라, 그런 걱정하시는 게 당연하죠.”

“저기…… 성훈 군?”

“걱정하지 마세요. 집에 모셔다 드리고 바로 울산으로 내려갈 테니까.”

“꼭 그럴게 아니라, 시간이 되면 영화도 보고…….”

성훈이 단호하게 말했다.

“시간 없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하도록 하죠. 현주 씨. 타요.”

현주에게 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말했다.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어머님.”

노란색 머슬카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그녀의 입에서 못다 말한 속내가 튀어나았다.

“흑심 같은 거…… 있어도 되는데…….”

***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사적인 대화는 없었다.

어떤 작품이 좋겠냐는 둥,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어떤 무대를 꾸미고 싶다는 둥.

왜냐고?

‘현주 어머니가 착각하지 말라고 했거든. 흥!’

당신 딸 이쁜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파렴치한으로 모는 건 예의가 아니라구.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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