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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48화 (248/427)

건축의 신 248화

마무리 작업(04)

김 실장이 들어오며 물었다.

“선생님, 가져왔어요. 어느 분께…….”

한 여사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내가 직접 입힐 테니, 김 실장은 나가 봐요. 현주 씨는 옷을 벗어 볼래요?”

현주가 탈의를 하는 동안, 엄마가 물었다.

“한 선생님, 그런데 성훈 군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그녀의 물음에 한 여사는 빙긋 웃었다.

“이웃사촌이죠. 이제 이리 와 봐요. 오른팔부터 끼우고. 그렇지.”

“그럼 성훈 씨도 서울에 살아요? 저는 울산에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 실제로 이웃이라는 말은 아니고, 우리가 있는 옆 부스에서 박람회를 하게 돼서 그렇게 말한 거예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 상태로 양팔을 벌려요. 어머나. 피부가 백옥 같네. 어쩜. 가슴도…….”

수줍어 가슴을 가리는 현주 대신 엄마가 말했다.

“호호호. 선생님. 절 닮아서 그래요. 그런데 성훈 군과 친한 것 같던데, 언제부터…….”

현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호구 조사라도 할 생각인 거야?’

엄마의 관심은 모두 성훈에게 가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 날라리처럼 보는 것보다는 좋지만, 엄마가 관심을 가질수록 성훈 씨는 부담스러워할 거라고요.’

그리고 성훈이 자신을 어떻게 볼 지 걱정되었다.

여자가 어떤 모습으로 나이 먹을지 알고 싶으면, 장모될 사람을 보라고 하지 않던가?

‘엄마는 참! 성훈 씨가 날 보고 어떻게 생각하겠어.’

반면 한 여사는 그녀의 수다가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모양인지, 차분하게 웃으며 옷매무새를 잡고 있었다.

‘아! 민망해.’

“엄마. 옷 갈아입는데 방해돼요. 나가시면 안 돼요? 선생님도 정신없어 하잖아요.”

현주의 타박에도 엄마는 굴하지 않았다.

도리어 현주를 혼냈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 안 하시는데, 네가 왜 그러는 거니? 다 네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이것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엄마. 내가 한두 살 먹은 어린애는 아니잖아요.”

“에구, 어린애가 아닌 사람이! 사내가 부른다고, ‘네!’ 하고 쪼르르 달려오니? 그것도 말만 한 처녀가?”

“그건 엄마가 성훈 씨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요. 제발 간섭 좀 그만하세요.”

“흥. 순진해 빠져서. 내 딸이지만 정말…….”

저 나이 때의 사랑이란!

물거품 같아서. 쉽게 사랑하고, 쉽게 상처받는다.

그리고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만나야, 그 차이를 못 느끼고 살아갈 수 있는 법.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사고는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엄마로서의 최선이었다.

그러려면 성훈이라는 사람을 알아야 하는 것 아니던가?

‘그게 어떻게 쓸데없는 간섭이냐고. 응?’

오히려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는 현주가 원망스러웠다.

그사이, 치마의 주름을 모두 정리한 한 여사가 일어나며 말했다.

“성훈 군과는 오늘 처음 봤답니다.”

“그런데 모델 부탁을 하셨다고요?”

“그건 아니에요. 모델을 부탁한 게 아니라, 성훈 군과 얘기를 하다가, 어울릴 만한 모델이 있는데 입혀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기에 한번 만나보기로 한 거죠.”

현주의 어깨를 톡톡 치며 말을 이었다.

“사실 긴가민가했거든요. 젊은 사람이 안목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을까 하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성훈 군의 눈이 정확한 모양이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 한복에 정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모델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니까요.”

현주가 입은 그녀의 작품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나가 보죠. 성훈 군이 현주 씨 칭찬을 많이 했는데, 마음에 들어 하려나 모르겠네.”

농담 섞인 한 여사의 말에 현주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

탈의실을 걸어 나오며, 한 여사가 성훈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어때? 생각했던 대로 나왔어?’라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성훈도 현주의 자태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예상했던 대로 현주는 한복이 잘 어울렸다.

‘하지만 겨우 이런 정도를 생각하고, 그녀를 부른 것은 아니라고.’

성훈이 떠올렸던 건, 그녀의 춤사위가 어우러졌을 때의 이미지였다.

그녀의 춤사위가 한 여사의 한복을 얼마나 생동감 있게 살릴 것인가?

그게 관건이었다.

‘완전히 한 여사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내 말발이 먹힌다고.’

현주에게 말했다.

“한 바퀴 돌아봐요.”

“이렇게요?”

현주가 양손으로 치맛자락을 살짝 집어 들며, 제자리를 돌았다.

치맛자락이 회전력을 이기지 못하고, 덩실 떠올랐다가 살포시 내려앉는다.

성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충분하지 않아.’

현주에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저번에 펜션에서 췄던 춤 기억나요? 부채춤 같은 거. 이렇게, 아니 이렇게 하는 거였나?”

성훈이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허우적거렸다.

현주의 다년간 숙련된 동작을 성훈이 금세 따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로봇처럼 뻣뻣한 동작에, 엄마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현주야. 네가 저런 춤을 췄었니?”

그 말에 현주가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성훈 씨! 이거요?”

그녀가 사뿐사뿐 한 걸음씩 내딛으며, 동작을 시작했다.

양쪽으로 활짝 펼쳐진 소매는 너울너울.

땅에서 비상한 치마 자락이 휘리리릭.

그녀는 곱디고운 발놀림으로 어느새 몇 바퀴를 돌았다.

그 모습에 박람회에 진열을 하던 모든 사람이 손놀림을 멈췄다.

“야!”

“어쩜!”

하나 감히 평하지 못하고, 그저 감탄의 한숨만 입에서 터져 나왔다.

성훈이라고 별반 다르랴!

저도 모르게 입을 반개한 채, 그 춤사위에 빠져들었다.

그저 한숨만 나왔다.

‘하아. 꿀꺽.’

펜션에서 봤던 것보다 한층 더 수준 높은 춤사위!

‘이래서 옷이 날개라 했던가?’

그때도 한복을 입은 것 같은 환상을 보았지만, 오늘은 한복의 기품이 그녀의 멋을 최고조로 살리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춤사위에 한복의 선도 살아 움직이듯 자연스럽게 그 아름다움을 뽐냈다.

이런 콜라보에 어찌 감탄하지 않으랴!

연분홍 치맛자락의 너울거림이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이윽고 최고조인가?

치맛자락이 터질 듯 팽창했고, 소맷자락은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

그렇게 큰 호를 그리며 성훈의 앞에 다다랐을 때, 나비처럼 살포시 무릎을 꿇었다.

사르르륵.

옷깃 스치는 소리만이 박람회장을 지배했다.

고요한 정적!

그리고 압도적인 존재감.

‘바로 이거야. 바로 이거!’

그녀가 가쁜 숨을 내쉬며, 수줍게 고개를 들었다.

멍하니 자신을 내려다보는 성훈이 보였다.

“이거 말하는 거죠?”

현주가 머리를 찡끗 모로 젖히며 미소 짓고 있었다.

“으…… 응. 맞아요. 그거!”

너무 우아한 자태에 잠시 넋이 나갔던 거지.

홍조를 띤 그녀의 얼굴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동조한 또 한 사람.

한 여사도 감탄했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벌어진 입술과 흥분한 눈동자를 한 채.

‘너무 놀라서 숨 쉬는 걸 잊었을 지도 모르지.’

성훈이 물었다.

“어때요? 선생님.”

한 여사에게서는 감탄사보다 박수가 먼저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

“어쩜…….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그녀의 박수 소리를 시작으로, 정신을 차린 사람들도 감탄의 박수를 쳤다.

아름다운 것을 본 보답, 응원, 격려와 감사.

“잘 봤어요. 아가씨. 대단해요.”

“한 선생님. 이번에는 선생님이 대상을 타시겠는데요.”

한 여사가 웃으며,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예쁘게 봐줘서 고마워요. 모두들.”

사람들은 한 여사를 응원하며, 도로 자신들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저도 저런 반응을 바랐던 겁니다.’

이런 상황인데, 한 여사가 현주를 모델로 쓰지 않을 수가 있을까?

‘흥행이 확실히 보이잖아! 순간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확 쓸어 담았다고.’

누가 신호를 한 것도 아니었다.

풍악을 울린 것도 아니다.

그저 조용한 가운데, 우아한 동작과 화려한 색상!

가녀린 손짓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중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한 여사만 좋은 일시키는 거 아니냐고?’

과연 그럴까?

천리마를 샀는데, 마구간에만 넣어두는 멍청이가 있을까?

저런 역동적인 모델은 움직여야 한다.

‘그러면 세워놓은 마네킹은 들러리에 불과하지! 있으나 없으나,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왜냐고?

아무도 마네킹을 보지 않을 테니까!

그런 한 여사에게 과연 부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저 자리를 고수해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을까?

상황이 바뀌었으면, 대처도 달라지는 법.

난 지금의 상황에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주면 된다고. 그럼 당연히 저 자리는 내 것이 되지.

‘내가 그렇게 만들어줄 거라고.’

그녀의 무대는 박람회장 전체가 되도록.

“어쩜, 그렇게 고운 선을 만들어 낼 수가 있는 거야?”

한 여사는 현주의 손과 팔뚝을 만지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너무 너무 너무 예뻤어. 현주 씨.”

한 여사는 예쁘다는 말 말고는 생각이 안 나는지, 연신 감탄 중이었다.

그리고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작은 소리로 추궁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처자를 데려올 수 있는 거야? 엉. 얼른 불지 못 해?’

기분이 들뜬, 장난기 섞인 음성.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냥 전화하니까, 오던 데요?’

필요해서 부르는데, 밀당이 어디 있나?

차선책은 세상에 넘쳐나니까.

‘적어도 내가 답답하지 않은 이상, 난 절대 밀당 같은 거 안 한다고.’

***

딜을 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과연 그녀는 이런 모델을 어떻게 사용할지 계획이 잡혀 있을까?

하지만 일단은 모델 섭외를 완결 지어야겠지.

“현주 씨.”

숨 정리가 끝났는지, 그녀는 편안한 얼굴이었다.

“네?”

“정말…….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웠어요.”

내 말에 그녀는 대답 대신,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한복 어때요? 예쁘죠?”

“네, 착용감도 너무 좋고, 부드러워요.”

한 여사를 돌아보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해요, 선생님. 이런 옷을 입게 해주셔서.”

“아니, 아니. 내가 오히려 영광이지. 내 옷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었어요.”

한 여사가 손사래를 치며 함박 미소를 지었다.

“한복 모델을 해줬으면 하는데, 현주 씨 생각을 어때요?”

현주는 엄마의 반대가 염려되었음인가?

그쪽을 힐끗 보고는 ‘픽’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있었다.

‘무조건 한다고 해. 무조건!’

그녀가 성훈을 보며 말했다.

“할게요. 모델.”

한 여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선생님. 현주 씨는 모델을 하고 싶다는데, 선생님은 생각이 어떠세요.”

이미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대답을 하고 있었으니까.

“좋아요. 더할 나위 없이 좋아요.”

한 여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현주 씨를 모델로 해서 어떤 작업을 할지 생각해 두신 게 있나요?”

그 질문에 한 여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모델을 쓰는 것도 방금 정해졌는데……. 어떻게…….”

여기서 런웨이를 만들 수는 없었다.

그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으니까.

‘만든다고 한들, 박람회 며칠 내내, 한복 입고 워킹만 할 건가?’

그게 가장 난감하리라 예상했다.

‘그럼 워킹을 안 할 때는 사람들은 마네킹만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고, 그것도 아니라면 모델들을 마네킹처럼 세워두든지.’

어떤 선택을 하든, 좋은 결과를 바라기 어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주의 춤사위를 안 봤다면 몰라도, 이미 본 이상 다른 선택을 한다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고.’

눈높이가 높아지면, 저 품질의 작품은 트럭으로 갖다 줘도 보기 싫은 법이다.

‘현주를 끌어들인 건, 선택의 폭을 좁히는 게 목적이었거든.’

스스로 생각해 둔 방법이 없다면, 다른 사람의 머리라도 빌리는 수밖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져 나왔던 모양이다.

현주가 내게 물었다.

“성훈 씨,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랐어요?”

뜨끔해서 표정을 풀었다.

나한테만 좋은 생각이었지만, 다행히 다른 사람들도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한 모양이었다.

한 여사도 눈웃음을 짓고 있었으니까.

눈썹을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 그냥 저냥 생각나는 건 있어.”

한 여사가 어깨를 내밀며 내게 물었다.

“성훈 군. 어떤 방법인지 물어 봐도 될까?”

‘당연히 물어보셔야죠. 내 시나리오대로 가려면 말이죠.’

내가 너무 속이 시커먼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남 좋은 일만 하고 끝낼 수는 없잖아! 서로 윈윈해야지.’

“현주 씨와 한 선생님의 한복을 보니, 자연히 생각이 떠오르던데요. 한번 들어보실래요?”

이제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줬다.

‘그럼 이제 나도 뭔가를 챙겨야 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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