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46화
마무리 작업(02)
그녀는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는 다시 한복을 향해 눈을 돌렸다.
‘이보세요. 그렇게 단답형으로 끝나서는 대화가 이어질 수가 없다고요.’
인사 후에 바로 대사를 치고 들어가야 했다.
시간의 틈새는 어색함을 만들고, 어색함이 생기면, 다시 말을 붙이기가 애매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하는 법.
그 다음은 어떡하냐고?
‘뭘 어떡해! 임기응변으로 대응해야지. 그래도 나이 차가 있으니, 작업 거는 걸로는 안 보이겠군.’
급한 마음을 숨기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한복이 태가 너무 고와서, 눈을 뗄 수가 없네요.”
찬사의 말에 그녀는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모로 꺾으며,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고마워요. 이웃사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매혹적인 웃음이었지만, 내가 보기엔 지극히 상대에게 맞춘 형식적인 응대로 보였다.
‘정말 베테랑이군.’
이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겠는가?
그리고 한복 업계에서 이름을 날릴 정도면, 그녀의 고개들 또한 평범한 사람은 아닐 터.
방금 전의 표정 변화를 보며, 그녀가 녹록치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아까까지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고.’
그런데 돌아보는 동시에 표정이 바뀌었다.
닳고 닳은 사람도 하기 힘든 고난도의 테크닉!
“특히나 어깨에서 소매까지 이어지는 곡선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네요.”
“어머. 정말 그래 보여요?”
조금 전과는 달리 약간 눈을 홉뜬 표정이었다.
‘의외네?’하는 얼굴.
그녀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복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내 눈길을 따라 저고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직 젊어 보이는데, 눈썰미가 좋네요.”
“눈썰미랄 게 있나요? 그냥 그렇게 보이는 걸요.”
“하지만 요즘의 젊은 사람들은 선보다는 화려한 색상에 더 초점을 맞추죠.”
그녀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민족은 백의민족이라고 불렸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저 수수한 민족이었느냐?
‘내 생각에는 절대 안 그렇거든.’
흰색이라고 해서 그냥 흰색만 있는 줄 아는가?
은은한 미색, 살짝 아이보리가 섞인 색, 백설기처럼 하얀색, 오히려 세분하여 들어가면, 이보다 더 화려할 수 없으리라.
수수해 보이는 가운데 화려함이라면, 한민족도 어디 꿀리지 않을 정도다.
‘쩝. 어쨌거나, 그건 내 생각일 뿐이고.’
나보다 더한 전문가 앞에서 그런 말은 해 봐야 독이 될 뿐이다.
그녀가 대답했다.
“그랬지요.”
생각을 접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궁중에서는 얼마나 화려한 색상의 비단으로 한복을 지었을지 몰라도, 일반 백성들은 주로 백의를 입었겠지요.”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색으로 멋을 낼 수 없으니, 그 외의 것으로 멋을 내지 않았겠습니까?”
“예를 들면?”
“선이지요. 옛날 붓글씨나 난을 치는 것이 그러했듯이요.”
“일리가 있는 말이군요.”
꼬박꼬박 존대를 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말씀 낮추세요. 이웃사촌이라지만……. 저보다 나이가 있으신데.”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말하는 내가 싫지는 않았던지, 아들을 보는 미소로 내게 말했다.
“그러도록 할게. 성훈 군.”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깨의 어디가 그렇게 예뻐 보여?”
“음……. 제가 한복을 잘 몰라서.”
그녀의 의도를 몰라, 뜸을 들이는 내게 그녀는 가느다란 눈웃음으로 내게 대답을 재촉했다.
‘혹시? 테스트?’
“큼. 큼.”
입을 막고 헛기침을 하는 척 하면서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녀는 이북에서 살다가 6.25 때 여기로 넘어왔다. 그리고 남편을 일찍 여위었다고 했지.’
홀홀단신의 몸으로 자수성가를 했고, 그럼에도 3남매를 훌륭히 키웠다고 들었다.
‘생각해 보니 대단하네. 미색이 뛰어나니, 그녀를 원하는 남자들도 많았을 텐데.’
여기 진열된 한복들은 그녀의 인생을 축약해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인생을 살아온 여성의 인생.
생각을 정리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제가 진짜로 한복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들어주세요.”
“그럼. 나도 건축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면 한 마디도 못할 건데.”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할게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 옷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들어요. 어깨에서 선이 내려오는데, 참 기품이 있구나 하구요. 새하얀 옷깃이 목에서부터 내려와서 쇄골과 가슴팍을 살짝 덮어주네요. 그리고 목덜미에서 어깨까지 비스듬히 내려오다가, 어깨에서 힘을 준 듯, 안 준 듯 자연스럽게 꺾이면서 소매로 내려가죠.”
“…….”
그녀는 나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가녀려 보이지만, 그 안에 기품이 있어요.”
“가녀려 보이는데, 기품이라…….”
“여성의 어깨는 남자에 비해 아담하죠.”
그녀는 내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복의 명인 앞에서 설명을 한다는 것이 낯 간지러웠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자리를 양보 받아야 한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그 느낌이 누가 어깨를 감싸주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선에는 힘이 있죠. 우리나라 여성들의 정조? 정절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 게 보이는 느낌이랄까요? 아름답네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가?
그녀의 눈도 춤을 추듯,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내가 한복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겠어?’
아까 그녀가 했던 말들을 단어만 살짝 바꿔서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그녀의 한복은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이런 말빨을 여자한테 써먹었다면, 장가를 가도, 몇 번은 갔을 텐데.’
아쉽지만, 이번 삶에서는 여자에게 눈길이 안 가는 것을 어쩌라는 말인가?
‘괜찮아. 김성훈. 남자는 능력만 있으면, 여자가 줄을 선다고 했어. 너 능력 좋잖아.’
스스로를 자위하며 마음을 달랬다.
‘이제 칭찬은 충분하겠지.’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었다.
“전 한복을 모르지만, 여기 선생님의 작품들에는 정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네요. 그런데…….”
그녀가 미간을 오므렸다.
“그런데? 왜? 뭐가 이상해?”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뭔데 그러니. 말해도 돼.”
그녀의 말에 정색하며 시치미를 뗐다.
“정말 말이 잘못 나왔어요.”
“그래?”
그녀가 지나가는 직원에게 말했다.
“김 실장. 여기 차 두 잔만 가져다 줘.”
나를 향해 말했다.
“오래 말했더니 목이 마르네. 성훈 씨도 목마르지?”
이야기하는 사이에 시간이 많이 흘렀던 모양이다.
아까의 직원이 다가와, 소반을 내밀었다.
“선생님. 여기, 유자차로 타왔습니다.”
직원은 공손한 자세로 차를 건네고 사라졌다.
“날도 쌀쌀해졌다고 일부러 유자차로 타온 모양이네. 성훈 씨도 한잔 마셔. 따뜻하고 좋을 거야.”
잔을 받아들고 한 모금 마셨을 때, 그녀가 말했다.
“성훈 군. 입으로는 한복을 모른다고 하는데, 말하는 걸 들어보면 꽤나 생각을 많이 해 본 모양이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저도 한국의 미를 연구하는 사람이잖아요. 한국의 건축과 복식은 닮았거든요. 한복의 어깨선과 한옥의 처마선의 기울기를 비교하면서 얼마나 유사한지를 연구하기도 해요.”
“응. 그렇구나. 나는 그런 쪽으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집이라는 건,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의 배경이 되거든요. 그 안에서 만들고, 밥 먹고, 입고, 자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당연히 집안에서 행동하는 사람들을 연구하게 되는 거죠. 옷이라든지 하는 걸요.”
건축의 특성상 종합예술이기에, 어쩔 수 없이 관련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사람을 닮아간다.
개는 주인을 닮고, 집도 사람을 닮아간다.
찻잔을 입에서 떼고 그녀가 물었다.
“유자차 맛있지?”
“네. 새콤한 게 아주 맛있네요. 선생님도 많이 드세요.”
그녀가 샐쭉하니 나를 보며 웃었다.
“칭찬을 많이 먹었더니, 배가 부른데?”
‘무슨 칭찬?’
“아! 한복이요? 그냥 솔직히 말한 거예요.”
그녀가 마네킹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마음에 안 드는데.”
아까 혼잣말을 하던 그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멀뚱히 바라보는 내게 그녀가 말을 이었다.
“성훈 씨도 아까 말하려고 했던 게 그런 거 아니야?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
시치미를 떼며 어깨를 으쓱했다.
“전 잘 모르겠는데요. 예쁘기만 한데…….”
그녀가 은근하게 운을 뗐다.
“난 뭔가 맘에 안 드는 게 있는데, 그게 뭔지를 콕 찍어서 알 수가 없네?”
아까 그녀가 했던 말을 그대로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자신도 모른다고 했던가?
수시로 변하는 것이 갈대만은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 덥석 말했다가는…….’
유자차까지 주는 것으로 보아, 내게 호의가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 호의가 적의로 변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공들인 게 한순간에 박살날 수도 있다고. 김성훈. 말조심하자.’
“글쎄요? 선생님도 모르시는 걸, 제가 알 리가 없잖아요.”
씨익 웃으며, 순진한 척 받아쳤다.
한참을 한복으로 대화하다가, 슬쩍 말을 꺼냈다.
“아까 뭔가 부족한 게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응. 그랬지. 뭔가 생각난 게 있어?”
그녀가 다급하게 물었다.
처음의 느긋한 태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단점이라거나 걸리는 것은 아닌데…….”
“괜찮아. 얼른 말해 봐.”
‘김성훈, 여기서 말을 잘 해야 해!’
그녀가 아까 중얼거렸던 것은 ‘동적인 느낌의 부족’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느낌이 부족하네요.’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그녀가 대범한 사람이라서 아무 것도 아니게 넘어갈 수도 있지!
하지만 대범한 사람이 아니라면?
‘차를 마시는 동안 괜히 단어를 고른 게 아니라고.’
어떤 단어도, 부정의 느낌이 들어가면 안 된다.
한 번 보고 말 사람이라면 몰라도, 지금처럼 내 일과 연관된 여성일 경우에는 더더욱.
단어의 선택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이거 은근히 긴장되네.’
단어를 고르고 골라,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제가 잘 몰라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은 아름다워요.”
“으흠.”
그녀는 작은 코웃음으로 내게 다음 말을 종용했다.
“하지만 나중에 저걸 입고 움직이면 어떻게 보일지는……. 솔직히 모르겠네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60 먹은 아주머니와 여기서 밀당이라니…….’
걱정과 달리, 그녀의 반응은 ‘공감’이었다.
“그렇지? 성훈이가 보기에도 그렇지?”
“제가 잘 몰라서 그렇게 보이는 걸 거예요.”
“나도 아까 느낌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했는데……. 그게 입히고 움직이지 않아서 그런 거였어.”
그녀에게 물었다.
“선생님. 모델을 쓰시면 되지 않나요?”
“그걸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야. 하지만 그 모델들의 걸음걸이와 우리 한복이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리고 체형은 또 어떻고?”
‘가녀린 어깨선과 떡 벌어진 어깨라…….’
확실히 서구적 체형과는 약간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한복을 입고 런웨이를 걷듯 하는 건, 좀 아니군요.”
그녀가 눈썹을 으쓱하며 웃었다.
“그래. 그래서 내가 모델을 쓸 수가 없는 거야. 한복을 입었으면, 조선의 여인들처럼 하늘하늘 그렇게 걸어야 제 멋이 나는 법이거든.”
“당연하죠.”
그녀의 말에 한 여자가 떠올랐다.
한 여사의 말처럼, 하늘하늘하게 걸으며, 너울너울 춤출 수 있는 여자를.
그녀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선생님. 저 한복에 어울릴만한 여자를 알고 있는데, 소개시켜도 될까요?”
고민하던 그녀가 내게 고개를 홱 돌렸다.
“정말? 그런 사람이 있어? 어디 모델이야?”
“아뇨. 모델은 아니고, 학생이에요. 그런데 너무 갑작스러운 연락이라서 곧바로 만날 수 없을 수도 있어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마음에 들면 설득하면 되는 거지. 일단 연락이나 해 봐.”
그녀에게 부탁을 하면 들어줄까?
소개팅을 몇 번이나 하면서 많이 친해지기는 했지만, 그녀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알 수 없었다.
‘안 되면 목숨 빚 갚으라고 땡깡 부려야지. 뭐. 이자도 안 붙는 목숨 빚, 얼른 처분하는 것도 괜찮네.’
방법은 많았다.
경호나 민수를 부채질해서 그녀의 후배들을 불러내는 수도 있었고.
잡념을 덜어내고 수화기를 들었다.
‘일단 현주부터 의견 타진을 해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