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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44화 (244/427)

건축의 신 244화

속도전(08)

새벽 3시.

모두가 잠든 시각임에도, 건축학과에서는 수십 명의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학생회실에서 서류를 챙겨서 일어나는데, 보람이 찾아왔다.

“성훈이 어디 가냐?”

“응. 박람회 장소에 한번 갔다 오려고.”

“벌써 박람회장은 왜? 아직 시간이 남았잖아.”

“우리가 배정받은 자리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야 해.”

“행사 직원들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자리가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그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서류대로만 일이 처리되면 얼마나 편하겠니?’

일은 절대로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훨씬 더 많다고.

지난 삶에서 매번 같은 현장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편하게 진행되었던 적은 없었다고.

그리고…….

‘공무원들이 하는 일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어?’

그들의 일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은 하청업체들끼리 협의 하에 진행해야 했었다.

책상머리 행정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언제나 현장 담당이었다.

설령 그들이 잘못한다고 해도, 공무원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다음 일거리를 받지 않아도 될 강단이 없다면 말이다.

“뭐? 지금 이 시간에 서울에 올라간다고?”

“응. 지금 가면 차도 안 막히고 좋아. 그런데 넌 웬 일이냐?”

보람이 소파에 쓰러지듯 앉으며 말했다.

“머리가 아파서 좀 쉬러 왔다.”

“팔자 좋은데, 팀장이. 너 없으면 애들 게으름 피우는 거 아니냐?”

“게으름 같은 소리하고 있네.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보람이 힘없는 미소를 보내며 말을 이었다.

“우리 팀에 너랑 똑같은 놈 하나 들어왔잖아.”

다시 재투입된 팀원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누군데?”

“정민이.”

정민은 전자 전공으로 로봇의 눈에 카메라를 부착한 녀석이었다.

“그 녀석? 말 안 해도 알아서 잘 할 텐데, 무슨 문제라도 있냐?”

“실측 자료 정리 끝나고 좀 쉬나 했더니, 바로 모형 작업에 들어가는 거 있지.”

그야 시간이 없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애들을 아주 쥐 잡듯이 잡는다. 잡아.”

“원래 네가 할 일이잖아. 편해져서 좋을 것 같은데?”

“흐흐흐. 그 애들에는 나도 포함된다는 말이지. 내가 말만 팀장이지. 정민이가 군기 반장이다.”

“그러냐?”

“응. 내가 하는 말은 씹어도, 정민이가 하는 말은 칼같이 듣더라. 에휴. 정민이가 팀장이야.”

“마찰이 심해? 일이 진행이 안 돼?”

보람이 고개를 저었다.

“일 진행은 빨라. 너무 빨라서 문제지. 애들이 정민이 페이스를 못 쫓아가. 곧 조만간 다운되는 애가 나올 것 같아.”

“적절히 알아서 잘 조절하겠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걱정 되냐?”

“일이 진행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어. 나보다 더 잘 하니까. 그런데…….”

“그런데?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보여. 옆에서 보는 내가 불안해 죽겠다. 덕분에 우리도 죽을 맛이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너하고 똑같은 놈이 있는 것 같아서, 나도 심히 불안하다. 도로 데려가면 안 되겠냐?”

농담조의 말이었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허!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거냐? 자식아. 걔들이 사탕이야?”

이미 한 번씩 밀려나서 자존심에 상처 입은 녀석들인데, 또 데려가라고!

‘어디서 어림도 없는 소리를. 그리고 무엇보다, 난 한 번 내 손에 잡힌 건 안 놓는다. 뽕을 뽑기 전에는 말이야.’

전체 팀원도 중요하지만, 내게는 내 손발을 대신해 주는 원래 팀원들이 더 소중했다.

그 팀원들에게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소파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걔, 어딨냐?”

***

“저기…… 애들 잡고 있는 거 보이지?”

작업실로 들어서니, 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들. 숭례문이잖아요. 외국인들이 제일 많이 알고 있는 거라고요. 한국의 국보 1호를 이딴 식으로 대충 만들 겁니까? 장인정신을 가지고 덤비라고요. 네?”

서슬 퍼런 정민의 말에 팀원들이 울상을 짓고 있었다.

“저거 봐라. 완전 너하고 똑같지 않냐? 아니, 너보다 더 심하다. 죽겠다. 죽겠어.”

보람이 입술을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오죽하면 내 팀인데, 내가 들어가기가 다 무섭다. 야!”

그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보기엔 잘만 하고 있구만. 저거 하라고 보냈는데.’

정민은 남대문의 어설픈 석축 쌓기를 지적하고 있었다.

방법은 바르지만, 그동안 팀장을 맡고 있던 보람이 걱정할 정도라면 분명 문제가 있는 거였다.

슬쩍 보는 것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문제가.

“이렇게 작업했다가 성훈 선배한테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몽땅 부수고 새로 해야 되요. 저니까 수정하고 넘어가는 거라고요. 성훈 선배 보기 전에 얼른 수정작업 들어가요.”

보람의 말처럼 팀원들을 쥐 잡듯이 잡고 있었다.

“좋기만 하구만. 카리스마 있잖냐?”

“그 밑에서 죽어가는 애들은 안 보이고? 가서 한마디만 해주라. 응?”

“그래. 가보자.”

‘정민아. 뒤. 뒤.’

팀원들의 눈치에 정민이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뒷걸음치다가, 탁자에 부딪쳐 멈춰 섰다.

“티, 티, 팀장님. 여기는 어쩐 일로.”

“잘 하고 있는지 보러 왔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뭐야?”

그의 어깨 너머로 작업 중인 남대문이 보였다.

정민이 아까 열심히 지적하던 부분을 슥 가렸다.

규모가 있으니, 가려지기야 하겠냐만, 최대한 감추는 것이 최선이었다.

단 며칠간의 작업이었지만, 성훈을 파악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안 보면 넘어가도, 보고는 못 넘어가는 인간이지.’

그걸 가르쳐 준 사람은 민수였다.

두어 번 작업을 다시 하게 되자, 한숨 쉬며 가르쳐 준 비법이었다.

‘성훈이 형이 보기 전에 후딱 수정해버려. 형 눈에 보이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니까.’

‘적당히 넘어가줄 가능성도 있지 않아?’

‘그게 안 되니까. 그런 거지. 눈에 보인 건 그대로 안 넘어가. 내 말 잘 명심해.’

그의 머리로 민수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다급하게 얼버무렸다.

“잘 되고 있습니다. 팀장님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까 수정이 어쩌고 그러더니, 수정으로 되겠어? 어설프게 수정하느니, 처음부터 새로 하는 게 낫다고 내가 가르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선배님. 하지만 아까는 제가 잘못 말했습니다. 잘못된 게 아니라, 측정에 오류가 있었던 겁니다.”

“그래?”

성훈이 팀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정말이야?”

“네! 맞습니다. 선배님.”

팀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럼 통솔에는 문제가 없는 거고.’

“정민이, 너 요즘, 애들 잡는다면서?”

정민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누가 그럽니까? 보람 선배. 선배가 그랬어요?”

선배이자 팀장이지만, 그건 그의 눈에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그의 말과는 달리, 뒤에 줄지어선 팀원들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흠흠…….”

보람이 헛기침을 하며, 내 등 뒤로 숨자, 정민의 호통이 이어졌다.

“선배. 저 혼자 잘 되자고 이러는 겁니까?”

그 말에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정민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팀장이 자꾸 그렇게 농땡이 치면 됩니까? 솔선수범해도 시원찮을 판에.”

보람이 등 뒤에서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봤지. 완전 시어머니야. 시어머니.”

분위기가 어떠하든, 일은 확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좋아. 아주 잘하고 있어.’

분위기도 험악하고 일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행이 되고 있다면, 그것은 팀원들 간의 화목을 효율성으로 치환한 것 일뿐, 큰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건, 내 판박이를 팀에 박아두는 것.

승범을 비롯한 나머지 팀원들도, 팀에서 확고하게 자기 위치를 잡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 정민과 같은 상황이었지만.

‘화목하기도 하고, 효율성도 좋다면 최고지. 허나 그런 것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최고가 불가능하다면, 최선의 길이라도 택해야 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고, 정민은 그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움을 해도, 결과가 좋으면 관계는 돈독해 지기 마련이지.’

그동안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추억이 되니까.

반대로 아무리 화목한 분위기에서 작업을 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관계도 무너진다.

‘그건 최악의 결과지.’

남는 것도 없고, 추억도 없다.

아름다운 추억이 되느냐?

아니면 하릴없는 시간 낭비가 되느냐?

그것은 인간 관계가 아니라, 그 관계를 통해 이룩해낸 결과에 의해 결정된다.

‘나와 팀원들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지.’

녀석들의 목표는 팔상전을 뛰어넘는 작품성을 가진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내려면, 여기서 내 팀원들의 입지가 흔들려서는 곤란하다고.

그렇다고 다른 팀원들의 불만이 터져서도 곤란하다.

적당히 중재할 사람이 필요한 시점.

성훈이 말했다.

“힘들면 얘기해. 내가 도와줄게.”

정민은 순식간에 등이 축축해 지는 것을 느꼈다.

‘선배님. 그건 어시스트가 아니라, 악몽이라고요.’

오죽하면 원래의 팀으로 돌아간다고 성훈이 말하는 때, 며칠을 괴롭히던 두통이 날아갔고, 위에 구멍이 뚫렸나 싶을 정도로 쓰리던 속이 편안해 졌었다.

성훈과의 팀 작업을 통해, 정민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오래 살려면 성훈 선배랑은 절대로 팀 안 먹습니다. 안 하면 안 했지. 선배님이랑 팀을 짜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정민은 얼른 대답을 했다.

“아닙니다. 선배님. 저희가 할 수 있습니다.”

“그래? 필요할 것 같은데. 팀원들도 불만이 쌓은 것 같고, 보람이 네 생각은 어떤데?”

그라고 별 다른 반응이랴?

팀원들이 사색이 되어 고개를 젓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눈동자는 하나를 말하고 있었다.

‘안 돼! 절대로!’

성훈을 끌어들였다가는 팀원들 전체의 불평을 감내해야 하리라.

여우를 쫓아내려다,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꼴과 뭐가 다르겠는가?

“아, 아니. 그건 나도 정민이랑 생각이 같아. 지금도 정민이가 잘 하고 있다고.”

한숨 쉬며 대답하는 보람이었다.

“그렇구나. 난 괜한 걱정을 했네.”

정민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정민아. 잘 하고 있으니까, 딴 생각 못하게 계속 밀어 붙여.”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칼같이 각 잡힌 정민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팀원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너희들도 정민이가 너무 오버한다고 생각되면 나한테 말해. 언제든지 도와주러 올 테니까? 물론 정민이로 안 되겠다 싶을 때도 마찬가지고.”

팀원 전체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보람이는 조금 있다 보내줄게.”

보람의 손을 이끌고 복도로 나갔다.

***

“지금은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박람회에서 수상하고 나면, 이 괴로웠던 모든 것이 추억이 될 거야.”

“알아. 애들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그랬던 거야.”

“혹시 알아? 우리 모두 현재 건설에서 만나게 될지? 그렇게 되면 어떨 거 같냐?”

내 말에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보람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때 되어 가지고, 우리 기수끼리 동창회하면 굉장히 재미있겠는데?”

그보다 더한 관계가 있으랴!

대학교 때부터 직장까지 다이렉트로 이어지는 관계. 그리고 고난을 통해 맺어진 끈적끈적한 관계.

그리고 그 구심점이 되어줄 특별한 사건.

평생을 통해 한 번도 만나기 어려운 인연들이리라.

‘그렇겠네. 내가 이 녀석들을 몽땅 데리고 현재로 가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려면 박람회에서 대상 수상이라는 결과가 우선 되어야 한다.

지금은 화목과 우정을 찾을 때가 아니었다.

오로지 전진. 목표 달성.

그것이 중요했다.

“일단은……. 박람회만 생각하자. 알았지?”

“알았어. 네 말에 맞아. 내가 성급했어.”

“팀원들 동요되지 않게 잘 추스르고. 나 서울 가고 없는 동안 다른 팀들도 잘 부탁한다.”

“걱정하지 마라. 서울에 일도 잘 처리하고 와라.”

서로 격려하며 이별을 고했다.

내 등 뒤로 정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보람 선배. 이리 와요. 할 일이 태산이란 말이에요. 얼른!”

작업 진행은 내 팀원들에게.

팀의 분위기는 기존의 팀장들에게.

당분간은 문제없이 진행될 것이다.

카미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부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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