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43화
속도전(07)
“실측 잘 다녀왔냐?”
성훈의 물음에 보람이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허리야. 죽겠다. 죽겠어.”
오만상을 찡그리는 모양으로 보니,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훗. 엄살은? 뭐가 그리 힘들다고.”
“우리가 만드는 게 뭐냐?”
“뭐긴 남대문이지.”
성훈의 대수롭지 않은 대답에 보람이 물었다.
“남대문이 어디 있냐?”
“어디긴 어디냐? 서울 한복판이지.”
보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뒤로 젖혔다.
“그래. 이 형님이 어젯밤에 출발했다가, 지금 돌아온 거라고. 그 동네는 차가 왜 그렇게 막히냐? 울산 시내는 거기 비하면……. 아이고. 삭신이야.”
보람은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또 다시 신음성을 토해냈다.
만 하루라는 시간 동안 좁은 봉고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었으니, 아무리 젊어도 무리가 안 갈 수가 있으랴!
하지만 그런 어리광을 받아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고작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 우리는 법주사 일정을 하루 만에 끝냈구만.”
“그거야…….”
보람은 성훈이 더 힘든 일정을 끝내고도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했다.
적어도 동년배인 성훈에게 지고 싶지는 않았다.
허리를 곧추세우며 말했다.
“그냥 해본 소리야. 허리는 무슨…….”
성훈의 이어지는 소리를 듣고는 입을 딱 벌렸다.
“우린 그날 바로 실측자료 정리하고, 다음 날부터 모형 만들었다. 알지?”
‘독한 것들. 니들은 잠도 안자고 했다 그거지?’
성훈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너희 팀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팀장인 너부터 골골거리는데.”
처음부터 지고 들어갈 수야 있겠는가?
오기가 생긴 보람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흥. 너희 팀이 한 걸, 왜 우리가 못한다고 생각하냐! 우리도 할 수 있다고.”
“그래. 믿어보지. 건투를 빈다.”
삐걱대는 허리를 세우며, 정신을 바로 잡았다.
거의 완성 직전의 팔상전을 보며, 전의를 불태웠다.
‘너희들이 나흘 걸렸으면, 우리는 사흘 만에 끝내주지. 기다려라. 김성훈!’
그러나 그 전의는 채 반나절을 넘기지 못했다.
***
“성훈아. 얘기 좀 하자.”
보람의 목소리에 성훈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응. 얘기해. 거기 그렇게 올리면 처마가 안 살잖아. 사진 제대로 보고 안 해?”
한편으로 좋은 말로 달래기도 하면서…….
“이제 거의 끝나가. 이것만 하면, 맘대로 잘 수 있다고.”
성훈은 당근과 채찍을 섞어가며, 일정을 강행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며, 보람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잘 수 있다는 걸로 사람을 달래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거나 결과물은 나와 있었다. 그것도 자기 팀보다 더 멋있고 화려하게.
급한 정리가 끝났던지, 성훈이 돌아보며 물었다.
“지금 실측자료 정리한다고 정신들이 없을 텐데. 여기는 어쩐 일이야?”
보람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말이야. 우리 중에 실측을 제대로 해 본 사람들이 없더라고.”
성훈이 입을 한쪽으로 오므렸다.
“오호라. 그래서 도와 달라?”
“그, 그렇지.”
“그런데 어쩌냐? 나 좀 있다가 기계과에서 인형 만드는데 또 가봐야 하는데?”
“그럼…….”
보람이 모형 제작의 중심에 앉아 있는 민수에게 눈을 돌렸다.
“저 녀석도 같이 갈 거야. 경호는 수업이 있고.”
“크……. 젠장.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거네.”
‘그럼 시간이 부족한데. 어쩌지?’
눈알을 돌리며 계산을 하는 보람에게 성훈이 말했다.
“우리 팀에 있는 애들, 누구에게 맡겨 놔도 실측도면 정리는 할 줄 알아.”
“저, 정말?”
“응!”
성훈은 확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람이 물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냐?”
놀라는 보람을 보며, 성훈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 방대한 자료를 나 혼자 정리할 수 있다고 보냐?”
“그럼 아니냐?”
‘나도 사람인데, 절대 아니지.’
“각 파트마다 연계되는 부분은 둘이서 알아서 정리해 오라고 했지.”
‘그렇게 하면 내가 할 일이 대폭 줄어들거든.’
“그게 가능해?”
“한두 번 깨지고 나면, 스스로 터득하게 되어 있어!”
‘트레이닝이 별 거야? 할 수 있게끔 만들면 되는 거지.’
“그렇구나. 음…….”
보람도 수긍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성훈아. 그렇게 하는데, 저항이 심하지 않았어?”
물론 처음부터 팀원들이 수긍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불평도 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상관이야.”
팀원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보라고.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잖아.”
뻔뻔스레 답하는 성훈은 보며, 보람이 혀를 내둘렀다.
‘내 눈엔 불평할 힘이 없어 보이는데?’
힘이 없어서 못하는 거나, 수긍해서 반대하지 않는 것이나, 결과적으로는 성훈이 보기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을 테니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이거지?’
팔상전을 바라보니, 팀원들이 퀭한 눈으로 작업을 반복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게 사람이냐? 좀비지. 내가 저 꼴이 안 된 것만 해도 다행이지.’
승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결코 편하게 작업을 하고 있지는 않으니라.
‘지금쯤 피를 토하며 로봇을 만들고 있겠네.’
“그럼 쟤들 도움을 받으면 되겠네.”
아직 방법이 남아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성훈의 말이 들렸다.
“그런데 쟤네들이 도와주려고 할까?”
자신들이 쫓아낸 사람들이었다.
상황이 그러했건, 어찌 되었건, 그것은 핑계일 뿐, 결과적으로는 그들은 모두 피해자였다.
그리고…….
보람은 그들이 꼭 필요했다.
경험이 있는 자가 팀에 있으면 일처리가 몇 배는 빨라질 것이 뻔한 노릇.
적어도 성훈 팀과 비슷하게라도 완성을 시켜야, 최소한의 자존심은 세울 것이 아니겠나!
고민하는 보람에게 성훈이 말했다.
“팀원들이랑 다른 팀장과도 의논해봐.”
“의견 일치가 되면, 그때 와. 그럼 상황을 봐서 나도 입장 정리를 해 줄 테니까.”
“알았다. 고마워.”
성훈은 일어서는 보람을 보며, 말을 이었다.
“쫓아낼 때는 마음대로 쫓아냈지만, 돌아갈 때는 그만한 대우가 없으면 안 간다는 것 정도는 알 테지?”
“응. 알았어. 이따가 팀장들 데려올 테니, 그때 보자.”
***
“쟤들 데려가는 건 좋아. 하지만 어디까지나 파견이야.”
“알았어. 인정할게.”
당장 마음이 급한 팀장들이 수긍을 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박람회에 별로 관심이 없던 학과장들도 지원을 하겠다고 했고.
지원해 주는 만큼 잔소리도 많아져서, 얼른 결과를 내놓으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성훈의 팀이 공정한 경쟁을 하지 않는다고, 학과장에게 말하러 간 팀원이 있었다.
그가 말했었다.
‘당연히 건의하러 갔었지. 그런데 귓등으로도 안 들으시더라고. 오히려 똑같이 지원해 줄 테니, 다시는 그런 말을 꺼내지 말라고 하더라고.’
‘분명히 김성훈, 저 인간이 총장한테 뭐라고 한 거야. 총장이 성훈이 말이라면 꺼뻑 죽잖아!’
장인들도 대목장에게 압박을 받았다. 빨리 십분지 일 모형을 만들라고 말이다.
하지만 도면이 나와야 만들든지 말든지 할 것이 아닌가?
그들에게 남은 것은 팀장들을 압박하는 거였다.
얼른 실측도면을 만들라고 말이다.
지금 팀장들은 학과장, 장인, 그리고 팀원들에게 다각도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
그들에게 말했다.
“원래 위치로 돌리되, 못 해도 부팀장의 권한은 줘야, 나도 애들을 설득시킬 수가 있을 거야. 니들 시다바리나 하라고 보내는 게 아니라고.”
한 팀장이 손을 들었다.
“저기, 성훈 선배님. 그럼 승범 선배는…….”
승범이 원래 있던 팀이었다.
“당연히 팀장으로 가야지. 내가 방금 원래 위치라고 했잖아.”
“알겠습니다. 선배님.”
그는 그렇지 않아도 팀장의 자리가 버거웠던지, 얼굴에 반기는 기색까지 보였다.
보람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성훈아. 그럼 너는 팀이 없어지는 건데, 괜찮겠냐?”
팀원들이 원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당연히 내 팀은 해체되는 거지.
‘그래서 내가 파견이라고 하는 거라고. 녀석들은 분명 각 팀에서 큰 전력이 될 거야.’
내 방식에 익숙하니, 여차한 경우에는 무대포로 밀어붙일 것이다.
‘그리고 내 팀의 일원이니, 내 지시가 우선이지.’
내가 필요하니 보내는 거지. 너희 좋으라고 보내는 건 절대 아니라고.
무엇보다 내 밑에 있던 사람을 너희들이 부릴 수 있을 것 같아!
‘내 일정에 따라왔다는 것 자체가 보통 악바리들이 아닌 증거라고.’
보람의 말에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 팀 왜 만들었는지 기억하냐?”
“그거야, 심사의 자격…….”
“그래. 그 팀은 내게 심사 자격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프로젝트 팀이었지.”
팀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은 그들이 탈락하기를 원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내 목적은 그들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내 뜻을 이뤄줄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 뜻을 잘 따라주었다.
그 결과, 다른 팀에서 2주 넘게 해온 성과를 따라 잡는 데는 사흘도 걸리지 않았다.
‘지금 가장 완성에 가까운 팀에 내 팀이니까, 그 정도면 완전히 역전시킨 거지.’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아직도 내게 심사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어?”
사실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이미 결과는 나왔거든.
‘심사의 자격? 누가 누굴 판단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의 가운데, 보람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은 그런 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람이 다른 팀장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대목장이 인정했고, 총장도 인정을 했다.
“우리도 그래. 네가 심사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팔상전을 가리켰다.
“난 이미 저걸 완성시켰어.”
그들과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다른 건물을 또 만드는 게 이득일까? 아니면 너희 팀들을 돌아보며, 전반적인 품질을 높이는 게 이득일까?”
난 이미 팀이 필요 없어졌다.
내게 팀은 이미 자격 증명이 되는 시점에서 무의미해졌다. 내게 팀이란, 박람회에 나가는 모든 사람을 의미했다.
그러나 내가 50명의 사람을 모두 컨트롤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렇다고 각 팀의 팀장과 알력 싸움을 할 수는 없다.
‘알력이 왜 생기냐고?’
그들도 자신들이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 있을 테니까.
‘그걸 컨트롤하려면 내 수족들이 각 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내심을 숨기고 좌중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동의한다면, 난 너희들이 만드는 것을 도와주고 싶어.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그런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보람이 말했다.
“나도 성훈의 생각에 찬성이야. 지금 이대로는 저 팔상전에 비해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 같지가 않아. 난 네가 도와준다면, 대찬성이야.”
그 말에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내가 도움 주는 게 그렇게 달콤하지만은 않을 거야.”
“흥. 알거든. 까짓 거 한 번 죽어보자. 네가 만든 거보다 더 멋있는 숭례문을 만들 테니, 나중에 질투나 하지 말라고.”
결과적으로 팀장들은 모두 나와 뜻을 같이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단순한 모형만들기가 아니었다.
박람회에서 주목을 집중시킬 ‘그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건 모형의 완성도일수도 있고, 사람들을 놀래킬 아이디어일 수도 있지.’
***
팔상전의 작업이 완료되고, 팀원들에게 각자 있던 팀으로의 복귀를 명령했다.
거부 따위는 받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다행스럽게 아무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기뻐했다.
“이제 드디어 잘 수 있겠구나.”
눈이 뻑뻑한 지,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승범이었다.
그가 말했다.
“잘 있어라. 성훈아. 우리……. 이제 보지 말자. 제발…….”
나는 그렇게 팀원들을 떠나보냈다.
팀원들을 파견 보내며, 딴 생각을 하는 내가 얍삽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
‘하지만 내 입장이 되어보라고.’
움직여줄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트레이닝이 되어있다.
내가 굳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왜 하는가?
‘나는 나대로 할 일이 있다고.’
각자 자기가 잘 하는 것을 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 내게는 새로운 팀이 생겼다.
박람회 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