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42화
속도전(06)
학생들의 반응도 가지각색이었다.
“어떻게 그저께 만든 팀이 모형을 저렇게까지 만들 수 있는 거냐?”
“너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쟤네들 지금 사흘 동안 밤샘한 거야.”
“그러게. 난 하루 밤 새고 뻗을 줄 알았는데, 체력들도 좋아. 쟤네들!”
눈이 뻘건 성훈의 팀원들이 들었다면, ‘악으로 버티는 거지. 체력은 무슨 체력!’ 하며 버럭 화를 냈을 테지만, 총장들의 대화를 듣고 흐뭇해하고 있었다.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거라고. 저기 장인들과 승범 선배 같은 경우는 기계과에 동원 가능한 사람을 다 끌어들였다던데, 치사하지 않냐?”
자리로 돌아가던 보람이 말했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자.”
“보람 선배. 왜요? 왜 그래야 하는데요?”
남이 잘 되는 만큼, 상대적으로 자신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경쟁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자기 방어.
그것을 넘어서는 공격적 태도.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했던가?
이런 마음이 타인의 성공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낼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속 좁은 비교심리.
‘그 마음은 알지만,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 쟤네들이 죄 지은 것도 아니고. 만회할 기회는 있어야지.’
보람이라고 성훈이 칭찬을 받는데 마냥 기분이 좋겠냐마는, 마음 한구석이 개운하지 않았다.
“쟤네들은 이번에 결과가 없으면 제 발로 나가야 한다고.”
“그래서요? 그게 원래 그런 규칙이었잖아요.”
“우리 손으로 밀어냈어. 넌 양심도 없냐?”
보람이 투덜대는 팀원의 등을 떠밀었다.
“저 팀 볼 시간 있으면 우리 꺼나 빨리 만들자. 이러다가는 역전되게 생겼다고.”
“아무리 그래도 룰이란 게 있는데, 저건 좀 보기가 껄끄럽네요. 우리 교수님께 말씀드려야겠어요.”
보람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그러시든가. 우리 자리로 가자.”
***
박 목수를 비롯한 장인들이 최 옹에게 훈계를 받는 동안, 나는 자료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민수하고 제작팀들 이리 와 봐.”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이 모니터를 좀 봐 줄래?”
어떻게 만드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이는지를 아는 것은 더 중요하다.
만드는 건 과정이지만, 보이는 건 결과와 직결이 되니까 말이다.
“잘 만들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보면, 모자란 부분들이 보이지? 인방과 기둥이 이어지는 부분이 많이 거칠어.”
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만들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까, 좀 더 손을 봐야겠네요.”
“너희들 고생 많은 거 나도 안다. 하지만 기왕 시작한 것, 제대로 마무리 지어야 하지 않겠어?”
그들을 격려하며 말을 이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다른 녀석들 코가 납작해질 시간도 말이야.”
그 말에 팀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고진감래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노트북을 닫았다.
‘수정할 건 이미 다 전달했고, 이걸 다시 사용하는 건 팔상전이 끝난 다음이겠네.’
“정민아. 그건 우리 제작 자료 영상으로 남겨둘 거니까, 잘 보관해라. 그리고 수고했다.”
정민이 씨익 웃었다.
“저보다 선배님이 고생 많으셨죠. 지금 CD로 구워 놓을 게요.”
승범도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어디 가서 좀 쉬다 와라. 며칠째 눈도 못 붙인 것 같은데.”
“이따가 쉬면 돼! 정민아. 우리 과 하나, 너하고 승범이 것도 하나씩 복사해 둬라.”
다음 해, 다다음 해에도 이런 작업을 할 때, 충분히 기본 자료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그만큼 후배들은 오류를 범하지 않을 테니, 제작 속도는 배가 되겠지.
그걸 본 총장이 말했다.
“성훈 군. 이 영상을 좀 빌려줄 수 있을까?”
왜 빌려달라고 하는 거지?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적어도 그는 허튼 짓을 하는데 쓰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세요. 얼마든지요.”
그에게 CD 한 장을 내밀었다.
“고맙네. 곱게 쓰고 돌려주겠네.”
“감사합니다.”
“고생 많았어.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
총장은 CD를 챙겨 들고 대목장을 찾았다.
“대목장. 사무실에서 차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겠습니까?”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그런데 별로 좋은 차가 없습니다만.”
“하하. 중국에서 좋은 차가 들어왔다고 합디다. ‘송빙호’라고 하던데요?”
“엥. 그건 또 어찌 아시고?”
“저번에 비서가 대목장 사무실에 들렀었지요?”
“아!”
“그때, 입이 호강했다고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 만난 김에 차 한 잔 얻어먹고 싶어서 그럽니다.”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맞다 뿐이겠습니까? 영광이지요. 중국 부자들도 아까워서 못 먹다가 정말 귀한 손님이 왔을 때나 내어놓는다는 차인데 말입니다.”
최 옹은 정말 몰랐던 모양이다.
“중국 부자들도요? 이게 그렇게 좋은 차입니까?”
“허허. 모르셨던 모양이지요. 돈으로 사면 한 통에 일억은 가뿐히 넘을 겁니다.”
“억!”
대목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건 차가 아니라, 숫제 돈을 들이마시는 게 아닌가?
총장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살 수라도 있으면 다행이게요. 돈이 남아도 못 구하는 것이 바로 그 차입니다.”
“허허허. 그런 차였습니까?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럼 당연히 대접을 해야지요. 가십시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차를 마신 총장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가 되었다.
“성훈이 녀석. 그냥 짠돌이인 줄 알았더니, 대접을 할 때는 제대로 합니다 그려. 이런 걸 선물할 생각을 하다니. 나한테는 일언반구도 없더니.”
“아직 많이 있는데, 내어 드릴까요?”
총장이 양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럴 수야 있습니까? 성훈이, 그 녀석에게 무슨 험담을 들으려고요.”
“나눠 먹는 걸 가지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생각나면 한 잔씩 마시러 오겠습니다.”
“그러십시오.”
“혹시……. 제 주변에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같이 와도 되겠습니까?”
“이를 말씀입니까? 언제라도 환영합니다. 차가 있는 한은 양껏 따라드리지요.”
“감사합니다.”
총장이 대목장의 양손을 부여잡았다.
차후 총장에 데려오는 사람들과 연을 맺을 것이다.
대목장은 모르겠지만, 한 통에 억이 넘는 차를 즐기는 사람이 어찌 일개 범부이겠는가?
총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좀 있다가 학과장을 모아서 회의를 할 겁니다. 연락을 드릴 테니, 함께 참석해 주셨으면 하오.”
“알겠습니다. 이따 뵙지요.”
***
“김 비서. 틀어보게.”
대형 모니터에서 영상이 시작되었다.
총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것이 기계공학과와 전자공학과의 작품을 가지고 김성훈 학생회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오.”
좌중에서 감탄이 튀어나왔다.
“오! 그 모형을 이렇게 찍은 겁니까? 아직 완성은 되지 않았지만, 거의 실제와 흡사하군요.”
제일 먼저 감탄을 토해낸 이는, 자체면접을 제안했을 때, 성훈의 편을 들어준 전기공학과장 권 교수였다.
그가 다른 교수에게 물었다.
“기계과와 전자과 교수님들도 직접 보셨습니까?”
“아니요. 저희는 밤을 샜더니, 몸이 영 시원치 않아서…….”
“그러셨군요.”
다른 교수의 칭찬도 이어졌다.
“아까 저런 걸 찍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군요.”
“두 분 교수님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기계공학과 학과장이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런 생각이 어찌 이런 늙은 머리에서 나오겠소. 그 학생회장이라는 녀석이 내 사무실에 와서 얼마나 잔소리를 해댔는지 아시오?”
전자공학과 학과장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오. 이틀 밤낮을 잠도 안 자고 잔소리를 해댑디다. 뒤통수 잡고 쓰러질 뻔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외다.”
“결과가 좋게 나왔으니 망정이지. 안 나왔으면, 이 자리에도 못 나올 뻔 했소. 허허허.”
다른 교수의 감탄이 이어졌다.
“이런 걸 보면, 대상을 타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이 보입니다.”
총장이 물었다.
“어떻소? 두 학과장이 지원을 해 줘서 저만한 결과를 만들어 냈는데, 대견하지 않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가?
아까까지 ‘고혈압’을 운운하며, 불만이 가득하던 두 교수의 입가에도 웃음이 어렸다.
“그렇습니다. 저렇게 쓸 줄 알았으면, 좀 더 신경을 써줄 것을 그랬습니다.”
“허허허. 그렇습니까? 안 그래도 학생회장이 두 교수님 찾아갈 채비를 하고 있더군요. 신경 써서 마지막까지 잘 좀 도움을 주셨으면 하오.”
‘또 그 녀석을 만나야 한다고. 아이고. 머리야.’
성훈을 만날 생각을 하니, 또 뒤통수가 쭈뼛거렸지만 총장의 칭찬에 비하면, 그것은 아주 값싼 대가였다.
“이를 말씀입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며칠간의 노고와 두통이 총장의 격려 한마디에 단숨에 날아가 버렸다.
권 교수도 그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기계과와 전자과에서 여러모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두 분의 노고가 없었다면, 어디 이런 결과가 나왔겠습니까? 왜 저를 안 불렀을까요? 저 같으면 당장 달려갔을 텐데……. 허허허.”
그는 유쾌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대단하다는 건 인정합니다만, 사실 우리 아이들을 도우미로 보낸 것이, 지금 와서는 약간 회의감도 생깁니다.”
조선공학과의 학과장이었다.
그는 총장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말을 이었다.
“저희처럼 현재 건설과는 약간 궤가 다른 과도 있습니다. 사실 도우미로 보내기는 했습니다만, 과연 그 아이들이 가산점을 받더라도 현재 건설에 입사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됩니다.”
보험 든다는 생각을 그들을 도우미로 넣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사실 모든 학과가 현재 건설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공학과를 비롯하여, 화학공학과, 자동차공학과, 신소재공학과 등등 말이다.
이들이 건설회사와 어떤 연관이 있단 말인가?
총장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이 되는 것도 당연지사겠지.’
그를 보며, 총장이 말을 이었다.
“이건 제 은밀한 비선을 통해서 들은 말입니다만,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말씀을 드리는 게 좋겠군요.”
좌중의 시선이 총장에게 집중되었다.
‘총장의 비선이라면 정보가 정확하기로 유명한 곳이 아닙니까?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게요. 저 정보가 틀린 적이 한 번도 없었지요. 총장의 인맥이 국내 각계에 퍼져 있잖소.’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니만치, 거의 확정된 사실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총장이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어디에 가서도 입 밖에 내지 마시오.”
모두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번 박람회는 현재 왕회장께서 참석하실 예정이라고 하오.”
“정말입니까?”
전 교수의 말에 총장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공학과 교수가 전 교수에게 눈짓을 하며 속삭였다.
‘그게 건축과 말고 다른 과에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구려.’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권 교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설명했다.
‘왕회장이 방문하면, 다른 계열사 사장들이 가만히 있겠소?’
‘아하!’
어떻게든 참석해서 눈도장을 찍으려고 하겠지.
회장의 눈 밖에 나면, 후계구도에서 득보다 실이 많으니까.
‘혹시라도 왕회장님이 마음에 드셨다고 해 보시오. 계열사 사장들이 서로 앞 다퉈 관련된 인재들을 데리고 가실 거라는 말이오.’
‘전 교수님. 하지만 그렇게까지 잘 될까요?’
‘저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시오? 저런 작품이 이번 박람회에 또 나올 수 있을 것 같소?’
총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건축에는 수많은 과들이 연계되어 있소. 토목, 전기, 설비, 전자 등등. 거기에 아울러 아까 영상에서 보셨다시피, 기계과와 다른 과들까지도 모두 망라한 종합적인 작품을 만들고 있소.”
조선공학과장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현재 그룹 또한 대한민국 산업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끼치며, 연결되지 않은 곳이 없소. 조선공학과와 현재그룹이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소?”
현재 건설과 그룹은 차원이 다르다.
그는 양손을 내저으며 그 말을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지요. 현재 조선이 있잖습니까?”
“그렇소. 박람회는 곧 현재에서 인재를 뽑아가는 장소가 될 수도 있는 것이외다.”
학과장들의 눈이 번뜩였다.
‘어쩌면 총장에게 인재를 추천해 달라는 연락이 올지도 몰라.’
U대학의 인재는 필요하고, 그것을 뽑기 위해 학과장들에게 연락을 할 것인가? 그 돈 많은 그룹에서?
‘이건 어쩌면, 정말로 우리 학과의 위상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군.’
자리에 모인 학과장들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총장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되었군. 이제 대목장을 소개할 시간이군.’
“그래서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은…….”
대목장을 지명하며 말을 이었다.
“건축과에서 여기까지 결과를 내는 데에는 대목장의 도움이 실로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오.”
좌중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함께 자리해주신 대목장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소개의 시간이 끝나고, 총장이 말을 이었다.
“부디 대목장과 협력하여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으면 하는 바램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