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41화
속도전(05)
“오호라. 그러니까 외국인들에게 우리 건물을 보려면 이렇게 봐라. 하고 미리 보여주는 것이구만. 내 말이 맞지?”
“네 맞습니다. 어르신.”
대답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또 하나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기계공학과와 전자공학과 학과장들이 뒤통수를 잡았다던, 바로 그 물건이구만.”
총장이 뒤에서 우리 탁자를 보며 말했다.
‘잔소리 좀 했더니, 그 새 가서 일러바쳤나 보군.’
총장은 나보다는 내 손에 들린 물건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성훈 군. 나도 한 번 보여 주게. 어떤 물건이기에 그 양반들이 진절머리를 쳤는지 말이야. 허허허.”
“아직 시연 단계라서, 그렇게 볼만할 건 못될 겁니다.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옆에서 듣고 있던 민수가 의견을 냈다.
“성훈 형. 지금 삼 층까지는 기와 부착하는 작업이 끝났으니까, 올려서 다시 보는 게 어떨까요?”
“탈착 부재까지 작업 끝났어?
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언제든지 탈부착 할 수 있도록 정리해 뒀어요.”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탈부착 옵션은 어쩔 수 없는 변경이 필요할 때를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대목장도 얼른 보고 싶은 모양인지, 팔목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러거라. 지금 완성된 것들은 모두 올려 보도록 해라. 박 목수. 자네도 얼른 이리 오게.”
장인들의 손길도 한 몫 거드는 바람에 순식간에 지붕이 올려졌다.
총장이 옆에서 지켜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팔상전인가? 아까 봤을 때와는 천지 차이인 걸.”
“아까는 뼈대만 있었으니까, 당연했을 겁니다.”
다시 한 번 조이스틱을 잡았다.
“정민아. 준비해라.”
“오. 그렇게 움직이는 거로구만. 기발한 아이디어일세.”
총장과 대목장은 로봇과 모니터를 번갈아 보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대목장이 더 말이 많았다.
“어허이. 거기서 좀 더 들어가야지. 그렇지. 그렇지. 그쯤에서 봐야 나뭇결도 살고, 주두의 전체적인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지.”
옆에서 총장도 추임새를 넣었다.
“역시 대목장이십니다. 거기서 보니, 확연히 잘 보이는 군요.”
“거 참. 당연한 말씀을. 제가 톱밥을 몇 십 년을 먹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허허허.”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로봇이 팔상전 실내로 들어갔을 때부터는 대목장의 지시가 계속 이어졌다.
“아니야. 아니야. 고개를 더 들어. 그렇지. 그렇지. 고개를 좀 더. 어허. 그렇게 하면 대들보가 가로지르는 모습이 안 보이잖나. 에잉. 내가…….”
대목장이 흥분하며 앞으로 나서자, 민수가 그의 소매를 슬며시 잡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저거 아직 시제품이고 성훈이 형이 만들어달라는 대로 만든 거라서, 성훈이 형 아니면 아무도 못 만져요. 잘못해서 망가지기라도 하면…….”
민수의 시선이 승범에게로 향했다.
대목장과 눈이 마주친 승범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르신. 저 이건 만드느라 죽는 줄 알았어요. 부서지면 죽어버릴 거예요.’
양팔을 교차시키며, 강력한 거부를 표했다.
“커흠.”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 고개는 좌우로 돌리더라도, 몸은 가운데 있는 팔상도를 중심으로 돌아. 그렇지.”
최 옹은 그 말과 함께 양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여기서 이렇게 한 바퀴 도는 것으로 한 번의 탑돌이를 완성하는 거란다.”
“탑돌이라뇨?”
민수의 물음에 대목장이 답했다.
“탑돌이를 안 해 봤느냐?”
탑돌이란, 절에서 재(齋)를 지내거나 의식이 있을 때, 승려와 신도들이 불탑의 주변을 돌면서 소원을 비는 것을 말한다.
특히나 불교가 중흥했던 시대에는 젊은 청춘 남녀들의 사랑이 이어지길 원하거나, 혹은 전쟁에 나간 남편의 안부를 비는 등, 간절한 염원을 담은 탑돌이가 많이 행해졌다.
밝은 보름날 밤, 선남선녀들이 탑을 돌며 흥을 돋우기 위하여 춤을 추며, 소원을 빌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거의 행해지지 않는다.
세대가 다르니, 그걸 알 리가 있으랴?
민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네. 별로 해본 기억이 없네요.”
“다른 절에는 팔상도가 어떻게 걸려 있는지 아느냐? 보통은 불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4폭씩이 걸려 있지. 한눈에 다 볼 수 있는 거란 말이다.”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민수의 끄덕임에 최 옹이 말을 이었다.
“허나 법주사 팔상도는 기둥을 중심으로 사면에 두폭씩이 걸려있어서 한눈에 다 보려면, 탑을 한 바퀴 돌아야 한다. 그럼 어떻게 되겠느냐?”
“탑을 한 바퀴 돌게 되는 군요.”
“그렇지. 그렇게 자연스럽게 탑돌이를 하게 되는 것이니라.”
총장이 그 말을 들으며 감탄사를 토했다.
“허허허. 그런 의미가 있었소. 나는 여태껏 모르고 살았는데, 그 의미를 이제야 알게 되었구려. 허허허.”
팔상전의 내부까지 온전히 둘러보고 나서야, 최 옹은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우리 기술이 이렇게까지 발전할 줄이야. 이런 건 꿈에도 생각을 못했는데.”
감탄을 금치 못하는 대목장의 말이었다.
“놀라운 게 어디 기술만이겠소.”
총장 또한 성훈을 보며 기꺼운 듯 말했다.
“그러게 말이구려. 성훈이 녀석이니, 할 수 있는 생각이겠지요. 총장께서 오시기 전에 그런 얘기를 합디다. 외국인들에게 우리 전통을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입니다.”
“허허. 그런 얘기가 오갔습니까? 듣고 보니 더 기특합니다.”
“기술은 발전하는데, 우리 늙은이들의 생각은 그것을 따라 잡지 못하니. 그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내가 먼저 생각하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거늘.”
“당연한 게지요. 젊은 친구들이니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답답해서 하는 말입니다.”
총장이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래서야 학과를 만들어도, 가르칠 게 있기나 하겠습니까? 우리가 도리어 배우게 생겼으니…….”
“저렇게 총명한 아이들이니, 우리가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것 아닙니까?”
요즘 세대의 젊은이들의 기지를 칭찬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은 줄곧 성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총장이 대목장을 힐끔 보며 속삭였다.
‘대목장. 우리는 저놈 하나만 제대로 잡으면 되오.’
‘그게 무슨 말이오?’
총장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다.
‘성훈이 녀석만 잡으면 나머지 놈들은 줄줄이 땅콩으로 딸려온다는 거지요. 저거 안 보이시오. 아이들의 눈이 누구를 보고 있는지.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최선을 다해 일러주면 됩니다.’
‘그렇지요. 총장. 고맙소.’
최 옹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시선이 닿아있는 곳.
학생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 중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훈이 노트북을 보며 뭔가를 지시하고 있을 것이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하지만 주변의 이들 또한 열정의 눈빛을 불태우고 있었다.
반드시 성훈을 따라잡고야 말리라는…….
총장과 대목장이 서로 손을 맞잡았다.
‘우리도 저 녀석에게 지지 맙시다.’
“정민아. 승범아. 이 부분 보이지. 이 턱을 넘어가다가 비틀거렸다고. 화면이 다 흔들리잖아. 그리고 고개를 젖힐 때, 여기. 이 부분에서 잠깐 멈췄다가 지나간다고.”
“이 정도는 괜찮지 않냐?”
승범의 반박이 있었지만, 성훈은 가볍게 무시했다.
“외국인들에게 불량품을 내보일 셈이야? 한국의 수준이 이거밖에 안 된다고? 우리 학교가 이렇다고?”
성훈의 으르렁거림에 승범이 고개를 모로 돌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마귀할멈 같은 놈, 그건 또 언제 봤대?’
그와 눈을 마주치는 정민도 곧 닥칠 비판을 생각하자, 절로 미간이 모아졌다.
아니나 다를까?
“조리개 반응이 왜 이리 느려? 센서로 자동 조정 안 돼?”
“선배님. 센서라뇨. 그런 건 아직…….”
“그렇게 못 할 것 같으면, 정신 바짝 차려. 알았어! 지금은 네가 내 눈이라고!”
“네. 선배님.”
“그리고 내가 갔던 동선들, 몽땅 메모리시키고, 가장 짧은 동선을 찾아.”
“네!”
정민을 구해 준 것은 대목장의 음성이었다.
“성훈아. 네가 한 것들, 다른 곳에도 적용할 수 있겠느냐?”
“어디다가요?”
“저기 남대문이 보이는구나.”
최 옹의 손가락이 보람 팀의 탁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능은 하지만, 이것만큼 퀄리티는 안 나올 거예요.”
“그래도 일단 확인하고 넘어가야겠구나.”
보람 팀의 남대문도 반 정도가 완성되어 있었다.
그래도 대문 입구가 커서 겨우 지나갈 수는 있었다.
잠시 후.
대목장이 한숨을 내쉬며 혀를 찼다.
“쯧쯧. 안 되겠구먼.”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박 목수. 이리 와 보게.”
“네. 어르신.”
실망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이렇게 조잡해서야 어디, 내 제자들이 만들었다고 자랑할 수 있겠는가?”
‘그저 조언만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말해 봐야 핀잔만 늘릴 뿐이었다.
“…….”
그저 조용히 고개만 조아리고 있었다.
“목수들은 다들 이리 오게!”
여남은 명의 목수들이 대목장 앞에 일렬로 늘어섰다.
“길게 말하지 않겠네! 다른 건물들도 보아하니,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구먼.”
결과라 말하는 데 무슨 변명이 필요하랴.
“다른 팀들 것도 모두 십분지 일로다가 수정이 가능하겠나?”
박 목수가 대표로 나섰다.
“어르신. 가능은 합니다만, 시간이…….”
최 옹의 미간이 모아졌다.
“그런가……. 어렵다는 건가? 이 상태로는…….”
고개를 젓는 그를 보며, 옆에 서 있는 민수를 쿡 찔렀다.
내 의도 따위는 금방 알아챘으리라.
민수가 물었다.
“형. 우리 이거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죠?”
다들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였다.
나도 큰 목소리로 응답했다.
“음……. 사흘인가?”
“와!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네요. 정말 시간이 금방 가요.”
민수가 과장되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 뭐하냐? 아직 반밖에 안 됐는데.”
“무슨 말이에요? 형. 이제 뼈대 올라가고 지붕만 올리면 끝인 걸요. 내일 정도면 끝나지 않겠어요? 실제로 작업한 건 이틀밖에 안 되잖아요.”
내가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아하. 내가 실측하는 시간을 빼먹었네. 그것도 하루 종일 걸렸는데. 이런 돌대가리.”
이 말에 박 목수는 심장이 멎는 듯 했다.
‘이것들이! 지금까지 잠도 안 자고 도와줬더니!’
성훈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박 목수!”
“네. 어르신.”
그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최 옹의 시선을 받았다.
“저 말이 진정 정말인가?”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면서 딴청을 피웠다.
“어르신. 무슨 말씀인지?”
“저리 만드는 데, 사흘밖에 안 걸렸다는 게 말이야? 참. 그렇지. 자네가 실측할 때 따라갔었다고 했지. 나이를 먹으니 자꾸 깜빡하는구먼.”
박 목수의 붉은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지금도 눈알이 빠질 것 같은데, 다른 녀석들 실측까지 따라갔다가는, 제 명에 살지 못할 거야.’
그는 비굴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마음은 굴뚝같습니다만…….”
“그래서! 못하겠다는 말인가?”
“그것이 아니오라…….”
“스승의 유지를 이어받아, 전통 건축을 위해 제 한 몸 불사르겠다던, 자네의 각오는 모두 거짓부렁이었는가?”
그의 아부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최 옹의 굳건한 눈동자가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어르신. 어찌 그런 말씀을. 어르신을 따라가고 자 하는 마음에는 일체 변함이 없습니다요!”
“그런데?”
“저도 사람 아니겠습니까? 이 녀석들 따라서 사흘 밤을 꼴딱…….”
박 목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말을 곧이들을 최 옹이던가?
그의 말이 귓바퀴에 도달하기도 전에 최 옹의 반격이 돌아왔다.
“내가 자네 나이 때는 말일세. 일주일을 꼬빡 밤을 새우고도 끄떡이 없었…….”
‘아이고! 저 말이 나오면, 우리 스승님 얘기까지 줄줄줄 레퍼토리지.’
박 목수가 얼른 최 옹의 손을 잡았다.
“하겠습니다. 어르신. 제발 그 뒷말씀은…….”
박 목수의 사정에 못 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흘기며 말을 맺었다.
“아직도 살날이 구만리 같은 젊은 친구가 어찌 그리 메가리가 없는가? 오호 통재로다.”
박 목수가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휴. 잠은 또 못 자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