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40화
속도전(04)
위잉. 위잉.
인형이 첫발을 뗐다.
왼발.
그 다음은 오른발.
천천히 움직이며, 팔상전의 주위를 산보하듯 걸었다.
‘아직 살짝 흔들리기는 하지만, 잘 만들었네. 고생이 많았겠어.’
승범을 보며 미소를 보냈다.
흘끔 나를 쳐다본 녀석이 콧방귀를 뀌며, 다시 로봇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삐치기는. 짜식!’
다시 로봇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고개도 좌우 위아래로 움직이며, 건물로 다가가 기둥을 바라본다.
“정민아. 잘 나오고 있어?”
“네. 잘 나오고 있어요. 좀 더 건물에 가까이 가 주실래요? 네. 됐어요. 고개를 위로 젖히세요. 네. 됐습니다.”
노트북을 보니, 모니터에 첨차가 보였다.
일 층 기둥 위에 꽃처럼 올록볼록 돋아난 첨차.
“음. 그래. 이거야.”
실제적인 사람의 눈높이로 건물을 바라보는 것.
내가 만들었던 투시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눈높이다. 또한 일반적인 관광객들이 보게 되는 눈높이.
하지만 누군가가 지적해 주지 않으면 보지 않게 되는 눈높이.
우리는 명소를 가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보지는 못하고 오게 된다.
외국 관광객들이 놓치기 쉬운 것들을 미리 보여주고 싶었다.
‘이 건물은 여기가 제일 아름다워. 잘 보고 즐기고 가라고!’
지루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영상에서 본 것을 직접 보면 된다.
팔상전 모형에서 흥미를 느낀 자들은 호기심이 생길 것이고, 그 호기심은 법주사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본 것과 비교하면서 보게 되겠지. 이미 어느 부분을 봐야 하는지는 눈이 알고 있거든.’
지금은 사람의 눈높이에서 보게 되지만, 박람회 천장에다가도 조명과 카메라를 달면 어떻게 될까?
하나의 모형이지만, 투시도와 조감도, 거기에 디테일까지 모두 볼 수 있을 거야.
‘흐흐. 좋은 생각인데.’
가만히 보고 있던 보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훈아. 이게 대체 뭐냐?”
다른 팀장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걸 만든다는 게, 저런 거였어?”
“그런가 봐! 우리는 저런 거 상상도 못했는데. 전통을 가지고 새로움을 만든다는 건 사실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다르네. 새로운 시선이라는 건 저런 걸 말하는 거지.”
“그러게. 저 인간 천재 아니냐? 보람이네 팀에서 지붕 여는 거 하고는 차원이 다르잖아.”
보람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하면 베꼈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건 뭐. 말마따나 차원이 다르니까.’
성훈보다 뒤처졌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은 눈앞의 로봇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남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그것은 움직이는 모든 것.
자동차. 시계. 스포츠.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을 말하라면, 압도적으로 자동차가 될 것이다.
왜?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거잖아.’
다른 팀장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선, 새로움, 그런 것보다는 로봇.
멀찍이서 지켜보던 그들이 서로 앞 다퉈 성훈에게 달려갔다.
보람이 소리쳤다.
“성훈아. 나 한 번만 만져보면 안되냐?”
로봇 조종에 방해를 받은 성훈이 인상을 썼다.
“안 돼. 아직 시제품이라 불안하단 말이야.”
달려온 이들의 면면을 보던 성훈이 말했다.
“팀장이라는 것들이 모범을 좀 보여. 보람이 너희 모형 끝났어?”
그러나 아까처럼 뻔뻔스런 대응을 할 수는 없었다.
“거의 끝나가. 성훈아.”
“왜? 귀찮게 하지 말고 저리 가!”
“형님. 제가 소싯적에 게임기 좀 만졌사옵니다. 슈퍼마리오라고 아실랑가 모르겠네요.”
지극히 공손한 태도였지만, 성훈은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슈퍼마리오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건 그런 이차원적인 거 하고는 차원이 다르거든.”
아무리 아부해도 씨알도 먹힐 것 같지 않자, 보람이 입을 다시며 승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쩝. 승범이 넌, 어디서 저런 생각이 나왔냐? 승범이 네 생각이냐? 재주도 좋다.”
“내가 직접 만들긴 했지만, 아이디어는 저놈 머리에서 나온 거야. 괴물 같은 놈.”
욕을 하든지 말든지, 성훈은 조용히 컨트롤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정민아. 아직 초점 맞추는 게 자연스럽지 않아. 한 번 더 맞춰보자.”
시간이 더 흐르고, 기술이 발전된다면, 일일이 수동 조정이 필요 없겠지만.
지금은 기계의 인공지능보다는 사람의 협동이 필요할 때였다.
투덜대는 팀장들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얼른 자리로 가서 안 만들어? 나중에 완성되면 만져보게 해줄 테니, 썩 자리로 돌아가!”
***
어느새 왔는지, 민수도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민수가 승범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선배. 고생 많으셨어요.”
“흥. 뭐 이런 걸 가지고.”
하지만 승범의 얼굴에는, 성훈에게 보이지 않았던 고마움과 뿌듯함이 묻어나왔다.
“어제 성훈이 형이 기계과 갔다 왔다고 하던데요. 고생 많으셨어요.”
“뭐. 나만 고생했겠냐?”
민수가 로봇 조종에 열중하는 성훈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저거 완전 성훈이 형 같지 않으세요?”
“응? 뭐가?”
“이리저리 둘러보며, 잘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거잖아요. 심술궂게 생긴 게, 형이랑 똑같은데요.”
승범이 씨익 웃었다.
“눈썰미가 좋은데, 눈썹이랑 눈이랑 완전 똑같지. 내가 그렸다. 저거. 놀부 얼굴 그리니까, 저 자식 얼굴이 나오더라.”
“흐흐. 하지만 성훈이 형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걸요? 자기가 제일 잘 생긴 줄 알고 있는데.”
“어제 별 일 없었어요? 성훈이 형은 별일 없었다고 하던데. 그럴 인간이 아니거든요.”
승범의 미간에 주름이 쫘악 생겨났다.
“별일 없었다고 그래? 저놈이?”
그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구만.’
바짝 약 오른 표정으로 승범이 말을 이었다.
“어제 우리 교수님 고혈압으로 쓰러질 뻔 했어. 저 망할 자식이 와서.”
“저 형. 원래 그래요. 마음에 두지 마세요. 지금쯤 기억도 못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도 로봇은 확실히 형 마음에 든 것 같네요.”
승범이 성훈의 모습을 비릿하게 웃었다.
“저게 마음에 안 들면 인간도 아니지. 저 놈 까탈스런 요구를 다 맞추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저거 완전 진상이야. 진상!”
기계과에 가서 앙탈을 부렸을 모습이 떠올랐음인가?
민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언젠가 성훈이 말했었다.
‘해도 안 될 것 같은 놈한테는 말 안 해. 내가 미쳤어. 내 입 아프게? 될 것 같은데, 안 하니까 말하는 거지.’
성훈에게 귀찮은 일을 당하는 사람들은 그런 부류였다.
아예 안 될 것 같으면 상대를 하지 않는다.
‘그 점은 참 냉정하단 말이야. 그러면서도 한번 안고 갔으면, 끝까지 데려 가려고 하고.’
지금의 팀도 미련 없이 자를 수 있었지만, 성훈의 고집으로 지금까지 온 거였다.
이대로만 가면, 떨거지 팀이 아니라, 최고의 드림팀이 될 거였다.
다른 팀들과는 열정만 봐도, 비교할 가치가 없을 정도였으니.
인상을 찌푸린 승범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노력의 대가는 확실히 얻으실 거예요. 선배도, 교수님도. 요구는 많아도, 보상 하나는 확실하거든요.”
“흥. 사람을 그렇게 염장을 질러놓고. 내가 교수님 보기가 다 민망하더라고.”
쓰린 기억 되살려서 뭐 하겠나.
민수는 조용히 승범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다 잘될 거예요. 기분 푸세요. 저렇게 좋아하고 있잖아요.”
***
“이제 맘에 드냐?”
승범의 말이었다.
“음. 처음보다 좋아지기는 했는데…….”
“그냥 속 시원히 얘기해. 어제처럼 우리 과에 와서 말하지 말고.”
“이거 봐. 오리 같지 않냐?”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좌우로 약간씩 균형이 흔들리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 말에 승범이 투덜거렸다.
“네가 한 발씩 움직여 달라고 했잖아.”
“응. 그랬지.”
“그럼 당연히 흔들리지. 시간이 더 있었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었어. 신경 쓰지 말고 넘어가.”
“그러냐? 내 조언은 필요 없어?”
“조언? 됐거든. 그런 전문적인 부분은 우리가 알아서 할게. 네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야!”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칭찬을 해 주면 오죽 좋을까?
칭찬은커녕 불만 섞인 말을 했으니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으리라.
“그래도 그 짧은 시간에 잘했네. 수고했어.”
“수고?”
승범이 핏발 선 눈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 교수님이 넌 앞으로 우리 과 건물에 발도 들이지 말라시더라. 이 악덕……. 진상아.”
“내가 뭐 그렇게…….”
“네가 뭘 했냐고? 내 입으로 듣고 싶냐?”
별 다른 짓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승범이 학과 교수님들과 박람회 관련 작업을 한다기에 –감시는 절대 아니고- 격려차 음료수를 사들고 슬쩍 들렀었다.
‘내가 아이디어를 낸 건데, 내 의도대로 나와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 기껏 만들었는데, 내 기대에 못 미친다면, 그건 시간 낭비라고.’
그리고 만들어진 작품을 보고 약간의 조언을 했을 뿐이다.
자신들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던지,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었다.
‘어떤가? 이 정도면 되겠나?’
아무리 시간이 없었고, 급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너무 심하잖아.
그도 그럴 만 했던 것이…….
가느다란 철봉 아래에 바퀴를 달아서 움직이게 하는 방식이었다.
철봉에 똥꼬를 꿰인 인형이 허공에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최악인 건 유선이었다고.’
애들 가지고 노는 자동차도 무선이 판을 치는 마당에…….
‘팔상전만 해도, 그 안에 들어가 한 바퀴를 빙 돌고 나와야 하는데…….’
왔던 방향을 역으로 돌아서 나올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아까 충분히 설명했던 것을 또 다시 돌아 나오면서 설명하는 가이드도 있는가?
‘쓸모없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고.’
딱 보여줄 것만 보여주고, 또 다른 것을 보여주기도 시간이 빡빡할 텐데, 그런데서 시간 낭비를 하다니.
그래서 교수님께 정중하게 물었다.
‘교수님. 혹시 우리 팀이 건물 만드는 거 보셨어요?’
‘응. 우리 승범이하고 잠시 들렀다가 왔다네. 디테일이 살아있던데. 실력들이 좋아.’
‘감사합니다. 보셨다시피, 우리 팀 모형의 관건은 디테일을 얼마나 살리느냐 하는 것이죠.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내 얼굴을 자세히 보고 말해야 했다.
로봇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인상을 살짝 찌그리고 있었거든.
눈치가 없던지, 아니면 아주 로봇이 마음에 들었던지, 둘 중 하나였지만.
‘당연한 말 아닌가. 우리 민족의 얼을 보여주는 것인데. 디테일이 살아있어야지. 암!’
내 말이 그 말이거든.
그럼 당연히 작품 전체를 안내하게 될 로봇도 디테일이 살아있어야 하는 것 아냐?
내가 그리는 그림은 우리 팔상전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각 팀들의 작품들의 질을 높이고, 그것을 보여주는 거였다.
모든 작품들 사이를 종횡무진, 활보할 가이드 로봇이 저렇게 허접해서야…….
로봇에게 다가가 이리 저리 살피며 물었다.
‘이 로봇, 어디에 디테일이 있나요?’
그렇게 약간 실망 섞인 아쉬움을 내뱉었을 뿐.
교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은 보고도 모른 체 해주었다.
부끄러울 것 아닌가?
생판 문외한인 내게 그런 말을 들었으니 말이다.
내가 건축 문외한인 자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승범의 투덜거림에 나도 입이 툭 튀어나왔다.
‘유치원 학예회에 낼 거냐고 하려다가 참은 거라고.’
우리의 티격거림은 대목장의 등장으로 끝을 맺었다.
“성훈이가 뭐 만들었다면서.”
대목장은 나를 보며 말했다.
“박 목수가 얼른 와 보라고 해서 왔는데…….”
다가와 모니터를 본 대목장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훈아. 이게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