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239화 (239/427)

건축의 신 239화

속도전(03)

이틀이 지났다.

어느덧, 모형은 모양을 잡아가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목구조를 완성하고 기와를 올려야 마땅하겠지만, 그럴 시간이 어디 있나?

“기와 하나에도 한 땀 한 땀 장인정신을 가지고 올리라고. 플라스틱이라도 대충하지 말고.”

가을이 물러나는 계절임에도, 팀원들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다들 벌건 눈에, 판다처럼 다크서클이 생겼다.

‘이틀째 밤샘 작업이니, 피곤할 만도 하지.’

“자. 이제 거의 끝나간다. 저거 보이지. 조립 시작했잖아. 시작이 반이라고.”

민수도 조각을 하다가, 핀셋을 이용해 기와를 쉽게 올리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야. 민수는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하냐?”

한 팀원의 감탄에 다른 팀원까지 민수에게 눈을 돌렸다.

“기와에 본드를 먼저 바르면 안 돼요.”

민수의 시범이 이어졌다.

“핀셋으로 자리를 잡으세요. 이렇게. 그 다음에 주사바늘을 기와 사이에 넣어서 살짝만. 자! 됐죠? 순간 본드라서 금방 붙으니까, 잠시만 눌러주면 돼요. 이렇게 안 하면 자국이 남아요.”

경력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응. 지워지지도 않아서 폐기한 게 몇 개인지도 몰라.”

“저렇게 하면, 금방 다하겠는데.”

‘보는 것과 하는 건 다르단다.’

활기가 도는 녀석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야! 저건 민수니까 가능한 거야.”

“성훈 선배. 우리도 할 수 있다고요.”

“주사기 사용도 서투른 녀석들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팀장님은 저쪽으로 가 보세요. 시간 없잖아요.”

“훗. 녀석들. 그럼 수고해라.”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아서인지, 이제는 서먹함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경호야. 거기서 노닥거리지 말고, 이리 와봐.”

“선배님. 저 논 거 아닙니다. 제작하는 것 돕고 있었는데.”

경호가 내게 다가오며 항변했다.

‘녀석. 투덜거리긴.’

도면대로 되고 있는지, 감독을 하라고 했더니, 제 녀석만 놀고 있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감독의 의미를 모르든지.

감독은 손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눈과 머리 그리고 입으로 일한다.

가장 한가해 보이지만, 현장의 어떤 사람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 바로 감독이다.

경호의 손을 잡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넌 감독한다는 녀석이 이것도 안 보고 뭐했어?”

“왜요?”

“저거 보이지? 약간 삐뚤어진 거.”

“어디요? 잘 세웠는데요?”

경호의 양쪽 귀를 손으로 붙잡고, 두 기둥과 일렬이 되게 시선을 맞추었다.

“여기 말이야. 어때? 이래서 다음 층으로 올라가겠어?”

“아! 좀 기울어졌네요.”

경호가 소리쳤다.

“진수 선배님. 선배님 옆의 기둥. 예. 그거 오른쪽으로 살짝, 아니. 2미리만 옮겨 주십시오. 네. 거기요. 거기. 스톱!”

짝눈을 뜨고 손으로 방향을 지시하며, 두 기둥의 수평을 맞추었다.

“경호야. 팀원들하고 손을 맞추는 건 좋은데, 네가 할 일도 확실히 해야 하지 않겠어?”

감독을 해야 할 사람이 망치를 들고 다녀서는, 일이 더뎌지고, 시공의 오류가 발생한다.

각자의 역할이 있는 법.

“네. 알았어요. 선배님.”

“네가 진짜로 팀원들을 생각한다면, 작업을 거들어 주는 것보다 한 번에 작업이 끝날 수 있도록 제대로 지시하는 게 더 중요하단 말이야.”

다시 경호의 손을 붙잡고, 오른 편으로 돌아갔다.

“자. 여기서도 확인해.”

경호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높아졌다.

기울어져 있던 기둥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한 곳에서만 확인하지 말고, 전체를 확인하란 말이야. 현장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감독이야. 알아?”

“네. 알겠습니다.”

한 층만 올라가는 거라면, 기둥과 창방을 맞추면서 수평을 조절해도 가능하다.

충분히 여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고층 건물의 경우에는 약간만 하중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그 이후의 작업들은 난항을 겪게 된다.

“아래쪽에서는 작은 차이지만, 위로 올라가면 감당할 수 없이 모양이 흐트러진단 말이야.”

“죄송해요. 선배님. 시간이 급한 것 같아서.”

“이제부터 넌 어떤 공구도 쥐지 마. 알았어?”

“네. 선배님.”

경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가 봐.”

부끄러운 일이지만, 철없던 시절에 감독이 연장을 들고 다니지 않는 이유가 체면 때문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효율성의 문제지. 그룹 회장이 자동차 운전할 시간에 경영을 고민하는 게 맞는 것처럼.’

내가 건축을 공부하는 것은 현장에서 삽질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알아야 면장도 한다고, 내가 배운 이론과 실제가 어떤 차이가 있고, 실제 작업에서는 어떻게 응용되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지.

‘현장 감독이 작업자들보다 경험이 부족하면, 그게 정말 체면 깎이는 일이라고.’

감독의 일은 보는 것에 있다.

보는 것을 등한시하거나, 눈높이가 낮아서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나무를 보려하면 숲을 볼 수 없고, 큰 그림에만 집착하면 디테일을 확인할 수 없다.

둘 다 한 자리에서 확인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면, 발을 재빨리 놀리는 수밖에 없다.

‘부족한 경험을 메울 수 있는 건 노력뿐이니까.’

***

점심시간이 지나고, 다른 팀들도 슬금슬금 모이기 시작했다.

“우와! 벌써 조립 들어간 거야?”

보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각 팀의 팀장들도 궁금한지, 함께 와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사람이 오든지 말든지, 팀원들은 관심도 없었다.

무관심이 어색했던지, 보람이 말을 이었다.

“너네는 손에 모터 달았냐? 뭐가 이렇게 빨라? 우리랑 거의 비슷하겠는데?”

“아냐. 내가 물어봤는데, 이 팀 지금 이틀째 쳘야작업 하고 있어.”

“진짜야?”

팀장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보람이 혀를 찬다.

“쯧쯧. 독한 것들. 쉬지도 않고. 성훈아. 대체 방법이 뭐냐?”

“별 거 없어. 너희보다 시작이 늦었으니까, 그만큼 더 열심히 한 것뿐이야.”

하지만 상세한 설명 따위를 해 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작업이 빨리 진행되는 만큼, 나도 지시할 것이 많았으니까.

“거기 진수야. 거기 들어가는 창방 아니야. 스티커에 층이랑 위치 붙어 있잖아! 도면 잘 확인하고 헷갈리지 말라고.”

빠르게 작업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각 파트 별로 분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것이 각 부재에 넘버링을 하는 것이었다.

왔다 갔다 하면서 지시를 하고 있는데, 보람이 내 뒤를 따라붙었다.

“그런데 이거 스케일이 어떻게 되는 거야? 왜 이렇게 커?”

법주사 팔상전의 실제 높이는 22.7미터다.

아직 3층도 채 마무리 짓지 못했지만, 이미 허리 높이를 넘었다.

“십분의 일. 아직 반도 못 올린 거야. 저거 보이지?”

보람에게 우리 팀 작업대 위를 가리켰다.

“저게 다 뭐냐?”

내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부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저게 다 소진돼야 완성되는 거야.”

“총 높이가 어떻게 되는데?”

“2.2미터가 약간 넘어.”

“무슨 건물이길래……. 그렇게 높은 거냐?”

보람 팀이 만드는, 남대문의 이십분의 일 축소판에 비하면, 실제 규모면에서도, 모형의 크기에서도 압도적이었다.

‘훗. 실제 높이만 따져도 남대문보다 훨씬 높다고.’

남대문의 높이는 고작해야 12.5미터. 그야말로 팔상전의 반 토막이라 하겠다.

“법주사 팔상전.”

귀찮음이 가득한 나의 단답형 대답이었다.

보람의 시선이 우리 모형의 디테일에 멎었다.

“히야! 크게 만드니까, 이런 조각도 가능하구나.”

“응. 보기만 해라. 건드리지는 말고.”

다시 내 입이 바쁘게 돌아갔다.

“진수! 공포 위치 제대로 잡고, 아직 기와 올리지 마. 누가 올리래? 서까래 각도가 똑같은지 확인도 못했는데. 그건 뒤로 빼놔. 맨 나중에 해도 돼!”

감독을 도와주던 경호가 수업을 들어가는 바람에 내가 두 배로 바빠졌다.

“네 분신은 어디 가고. 성훈이 네가 다 하냐?”

민수를 물어보는 것이리라.

“그 녀석은 조각하느라고 정신없어.”

“어디 있는데?”

“저기!”

구석에서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민수가 조각칼 쥔 손을 쉴 새 없이 놀리고 있었다.

다른 팀들이 사용하는 작업대를 피하다 보니, 가장 구석자리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민수야. 아직 공포(栱包)들 덜 만들었어?”

민수의 쉰 듯한 고함소리가 들렸다.

“이제 거의 끝나가요!”

“일단 넘버링 된 순서대로 보내. 지금 공포만 자재가 모자라게 생겼다.”

“네. 알았어요.”

지시를 받은 팀원이 제작된 공포를 다시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사라졌다.

팀장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직도 남은 거냐? 그런데 니들은 무슨 공포를 그렇게 많이 쓰냐?”

우리가 만드는 팔상전은 다른 목조건물과 다른 특징이 있다.

1층은 기둥 위에만 공포를 얹은 주심포 양식을 띠고 있고, 2층에서 4층까지는 공포가 기둥 위에 놓여는 있지만, 다포 양식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5층은 기둥 사이에 공포를 놓은 완전한 다포 양식을 하고 있다.

층마다 공포 양식이 제각기 다르다는 말이다.

정유재란 때, 불 타버린 것을 선조가 짓기 시작했는데, 광해군을 거쳐 인조 때에 완성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변경이 있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의도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일일이 설명하기도 귀찮았다.

“안 바쁘냐? 니들은?”

보람이 뻔뻔스런 얼굴로 답했다.

“응. 아직 팀원들 덜 왔어.”

보람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물었다.

“너네 부팀장은 어디 갔냐?”

“왜? 걔도 귀찮게 하려고? 아서라.”

허나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던가?

승범의 작업이 끝났는지, 정민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끝났나 보네. 저기 온다.”

승범의 손에는 한복을 입은 인형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것도 화려한 색동저고리로 말이다.

대번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보람이 나서며 물었다.

“승범아. 그거 뭐냐?”

초췌한 차림의 승범이 말했다.

“상대할 시간 없으니까, 꺼져. 문둥이들아.”

연이은 밤샘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상대할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다 됐냐?”

“응. 일단 카메라까지 조립은 됐는데, 아직은 불완전해.”

하지만 전혀 성과가 없었다면, 들고 오지도 않았으리라.

다만 궁금한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을 그대로 시연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나도 생각만 했지. 이 시기에 실제로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고.’

어떨까?

기대한 만큼의 결과가 나올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럼 지금 해볼 수 있는 거지?”

“응! 기다려 봐.”

승범이 로봇을 작업대 위에 올리고, 배낭에서 뭔가를 꺼냈다.

뭉툭한 박스에 오락실에서 흔히 보는 스틱 두 개.

승범이 그걸 내게 건네주었다.

“컨트롤러야. 급하게 만드느라 예쁘게는 못했어.”

“괜찮아. 신경 안 써.”

디자인이 뭐가 중요하랴.

막상 사람들의 눈은 컨트롤러에 있지 않을 텐데.

아직 작업에 몰두중인 팀원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잠깐 작업 멈춰 봐.”

손을 멈춘 팀원들의 시선도 인형에 꽂혔다.

“성훈 선배! 드디어 온 거예요?”

“응. 승범이랑 정민이가 고생했다.”

승범이 코웃음 쳤다.

“고생은……. 너 두 번 다시는 우리 과에 오지 말라더라. 학과장님이.”

그 말에 정민도 피식 웃었다.

“우리 교수님은 성훈 선배 이름만 꺼내도 치를 떠시던데요.”

목을 돌렸다.

우두둑.

기계공학과와 전자공학과를 괴롭힌 끝에 얻어낸 내 작품이었다.

‘드디어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내가 자세를 잡자, 승범이 말했다.

“정민아. 노트북 열어라.”

보람이 물었다.

“성훈아! 그거 뭔데?”

“닥치고 보든지, 아님 꺼져.”

역사적인 순간에 저게 초를 치고 있어.

“시작한다.”

로봇이 소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잉.

※ 작가주

한국·일본·중국 등지의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 맞추어 댄 나무 부재로, 건물의 가장 중요한 의장적(意匠的) 표현으로서 장식의 기능도 겸하는데, 그 형식에 따라 주심포식(柱心包式), 다포식(多包式), 익공식(翼工式) 으로 나뉘어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공포 [栱包] (두산백과) 인용.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