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38화
속도전(02)
“계획은 알겠지만, 그걸 무슨 수로 다 한다는 말이에요?”
“그건 힘든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할 정도라고요. 시간도 없는데.”
앞으로 다가올 산 같은 일에 팀원들이 울상을 지었다.
승범이 그들을 달래며 물었다.
“가만 가만.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자고.”
풀이 죽은 팀원을 진정시키며, 내게 물었다.
“두 가지 중에서 모형 만들기는 민수가 주도한다고 했는데, 과연 가능할까요?”
승범이 마른 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저는 염려가 많이 됩니다. 아무리 민수 학우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그렇게 경험이 풍부하다고 할 정도는 아닌 걸로 알아요.”
경험만큼 단시간에 격차를 줄이기 어려운 것도 없으리라.
충분히 공감 가는 말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장인들요?”
“네. 그렇습니다. 지원가능한 모든 분을 끌어들일 겁니다. 그건 승범 학우의 말처럼 경험의 문제니까요. 큰 틀은 우리가 진행하되, 실제와 맞지 않는 디테일에 대해서는 철저히 자문을 구할 겁니다.”
외국인들에게 보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나라의 지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실제와 다른 것을 선보임으로써 나중에 법주사를 방문했을 때, 모형에서 느낀 것을 다시 느낄 수 없다면, 그 또한 과장 광고와 뭐가 다르겠는가?
‘내 입장에서도 승부가 갈리는 일이라고.’
허투루 작업을 해서 부끄러움을 당하면, 발전의 기틀이 아니라 큰 수치가 될 것이다.
“그렇군요.”
장인들이 참여한다고 하자, 자신들의 부담이 확 줄어드는 것을 느낀 것일까?
“진작 말하지. 우리끼리 다 해야 하는 줄 알고 쫄았네.”
“그러게. 박 목수님 같은 분 몇 분만 계셔도 우리 일이 훨씬 빨라질 걸.”
자그마하게 안도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승범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팀장. 우리가 도움을 받는 것은 좋아. 하지만 다른 팀에서 말이 나오지 않을까?”
자신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했는데, 왜 우리 팀은 장인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느냐?
충분히 말이 나올 수 있었다.
“페어플레이가 아니라고 비난할 거라는 말이지?”
승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난하라고 해.”
“응?”
“그게 불만이라면 자기들도 장인들에게 도움을 받으라고 하라고. 애초에 누가 장인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야 한다고 정한 사람 있어?”
‘내 코가 석자인데, 누가 누굴 걱정해?’
변명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건 아니지만.”
여전히 학생들은 나이 많은 장인들을 어려워한다.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다르지.’
대목장이 불러온 장인들은 어쩌면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던 자들일지도 모른다.
그저 전통문화를 지키는 게 자신의 천직이라고 믿고 묵묵히 일만 해 왔던 사람들이다.
‘살갑게 아이들을 대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대학이라는 고등교육을 받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재능을 살려서 이어야 한다.
‘그럼 어울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데, 지금 보면 아직도 많이 어색해 하거든.’
장인들에게 아이들과 친해져라 말해봐야 ‘소귀에 경 읽기’가 될 것이니, 다가섬의 주체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장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결과를 보여주면 저들도 장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겠지.’
“승범아. 우리 저 녀석들에게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하자고.”
“괜찮겠어?”
“괜찮지 않으면! 녀석들이 쫓아냈는데, 우리가 다른 팀 사정을 봐주게 생겼어?”
승범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어른거렸다.
“후훗. 그렇지. 쫓겨난 놈이 너무 과분한 생각을 하고 있었네. 죽을 둥 살 둥 쫓아가도 시원찮을 판에.”
그의 얼굴을 보던 성훈이 말했다.
“룰이 있으면 승패가 갈리게 되어있어.”
어떤 경우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기 마련.
“하지만 패자가 반드시 큰 실수를 해야만 패배하는 걸까? 넌 그렇게 큰 실수를 했어?”
승범은 팀에서 쫓겨나 패자가 되었다.
그것도, 팀장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과연 그렇게 큰 잘못을 했던가? 물론 팀원들과의 관계가 좋았다면, 잘못을 했더라도 서로 감싸 안아줬겠지. 그리고 내가 쫓겨나지도 않았을 거야.’
“아니. 팀에서 쫓겨날 정도로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음에도 패배하는 경우에는……. 난 이렇게 생각해. 그 규칙이 그 사람에게 맞지 않았다고.”
승범이 어렴풋이 생각하던 것이 명확해졌다.
‘그 팀이 나에게 맞지 않았다면, 혹은 내가 팀장 자리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승범아. 난 룰이란 옷 입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아무리 엇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승자와 패자는 갈리게 되어 있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이지. 내가 쫓겨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 이렇게 되었을 거야. 필연적으로.’
“그저 그 옷이 그 사람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느냐 하는 것으로 판가름 나는 거지. 그것도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난 룰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 그것도 승자들이 좋아하는 규칙은 더더욱.”
지난 삶에서 성훈에게 맞는 규칙이 얼마나 있었을까?
“왜? 룰이 없으면.”
“내게 맞지 않는 룰에 매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
“도우미들의 룰은 누가 정하지 않았다고. 자유 경쟁처럼 보이지. 하지만 경쟁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자기 이익을 챙길 생각만 하잖아.”
성훈의 말이 이어졌다.
“장인들의 도움을 받지 말라고 누가 그랬는데?”
승범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
“자기들이 장인들이 어색하고 대하기 껄끄러우니까. 최소한의 접촉만을 하는 거잖아. 그리고는 우리들도 도움을 받지 마라? 그게 정정당당이야?”
“훗.”
“그치? 말이 안 되지?”
“성훈이 네 말을 듣고 보니까 그러네.”
“정정당당? 개나 주라 그래. 내가 전혀 납득할 수 없는데. 내가 왜 자기들 좋은 룰을 따라야 하는데? 난 전혀 그럴 생각 없어.”
룰이 승자를 만들고, 승자는 그 룰을 고집한다.
제 몸에 맞춘 듯 꼭 맞는 옷을 누가 버리겠는가?
그 옷이 남의 몸에 맞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만 따뜻하면 되니까.
그렇게 이어져 내려온 강자들의 법칙.
‘그럼 어떻게 하냐고? 나에게 맞는 옷이 없는데?’
승자가 자신에게 맞는 옷에 희희낙락하고 있는 동안, 패자는 그 옷을 자신에게 맞추면 된다.
내 마음에 들지도 않는 옷을 꾸역꾸역 고집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버릴 수 없다면, 내 몸에 맞추면 되지 않을까?
그게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은 될 걸?
“사람들 시선 신경 쓰지 말고, 우리가 만들어 가자. 그 룰!”
“그래도 비난이 거셀 텐데.”
성훈이 비릿하게 웃었다.
“패자의 변명은 아무도 듣지 않아.”
“훗. 자신만만하구나.”
“룰은 절대적인 게 아냐. 움직이는 자가 만들어 가는 거라고. 두고 봐. 다른 팀들 찍 소리 못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성훈이 다른 학우들을 힐끗 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 모인 녀석들. 지금은 다들 의기소침해 있지만, 난 걱정은 안 해!”
“…….”
승범이 말없이 성훈을 응시했다.
‘꼴찌들을 모아놓은 팀을 가지고 걱정이 안 돼?’
그의 의문에 미소로 답했다.
“내가 보는 너희들은 아직 패자가 아니거든. 난 우리 팀의 잠재력이 다른 팀에서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다고 생각해.”
“정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응!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것은 끝까지 잠재력일 뿐이지. 그리고 그건 한계상황에 부딪치지 않으면……. 절대로 깨어나지 않아.”
성훈은 묻고 싶었다.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정말 힘든 거야? 겨우 이 정도로?’
절박한 심정에 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다.
아니 죽은 후에나 알게 되겠지.
좀 더 할 수 있었는데,
좀 더 노력할 수 있었는데.
좀 더 잠을 줄일 수 있었는데.
그랬다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없는 행동이 죽은 뒤에 하는 후회라고.’
잠?
죽으면 평생 자게 될 것을.
수면은 삶의 요소에서 중요한 요소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모든 이에게 동일한 기준을 제시할 수 없듯,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내가 가장 줄이고 싶은 요소 중의 하나라고. 적어도 내게는.’
“선택해. 옷을 네 몸에 맞출 건지, 아니면 맞지도 않는 걸 걸친 채, 계속 패배자로 살 건지.”
팀원들의 웅성거림이 멈췄을 때, 우리의 속삭임도 끝났다.
승범이 물었다.
“팀장. 건축 모형은 그렇다고 치고. 꼭두각시 로봇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마음의 각오를 다진 것인가?
내게 묻는 목소리가 훨씬 경쾌해져 있었다.
지금까지 수동적인 면모를 많이 보였다면, 지금은 능동적이라고 할까?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그 부분은 부팀장이 진행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대답은 바로 나왔다.
“전기, 전자 관련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도록 하세요. 시간은 사흘, 가능합니까?”
“네. 하겠습니다. 아니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
“승범이 형. 이건 시간이 안 된다고요.”
“알아. 우리들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걸.”
그 말에 의아해 하며, 정민이 물었다.
“알면서 그랬다고요?”
“말했잖아. 우리들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우리들만. 이게 어떤 의미일까?
“정민아. 난 이 작업에 교수님과 내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야.”
“에? 그럼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할 텐데요.”
“하라고 하지 뭐.”
심사를 할 성훈이 어떤 말을 할지는 이미 알고 있다.
결과 없이 말만 한다면 설명이 필요할까?
‘그 녀석 성질머리를 확인하고 싶다면 몰라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과연 성훈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승범 자신과 팀 전체를 대신해 변호해 줄 것이다.
‘교수님 도움을 받으면 안 된다는 룰이 어디 있어?’
그리고 도리어 다른 팀에게 말하겠지.
‘아쉬우면 너희도 그렇게 해!’
승범이 말했다.
“이미 갈 때까지 갔어. 이렇게 허망하게 물러날 바에야,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해보고 싶어.”
“설령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잠잘 시간이 없을 정도라고요.”
“흥. 일주일 후에 우리 처우가 결정되고 나서. 그 뒤에 자도 충분히 잘 수 있어.”
실력을 인정받아 잔류하게 된다면, 흥분 되서 잠이 안 올 거고.
반대로 탈락 된다면, 아무리 잠을 잔들 뭐라고 잔소리할 사람이 있을까?
“정민아. 그래도 말이야. 원 없이 해봤으니 후회는 없을 거라고.”
“휴. 형도 성훈 선배 닮아가는 거 알아요?”
“성훈이가 그러더라.”
“뭐라고요.”
“개개인의 실력을 평가하려고 팀을 만든 게 아니라고.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싶어서 팀을 만들었다고.”
“그거야…… 성훈 선배가 하려는 게 워낙 스케일이 크니까요.”
“네가 봐도 그렇지. 이럴 때는 개인의 실력이 결과를 만드는 게 아냐.”
“그럼요?”
“결과가 개인의 실력을 말해 주는 거라고.”
성훈의 말이 떠올랐다.
‘생각해 봐. 사회에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야. 오로지 개인의 실력만으로 해낼 수 있는 게 얼마나 되겠어. 그럴 것 같으면 애초에 팀을 뭐 하러 만들어. 그냥 외톨이 늑대로 혼자 하지.’
‘나 혼자서 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번거롭게 일을 벌이지도 않았어.’
승범이 휴대폰을 들었다.
“교수님. 사무실이세요?”
-그렇다네. 아직 연구할 게 남아서 말이야.
“급히 상의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들러도 괜찮을까요?”
-그러게. 기다리고 있겠네.
분명 성훈은 결과를 원했다.
‘정정당당? 개나 주라고 해. 누가 그게 나한테 정정당당이래!’
자리에서 밀려났다. 자존감이 무너졌다.
‘실력으로 보여주지. 누가 과연 떨거지였는지를.’
결의를 태우던 승범이 말했다.
“나 먼저 간다. 너도 어떻게 할지 선택해. 널 쫓아낸 녀석들처럼, ‘정정당당’하게 해서 여기서 밀려날 건지. 아니면 녀석들에게 늬들도 나처럼 해!라고 당당하게 말할 건지.”
환하게 뜬 보름달이 정민을 비추었다.
“휴. 잠은 다 잤네.”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