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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37화 (237/427)

건축의 신 237화

속도전(01)

승범이 말하는 사이, 민수가 물었다.

“형. 왜 승범 선배한테 발언권을 주는 거예요? 승범 선배가 형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말끝을 흐리는 모양새로 보아, 내가 걱정되는 것이 분명했다.

혹시 주도권을 빼앗기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말이다.

“저 봐봐. 승범이가 내가 할 말을 대신해 주고 있잖아. 내가 똑같은 말을 해 봐야, 비난만 받을 뿐이라고.”

악덕 사장이 열심히 하자고 해 봐야, 그 말이 먹힐 리가 없지 않겠나!

‘돌멩이가 날아오지 않으면 다행이게.’

똑같은 말을 해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 의미도 느낌도 다르게 전달된다.

그리고 그 일을 승범은 잘 해내고 있었다.

“그럼 승범 선배가 형이 하려는 말을 대신해 주고 있다, 그거죠?”

“응. 승범이가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 녀석이거든.”

아까 휴게소에 있었던 일을 슬쩍 이야기해 주었다.

“아하! 그럼 승범 선배가 제 발 저려서, 저렇게 열변을 토하고 있는 거구나.”

말 하는 중간에도 나를 힐끗 쳐다보며, ‘나는 네 편이야, 날 미워하지 마.’라는 적극적인 어필을 하고 있었다.

“이제 왜 형이 그러는지 이해를 했네요. 어제부터 계속 승범 선배가 말을 하니까, 애들이 잘 따르더라고요.”

“그래. 사실 그것도 한 몫을 했지. 애들 다루는 데는 일가견이 있더라고.”

좋은 재능 썩히면 뭐 하니?

최대한 살려서 써먹어야지.

꼭 전공점수가 뛰어난 사람이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란, 스펙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의 요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존재다.

한낱 닭 울음소리도 목숨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던가.

“나와 사이가 안 좋은 승범이 내 의견을 들어줄 정도면, ‘정말 다른 수가 없나 보네’하고 생각하지 않을까? 저거 봐. 동조하고 있잖아.”

승범의 말에 동의하며, 팀원들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말했다.

“내가 했으면 저렇게 못했을 거야. 또 한바탕 소란이 일었겠지.”

반드시 눌러야만 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마음에 상처를 준 뒤,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시간도 없는 마당에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승범이라는 대안이 있는 이상에는 말이다.

“민수야.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은 승범의 발언을 많이 이용할 거야.”

“계속 라이벌인 척 하구요?”

“그래. 우리 둘이 한통속이라는 걸 알면, 난 또 제 2의 승범을 만들어야 하겠지.”

“하긴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겠네요.”

“응. 지금 상태가 난 가장 베스트라고 봐. 그러니까 너도 승범이에게 힘을 실어주는 척 액션을 취하라고.”

***

승범의 이야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여러분도 힘들지만, 팀장은 더 힘들 거라고요.”

“그리고 정말 성훈팀장의 방법이 옳은지 그른지는 며칠 내에 결과로 나타날 겁니다.”

“저도 팀장의 강제적인 방식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만 믿고 따라가 봅시다.”

한숨 섞인 탄식이 나왔다.

“알았어요. 승범 선배까지 그렇게 말하면……. 뭐. 방법이 없죠.”

“그래. 부팀장 말처럼 조금만 더 참자.”

“맞아. 지금 우리가 다른 팀들한테 개무시 당하고 있는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고.”

“우리 실력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어.”

“응. 쫓아낸 걸 후회하게 해 줘야지.”

결의를 다지는 모습을 보며, 승범이 단상에서 내려왔다.

승범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수고했어. 승범아. 내가 말했으면 싸움밖에 안 났을 건데.”

승범이 머쓱하게 웃었다.

“뭐 이 정도를 가지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승범이 말했다.

“팀장. 우리는 한 팀이잖아. 그렇지?”

그의 말에 미소로 응수했다.

“그럼! 우리는 최고의 팀이 될 거야.”

팀원들이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을 헛되지 않도록,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주겠어.

‘빡셀 거다. 처지지 말고, 잘 따라와라.’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전진을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그들을 달랬다.

“많이 힘들고 피곤한 거 압니다.”

그들의 눈이 나를 향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죠.”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고 밀려나는 것보다는, 한 번이라도 제대로 승부를 봐야죠.”

불리한 상황에 있음에도 동일한 조건, 동일한 노동력으로 그들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은 한낱 꿈에 불과하다.

땀 없는 영광이 어디에 있으랴.

그리고 위로도 끝났다.

“왜 이렇게 강행군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군요.”

“먼저 사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과라니? 무슨?’

팀원들이 의아해 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갑자기 팀을 맡게 되는 바람에 큰 그림을 그리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직 내 안에서 정리되지도 않은 것을 말할 수는 없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잘 따라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 학우가 물었다.

“그럼 이제 완성이 되신 겁니까?”

“네. 아까 안내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학우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는 지금까지 박람회의 요점은 ‘전통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고 했습니다.”

“네. 그렇게 말씀하셨죠.”

“고민의 결과, 방법은 두 가지로 압축이 되더라고요. 첫째. 보여줄 것을 만든다. 그건 팔상전을 만드는 것으로 해결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해야 하는 일이구요.”

민수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 일은 모형 제작에 경험이 많은 민수가 주도하게 될 겁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건축과 건물에 들어서기만 하면, 민수의 제작영상이 모니터에 틀어져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영상 옆에는 에펠탑과 스타타워의 원래 모형이 있다.

“규모는 십분의 일 비율로 맞출 겁니다.”

“그럼 너무 큰 것 아닙니까?”

당연한 의문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떡하니? 큰 게 좋은 걸.’

그의 질문에 민수가 답했다.

“크게 만드는 게 더 디테일 살리기가 좋아요. 지금 형이 원하는 것도 그거거든요.”

“민수 학우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는 보여주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외양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주려고 하는 겁니다.”

“아까 우리가 찍은 사진들. 어느 것 하나도 헛되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작고 귀여운 것들은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

물론 장인의 손길을 더한다면, 불가능하지 않겠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시간도, 재능도 모두.

어차피 보이는 게 목적이라면, 작은 쌀알에 글자를 새기는 것보다, 큰 공에다가 글자를 쓰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팀장. 그럼 두 번째는 뭡니까?”

“보여줄 것을 만들었으니, 보는 방식을 정해야겠죠.”

“그럼 우리도 보람선배 팀처럼 지붕을 여는 겁니까?”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식상합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모든 아이디어가 합쳐져야 하겠지만, 지금 우리는 어떤 팀과도 달라야 합니다.”

“맞아. 쫓겨난 주제에 또 남을 따라하다가는 비웃음 밖에 당하지 못한다고.”

그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그래서 저는 실제 사람의 눈높이에서 보여주려고 합니다.”

성급한 학우가 물었다.

“어떻게요? 모형 대를 높이려고요?”

“야! 멍청아. 그걸 말하려고, 눈높이를 말했겠어? 팀장이 너 같이 단순한 줄 알아!”

팀원의 핀잔에 그가 고개를 수그렸다.

“그냥 말해 본 거 가지고.”

“시간도 없는데, 실없는 말할 틈이 어디 있어? 창의, 창의, 노래 부르는 것 못 들었어? 네 생각 어디가 창의적이야?”

토닥거리는 그들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참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네.’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승범이 그들을 조용히 시키며, 내게 물었다.

“팀장.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주십시오.”

“건축물의 스케일에 맞춰서 움직이는 인형을 만들 겁니다.”

“왜요? 이유가 뭡니까? 그저 모형을 치장할 장식물 용도는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그의 진지한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인형이 우리 건물의 가이드가 되는 겁니다.”

“가이드요? 누구를 안내한다는 겁니까? 물론 건축물은 움직이지 않으니까,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는 괜찮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비슷한 것 같았다.

‘인형이 가이드를 한다고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는 그 인형의 눈에 초소형 카메라를 장치할 겁니다.”

“카메라요?”

“네. 우린 모형을 만들었지만, 동일한 스케일의 사람을 만든다면, 사람과 똑같은 눈높이에서 보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요? 그렇게 복잡하게 해서 얻는 이득이 뭡니까?”

“실제적으로 그 건물을 본다면 어떤 느낌으로 보이는지를 재현하는 겁니다.”

승범이 턱을 괴고 생각하다 물었다.

“그렇게 하면 아마 실제 건물을 보는 느낌이 들겠죠. 하지만 실제로 사찰이나 건축물에 가서 보면 되는 거잖아요. 굳이…….”

일리 있는 추론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게 우리의 맹점입니다. 우리는 지극히 우리 관점에서 보고 있죠.”

“그게 잘못된 겁니까?”

“박람회의 관람객은 외국인들이거든요. 한국인과는 전통건축에 대한 상식도 관심도 전혀 없죠.”

우리 한민족이 가진 아름다움을 보고 싶으면, 어디어디 절을 가라?

그들이 왜?

귀찮아서라도 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 자신도 한국 사람들이 아는 것만큼, 한국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한다.

‘오만이 아니라, 그것 밖에 몰라서 그런 거라고.’

우물 안 개구리가 하늘의 크기가 우물의 크기 만큼이라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비난할 수 없지 않을까?

적어도 그 개구리에게는 사실의 왜곡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진실이니까.

“그들은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경복궁과 남대문이 한국의 모든 것 일거라 생각합니다.”

승범도 수긍이 가는 모양이었다.

“흠. 그럴 수도 있죠.”

“다른 것을 보지 못했으니, 궁금하지 않고, 찾고 싶지 않은 겁니다.”

“저는 보는 방식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겁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숨겨진 아름다움이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됩니다.”

늘 보던 것이라도, 방향을 약간만 바꾸면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혹은 시선만 약간 바꿔도 말이다.

“그들의 편견만 깬다면, 그들에게 한국문화는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 될 겁니다.”

“우리가 보고 왔던 것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가이드의 시선으로 보이는 영상을 찍어서 거기에 설명하는 말을 넣을 겁니다.

“말 그대로 가이드가 되는 거군요.”

“네. 그래서 그 두 가지가 중요한 겁니다. 만약 우리가 본 만큼, 모형의 품질이 따라주지 못한다면, 실망스러운 영상이 나오겠죠.”

“그렇다고 해서 모형은 제대로 만들었는데, 그걸 가이드가 아름답게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것도 실패입니다. 그래서 크게 만들어서 디테일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했던 겁니다.”

학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의 말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만, 그걸 어떻게 만들죠.”

대놓고 한숨을 쉬는 학우도 있었다.

충분히 납득은 된다. 성공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실행이다.

말은 쉽지만, 실행은 어렵지 않던가!

그들을 돌아보며, 마무리를 지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전공 실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진 역량을 모두 짜내야 합니다. 시간은 일주일. 아마도…….”

사람들의 시선에 내게 집중되었다.

“쉬는 시간 따위는 없을 겁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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