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36화
현장실측(03)
“성훈 선배, 완전 박사네. 박사.”
학교로 돌아가는 봉고 안.
잠시 졸고 있던 민수가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퍼뜩 잠이 깼다.
“응?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성훈 선배는 그런 걸 어떻게 알았대?”
“뭘?”
잠이 덜 깬 얼굴로 물었다.
“우리나라 목탑이 쌍봉사 대웅전과 법주사 팔상전, 이렇게 두 개였다니, 난 전혀 몰랐거든. 민수 넌 알고 있었냐?”
“아니. 나도 몰랐어. 배운 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하는 말이잖아. 우리랑 학년 차이 나봐야 한 학년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말이야.”
“원래 그 형이 좀 아는 게 많아.”
그러면서 민수도 궁금해졌다.
쌍봉사 대웅전은 1984년에 불에 타서 소실되었다고 성훈이 말했었다.
보존되지 못한 문화재는 그 가치가 없다.
기록으로만 남을 뿐이다.
1984년에 쌍봉사 대웅전이 화재로 소실되는 바람에, 현재로서는 법주사 팔상전이 유일하게 현존하는 목탑 문화재였다.
1984년. 민수는 초등학교 3, 4학년이었다.
‘그럼 성훈 형도 4, 5학년이었을 거란 말이야. 국사는 중학교에 들어가야 배우는데,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으리라.
지금 이 시대에는 ‘아홉글’의 ‘윅히백과’가 없으니 말이다.
성훈이야 예전에 본 기억으로 지나가듯 설명을 한 거겠지만, 보는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얼마나 공부를 했으면, 저런 걸 다 알까?’라는 동경의 시선을 보이지 않았던가?
15년 후에는 알고자 하면 금방 알 수 있겠지만, 지금의 빈약한 정보력으로 그것을 알 수가 있으랴?
“야! 고작 그런 걸 가지고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냐?”
시비조의 말이었다.
“대단하지. 안 대단하냐? 넌 알고 있었냐?”
“난 건축과가 아니니까, 모르는 거지.”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더라.”
다른 녀석도 끼어들며 말했다.
“뭐가?”
“같이 계시던 박 목수 어른도 몰랐던 것 같으니까.”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
“내가 옆에서 물어봤거든.”
“뭐라고?”
“성훈 선배 말하는 게 정말이냐고. 그랬더니 뭐라고 하신 줄 아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흠칫 놀라시더니, ‘아마……. 그럴 걸. 그때쯤인 것 같은데, 잘 기억이…….’하며 얼버무리시더라고! 안 계셔서 하는 말이지만, 모르시는 게 분명했어.”
“그런데 그게 성훈 선배가 대단한 거랑 무슨 상관인데?”
“이쪽 계통으로만 몇 십 년을 일하신 분도 긴가민가하시는데, 성훈 선배가 알고 있으니까 대단한 거지. 그때 우리는 초등학교 다닐 때라고.”
“그래. 맞아.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건데. 그걸 어떻게 공부했을까 하는 거지.”
“나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건축물의 구조와 명칭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설명 부분에서는 박 목수 어른 보다 낫더라. 야!”
‘아까 올 때는 서로 팀장 혼자서만 한다고 불평 투성이더니, 그거 한 번 설명해 줬다고 추켜세우기는, 냄비 같은 것들.’
그의 눈이 인상을 쓰고 있는 승범에게 닿았다.
‘승범 선배랑 이야기를 좀 해야겠네.’
소란의 와중에 민수의 전화벨이 울렸다.
“성훈 선배가 요 앞 휴게소에서 식사 겸, 쉬었다 간다니까. 화장실 갔다가 식당으로 와라.”
***
“왜 우리가 팔자에도 없는 실측이나 하고, 이게 뭡니까? 승범 선배!”
식사 후에 팀원 중 두 명이 조용히 할 말이 있다기에 따라왔더니, 그에게 하는 말이 이거였다.
그들의 불평을 들으며, 쓴웃음을 삼켰다.
“내가 오자고 한 거 아니다. 기분 나쁘면, 직접 가서 말하지 그러냐?”
‘나라고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냐?’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았지만, 꾹 눌러 참았다.
‘지금 말하면, 그동안 쌓인 것들이 다 폭발할 것 같으니까.’
이미 안 좋게 찍혀서 조심스레 행동하고 있는데, 그들은 승범의 타는 속도 모르고, 오히려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선배, 요즘에 우리 팀장이랑 많이 친해진 것 같던데, 가서 말 좀 해 줘요.”
다른 녀석의 불평도 이어졌다.
“그래요. 우리가 전공으로 도움을 주려고 왔지. 이런 거나 하려고 온 건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승범이라고 마음이 다르랴.
‘나도 기계과야 자식들아!’
하지만 여기서 팀 분위기를 해쳐서는 자신이 곤란했다.
그들을 달랬다.
“나도 늬들 마음 모르는 게 아닌데,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 처한 상황이 그래서 이렇게 된 거니까, 이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가자. 안 그러냐?”
“그 사람 마음대로 할 거면, 팀은 뭐 하러 만들었대요? 그냥 탈락시켜 버리지.”
“왜 나는 좋기만 하구만. 취업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죽을 지경이었거든. 야! 좋은 쪽으로 생각해. 어차피 가산점 받으면 좋잖아.”
“하지만 승범 선배. 팀장은 전혀 우리 의견이라고는 듣지를 않는다고요. 그러니까 선배가 이야기 좀 해주세요.”
‘왜? 왜 나냐고?’
승범의 인상이 찌그러졌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선배가 부팀장이잖아요.”
부팀장?
원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이게 부팀장이 할 일인가?
응당 실질적으로 일을 진행해야 마땅한 짬밥이건만, 이런 철없는 녀석들의 불평이나 들어줘야 한다니.
‘이게 무슨 부팀장이냐? 보모지.’
하지만 여기서 분란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그들을 달래며 말했다.
“알았어. 그럼 내가 민수한테 말해볼게.”
“민수가 아니라, 성훈 선배한테 직접 말씀드려주세요. 네?”
달래던 승범도 슬슬 지쳐갔다.
“하아. 답답하다. 나도 미치겠단 말이다.”
“그쵸. 선배. 진짜……. 아오. 선배라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야! 동기라도 어떻게 못하는데……. 휴.’
승범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야! 나도 지금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다 때려…….”
“저도 그래요. 선배님. 가산점만 아니면, 다 때려 치고 싶어요.”
녀석의 말이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
승범의 눈에는 계단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성훈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성훈과 눈이 딱 마주쳤다.
성훈이 씨익 하며 웃더니, 모습을 감추었다.
“딸꾹!”
“선배 왜 그래요?”
“사래 들렸어요? 등 두드려 드려요?”
딸꾹질을 하며, 넋이 나가있던 승범이 정신을 차렸다.
‘분명이 헛것을 본 것은 아니고.’
울분에 찬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짜식들아. 까라면 까!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네?”
“하기 싫으면 닥치고 팀에서 나가! 할 거면 잠자코 따라오던지! 알았어?”
“왜 그래요? 승범 선배? 더위 먹었어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녀석들이 승범을 붙잡았지만, 그의 속이 타들어갔다.
‘이 자식들 때문에. 아우. 진짜!’
당장 가서 성훈의 오해를 풀어야 했다.
“어디 가요. 선배?”
“몰라! 자식들아. 일단 차에 타고 있어!”
승범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저 멀리 자기 차로 향하는 성훈의 모습이 보였다.
승범은 달렸다.
‘미치겠네. 어떻게 마주쳐도 그렇게…….’
성훈은 비릿한 눈으로 웃고 있었다.
‘고작 뒷담화나 하는 거냐?’하는 눈빛.
‘아 진짜, 이러다가 떨궈지는 것 아냐?’
하지만 화가 난 눈빛은 아니었다.
‘그래. 멀어서 안 들렸을 수도 있어.’
아직 기회는 있었다.
“헉헉. 팀장!”
“응. 왜?”
속이 타는 자신과는 달리 성훈은 평안해 보였다.
“거기는 왜 온 거야?”
“그냥 밥 먹고 산책이나 하려고.”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급해서인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귀를 후비는 모양이 심상찮아 보였다.
성훈에게 물었다.
“우리가 얘기하는 것 들었어?”
“멀어서 잘 들리지는 않았어. 그냥 애들이 하소연하고 넌 달래는 느낌이었는데, 아니었냐?”
“하하. 맞아. 걔들이 철이 없어서, 아직 뭘 잘 모르더라. 그래서…….”
“그래. 잘 했어. 부팀장 역할 제대로 하더라. 널 믿고 맡긴 보람이 있어.”
그리고는 승범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너 없으면 힘들어. 알다시피 민수가 애들 다루는 쪽으로는 약하잖냐.”
승범이 안도하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봉고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성훈이 고함을 쳤다.
“곧 간다니까요. 좀만 기다리세요.”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가?
전화를 하는 건가 싶어 돌아봤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내 귀에는 아무 것도 안 들리는데?’
성훈에게 물었다.
“누구한테 하는 말이야?”
“박 목수 아저씨가 불러서 말이야.”
“어디 계시는데?”
성훈의 손이 자신의 차, 카마로를 가리켰다.
“저어기.”
해가 어둑어둑 져서 어두웠지만, 그의 노란색 차만은 잘 보였다.
거기서 나이든 중년이 손을 휘휘 젓고 있었다.
뭐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말이다.
성훈에게 물었다.
“뭐라고 하시는 거냐?”
“올 때 자판기에서 식혜 좀 사오라고 하시네. 너희들 먼저 출발하라고 해. 난 자판기에 갔다가 간다고.”
성훈이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화장실 옆 공터에 자판기가 보였다.
다시 뒤돌아 박 목수 쪽을 바라봤다.
여전히 그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저게 들린다고?’
박 목수 쪽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20m쯤 걸어갔을까?
희미하게 그의 소리가 들렸다.
“식혜 사오라고! 나는 비락 꺼 아니면 안 먹어!”
다시 봉고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이게 들리는 놈이. 2m 위에서 안 들렸다고?’
한숨을 내쉬며, 봉고로 발걸음을 돌렸다.
***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작업실로 향했다.
쉴 틈도 없이, 성훈의 프레젠테이션이 이어졌다.
“오면서 민수가 실측한 자료들을 나눠줬을 겁니다. 받으셨죠?”
“네!”
이제 하루 일과가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지, 모두의 얼굴이 밝았다.
“실측한 자료를 내일 점심까지 정리해 오세요.”
“네? 우리 방금 충청도에서 올라왔다고요.”
“팀장님! 이건 너무 과하잖아요. 좀 쉴 틈은 줘야 할 거 아닙니까?”
이번에는 아까의 두 사람만이 아니라, 모두가 불평을 토해냈다.
가만히 그들을 둘러보던 성훈이 말했다.
“전력으로 질주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
“이번 주 내로 실측 자료의 정리는 물론, 실제 모형까지 만들 계획입니다.”
“아무도 그렇게 하는 팀은 없다고요. 아직 한 달 동안 시간이 있는데……. 이러면 지쳐서 끝까지 할 수가 없다고요.”
‘힘들기야 하겠지만, 이제 시작인데 이렇게 어리광을 부려서야.’
민수가 성훈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형 처음인데, 적당히 하면 어때요?’라는 눈빛을 보내며 말이다.
성훈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무 심한 건가?’
둘러보는 와중에 승범과 눈이 마주쳤다.
승범이 벌떡 일어섰다.
그에게 물었다.
“부 팀장. 정말 안 되는 겁니까?”
승범이 결심을 굳힌 눈을 한 채, 단상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귀에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승범 선배. 오늘 하루만 쉬자고 해 주세요. 네?’
‘이러다가 배터리 방전된다고요.’
기대의 눈빛들이 승범의 등에 부서졌다.
성훈의 앞으로 다가가 단상에 섰다.
“오늘 우리 중에서 가장 피곤할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아까 태워주신 봉고 운전사님? 바로 퇴근하신 박 목수님?”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니면 민수 학우? 아니면 여기 팀원들?”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닐걸요. 제일 피곤한 사람은 팀장님일 겁니다. 왜냐고요? 우리가 차안에서 퍼져 잘 동안 계속 운전을 했거든요.”
“그뿐입니까? 제일 먼저 도착해서, 스님들과 실랑이를 했고, 실측할 때도 앞서서 진두지휘를 했죠.”
인정을 하지만 할 말은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사람이 적당히 쉬어가면서 해야 할 것 아닙니까?”
민수가 분류한 자료를 들며 말했다.
“이게 팀장이 맡은 분량이고, 이게 나머지가 우리가 맡은 분량입니다. 제가 보기엔 양쪽의 자료가 비슷해 보이는 군요.”
민수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성훈 형, 건축 캐드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라고요.’
어쨌거나 자료의 양은 비슷했다.
승범의 말이 이어졌다.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해 봅시다. 이미 절벽 끝으로 몰렸고, 오전만 해도 의욕이 넘쳤잖아요.”